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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나를 자유롭게 해주어서

유선

207호

2021.10.14

요 며칠 나는 세 명의 인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한 명은 연극 속 캐릭터다.

십 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매년 한두 차례 텐트연극이라고 불리는 것에 참여해왔다. 코로나로 작년에는 연극을 할 수 없었고, 올해에는 갈 수 없어 불참을 했지만 매년 침낭을 들고 도쿄, 이와키, 타이베이나 베이징으로 갔었다. 서울에서는 2012년 광화문에서 <들불>이라는 텐트연극을 공동기획한 적이 있다. 텐트연극은 100-300석 규모의 텐트 극장을 지어 연극을 상연하고 끝나면 다시 극장을 해체해 싣고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는 연극이다. 여러 개의 텐트극단이 일본에 남아있지만 내가 가는 곳은 ‘야센노츠키(야전의 달)’라는 극단이다. 공연을 관람하고 비평하는 것보다 만드는 쪽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로 청소를 하거나 무대 일을 돕거나 밥을 한다. 텐트가 세워지는 대략 2주일 동안에는 거의 텐트에서 함께 머문다. 일 년에 한 차례씩 함께 노숙하는 이상한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리허설과 연습, 공연 중에 밖에서 텐트의 틈으로 엿봤던 수많은 장면들 속에서 요즘 자주 떠오르는 건 2014년 <백B엔 신성희극>에 나오는 젊은 남성 노동자다.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에서 실제로 14년간 쓰였던 화폐인 ‘B엔’ 지폐가 떨어져 있는 섬, 백엔숍이 있는 쇼핑몰, 수백 마리의 벌이 들어차 있는 벌집, 이발소, 쪽방… 계속해서 바뀌는 회전 무대 사이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에 그는 큰 키에 좀 평범하고 심심한 얼굴이다. 그즈음 몇 년간 청년 노동자 역을 도맡던 친구가 연기했다. 남을 속인다는 건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백B엔 신성희극>에서 그는 목이 잘린 노동자를 연기했는데, 일자리를 잃은 사람인 동시에 정말로 목이 어디에선가 잘린 캐릭터였다. 야센노츠키의 연극에는 항상 엄청나게 많은 비유와 말장난이 난무한다. 웃김과 슬픔과 실없음과 진지함 사이에 아무 벽이 없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한다. 노동자 역을 맡은 배우의 목 밑으로 까만 천을 대서 머리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누군가 손에 머리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연습하며 깔깔 웃었었다.
그런데 극의 후반부 독백에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목을 스스로 잘랐다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꺼낸다. 목이 잘린 노동자와 스스로 목을 자른 노동자 사이의 말할 수 없이 깊고 큰 틈이 갑자기 하나의 캐릭터로 합쳐진다. 아무렇지 않게 슥 지나가는 그 이야기에 나는 좀 매혹되었다. 일하던 곳에서 목이 잘리는 경험은 정말로 끔찍한 것이고 생을 뒤흔드는 어떤 것이었을 테지만, 어느 기묘한 순간에 그는 스스로 목을 자른 노동자가 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잘린 목을 주워 담아 다시 붙여야 살 수 있을까 말까 위태롭던 사람이 어떻게 하면 갑자기 스스로의 목을 자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까?
이것은 자유에 대한 비유다. 시스템에서 잘려나간 사람이 스스로를 잘라내는 이상한 이야기. 극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뤄졌던 그 인물의 표정이 다시 떠오른 것은 며칠 전에 만난 한 사람 때문이다.

김동림은 스물여섯부터 마흔여덟까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라고 불리는 장애인 시설에서 살았다. 스스로 들어갔던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삶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다. 그래도 장애인이니까 시설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이것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에서 나가면 죽는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2009년에 나오는데, 거기 종사자들이 나가지 말라고 그랬어요. 나가면 죽는다고. 그 말에 속으로 내가 그랬어요. 내가 죽는지 사는지 보자.” 그와 동지들은 시설의 회계 부정과 장애인 감금, 폭행, 금품 갈취를 폭로했고 그 결과 이사장이 구속, 시설장이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2009년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 농성을 하며 서울시를 상대로 ‘탈시설 체계를 수립하라’라고 요구했다. 이사장이 감옥에 가고 아무리 내부가 바뀐다 해도 시설은 시설일 뿐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했고 투쟁 끝에 자립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21년 4월 그들이 살던 시설은 거주인 모두가 자립을 해 마침내 문을 닫게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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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8인.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동림, 김용남, 김진수, 방상연, 황정용, 홍성호, 하상윤, 주기옥.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사진출처: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12)

