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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주석, 글의 확장

무용음성해설 워크숍

양은혜

제184호

2020.08.06

필자가 국내 무용계에서 무용음성해설을 접했던 공연은 다음과 같다. 주한영국문화원이 주최했던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폐막행사인 ‘페스티벌 아름다름: 아름다운 다름’ 중 김보라의 신작 <공·空·Zero>(2018)에서 스코틀랜드 무용해설 전문가 엠마 제인 맥헨리(Emma Jane McHenry)가 집필한 오디오 디스크립션의 통역해설이 그러했다.
(관련 링크 http://choomin.sfac.or.kr/zoom/zoom_view.asp?type=OUT&div=&zom_idx=335)

필자는 무용 대본을 쓰거나 드라마터그로 프로덕션에 참여하거나, 안무과정을 글로 기록하는 아카이브 활동을 하고 있다. 안무와 글의 관계, 그리고 서로의 특성에 관해 고민하던 차에 본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안무과정을 글로 기록하는 내게 글과 안무의 관계는 늘 가까웠다 멀어지는 운동을 반복하면서도 두 매체 속에서 움직임의 공통분모를 찾는 탐구 과정에 있었다.

무용공연을 볼 때 마치 그림책처럼 장면과 장면이 넘어가고 교차하며 그 사이에서 이뤄지는 몽타주가 내적 움직임을 일으켜 단어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현상들이 있다. 특정 무용수의 춤을 볼 때, 그의 몸이 많은 언어를 함축하고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으면 춤을 ‘읽었다’고 기억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춤을 어떻게 보는가?’ 더 나아가 ‘무엇을 보는가?’의 질문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워크숍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필자는 ‘춤이 글이 될 수 있으며 글이 춤이 될 수 있는가?’ 더 정확히 말해 안무가 글이 될 수 있으며 글이 안무가 될 수 있는지, 이때 글은 책으로 엮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고민은 책을 읽는 행위와 글의 흐름과 배치는 과연 무대 위의 안무를 그대로 지면에 옮겨놓는 것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이 아이디어는 소설을 읽을 때 독자가 글을 통해 경험하는 창작과 리딩의 시너지와 근원적이고 다양한 공감의 시점에서 착안하게 된 것이다. 즉, ‘안무책’이 만들어진다면 이때의 퍼포머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창작이 아닌 ‘해설’이라는 점에서, 움직임의 모티베이션 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혼선이 있었다. 그러나 해설 습작을 해나갈수록 대본을 작성하는 해설가에 따라 무엇을 보는지에 대한 초점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해설문을 작성할 때 정보의 위계가 있기 때문에, 마치 공연을 영상으로 담을 때 영상감독의 시점이 생기듯 해설자의 시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는 것 외에 작품의 의도와 맥락이 어떤 톤으로 연출되고 시행되는 지를 해설하는 것이 중요했다.
워크숍은 주로 영화와 드라마를 해설하는 강내영 음성해설가가 진행하였다. 음성해설은 단순히 글이 아닌 구간에 맞는 내레이션을 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러하기에 호흡과 발성법에 대한 워크숍은 배우이자 음성해설가인 조연희가 진행하였다. 무용 공연에 대한 음성해설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했던 엠마 제인 맥헨리는 코로나19로 내한하지 못해서, 기획팀이 사전에 그의 워크숍을 온라인으로 익혔고, 이를 본 워크숍 시간에 발표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강내영 음성해설가는 누구를 대상으로 설명할 것인지(who)에 대한 3요소, 무엇을 설명할 것인지(what)에 대한 6요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how)에 대한 9요소를, 화면해설의 365법칙으로 정리했다. 이 법칙은 영상뿐만 아닌 라이브 공연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성해설은 선천적 전맹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대상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해설에서 중요한 점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하나의 환경 속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어렵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설은 등장인물과 시간과 장소, 소리, 시각적 정보, 지시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설명은 관찰자의 시점에서 현재형으로 묘사해야 하며 대사 사이 빈 공간에 해설을 넣어야 한다. 해설 문구를 작성할 시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주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달라질 수 있다. 해설은 화면보다 먼저 나오지 않게 하며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하나의 이미지가 상상될 수 있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맥헨리의 워크숍 내용에 대해 공연학자 손옥주가 정리, 발표한 내용을 일부 요약한 것이다.

