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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땅을 강에게 - 2

박은선_리슨투더시티 디렉터

제184호

2020.08.06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강의 언어 만들기

리슨투더시티는 2009년부터 지율스님과 낙동강 지키기 운동에 참여했고, 2011년경 본격적으로 ‘내성천의 친구들’을 결성하였다. 주된 활동은 생태조사와 답사를 통한 과학적 데이터 수집,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결합한 운동 만들기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쫓겨나는 존재들의, 몫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환경 계획’의 관점이 필요했다. 페미니스트 환경 계획은 남성 중심적 국가와 자본이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점을 비판하며, 권력 중심적인 환경운동의 폐단도 함께 비판한다. (Elmhirst, 2011; Harding, 1995; Rocheleau et al., 1996; Sandercock, 2000).

<영주댐 공사 전 후, 사진 지율스님, 포스터 디자인 리슨투더시티 권아주, 2015>

10년 넘게 강을 조사하면서 든 생각은 우리는 강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지만, 강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점이었다. 강은 수많은 생물과 사람이 마셔야 하는 물이고, 강변의 땅은 범람과 수축을 반복해서 물을 정화하고 생명을 길러내야 하지만, 도시 사람들에게 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성천 운동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국가나 삼성 물산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태에 대한 공감 능력을 이끌어 내는 일이었다. 강에 대한 기억이 없는 도시 사람들이 강의 아픔을 공감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내성천의 친구들은 직접행동의 일부로서 ‘모래’라는 전시장을 만들어 강에 대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강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언어를 만들었다. “모래강 내성천”이라는 말은 지율스님과 내성천의 친구들이 고민 끝에 만들어낸 내성천의 별명이다. “모래가 흐르는 강”이라는 말도 원래 있던 표현이 아니라 지율스님이 영화를 만들면서 고민 끝에 만든 말이다. 모래가 흘러가지 않으면 강은 죽기 때문이다.

강을 답사하며 발견한 또 하나의 문제는 환경 관료들뿐만 아니라 환경운동이 지나칠 정도로 남성적이고 권력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남성 중심적 운동단체들은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관찰하는 우리들의 자료를 끊임없이 무단으로 도용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쫓겨나는 생물들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객관적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목소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남성 중심의 환경 단체들은 현장 조사를 하는 대신 ‘내성천의 친구들’이 만든 자료나 언어를 허락 없이 퍼갔다. 심지어 우리가 강에서 하는 손잡기 퍼포먼스까지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면서 MB를 처단하자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들의 목표는 정권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4대강 공사를 비판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정말 강의 생태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조직에서 왜 생태조사나 기록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일 년에 한 번 현수막을 들고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이 환경운동이 아닐 텐데 말이다.

영주댐은 2014년까지 완공 예정이었지만 2020년 현재까지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물이 새기 때문이다. 국가는 영주댐의 수질이 나빠서 담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수질보다는 댐의 안전 문제와 지역 지하수 체계의 붕괴이다. 댐 건설을 시작하면 강 전역에서 4m 이상 강바닥이 낮아지는 현상이 생기는데(맥컬리, 2003) 내성천도 예외 없이 강바닥이 4m 이상 낮아지고 지하수 체계가 붕괴해 지류의 강이 말라가고 농경지가 황폐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내성천의 친구들’은 2014년부터 국가와 건설사 삼성물산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 해 아직도 소송 중이다.

그런데 환경부는 강에 대한 생태 조사나 연구를 해본 적도 없는 남성 중심적 환경단체들과 함께 ‘영주댐 거버넌스’를 꾸려 합의에 들어갔다. 물이 새고 지하수 체계가 붕괴되고 있는데, 제대로 된 투명한 조사 대신에 현 정부에 호의적인 남성 중심적 NGO를 주축으로 지역 주민과 ‘내성천의 친구들’을 배제한 채로 거버넌스를 구성한 것이다.

