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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와 큐 사이, ‘적당함’의 시간 속에서

[큐투큐] ㅋㅌㅋ

윤소희

217호

2022.04.28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암전. 막. 그리고 커튼콜(curtain call). 공연이 끝나면 조명이 환히 무대 곳곳을 비추고, 커튼콜이 시작된다. 약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이어진 공연에 대한 박수. 객석에서 공연을 본 관객들을 향한 인사. 커튼콜이 끝나고 다시 암전. 그리고 프리셋 조명과 함께 객석등이 켜지면 관객은 그제야 퇴장을 한다. 오랫동안 이어진 약속 신호(cue)인 셈이다.

열심히 무대를 진행한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열심히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에게 커튼콜은 다소간의 긴장을 내려놓고 박수와 인사를 주고받는 시간이다. 반면 이 시간에 하우스어셔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긴장된 눈으로 객석을 살핀다. 하우스어셔들에게 커튼콜은 곧 관객 퇴장을 도울 준비를 해야 하는 신호(cue)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극 공연에서는 커튼콜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종종 스포일러 방지나 저작권의 이유로 커튼콜 촬영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 촬영이 불가한 경우에는 공연 시작 전에 최대한 관객에게 안내를 하지만, 미처 안내가 가닿지 못한 관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하우스어셔들은 커튼콜 중에도 바삐 움직이며 안내를 하기도 한다. 한편 화장실이나 이후 일정이 급해 커튼콜이 채 끝나기도 전에 퇴장하는 관객이 있기도 한데, 커튼콜 중에는 객석이 아직 어둡기 때문에 관객이 넘어지지 않도록 서둘러 랜턴을 꺼내 비추기도 한다. 또 배리어 프리 회차가 진행되는 공연에는 장애인 관객의 퇴장을 신속히 안내할 수 있도록 객석의 위치를 재차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남산예술센터에서 하우스어셔로 오래 일했지만, 객석 포지션에서 근무를 하는 날이면 늘 긴장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객석등을 켜는 순간이다. 남산예술센터는 극장으로 들어가는 메인 입구가 두 군데, A문과 C문으로 나뉘어 있어서 각각 A문과 C문에 있는 어셔들은 동시에 객석등을 끄고 또 켜야 했다. (물론 하우스매니저의 무전 신호가 있지만) 공연이 끝나고 프리셋 조명이 들어온 후 ‘적당한’ 여운을 남기고 객석등이 켜져야 하는데, 이 ‘적당함’의 큐란 매 공연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활기찬 박수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커튼콜이 진행되는 경우에는 나름대로 ‘적당함’의 감각을 잘 캐치할 수 있었지만, 무거운 분위기나 커튼콜이 없는 공연의 경우 이러한 큐와 큐 사이의 ‘적당함’은 미궁에 빠져든다.

<휴먼 푸가>(2019)가 특히 그러했다. <휴먼 푸가>는 기존 A문과 C문이 아닌 무대 중앙 문을 입구로 사용하고 객석도 무대 양옆에 마련되어 있었다. 관객이 들어 온 입구가 굳게 닫히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되고, 그 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퇴장 시에 관객은 계단을 올라 A문과 C문으로 나가야 하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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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푸가> (2019) 커튼콜 없이 배우들이 먼저 계단을 올라 C문으로 퇴장한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이승희

들어온 곳과 나가는 곳의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관객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하우스어셔들은 공연이 끝나면 무대 아래까지 내려와 퇴장로를 안내해야 했는데, <휴먼 푸가>의 경우 커튼콜이 없이 배우가 퇴장하기 때문에 객석등을 켜는 순간도,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객들에게 제스쳐를 취하는 순간도 무척 긴장이 되었다. 늘 객석 뒤에서 기척을 감추고 있는 하우스어셔가 관객들 앞에 ‘등장’함으로써 공연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cue)가 되기 때문이었다. 너무 일찍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니 관객의 여운을 중단시켜 버리는 것만 같고, 너무 오래 기다리자니 관객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는 아주 모호한 ‘적당함’의 시간.

하우스어셔가 공연을 함께 볼 수 없어서 더욱 안개 속에서 업무를 진행했던 <천사―유보된 제목>(2017)도 떠오른다. <천사>는 매회 단 한 명의 관객만 관람하는 공연으로, 천사로 분한 퍼포머의 안내에 따라 관객 1인이 극장의 이곳저곳을 이동하여야 했다. 관객의 마지막 도착지는 남산예술센터 사무동 건물 5층 다락으로, 관객이 자리에 앉아 VR 기기를 쓰고 영상과 내레이션을 시청하면 어느덧 천사는 홀연히 사라지고 관객은 홀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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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유보된 제목> (2017) 영상 시청이 끝나면 우측 비상구 아래 검은 문이 열린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다락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우스어셔는 천사 퍼포머의 퇴장을 신호(cue)로 VR 영상 재생 시간을 타이머로 재며 관객이 영상 시청을 마칠 때 즈음 문을 열어 퇴장 안내를 도와야 했다. 천사와 단둘이 극장의 곳곳을 거닌 관객의 체험에 갑작스럽게 새로운 사람이 끼어드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매 공연의 커튼콜마다 객석 안에 존재하지만, 공연을 관람하는 존재가 아닌 관객에게 안내를 제공하는 존재로서의 하우스어셔. 하우스어셔를 그만두고, 또 남산예술센터의 운영이 종료되고,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공연들이 있지만 늘 근무 중이었기에 한 번도 커튼콜에 박수를 보낼 수는 없었다. 큐투큐 지면을 빌려 남산예술센터를 거쳐 간 모든 공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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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윤소희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하우스 어셔로 근무했다.
지금은 느릿느릿 글을 쓰고, 연극을 만들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sohee.you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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