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무대 밖에서 더 ‘빛나는’ 공연제작기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빛나는>

춤추는허리 기획팀(서지원, 진성선)

제176호

2020.02.20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이하 춤허리)는 지난 15년간 무대 안팎에서 장애여성의 경험과 몸을 드러내길 멈추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며 용기 있게 활동해왔다. 몇 년간 장애여성의 경험을 통해 독립과 재생산권, 예술 등 장애인문화예술운동 안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온 <불만폭주라디오>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2019년 장애인운동 안에서 주요의제인 ‘탈시설’을 주제로 새로운 창작극 제작을 위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공연 <빛나는>(2019)은 타이틀처럼 ‘빛나는’ 무대 위에 올랐고 많은 관객들과 함께 연대의 울림을 만들어냈다.
A4반 페이지, 두 시간 동안 함께 읽기
시작은 단순했다. 휴식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떠났던 MT에서 떠들썩한 프로그램을 마치고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마루에 자리 잡은 배우들의 대화가 들렸다. “책이 두꺼운데 읽기 어렵지 않나요?” 책을 보던 이가 대답했다. “어려울 것이 뭐가 있어요. 그냥 글씨인데, 같이 볼래요?” 그렇게 한 사람이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소리를 들은 배우들이 하나둘 마루로 나와 각자 편안한 자세를 잡고 책을 읽어주는 걸 듣기 시작하였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물리적으로도 종이로 된 책을 입으로 넘겨야 해서 책을 잘 보기 어려웠던 장애여성 배우들. 장애인 특수학교 안에서도 중증장애가 있거나 공부를 못하여 배제당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땐 단순하고 사소한 책읽기가 거대한 폭포가 되어 우리들에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노래나 책을 정하여 함께 읽거나 녹음을 해서 듣는 방식으로 함께 책을 읽어 나갔다.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놓여 있었는지, 무엇에서부터 배제되었는지 알아차렸다. ‘문단나누기, 문장나누기, 대본분석이 왜 어려운가’와 같은 부분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였다. 어떨 때는 6~8명의 배우가 A4용지의 반 장짜리 기사를 2시간에 걸쳐 읽은 적도 있다. 각자의 속도가 달라서 때론 진부하고 지루한 시간이지만, 우리에겐 같은 목표가 있었다. 책읽기를 통해 한글을 알게 되고 호흡과 발성을 하는 각자의 방식을 찾고 배우로서 대본분석을 하는 훈련의 시간들을 함께 했던 것이다.
시설 안팎에서 갇힌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창작워크숍
본격적인 워크샵. 사람들은 ‘탈시설’을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으로만 이해하기도 한다. 춤허리 역시 그랬다. 시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면, 나는 과연 시설 밖에 있는 사람인가. 시설 안과 밖이란 경계가 담장 말고 더 있는 것 같았다. 막연하고 단순하게 마치 제 3자의 입장으로만 생각하고 있진 않았을까. 장애여성의 삶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정작 사회에 규정해온 시설 안과 밖이란 틀에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도 되었다. 배우들은 열심히 자신의 경험들을 드러냈지만, 장애인 거주시설 경험이 시설 밖 소수자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포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용소 다크투어를 다녀오고, 글을 빨리 읽는 배우가 자막을 연기하듯 읽어나가며 외국 다큐 영화도 함께 보고, ‘시설화1)’된 몸으로 살아가는 다른 몸들과 만나기 위한 준비는 계속됐다.
어쩌면 이 사회가 시설
느리게, 느리게. 배우들은 ‘탈시설’을 어떤 관점과 언어로 말할 것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워크숍을 통해 장애인거주시설을 벗어나 장애여성이 일상 속에서 살아오고 겪어 온 공간들을 떠올렸다. 집, 병원, 보호 작업장, 학교, 기숙사, 공장 등 일반적으로 ‘시설’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았던 공간이 장애인거주시설 안의 삶과 밀접하게 닮아있었다. 장애여성이 일상을 통제당하고 선택과 결정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기회에서 배제되는 사회적 위치와 조건은 단순히 시설 안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 규범과 규칙들은 하나의 시설과 같았다. 시설에서 어렵게 탈시설을 하거나 지역사회에 살고 있더라도 시민의 주체가 아닌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머물거나 사회적 자원과 관계와 단절된 채 고립되어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경험과 맞물렸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억압받거나,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져 통제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었다.
창작워크숍은 장애여성의 경험을 자기 말로 다시 쓰는 과정이었다. 장애여성이 취약한 존재, 불쌍한 사람, 피해자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을 경계하며 일상에서 시도하는 수많은 ‘일탈’과‘저항’의 장면들을 포착해 나갔다. 실제로 자신의 방식대로 규칙을 벗어나 몰래 사소한 일탈을 해보기도 했다. 이 과정은 경험 말하기를 넘어서, 다른 이들의 삶을 알아가고 말하는 것, 인권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아가 정상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 이슈를 배우고 내 언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상적인 모임, 세미나 등을 통해 관련 영화를 보고, 기사를 읽고 토론하며 관점과 언어를 만드는 활동을 시도했다.
장애여성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우리의 ‘몸’으로 말하기
춤추는허리는 ‘몸’으로 세상을 향해 말한다. 일상 연습, 워크숍 등 배우로서 몸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움직임을 찾고, 서로의 몸들과 만나서 호흡을 맞춘다. 상대 배우의 근육의 움직임과 호흡에 집중하면서 하나의 춤을 만들어 갔다. 배우들이 몸을 움직이는 과정은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몸으로 규정되고 전시되길 강요받았던 몸들이 나의 몸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는 결단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장애와 속도를 갖고 음악의 흐름대로 몸을 움직이며, 우리가 함께한다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연습은 장애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몸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정형화된 몸을 기준을 넘어야 한다. 배우로서 멋지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압박이 존재하지만 수없이 많은 실패를 만난다. 중요한 건 무대 위에서 나의 몸을 어떻게 드러낼 것이고 사회의 정상성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이었다.
장애여성의 삶과 경험으로 다시 쓰는 현장
춤허리의 일상과 무대는 긴 호흡을 갖고 하나씩 쌓여갔다. 연초부터 배우들과 ‘탈시설’을 주제로 쌓아온 이야기를 토대로, 극을 어떻게 구성할지 논의를 시작했다. 공연 <빛나는>은 시설 안팎에서 나의 몸을 이동시키기 위해 공간과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실패 등의 복잡한 과정, 시설과 시설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보호와 사랑’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사람들이 허용해 왔던 것들, 어쩌면 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시설은 나쁘다’는 메시지를 주는, 누구나 인권침해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을 의도적으로 택하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계몽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무언가 변화를 맞이했을 때 생기는 두려움과 긴장, 실패와 도전과 같이 누구나 한 번쯤은 삶에서 경험하는 일을 통해 관객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싶었다. 춤허리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고 말이다.
공연에 대한 치열한 논의 끝에 설렘과 긴장을 안고 공연 연습에 돌입했다. 시간은 늘 부족하지만 새로운 공연인 만큼 대본을 외우고 장면을 하나부터 열까지 같이 만들다보니 주어진 시간이 더 짧게만 느껴졌다. 참사랑재활원의 장애여성 핑클 4인조인 지영, 수희, 은수, 정은 역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시설 안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지금도 여전히 시설에 남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와 단절된 채 또 다른 공간에서 시설화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며 분노와 책임감을 갖고 연습에 임했다.
실패하고, 갈등하고, 책임지는 치열했던 연습실
연습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사를 외우지 못하거나 동선을 틀리고 동료들과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다. 연습 시간을 지키고 맡은 배역을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성공적으로 연습을 하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았다. 우리는 ‘동료’란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했고, 당장 해야 할 연습이 있어도 갈등을 함께 해결해 나갔다. 너와 내가 ‘동료’가 된다는 것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서로를 살피고 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 같이 책임지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이 공간 안에서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정면으로 갈등과 맞섰다. 이토록 치열하게 누군가와 관계 맺거나 역할을 요구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경험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갈등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고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다시 모였다.
무대에서 배역을 정하고 연출을 할 때, 각자의 특성을 반영해서 배우들의 몸과 매력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방식을 찾았다. 완벽하고 뛰어난 연출에 집중하지 않았다. 배우들이 보다 익숙하고 편한 방식으로 무대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며 장면을 완성해 나갔다. ‘연극이란 무엇이고, 창작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질문이 쌓여갔다.
지금은 충전 중, 지금은 고민 중, 지금은 변화 중
‘과연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많은 걱정과 우려는 배우 모두가 ‘갈등’의 과정을 잘 겪어내면서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다. 올해 외부 스탭과의 작업이 많아진 만큼 소통과 조율에서 우리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말하고 분위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공연을 만들어가는 전 과정에서 장애여성이 주도권을 갖고 활동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을 믿고 당당히 무대 위에 등장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우리는 삶 속에서 계속 리허설 중이기 때문에. 장애여성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해서 빛나는 조명을 받는 순간뿐만이 아닌 장애여성의 삶의 경험과 언어를 통해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 등장하는 몸과 기준 안에서 장애인의 존재가 감동서사와 장애극복으로 그려지는 것을 거부하고 질문하며 ‘비정상’으로 규정된 몸들과 함께 투쟁하며, ‘빛나는’ 속 가사처럼 서로 힘이 되어주며 고민하고 변화하는 지금의 도전을 멈출 수 없다.
누군가는 아마추어 같은 무대에 대해 너무 근사한 의미를 덧붙인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마추어 같은 비전문성은 우리를 새로운 주제와 도전으로 이끈다. 정해진 전문성을 쫓지 않고 이야기꾼답게 위태롭게 실수인 듯, 실패인 듯 무대를 채워갈 때 온전히 우리의 몸은 자유롭다.
*참고 문헌_이진희(2019), 『장애여성 문화예술 활동의 정치성』, 인권연구

