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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지는 마음

유선

제203호

2021.06.24

어릴 때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어떤 사람은 오백만 원을 빚져도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하다 자살을 시도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천억 원 대의 빚이 있어도 잘만 사는 것 같을까?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하면 ‘그런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그래’ 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요즘에는 미안해하는 쪽이 ‘멘탈이 약해서’, 그러니까 ‘멘탈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 많은 빚을 내는 것도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는데 그게 어떤 능력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진 빚 만 원과 천억 원 사이에 눈금선을 그려 죽을 만큼 미안하고 괴로워지는 각자의 위치를 표시한다면, 자살 직전에도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은 챙겨놓고 사과 편지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빚이 아무리 많아도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과 또 그게 빚지는 것인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이 어디즈음 전기세와 가스요금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밀렸다 한 번에 내는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다. 나와 그들 사이사이 촘촘하고도 엄청난 간극을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진 빚에 대해 적어도 나보다는 그걸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너무 작은 일에 죽을 만큼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일종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루쉰이 이야기했던 절망도 아니고 희망도 아닌 어떤 상태를 스스로의 마음에 적용한다고 하면, 두 지점 사이에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좋을까. 이런 문제는 희망이냐 절망이냐의 이분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언제나 ‘어느 정도’일 것 인가, 만이 중요하다. 너무 큰 절망에 스스로를 빠뜨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 진 빚에 대한 인식 없이 너무 ‘강한 멘탈’로 사는 것도 경계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약함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든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 남의 일에 쉽게 영향받지 않고 귀를 좀 덜 기울이는 것, 남이 아픈 것은 남의 일,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가끔은 이렇게 마음이 딱딱하게 변하면 살기가 좀 쉬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나서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에 대한 오래 전 기사를 떠올린다. 타이레놀이 본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동시에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도 둔감하게 만들어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1) 기사를 읽은 이후 나는 타이레놀을 한 알 삼킬 때마다 내가 눈금선의 어느 위치로 이동하고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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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사회연대 유튜브 “동자동 쪽방촌에서 식도락가로 살아가는법 ”중 캡쳐
언젠가 일본에서 만났던 한 연주자가 “한국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는데 정말인가요? 일본에도 많은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라고 조금 슬픈 눈으로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주식 부자가 된 한 클래식 애호가가 한국에는 밥을 굶는 사람도 없고 굶어서 죽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고, 단호히 자신에게 말했다고 했다. 너도 설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라는 눈빛 앞에서 나는 물론 아니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렇다고 굶은 사람이 있는 줄 알면서도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는 처지도 아니라서 다시 부끄러워졌고 타이레놀을 한 알 먹을까 말까 망설였던 것 같다.
이제는 좀 귀도 닫고 눈도 닫고 강한 멘탈을 기르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에 나는 내가 아는 약한 사람들, 약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다른 약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으려고 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메모를 본다.2) 요즘 계속해서 보는 페이지는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환대의 조각들> 중 빈곤사회연대의 활동가 3인(윤영, 성철, 재임)이 남긴 것들이다.
“남순(가명)님을 처음 만난 곳은 서울역 광장이었다. 그녀는 단촐한 짐으로 노숙을 시작해 차츰 괜찮은 끌차와 비닐덮개를 장만했다. 박스와 담요가 덧대어진 작은 끌차에 몸을 우겨넣고 그렇게 겨울을 났다.
여러번 복지제도에서 탈락했던 남순님은 꼬박 일년 반을 거리에서 보낸 끝에서야 복지신청을 다시 하겠노라 용기를 냈다. 함께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를 여러 날, 봄에 시작한 신청은 여름이 지나 겨울이 될 때쯤 안정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활짝 웃던 남순님은 돈이 없던 시절 아랫마을에서 먹은 밥값을 갚고 싶다며 쌈짓돈을 꺼냈다.” 3)
“저는 처음에 우리 아저씨가 여기서 삼 개월 만 살고 가자 그랬는데, 삼 개월이 뭐야 지금 서른여덟에 왔나 그런데 지금 칠십 몇이니까. 남대문 새로나 백화점 지하에서도 일 했고, 분식집에서도 일 했고, 많이 했어요 하기는. 돈 벌어봤자 뭐 방세 내고 뭐 하면 없고.” 4)
그들이 기록하는 이 목소리들은 밝고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섞여 있다. 슬픈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한데 슬프지만은 않게, 절망적으로 느낄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절망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서로가 서로의 생을 써서 누군가에게 건네지 않는다면 우리는 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빚지는 마음을 슬프지도 않고 너무 기쁘지도 않게, 그렇지만 다른 이의 삶에 무감각해지는 것만은 막아보려는 행동들을 마주할 때, 나는 이 빚지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도 어찌저찌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타이레놀’ 먹으면, 타인의 고통도 둔감하게 느낀다" 아시아경제 2018년 4월 12일자
  2. 환대의 조각들 웹페이지 중 빈곤사회연대 폴더
    https://fragments1444.ink/Korean_Peoples_Solidarity_Against_Poverty/
  3. 위 링크의 #1010 조각
  4. [빈꽁 세 번째 이야기] 동자동 쪽방촌에서 식도락가로 살아가는 법
    https://www.youtube.com/watch?v=1M7jNTSSXUU 빈곤사회연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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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유선
노들장애인야학 낮수업 교사이지만 한 번도 교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르칠 수도 없고 가르치기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비장애인 교사의 권위에 대해 생각한다. 인포숍카페별꼴의 매니저 7인 중 1명이며, 3명으로 구성된 다이애나랩에서 33.3%의 일을 맡고 있다. 아기를 낳고 커밍아웃이 어려워진 팬섹슈얼, 비건, 고양이 추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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