거버넌스는 하버마스식 공론의 장 모델에서 시작했다(이태우, 2011). 거버넌스를 국가와 민간이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민주주의 정치의 최후의 보루쯤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철저한 착각이다. 거버넌스를 구성할 때 이미 권력이 작용하며, 거버넌스를 통해 나온 합의의 질을 보장하지도 못할뿐더러 과학적 데이터가 증명할 분야와 논의를 통해 합의해야 하는 대상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도시 계획가들이나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거버넌스 모델을 비판한다(Huxley, 2000; 장미경, 1999). 댐에 물이 샌다면 건설사가 책임을 지고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강에 대해 조사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책임지고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황당할 뿐이다.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포스터, 지율스님, 2013>
정권은 바뀌었지만, 4대강 공사는 아직 활발히 진행 중이다. 4대강 공사 때 생긴 “친수구역 특별법” 때문에 강변 농사는 어려워졌으나, 대신 아파트, 호텔, 리조트, 공단은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강물을 식수로 쓰는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현 정부는 4대강 공사를 반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대강 공사의 핵심인 이 법을 폐지하겠다는 의지가 없고 오히려 대구의 에코폴리스나 우리나라 최대 철새 도래지인 낙동강 하구에 에코델타시티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정권도 강의 땅을 단순히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난 셈이다. 물이 범람하고 수축하고 모래를 운반하면서 유지되는 강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대신, 강의 범람터에 신도시를 계속 짓는다면 물이 오염되는 것은 물론이고 홍수의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프레드 피어스는 강의 범람은 심장 박동과 같아서, 범람이 멈추면 강도 죽는다고 이야기한다(피어스, 2010). 전 세계적으로 강에 만든 댐이나 하구둑으로 담수 어종이 급격히 멸종하고 토양이 산성화되고 강이 깊어지면서 지하수가 고갈되어가고 오히려 홍수 위험이 증가하고 있기에(맥컬리, 2003),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 땅을 강에게 만들어 주자(room for river)는 정책이 널리 시행되고 있다. 강에 제방을 쌓는 비용으로 강의 범람원을 사서 강이 여유롭게 범람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는 작업이다(European Environment Agency, 2018). 이 사업을 통해 홍수 위험도 줄이고 생물 다양성도 높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수질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한 취지에 동감한 ‘내성천의 친구들’은 2011년부터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을 통해 강의 습지를 넓히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버드나무 범람원을 중심으로 하는 복원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생물 다양성 최하위 국가이다. 모두가 코로나19 이후를 예측하고 있지만 우리가 마시고 있는 강에 대한 근본적인 문화와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남성 중심적이고 권력 중심적인 NGO들에게 나의 실천을 대리하여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 입장론과 맥락에 상응하는 환경적 실천이 절실하다. 우리에게 공기와 물 그리고 먹거리를 공급해주는 산, 들, 강, 바다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쫓겨나는 생명의 시각으로 빛을 잃어가는 강과 산과 바다에 조금 더 감각의 날을 세우고 더욱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lmhirst, R., 2011. Introducing new feminist political ecologies. Geoforum 42, 129-132.
European Environment Agency, 2018. Interview - The Dutch make room for the river - European Environment Agency.
Harding, S., 1995. “Strong objectivity”: A response to the new objectivity question. Synthese 104, 331-349. https://doi.org/10.1007/BF01064504
Huxley, M., 2000. The Limits to Communicative Planning. Journal of Planning Education and Research 19, 369-377. https://doi.org/10.1177/0739456X0001900406
Rocheleau, D.E., Thomas-Slayter, B.P., Wangari, E., 1996. Feminist Political Ecology: Global Issues and Local Experiences. Psychology Press.
Sandercock, L., 2000. When Strangers Become Neighbours: Managing Cities of Difference. Planning Theory & Practice 1, 13-30.
https://doi.org/10.1080/14649350050135176

맥컬리패트릭, 2003. 소리 잃은 강. 지식공작소.
손정목, 2003. 서울도시계획이야기. 한울.
이태우, 2011. 하버마스, 이데올로기, 의사소통 [WWW Document]. 인문과학연구. URL http://www.dbpia.co.kr (accessed 4.7.18).
장미경, 1999. [기획시리즈: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⑥⑥]페미니스트 근대론자들-낸시 프레이저, 아이리스 영, 앤 필립스를 중심으로 [WWW Document]. 경제와사회. URL http://www.dbpia.co.kr (accessed 5.28.18).
피어스프레드, 2010. 강의 죽음. 브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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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리슨투더시티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미술과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환경공간정보 및 재난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listentothecity.or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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