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지속적으로 함께 재미있기 위해

[연극의 해] 0set프로젝트 <공연장 접근성 확장 워크숍-다른 방식으로 만나기>

박하늘_배우

186호

2020.09.10

몸의 손상 이후 목소리 쓰는 일을 찾던 중 음성해설을 공부하면서 배리어프리 공연에 관심이 더해졌다. 아픈 뒤로 공연에서도 일상에서도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선택의 폭이 달라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전에 내가 배제했던 세계가 더 인식되었고, 나도 배제되고 싶지 않았다.

참여하는 당일까지 코로나19의 확산 추세로 인해 무서웠고 죄책감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문화생활인 것이 누군가에겐 생계 활동이고 삶의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를 긍정하게 했다. 8월 24일 13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진행된 <공연장 접근성 확장 워크숍-다른 방식으로 만나기>는 문자통역과 수어통역(음성언어-수화언어, 수화언어-음성언어)이 포함되었다. 주최 측에서는 서로 입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립뷰 마스크(lip-view mask)를 제공해주었고, 코로나19 감염 예방수칙을 잘 지키며 워크숍이 진행됐다. 이렇게 우리는 바이러스와 공연장 접근성이라는 수많은 장벽을 허물기 위해 만났다.
먼저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 강내영 대표의 발표를 시작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및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해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크숍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결국은 ‘태도의 문제’라는 신재 연출가의 말이었다. 잘 모르지만, 장벽을 허물며 하나씩 해나갈 것이냐, 잘 모르거나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냐. 이 두 가지를 놓고 우리는 각자 어떤 태도를 취할지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접근성 개선에 있어서 특정 장애만을 살필 수도 없고, 결코 완벽할 수도 없으며, 접근성을 처음부터 고민하며 만드는 공연과 거의 만든 이후에 어떻게 변경할지 고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관객에 대한 이해, 장애에 대한 이해, 중복장애가 있는 경우, 전맹과 저시력, 한국 수어라는 모국어를 쓰는 농문화인, 농맹인, 난청인, 보행 약자 등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 농인 중에는 ‘수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 ‘문자언어’를 쓰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 이렇듯 농인 중에도 수어를 쓰고 문자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어 그와 같은 관객에겐 수어통역이 필요하고, 저청력이거나 후천적인 경우는 대부분 수어를 배우지 않아 문자통역이 필요한 것이다.

핸드스피크 아티스트 김지연에 따르면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함께 볼 수 있게 가까이 배치하는 게 대체로 좋다. 무대 위의 배우, 수어통역사, 문자통역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경우,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번갈아 보면 시선도 분산되고 고개가 자꾸 움직여 뒤의 관객에게 민폐가 되고, 결국 고개는 고정한 채 눈만 바삐 움직이다 제대로 관람하지 못한다고 한다. 만약 “안돼”라는 대사일 경우 그 표현의 정도가 다 다른데, 문자나 수어만으로 다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페라에서 고도의 감정연기가 있을 때 수어통역사가 배우와 똑같이 그것을 전달할 수 있겠냐고, 그만큼 연습할 수 있겠냐고 했다. 배우 한 명 한 명 옆에 수어통역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고, 또 배우와 수어통역사가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누가 말하고 있는지를 문자나 수어통역 만으로는 알기 어려워 배우들의 입 모양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좋은 것은 관객 각자가 원하는 니즈에 맞춰 수화통역사 앞자리나 폐쇄형 자막 등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농인 배우들이 뮤지컬 <영웅>에서 화음 섞이는 소리를 수어로 표현했던 게 정말 시원했다고 했다. 네 명의 배우들이 함께 수어표현을 약간씩 다 다르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화음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어노래는 청인문화에 가까운 것이다. 이 공연에는 농인 배우들이 직접 수어를 하고, 청인을 위한 음성 서비스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서비스가 제공되었다. 창작자들이 통역과 해설, 장비, 객석의 위치 등도 다각적으로 준비한다면 우리가 ‘함께’ ‘재미’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AUD사회적협동조합의 이형렬 강사는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통해 참여한 경복궁 투어에서 문자통역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목에 끈을 걸어 상체 앞쪽에 엿장수처럼 판을 대고 걸으면서 해설사를 따라다니며 농인 관람객을 위한 문자통역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 고민이 발전되어 다른 궁에서는 원격으로 문자통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한 농인 관람객이 개인적인 비용을 들여 보고 싶은 콘서트에서 문자통역을 해달라고 한 사례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공연의 주최 측에게 읍소해가며 지원을 요청해 문자통역을 한 경우 등을 나누면서 힘들지만 귀감이 되는 선례들을 밟고 있음을 전해주었다.

배리어 프리로 제작하려면 예산이 만만찮게 드는 것도 사실인데, 그 부분에 대한 질의응답에서 신재 연출가는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예산이 없으면 자문을 구하고 감수라도 요청할 수 있지 않겠냐며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에는 정답이 아닌 무수한 시도에 따르는 해답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어지는 워크숍 참여자 전체 토론에서 “문자통역을 준비했는데 관객이 안 왔어요.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수어통역협동조합 장진석 강사는 여러 기관을 알려주면서, 홍보할 때 수어와 문자도 많이 넣어주고 그러면 알음알음 퍼지게 되고, 오게 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연극의 역사가 긴데 그동안은 왜 (공연장 접근성 확장) 하지 않았나? 왜 장애가 있는 관객이 적었을까?’를 생각해 보라며, 당장에 안 온다고 실망하지 말고 계속하라고 했다.

강내영 대표는 16년 동안 72편의 공연이 배리어 프리로 제작되었다고 했다. 최근 들어 그 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에 의하면 넷플릭스 화면해설 작품들만 봐도 미국은 법으로 100% 지정해놔서 배리어 프리를 적용하지 않으면 작품 등록을 안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아니다. 이런 것을 예민하고 부지런하게 찾아내고 개선해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토론자로 나온 장애예술 연구자 문영민은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첫 공연한 <테레즈 라캥>을 예로 들며, 연습실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배려의 규칙들이나 접근성의 장치들이 급박하고 여유가 없는 순간에는 결국 무용지물이 되었던 문제를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어떤 신뢰 관계 속에서 서로의 몸이나 장애, 소통 방식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체화될 수 있다면, 급박한 순간에도 우리가 서로의 차이나 소통 방식을 배려할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예외가 없는 일상의 상황에서 더 날카롭게 서로 소통 방식을 관찰하고 접근성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애인 편의를 위한 접근성을 따로 개선하는 ‘배리어 프리’보다는 모든 사람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공연장 접근성 확장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어쩌면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 중 하나는 서로의 마음에 긴밀히 연결되는 게 아닐까. 청인인 나에게 마스크와 마이크, 스피커를 거쳐 전해지는 말들은 문자통역과 함께여서 더 이해하기 쉬웠다. 그리고 수어통역으로 인해 말과 글의 감정을 더 느낄 수 있었고, 함께하는 우리가 느껴졌다. 지금껏 전문가들도 여러 작품에서 협업해왔지만, 이렇게 긴 시간 함께 이야기해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앞으로 이 고민은 함께 되어야 한다며 후속 모임을 기약했다.

※본 워크숍은 “2020연극의 해” 사업 중 하나로 향후 워크숍 전 과정을 기록한 책자를 제작·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진제공 0set프로젝트]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박하늘

박하늘
연극과 다원예술 분야에서 배우, 창작, 음성해설 등을 협업하고 있습니다.
@skypark_haneul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