[사진제공 : 춤추는허리]

  1. 조미경, “시설화는 지배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사회와 분리해 권리와 자원을 차단함으로써 ‘무능화/무력화’된 존재로 만들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시키는 것” 비마이너, 2019.04.10.
    나영정, “특정한 시민의 역량을 박탈하고 무력화/불능화하는 권력이 시설화를 유지하는(시설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인식을 포함하여) 핵심이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기 어렵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시설에 수용하면 된다고 상상하는 것, 그 안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를 은폐하고 의존성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억압받아야 할 이유로 전치시키는 권력을 말한다”, 비마이너, 2019.3.29
빛나는
일자
2019.11.28(목) ~ 12.01(일)
장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 5층 이음아트홀
조명
강상민
무대/소품/의상
강정화
음악
호늘바당
포스터
이은정
사진
전광훈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관련정보
https://wde.or.kr/2019%EB%85%84-%EA%B7%B9%EB%8B%A8-%EC%B6%A4%EC%B6%94%EB%8A%94%ED%97%88%EB%A6%AC-%EA%B3%B5%EC%97%B0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춤추는허리 기획팀

춤추는허리 기획팀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는 장애여성의 삶과 현실을 무대 안팎을 넘나들며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서로의 다른 몸을 가진 배우들이 만나 장애여성의 일상경험을 몸짓과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나의 경험이 다른 소수자의 삶과 만나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바라며 예술과 정상성을 질문하는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