며칠 전 우연히 장애인 권리보장법 탈시설보장법 제정 농성장에서 그를 만났다. 오다가다 자주 봐서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였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없이 조금 어색한 분위기라 얼마 전 폐쇄된 향유의 집(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가보았다고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향유의 집이라는 말이 나오자 대번에 활기를 띠면서 거기 가보셨어요? 그 이 층 첫 번째 방, 시체방 가보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리고 너무도 기쁜 표정으로 그 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병원에 보내지도 않고 흰 천에 돌돌 말아 방구석에 뒀다 바로 벽제 화장터로 보내버렸다고. 그리고 또 다른 방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기억력이 좋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했다.
어떻게 저렇게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누가 나에게 인생 최악의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면… 일단 떠올리는 것부터 트리거이기 때문에 그곳을 떠올릴 일은 더더욱 없고 누군가에게 자세히 설명할 일도 없고 얼굴이 밝아지기는커녕 상상만 해도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랬다. 옛 친구와 수다를 떨 듯, 때로는 즐거운 추억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무 표현하고 싶어 저절로 나오는 어떤 것. 슬픔과 절망이 없는 생존자의 증언.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함께 투쟁했던 ‘마로니에 8인’ 모두가 그럴 것 같았다.
아직은 다 이해할 수 없고 따라 하기 힘든 그 기쁜 얼굴을 마주하는 동안 나는 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는 몇 주 전 우연히 유튜브 영상2)에서 봤던 사람에게 배웠다.

인도계 미국인 논바이너리 작가이자 예술가인 알록 바이드메논(Alok Vaid-Menon)은 자유와 자기 긍정에 대해 스스로의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내가 왜 그들을 위해 싸우지 않는 거지?’ ‘왜 그들을 돕지 않는 거지?’ 하고 자문하는 선량한 남성 진행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죠. “내가 왜 그들은 돕지 않는 거지?” 마치 이 투쟁이 당신의 투쟁은 아닌 것처럼요. 왜냐하면 당신이 나를 위해 싸우지는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말은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충분히 싸우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해요. 어떤 운동이든 그게 헤테로 중심의 가부장제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나 전통적인 젠더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여성 해방을 위한 것이라면 논바이너리인 사람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로 가장 정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는 근원을 추적하고 있어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한 생각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들은 이분법적 구조로부터 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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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출처: 인스타그램 @alokvmeno

논바이너리와 젠더 비순응자는 나를 죄는 이 목줄을 끊으면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걸 끊을 수 있는지, 그게 땅속 깊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끝까지 추적해 본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가장 솔직하며 가장 정직한 사람들.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까지 바꾸어 가며 자유로워지려고 싸우는 사람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거의 멸종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 혐오의 타겟이 되는 사람들, 약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그러나 실제로는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
세 인물을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떠올리고 있으면, 나는 스스로의 삶과 그것을 반영하는 예술적 창작 사이의 관계, 가장 자유로워진 사람을 상상하고 만들어 보여준다는 것과 그런 사람이 직접 되어간다는 것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목이 잘린 노동자를 연기하던, 아무도 속일 수 없을 것 같던 눈을 가진 그 친구는 몇 년 전 모든 것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떠났다. 스스로에게 어떤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아마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에도 능숙하지 못할 것이다.

[…] 그래서 그들은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우리를 없는 존재로 만들려고 해요. 그들이 그들 자신에게 이미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당신의 질문을 고쳐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도와드릴까요?”가 아니라 “나를 좀 자유롭게 해줄 수 있나요?”라고요. [...] 그들은 그걸 분명히 표현할 수조차 없어요. 당신이 그 상처를 설명한 언어조차 없다는 것, 스스로 상처 입었고 피 흘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 같은 트랜스와 젠더 비순응자들은 상처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요. [...]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도록 교육받아왔어요. 이건 트랜스와 논바이너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만 한 게 아니에요.

목이 잘린 사람이 스스로 목을 자르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나가면 죽는다고 하는 곳을 나가서 사는 게 가능한 것처럼, 이행(트랜지션)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게 젠더만의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래도 아직 멀었지만,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할 수 있는지 끝까지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자기를 어디까지 긍정할 수 있는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빛나는 자긍심이란 무엇인지 실제로 알게 해주어서, 이전과 다르게 살 수 있게, 다르게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1. 강혜민, 「2021년 4월 30일, ‘향유의집’ 폐쇄되던 날」, 『비마이너』, 2021.5.1.,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51.
  2. The Man Enough Podcast <ALOK: The Urgent Need for Compassion>, 2021.7.26., https://youtu.be/Tq3C9R8HN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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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유선
노들장애인야학 낮수업 교사이지만 한 번도 교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르칠 수도 없고 가르치기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비장애인 교사의 권위에 대해 생각한다. 인포숍카페별꼴의 매니저 7인 중 1명이며, 3명으로 구성된 다이애나랩에서 33.3%의 일을 맡고 있다. 아기를 낳고 커밍아웃이 어려워진 팬섹슈얼, 비건, 고양이 추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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