“음성해설은 라이브 또는 녹음 방식으로 진행된다. 라이브 공연의 경우, 공연 1시간 전에 터치투어(touch tour)를 진행한다. 음성해설가와 스테이지 투어를 하며 오브제와 의상, 무용수 등을 터치하여 사전에 무대를 촉각으로 읽는 과정인 것이다. 공연의 정보를 담은 해설을 적은 원고를 프리쇼 노트(Pre show notes) 또는 프로그램 노트(Programme notes)라고 하는데 음성해설가는 공연 10분 전 이어폰을 통해 이를 반복 해설하여 관람자가 사전에 공연에 대한 정보를 숙지할 수 있도록 한다. 해설은 어떻게 움직이며 어디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무엇에 관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기에 해설은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여 적절한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해설은 가급적 움직임 이전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며 해설에서 담아내기 벅찬 정보들은 사전 프리쇼 노트(또는 프로그램 노트)를 활용할 수 있다.”

더불어 무용음성해설의 필수 요소도 다음과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1. 내러티브
  2. 작품의 주제 및 안무 의도
  3. 퍼포머의 신체/외모
  4. 무대세트, 코스튬, 소품 등에 대한 설명
  5. 조명 효과
  6. 퍼포머의 등퇴장
  7. 퍼포머 숫자
  8. 퍼포머의 캐릭터(표정, 감정 등)
  9. 퍼포머 간의 상호작용
  10. 공간패턴(일직선, 그룹, 밀착, 틀어짐)
  11. 사운드에 공감하기(사운드가 중요한 경우, 음성해설가는 침묵)
  12. 텍스트나 노래 가사의 활용(그 자체를 스크립트로 활용)
  13. 무용 동작 기술 및 용어 설명(테크닉에 기반한 무용 장르의 경우)
  14. 순간의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15. 안무가로부터 얻은 정보를 스크립트나 프리쇼 노트에 포함시킴
  16. 작품의 분위기, 의도 등에 따라 적절한 어휘 선택
  17. 스크립팅 스타일 (영국은 건조하게, 미국은 감각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설한다. 문화권, 해설자에 따라 스크립트의 스타일이 다르다)
  18. 음성해설가에게 주어진 시간 체크
  19. 음성해설 분량 체크
  20. 침묵 (침묵이 필요한 순간은 침묵을 갖는 것도 중요하며 이때 기기 고장 등의 문제 때문이 아님을 사전에 공지해야 한다)
무용공연 음성해설의 방식은 국내에서 이제 막 연구되고 실험하는 단계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공간을 구분하는 순간 차별과 소통의 단절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우리가 놓인 환경을 다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이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비장애인의 소외가 이뤄지며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장애인의 소외가 이뤄진다. 단,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소수이고, 활동의 부자유로 장애인들에게 주어진 공유 콘텐츠와 영역은 위축되고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소외를 지나치지 않고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소통방식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장애와 비장애라는 언어규정부터 차별된 인식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disabled person’으로 표기하는 영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disable이라고 통용되는 것으로부터 장애가 소통의 가능성을 모두 절감시킨다는 인식을 준다. 언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언어는 사유와 인식, 행동과 사고방식의 기초가 된다. 어떤 언어가 시대별로 탄생하고 퇴화하며 진화하고 있는가? 퇴화하거나 소멸되는 언어는 무엇인가? 작품의 언어와 이미지는 무엇을 내포하고 표현하는지를 관객에게 질문한다.

그런 점에서 무용공연 음성해설은 일종의 움직임의 주석이자 글의 확장으로써 무용의 또 다른 텍스트로도 기능하게 될 것이라 본다. 움직임이 글의 언어로 변환되었을 때 그것의 인지와 원작품의 재해석, 철학적 사유 등의 네트워킹 활동 또한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무용음성해설을 들으며 자신의 개별적인 감각과 현상으로 자기만의 무용을 만들어갈 듣는 관객들의 거침없는 무대와 무용 이야기는 서로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무용음성해설(Dance Audio Description) 워크숍 상세정보
https://www.gokams.or.kr:442/01_news/event_view.aspx?Idx=32326&flag=0&page=1&txtKeyword=&ddlKeyfield=T

[사진 제공 : 프로듀서그룹 도트 ⓒ박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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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혜

양은혜
아티스트에이전시 스튜디오그레이스와 출판사 코레오그래피뷰의 대표이다. 예술과 도시건축, 인문학을 연결하는 공연, 전시, 교육 기획활동을 하며 과정에 중점을 둔 아카이브 출판과 기획의 토대가 되는 연구 활동을 연계하고 있다. 현대무용과 문학, 문화, 건축을 전공하여 현재는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건축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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