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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광고가 아니지만

김지연_전시기획자

제201호

2021.05.27

이완 맥그리거가 나온다기에 넷플릭스에서 미니시리즈 <홀스턴>을 봤다. 가정폭력에 멍든 엄마를 직접 만든 모자로 위로하던 아이가 성장해서 모자 디자이너가 되고, 이후 자기 브랜드를 런칭하지만 그 브랜드에서 내쳐지는, 야망과 도전과 좌절과 성공과 실패와 사랑과 우정과 질투와 갈등과 상처와 기타 등등이 버무려진 논픽션 드라마였다.
재클린 케네디가 그의 모자를 즐겨 쓴 덕분에 빠른 속도로 유명해진 홀스턴은, 더 이상 사람들이 모자를 쓰지 않는 시대가 오자, 패션 아이템 전체를 다루는 자신의 브랜드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야심 차게 준비한 첫 번째 패션쇼는 폭망했다. 모델들이 모두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고, 그가 슬그머니 박수를 치며 쇼의 마무리를 알려야 했고, 주문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드레스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푸념하는 그에게 동료는 말하기를, “누가 드레스를 이해하려고 해? 한눈에 마음에 들어야지.” 그렇구나. ‘이해한다’와 ‘한눈에 마음에 든다’는 다르고, 드레스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는 차가운 가르침.
그 장면을 보면서, “미술이 광고냐”고 말하던 (나를 포함한) ‘업계’ 사람들의 까칠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현대미술은 광고처럼 순식간에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한 분야가 아니므로, 작품 앞에 좀 ‘오래’ 서 있어 보라고 말한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한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3초가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 바라봐도 ‘잘’ 모르겠고, 아무 ‘교감’이 생기지 않으면 그건 감상자의 문제라기보다 작가가 ‘실패’한 거라고 매우 과감하게, 매우 대책 없이 덧붙인다.
온갖 주관적인 판단에 기대 제시하는 이런 조언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작품의 목소리가 작가의 의도에 닿지 못할 때, 그러니까 작품이 생각만큼 잘 안 풀렸을 때 작가는 그 부족한 부분을 글로 채우거나, 신박한 다른 방법을 끌어들이거나, (아마도) 그냥 어사무사하게 내버려 두므로, ‘다른 방법’을 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작품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까. 반면에 어떤 작품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눈에 마음에 들고, 어떤 작품은 오래 봐도 이해는 안 되지만, 눈을 떼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오래 보게 되니까. (작품이 이해되는 순간은 아주 먼 미래에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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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홀스턴> 화면 캡쳐
삶의 속도가 달라졌기 때문인가. 요새는 (역시 주관적이지만) ‘제대로’ 또는 ‘충분히’ 보지 않고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왜 이 작품은 단숨에 나를 사로잡지 못하느냐”는 질타 섞인 속마음을 “미술은 광고가 아니에요” 라는 말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작품 수도, 작가 수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데다, 관련 정보도 넘쳐나는 상황에서, 일단 어떤 식으로든 눈길을 사로잡지 않고서는 다음을 이야기하기가 부쩍 어려워진 탓이다. ‘단숨에 사로잡기’가 마치 시대정신인 것처럼 활약하는 현재를 살고 있는 관객들은 작가들에게 나를 단번에 매료시킬 수 있는 강력한 내공을, 그게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어떤 역량을 요구하는 게 아닐까.
홀스턴의 필 박스 모자가 주목을 받은 건, 모자가 훌륭했기 때문인가, 재클린 케네디가 유명했기 때문인가. 다름 아닌 ‘그’ 모자를 쓴 재클린이 아름다웠기 때문인가. 요새 미술계는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컬렉션하는 좋은 후원자 고(故) 이건희님과 BTS님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건희님의 컬렉션을 다루는 국립미술관을 유치하겠다며 전국의 지자체가 앞 다투어 나선다. 왜 우리가 적합한지를 호소하는 지자체들의 홍보문구가 흥미롭다.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전시장인데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많아서 물어보면 ‘BTS 00가 다녀갔어요’라고 답한다. 상황을 바로 납득한다. 작품을 살 수 없는 관객들이 도록을 폭풍 구매하여, 드물게 2쇄 3쇄를 찍는 작가도 등장한다. ‘유명인사’ 덕분에 미술애호가들이 늘어나면, 감사하다.
기관의 홍보력에 기대거나, 셀러브리티의 내방을 기대할 수 없는 창작자들은 그 자신이 직접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려나. 이제 (아마도) 모두들 SNS 플랫폼에 꾸준히 자기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관계망을 확장하고, 자기브랜드의 영향력을 쌓아가는 과정을 당연할 뿐 아니라 필수로 받아들인다. 창작을 지원하는 공모 서류는 당연한 듯 ‘홍보전략’을 요구한다. 언론계에 친분도 없고, 별달리 기댈 언덕이 없는 이들에게도 SNS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SNS 활동이 ‘홍보전략’의 빈칸을 채울 수 있다.
어떤 전시장은 작가를 선택할 때 그의 팔로워 숫자를 고려한다고 하니까, (씁쓸하지만) 자기프로모션 역량은 창작역량의 일부가 된 것 같다. 다리품을 팔아가며 전시 오프닝을 다니고 ‘사교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온라인에서 펼치는 손가락 사교가 더 편한 것도 같지만 오프라인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거의) 무제한 연결망이 너무 광대한 것이 함정이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콘텐츠로 세계와 무한대로 연결하느라 작품에 몰두할 에너지를 끌어다 써야 할 판이다.
작품도 잘 하고 홍보도 잘 해야 하는 이 시대 창작자들에게 (ㅤㅤㅤㅤ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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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김지연 d/p 디렉터, 전시기획, 미술비평
김지연은 국문학, 미술사,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정신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최근에는 전시 형식이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가시화하는 전략을 살피는 중이다. 가나아트센터, 학고재갤러리 기획자로 일했고, 세계문자심포지아,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는 <예술가들의 대화> 등이 있다. 현재는 1인 기획사이자 출판사인 소환사와 전시공간 d/p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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