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연극인, 청년, 나 뭘 할 수 있을까

[연극의 해] ‘청년연극인 공론장’ 광주 편

장도국_배우

187호

2020.09.24

광주 지역 청년 연극인 공론장은 지난 9월 7일 월요일 2시부터 6시까지 비대면 줌(zoom) 회의로 진행되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35세 이하의 청년 연출가, 배우, 기획자와 각 지역 공론장을 담당하고 있는 주관 단체의 예술가(프로그래머)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담당 프로그래머가 보내준 기프티콘으로 각자의 간식을 구매하였고, 비대면 회의의 답답함을 해결하고자 다양한 리액션을 종이에 적어 화면에 띄움으로써 상대방의 이야기에 끄덕임 이상의 공감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언택트 시대의 회의 속에서도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감정과 메시지를 표현하려는 예술인들의 의지 덕인지 비대면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공론장에 참여하면서 각자가 기대하는 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른 사람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 듣거나 알고 싶어서,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싶어서,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알리고 싶어서, 지원 사업 등 예술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싶어서, 자신의 힘듦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지지와 연대가 필요해서 등과 같은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번 네트워킹이 유지된다면 이런 호기심을 단순한 물음표로 끝내지 않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작업 반경의 확장도 도모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토론 과정에서는 수도권에 더 많은 예술인과 단체들이 밀집해있기에, 아무래도 예술인 지원사업이나 정책에 따르는 혜택을 보는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이해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의 규모와 정보의 공유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도 충분하게 공유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정보의 공유’, ‘협업을 통한 연대’, ‘서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약속했습니다.
전국 청년연극인 네트워크 구축_광주 온라인 공론장 포스터
두 번째 시간에는 평소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주제들을 펼쳐놓고 주제별 소그룹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루미큐브’, ‘넷플릭스’, ‘아시아/중국문화’, ‘지구온난화’, ‘태풍’, ‘기후위기’, ‘코로나19’, ‘돈’, ‘광주에서 연극으로 살아남기’, ‘광주시립극단 부조리 문제’, ‘프리랜서 예술인의 노동자성 및 지위향상’에 대한 주제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되어 루미큐브 게임과 넷플릭스를 시청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동료 배우의 일상을 들었고,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했던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전 세계가 처한 기후 위기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예술인인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어떻게 작품에 반영해야 할지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기후 위기를 논하는 창작팀의 연출자 동료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청년예술인들이 대관료 부담 없이 다양한 작품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블랙박스형 공연장이 없는 광주지역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적은 지원금으로 한편의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청년예술인들에게 사설 극장의 대관료가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알 수 있었고, 시에서 운영 및 관리하는 극장들도 소규모 공연을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광주, 타이틀에 걸맞은 환경 조성이 시급해 보였습니다.

또 다른 배우는 광주의 예술적 정체성이 ‘80년 문화운동’ 및 ‘518정신’으로 국한되기보다는 그 정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관객들에게 관심받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역의 다양한 지원 사업 집행기관과 심사위원들이 더욱 다양한 이야기들에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유행과 시대의 변화에 어쩌면 가장 예민할 수 있는 청년세대의 이야기답게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뜨겁게 고민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여러 관계로 얽혀있는 지역의 예술계가 질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되, 위계에서 비롯된 예술 활동을 지양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또한 청년과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은 ‘세대교체’와 ‘권력교체’가 아닌 ‘세대 공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관행’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가는 자리에도, 심사를 하는 공간에도 ‘청년’이 포함된다면 적절한 감시와 견제가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건강한 공존과 발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공론장 모습 (줌 화면 캡처)
세 번째 시간에는 현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예술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시재생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든 배우, 518 미래세대의 이야기를 전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기획자,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연출자, 지구 멸망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고 있는 극작가, 비접촉 시대에 온라인상의 ‘콘택트 즉흥 릴레이’를 진행 중인 기획자, 공연이 취소될 상황에서도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는 배우, 공연이 취소된 배우, 공연 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관객을 만날 수 없었던 배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각자 자신의 예술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러운 한편, 이러한 상황이 참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올해 많은 예술인들이 ‘취소’, ‘연기’, ‘공연장 폐쇄’ 등의, 달갑지 않은 일방적인 통보들을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통보 과정에도 건강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눴습니다. 민관 단체들의 공연, 다양한 국가 예술 지원 사업, 지역의 축제들이 아무런 대안도 최소한의 보장도 없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한 장의 서류 혹은 몇 줄 문자로 상황을 정리하는 경우들이 존재했는데 이러한 통보들이 너무나 폭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작품이 실연되는 당일의 공연 날 만큼 준비하는 연습 기간의 창작과 노동 시간들도 반드시 정당한 대가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우리 모두가 경험했기에 앞으로의 공연 계약에는 판데믹 상황에서의 권리 보장 문제도 정확히 명시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마지막 3차 공론장에서 추가로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네 번째 시간에는 광주에서 활동하는 이유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면서 접했던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들이 자신의 예술 활동과 만나서 생기는 로컬로서의 경쟁력에 매력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모든 토론을 마치고 내가 안전한 창작 환경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문제로 지적되었던 상황들을 변화시키고자 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 상황이 떠올랐고, 오늘 공론장에서 동료들이 잡아준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고 부당함과 맞서 건강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안전한 창작환경 조성’,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 ‘관객과의 소통의 다변화’를 표방한 ‘연극의 해’의 과제와 내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똑같습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극단인 광주광역시립극단의 여름 수시공연 <전우치> 작품 연습 과정에서 일어난 극단 측과 상근 단원 두 명의 ‘계약 지연문제’, ‘보험 미가입문제’, ‘직장괴롭힘 문제’, ‘직장 내 성희롱 문제’들 역시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기에 더욱더 많은 동료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예술인이기 이전에 일을 하는 노동자임을 인정받아서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지위가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굳건히 해나가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온라인 공론장에서 공유된 질문 (줌 화면 촬영ⓒ장도국)
판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연극인으로서 ‘연극인 뭘까, 청년 뭘까, 나란 존재 뭘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에 동료 예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취소 통보, 계약 해지, 공연 연기, 극장 폐쇄와 같은 불행한 상황만 겪다가 오랜만에 마주한 희망이자 미래였습니다. 비현실적인 권리와 지위 속에서 살았던 예술인들의 삶이 수면 위로 드러난 지금이 한 걸음, 아니 그 이상을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전북을 시작으로 대전-광주-인천-부산-강원의 공론장이 진행됩니다. 건강하고 희망찬 내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길 응원합니다.

[사진 출처 : 연극의 해 SNS 페이지]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장도국

장도국 배우
2020년 팬데믹 상황에서 드러난 예술인들의 비현실적인 권리와 노동환경을 개선해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 예술 노동자입니다. 광주에서 활동하며 변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많은 예술인들과의 소통을 희망하는 연극배우이자 창작자입니다. nanoom1st@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