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관객연습

[큐투큐] ㅌㅋㅌ

홍성훈

제224호

2022.10.27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한때 나도 대학로 거리에서 ‘붙잡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꽤 오랫동안 나는 대학로를 매일같이 지나다녔는데, 거리에서 공연 티켓을 들고 서성이는 알바생들을 마주했다. 알바생들은 거리 한복판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공연 티켓 있습니다아아~”라고 외치거나 길 가는 사람들에게 티켓을 흔들어 보이곤 했다. 알바생들의 온몸에서 쥐어 짜내는 것 같은(?) 붙임성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지만 ‘나에게 다가오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대학로에 다닌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에는 알바생들과 좀 떨어진 곳에서 일종의 연습을 했다. 만약 저들이 나를 붙잡는다면 시크하게 지나쳐가거나 관심 없는 척 혹은 바쁜 일이 있는 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휠체어를 움직였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는지. 정작 나는 눈길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알바생들은 휠체어를 탄 나를 너무도 태연하게 지나쳐갔다. 심지어 몇 번은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그들은 손에 든 티켓을 더 꼿꼿이 쥐고 있었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내가 매력적인 관객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 그때 ‘픽(pick)’되지 못한 심정이란.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직업정신이 충만한 알바생이 나를 극장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뻘쭘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른바 대학로 ‘스터디셀러’라고 불리는 공연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 극장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까마득한 계단 앞에서 나는 공연 스태프들에게 무엇을 요청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론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안기거나 업혀서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지만, 휠체어에서 내려오자마자 흐트러지는 내 몸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맡기기 싫었다. 결국 나는 대학로에서 공연 보기를 포기했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극장들을 빠르게 지나쳐가곤 했다.

대학로 4번 출구의 사진이다. 교차로의 세 모서리에

그러던 내가 다시 극장 주위를 기웃거리게 된 건 직접 공연에 참여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는 관객이 공연장에 입장하는 행위 자체가, 여러 층위가 겹쳐져 있는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공연 예매부터 극장에 입장하기까지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반면, 어떤 사람들은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듯이 매번 난관에 부딪힌다. 적어도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랬다. 예를 들어 나는 SNS를 통해 공연과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후 ‘갈 수 있는 극장’이라면 예매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빠르게 포기했다. 그 공연이 아무리 끌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도 극장에 접근하지 못하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다행히 요즘 다양한 몸들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조건을 고민하는 창작자들이 늘어나고, 보다 전문적으로 공연의 접근성을 고려하는 ‘배리어프리 매니저’도 공연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배리어프리 매니저 덕분에 나는 극장에 들어가기까지 혼자 넘어야 했던 허들을 비교적 쉽게 통과해 극장에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단이 있는 극장이라도 배리어프리 매니저를 통해 이동지원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경우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티켓팅을 하고 이동지원을 받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답변을 들으면 나의 몸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극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대개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런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다고, 때때로 나는 익명의 관객으로도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공연을 보고 마음껏 쿡쿡 웃거나 질질 짜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있는, 익명성에 숨어서 관람하고 싶다.
그렇게 차츰 기운을 차리고 나면, 이제부터는 그런 날이 오려면 극장은, 창작진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또 한편의 공연을 티케팅한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홍성훈

홍성훈
평일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주말엔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닌다. 참여했던 공연으로는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2020),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2020), <관람모드: 보는 방식>(2019)이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