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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품을 소장하는 일

김지연_전시기획자

제205호

2021.07.29

지난 6월, MZ세대 컬렉터와 갤러리스트를 겨냥한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주최측이 아트페어 참가 이력이 거의 없는 신진 전시공간을 초대한 덕분에 기존 아트페어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공간과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행사장은 개막당일부터 상당히 북적였는데, 10여 년 만에 활황을 맞이했다는 미술시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남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들었던, 추리닝 입고 슬리퍼 신고 내려와서 작품을 턱턱 사간다는 스타일리시한 젊은 컬렉터들이 부스 사이를 누비며 자신들이 기존에 구매했던 작품이며, 경매장에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트페어에 대한 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열정은 뜨거운 갤러리스트들은 행사장에 풋풋한 기운을 불어 넣었다.

오가는 사람들을 통해 최근 미술시장의 분위기, 새로운 컬렉터들의 취향, 젊은 작가들의 작업 경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미로운 정보는 MZ세대 컬렉터들의 수입원이 과거의 컬렉터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신예 컬렉터 가운데에는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처럼 ‘구독’과 ‘좋아요’ 경제구조 안에서 활동하는 이들, 게임이나 휴대폰 앱을 개발하는 이들, 이커머스 관계자 등의 비중이 꽤 높은데, 이들은 2천만원 안팎의 금액 정도는 가볍게 작품 구매에 지출한다고 했다. 이 정도 금액을 쓸 때에는, 더 큰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투자대상으로 미술품을 보기보다, 샴푸나 향수, 구두, 가방 같은 기호품을 구매하는 정도의 무게로 작품을 바라본다고 했다. 이것도 일종의 ‘가치소비’라고 말할 수 있다면, 미술품 컬렉팅 문화가 조금씩 자리잡아가는 긍정적 현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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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페어의 주최 측인 신한카드는 ‘마이아트플렉스’라는 이름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서, 이를 통해 갤러리, 참여작가를 홍보하고, 컬렉터들 역시 앱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어필하거나, 미리 작품을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구매 후 작품에 대한 후기를 사진과 함께 업로드 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쇼핑몰의 구조와 흡사한 이 앱의 이름에 ‘플렉스’가 들어간 것은, 이곳에서 예술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이들이 작품을 대하는 마음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다가왔다. 작품을 구매하면, SNS에 공개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는 MZ들에게 ‘예술품’을 소장하는 것은 충분히 플렉스할만한 일이다. 사실, 오랜 시간, 미술품 컬렉션은 취향과 안목, 네트워킹, 재력을 은밀하게 과시하는 수단이 되어 왔으니, 최근 들어 ‘아트플렉스’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솔직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조언에 휘둘리기보다 스스로 정보를 찾아 작품을 구매한다는 이 젊은 컬렉터들의 경향이 시장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실제 아트바젤이 발표한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중국,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 등 10개국 고액 자산가 컬렉터 중 56%가 MZ세대라고 하니, 경매회사, 갤러리들이 MZ 세대 컬렉터들을 겨냥한 프로모션 방식을 고민하고, 판매 아이템을 선별할 수밖에 없겠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전시, 온라인 아트페어가 활성화되면서 MZ세대가 미술시장에 대거 진입했다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었다. 미술시장과 기술발전이 맞물리면서 디지털 친화적인 이들의 시장 진입이 쉬워졌고, 미술품 거래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낮아졌단다.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라는 NFT(Non-fungible tokens)의 등장으로 새롭게 열린 예술시장 역시, 기술에 친숙한 MZ 세대의 감수성이나 사고방식과 맞물려 급성장 중이다.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완벽하게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데이터로 이루어진 작품은, 그 복제가능성으로 인해 가격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미술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암호화 기술을 적용하여 복제불가능한 유일한 작품으로 인증하는 순간, ‘희소성’, ‘원본성’을 확보한 작품은 투자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기 시작했다. 기존 미술시장 대비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이곳에서 선보이는 예술품들은 ‘소장’하여 향유하는 대상이기보다 명백한 ‘투자’ 대상으로 각광받는 모양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자 돈이 몰려들고, 전통 매체를 다루던 유명 예술가들도 NFT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아트를 발표하느라 분주하다. 지금 이 흐름을 놓치지 말고 올라타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업, 창작자, 투자자들의 욕망이 빠른 속도로 이 시장을 성장시키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을 소장하는 방식과 목적, 창작의 방법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도, 이 기술이 예술의 정의, 역할도 자본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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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김지연 d/p 디렉터, 전시기획, 미술비평
김지연은 국문학, 미술사,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정신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최근에는 전시 형식이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가시화하는 전략을 살피는 중이다. 가나아트센터, 학고재갤러리 기획자로 일했고, 세계문자심포지아,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는 <예술가들의 대화> 등이 있다. 현재는 1인 기획사이자 출판사인 소환사와 전시공간 d/p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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