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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르지만 유후~
플랜Q X 극단 북새통 <내 얘기 좀 들어봐3> 첫 날

[큐투큐] 시동(始動)

고주영

제239호

2023.08.10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저 OOO인데요, 지금 XXX 스튜디오에 도착했는데요.”
첫 모임 날, 분명 6시 20분에 합정역 3번 출구에서 같이 만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스튜디오로 이동하자고 전화로, 문자로 한 명 한 명 안내했는데, 이 전화가 걸려온 건 채 5시가 되지 않은 시간. ‘아, 시작이구나’. 낯설지 않다. 뭐, 혼자 지도를 보고 쉽지 않은 위치에 있는 스튜디오까지 찾아왔으니 훌륭하다!

어떻게 모이지?

<내 얘기 좀 들어봐>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에 걸쳐 진행된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연극 만들기 중장기 프로젝트 중 성인 발달장애인팀의 최종 공연 제목이었다. 이 중장기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성인팀에 참여했던 몇몇 연극인들은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연극을 매개로 ‘비발달장애인’으로 살아온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고,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중장기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성인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연극을 해왔다. 올해가 벌써 <내 얘기 좀 들어봐3>이다.

두 달간 매주 모여 프로그램 세부 회의를 진행하며 발달장애인 참여자를 10명으로 정하고 이들과 세심하게 대화하고 조력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고 발달장애인과의 연극 활동 경험이 있는 동료를 끌어들이고, 연극과는 무관하지만 발달장애인 조력 경험이 많은 활동가가 합류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움직임 수업을 맡아줄 동료, 영상으로 기록해줄 동료, 그리고 자청해 텍스트 기록을 해줄 연구자까지, 참여자 10명의 인원에 꿀리지 않는(!) 구성원의 팀이 꾸려졌다.

<내 얘기 좀 들어봐3>의 첫 모임 사진. 
      검은 바닥과 벽돌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바닥에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둥글게 앉아있다. 
      문 옆에는 삼각대 위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스태프의 모습도 보인다. 
      한쪽 벽면은 전체가 거울로 되어 있어 참가자들의 모습이 비친다.

7월 10일로 프로그램 시작 날짜를 정하고 6월에 협력 기관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피플퍼스트성북센터와 함께 참가자를 모집했다. 걱정과는 달리 순식간에 정원을 넘겼다. 연극인 네 명이 담당을 나눠 신청자들에게 확인 전화를 돌렸다. 신청서에 이미 기재하게 되어 있었지만, 다시 꼭 확인해야 할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함께 간식을 먹으며 프로그램을 시작할 예정인데 음식 호불호가 강하거나 건강 이슈가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많아 이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가 있는 합정역까지, 프로그램이 끝나는 9시라는 이르지 않은 시간에 집까지의 이동방법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동방법은 매번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는 부분이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타는 것에 익숙한 분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분도 있고, 정거장이나 역부터 목적지까지 지도를 보고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이나, 가족 혹은 활동지원사에게 항상 이동지원을 받는 분도 있다. 이번 참여자 한 명 한 명의 이동방법을 확인하고, 팀 내에서 대응이 어려운 참여자에 대해서는, 거주지와 가까운 협력기관 조력자가 이동지원을 맡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정한 것이 “6시 20분, 합정역 X번 출구 집합”이었다.

그런데! 결국 오는 방법은 자유분방하다. 5시부터 집합시간인 6시 30분 사이에 스튜디오로 혼자 찾아오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합정역 집합팀도 시간차 때문에 결국 두 팀으로 나뉘어 스튜디오까지 이동해야 했다. 조금 늦는 분들의 길 찾는 전화에 담당자들은 급하게 뛰어나가기도, 차분히 건물을 설명하기도 한다. 뭐, 무사히 다 모였으면 된 거다!

뭐라고 부르지?

작년까지는 그래도 이전에 리서치나 인터뷰, 연극 워크숍에서 만난 분들이 꽤 있었는데, 이번에 만나는 참여자들은 매년 개근하는 참여자 한 분, 작년에 이어 올해 참여하는 두 분을 제외한 여덟 명 모두 낯선 이름이다. 낯가림과 긴장감과 어색함은 오직 준비한 사람들의 몫이다. 참여자 중에도 낯가림이 심한 분이 물론 있지만, 다 같이 모이자 공간은 금세 떠들썩해진다.

