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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관객 되기

[큐투큐] ㅌㅋㅌ

장근영

제223호

2022.10.13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대학로의 한 극장, 가지런히 놓여 있는 객석들 사이로 들어가 나의 자리에 앉는다. 그 순간이 나는 설렌다. 오늘의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향해 앉아 있으면 마음이 콩닥거린다. 하지만 이 두근거리는 순간은 나에게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숱한 마음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그 객석에 앉았다. 나는 이 시대를 사는 장애인으로서 부적절한 성격을 갖고 있다. 즉, 누군가에게 도움받거나 부탁하는 일을 잘 못 한다. 물론 이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비장애인 중심의 시대를 사는 장애인은 이 쉽지 않은 일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내가 도움을 받고 부탁을 하는 것은 내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도움도 받고, 부탁도 할 줄 알아야 하거늘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이런 나이기에 극장의 객석까지 가는 길은 그 누구보다도 험난하다. 그 험난한 여정은 컴퓨터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공연 정보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웹사이트 탐색과 남편의 정보력. 사실 나는 다른 시각장애인들에 비해 공연 정보를 쉽게 접하는 편이다. 연극 배우인 남편 덕분이다. 그래도 공연 관람 전, 웹사이트 탐색을 한 번쯤은 한다. 공연의 내용이나 배리어프리에 대한 정보를 읽기 위해서다. 나 스스로 공연 정보를 탐색할 때는 주로 시각장애인 복지관 홈페이지나 시각장애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넓은마을’을 통해 알아본다. 이 두 사이트는 웹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두 사이트를 이용해 공연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선 복지관에서 공지되는 공연들은 경쟁이 치열하다. 대부분 초청공연이기에 무료이고, 복지관 직원이 동행하여 공연장 이용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이트인 ‘넓은마을’은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지만 개인의 필요에 따라 사이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공연 정보가 올라와 있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많은 공연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연예매 사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웹사이트들이 비장애인 이용자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스크린 리더1)로 공연 정보를 얻는 과정은 어려움이 많다. 수많은 링크와 이미지로 채워진 웹사이트를 탐색하는 일은, 마치 인도에 마구잡이로 주차된 전동 퀵보드를 피해 흰지팡이 보행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웹사이트 속에서 헤매고 헤매다 결국 공연에 대한 정보가 있는 텍스트를 찾으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길을 찾아냈다는 기쁨으로 찾은 공연 정보를 스크린 리더로 하나씩 읽어 내려간다. 텍스트를 읽을 때는 키보드의 방향키나 기능키인 F4키를 이용한다.

흰지팡이를 든 필자가 전동 킥보드를 피해 길을 걷고 있다.
흰지팡이를 든 필자가 전동 킥보드를 피해 길을 걷고 있다. (사진 제공: 필자)

공연의 기본정보는 대부분 텍스트로 되어 있다. 그렇기에 웹사이트에서 스크린 리더로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미지는 스크린 리더가 읽지 못한다. 그래서 공연의 포스터나, 공연 이미지가 실려 있을 경우 나는 정보를 읽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헤매고, 길이 막혀 웹사이트의 모든 정보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공연 정보를 알았으니, 이제는 예매를 해야 할 차례다. 하지만 웹사이트를 통한 예매는 나에게는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다. 스크린 리더를 통해 웹사이트에서 몇 번 예매를 시도해보았지만, 좌석을 정하는 것과 결제하는 것에서 늘 길이 막힌다. “띵. 띵.” 스크린 리더가 더 이상 읽을 것이 없다고 소리를 낼 때면, 짜증이 밀려온다. 결국 나는 웹페이지에서 문의전화 찾기로 방향을 바꾼다. 그렇게 나는 문의전화를 통해 예매를 하고, 공연을 보기 위한 정보들을 얻는다. 배리어프리 공연의 경우, 전화로 이동지원, 음성해설 수신기 관련 문의가 가능하다. 이렇게 공연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는 이제 극장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나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장애인으로서 부적절한 성격을 갖고 있다. 나의 성격과 맞지 않지만, 공연을 보기 위해 계속 부탁을 해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제 울렁이는 마음을 다잡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 설렘으로 가득한 나의 자리로 출발한다. 나의 자리까지 가는 과정은 배리어프리 공연인 경우와 아닌 경우에 따라 좀 다르다.
우선, 배리어프리 공연의 경우 예매 시 이동지원 서비스를 약속하고 전철역에서 담당자와 만나 극장까지 이동한다. 극장에 도착하면 배리어프리 담당 직원이 티켓팅부터 좌석안내까지 알아서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에 물리적 어려움이 적다. 다만 다수의 관객과 다르게 특별한 서비스를 받는 과정이 조금 부담스럽다. 극장의 장애요소를 제거해주기 위해 나의 장애가 더욱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장애가 확연히 드러나는 그 순간 상상되는 타인의 시선이 쓸데없이 신경이 쓰인다. 어쩌면 이것도 장애인으로 살아가기에 부적절한 또 다른 나의 성격일까? 이렇듯 배리어프리가 있는 공연에서도 객석에 앉기까지 이런저런 마음의 소용돌이가 끊이지를 않는데, 배리어프리가 없는 공연은 어떠하겠는가? 험난함 그 자체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내던져진 장애인의 현실을 그대로 직면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배리어프리가 없는 공연을 혼자 본 적이 없다. 남편과 늘 동행했다. 남편도 저시력 시각장애인이지만, 길을 잃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더라도 혼자보다는 둘이 의지하며 함께하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공연장으로 향한다. 배리어프리로 진행되지 않는 공연의 경우, 이동지원 서비스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극장을 찾는 일부터가 나와 남편에게는 큰 미션이 된다. 대학로의 경우 붐비는 인파에 사람을 피하느라 길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극장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고서 겨우겨우 극장에 도착할 때가 많다. 한번은 길을 잃어 헤매다 공연 시작 바로 직전에 극장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극장에 도착하면 어찌나 기운이 쏙 빠지는지, 극장을 찾았다는 기쁨은 별로 없고, 그저 녹초가 된 몸을 추스르기 바쁘다. 그렇게 차츰 기운을 차리고 나면, 이제부터는 객석에 가기 위해 몇 가지 난관과 마주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은 매표소다. 매표소에서 직원과 나는 청각으로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직원은 시각과 청각을 모두 이용한 소통을 한다. 그 소통의 차이로 직원과 나 사이에는 때때로 정적이 일어난다. 즉, 이런 경우다. 매표소의 직원이 나의 흰지팡이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직원은 아무 말 없이 티켓을 허공에 들고 있다. 한참을 말이다. 정적 속에 나는 티켓을 기다리며 속으로
‘왜 티켓을 안 주지?’
의아해하며 멍하니 직원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그렇게 직원과 나 사이에는 짧고도 어색한 몇 초가 흐른다. 그리고 잠시 뒤 직원은 나에게 말을 한다.
“티켓 받으세요!”
직원의 말에 나는 그제야 상황파악을 한다. 그리고 살짝 민망해하며 티켓을 건네받는다. 물론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안 돼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 짧은 몇 초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렇게 어색한 소통의 시간을 지나 이제 극장 입구를 찾는다. 작은 소극장의 입구는 대체로 매표소 근처에 있어 찾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대극장은 다르다. 입구도 여러 곳이고 층간 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매표소에서 극장 입구까지의 도움을 부탁한다. 하지만 우리의 안내를 도와줄 직원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 매표소의 직원이 뛰어가서 한참 만에 다른 직원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극장 입구로 가서 공연을 보기 위한 마지막 관문 앞에 선다. 나와 남편은 티켓을 확인하는 직원에게 좌석안내를 부탁한다. 이 과정이 정말 큰 난관이다. 우선 시각장애가 있다며 좌석 안내를 부탁하면 낯설어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아직도 간혹 있다. 또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잘못된 오해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은 흰지팡이 보행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눈이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남편과 동행할 때 가끔은 흰지팡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직원들은 흰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은 남편과 내가 웬만큼 보인다고 오해를 한다. 시각장애가 있다고, 눈이 불편하다고 말했음에도 말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입구의 직원에게 좌석안내를 부탁하면, 직원은 안쪽에 다른 직원에게 가서 다시 말을 하라고 한다. 업무가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알겠으나, 눈이 불편한 이가 다른 직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극장으로 들어가 직원을 찾아 서성인다. 하지만 어두운 극장 안에서 직원 찾기란 무척 어렵다. 어떤 경우는 직원을 찾지 못해 다시 나와 안내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겨우 직원을 만나 다시 좌석 안내를 부탁한다. 그럼 또 이번에는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직원이 시각장애인 안내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직원은 나와 남편에게 무작정 따라오라는 말을 남긴 채, 뒤도 안 돌아보고 극장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럼 우리는 어두운 극장 어딘가에 대고,
“저기요! 저기요!”
하고 외친다. 그 소리에 되돌아온 직원에게 시각장애인 안내보행을 설명한다. 좌석에 도착해서도 직원은,
“여기 앉으세요.”
라는 말뿐이다. 그럼 나와 남편은 또 직원에게 좌석위치를 정확히 손으로 짚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 안도감에 의한 것인지, 힘겨움에 의한 것인지, 나와 남편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는다.
드디어 나는 관객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 고단함에 나의 몸은 얕게 떨린다. 나는 객석에 앉아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작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다. 정신없이 헤매고 부탁하고, 도움을 받아 앉은 나의 객석, 그 자리에서 나는 관객이 되기 위해 겪었던 고단함을 녹인다. 그리고 고단함 속에 서서히 무대를 바라본다.

  1. 스크린 리더: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화면에 나타난 내용과 키보드로 입력한 정보, 커서의 좌표 따위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 또는 장치(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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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

장근영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접근성 및 공연 배리어프리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본인의 시각장애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어쩌려고 혼자다녀』를 2020년에 출간하였고, 2022년 1월 연극 <비추다: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를 공동창작하고 출연하였다. 또 6월부터는 입체리뷰모니터링 연구모임에서 동료들과 다양한 공연리뷰 작업을 하고 있다.
zzangkku99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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