첫 시간이 시작됐다. 우리가 하려는 ‘연극’은 대본을 갖고 역할을 나눠서 잘 외워지지도 않는 대사를 반복해서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연극이라는 프로그램 소개에 이어 첫 시간의 백미인 자기소개. 이름과 하는 일, 좋아하는 것(색깔, 음식 등), 싫어하는 말과 행동으로 질문을 제시하고 돌아가며 소개하기. 특히 이름의 경우 지정되거나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불리고 싶은 이름을 정해 소개한다. “~선생님, ~ 피디님, ~ 배우님” 등으로 특히 주최자-참여자, 비발달장애인-발달장애인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위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 참여자들의 면면은 이러하다.

* 본명을 쓰는 일부 참여자의 별명은 필자가 임의로 붙였으며, 1-2회차 프로그램 중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내용과 에피소드를 인용, 정리했습니다.

수세미 님은 주말과 월요일을 쉬는 직장인이다. 어떤 음악이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춤 천재로, 케이팝 안무 따기 정도는 기본이다.

별샛 님. 늘 한두 시간씩 일찍 도착하는 구직자. 첫날 무려 택시를 타고 두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주변의 잔소리를 유발했다. 몸이 약해 자주 쉬지만, 가장 즐기고 있음이 확실하다.

헤브론 님. 자신을 소개하는 한 가지 물건으로 성경책을 가져왔을 정도로 신심이 깊다. 결코 큰 소리로 웃는 법이 없어 지루해하는 건가, 싶지만 항상 배시시, 조용하게 웃고 있다.

우진 님, <낭만닥터 김사부>에 나온 훤칠하고 성실한 남자 의사의 극 중 이름을 따왔다. CCM싱어이기도, 유튜버이기도 해서 늘 바쁘다. 즉흥 작곡도 하는 다재다능한 분.

야옹 님, 발달장애인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근무. 얼마 전엔 부산 출장을 가서 업무 후에 요트를 탔다는 근황을 전해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곧 직접 쓴 책이 나온다.

너부리 님,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선호하는 직업인 현역 바리스타. 퇴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해 늘 깔끔한 세미 정장풍 패션이다. 여름이 되면서 하루에 아아가 천 잔까지도 팔린다고.

다람쥐 님. 플랜Q 연극프로그램 개근자. 매번 달콤한 간식을 준비해온다. 시간 감각이 정확한 분이라 대형 벽시계를 준비해뒀는데, 그 탓에 매번 마무리 중 칼퇴근을 하신다.

보노 님, 2년 차 참여자다. 월요일마다 연극 핑계로 수영을 빠진다고! 다리가 조금 불편해 조력 방식을 고민했었지만, 혼자 힘으로 앉고 일어서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조력보다 “천천히”라고 말하며 기다려주기를 하고 있다.

장미 님. 2년 차 참여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지만, 작년에 비해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거나 몸 움직이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포로리 님. 까불거리는 인상과는 달리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자립의 삶을 꾸리고 있다. 자칭 ‘종합병원’.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마니또의 연락처를 몰래 물어보는 유일한 사람.

각자의 소개를 마친 후 조를 나눠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한다. 다른 사람의 몸과 말, 물건을 존중하자는 스스로의 약속이 제일 많다. 서로의 이름이나 별명 뒤에는 “님”을 붙이기로 했다.

<내 얘기 좀 들어봐 3>의 첫 모임 사진. 
      참가자들이 4명, 4명, 3명씩 모여 앉아 있다. 
      종이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고, 고개를 숙여 바닥에 놓인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사람도 보인다.

이번 <내 얘기 좀 들어봐>의 주제는 “서로 다르지만 같이 연극해요”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야 하며, 다름이 결코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나누고 싶다는 의도가 있다. 하지만 기획 의도가 반드시 구현될지는, 여느 기획에서처럼, 알 수 없다. 하지만, 설령 구현되지 않은들 또 어떤가. 우린 관객을 만나는 10월의 오픈 워크숍까지 매주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남기며 우당탕탕 소란하게 만나겠지만, 나의 마음과 삶을 말하고 서로의 말과 몸과 마음을 존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혹여 의도와는 다른 말과 행동이 나올지라도 성급하게 판단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우리만의 소통방식과 속도를 찾고자 한다. 참여자가 제안한 마지막 인사처럼 “모두 다르지만 유후~”다.

[사진 제공: 플랜Q X 극단 북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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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영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내 얘기 좀 들어봐>를 포함한 플랜Q 프로젝트, 연극연습 프로젝트 등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페이스북 @jooyoung.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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