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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재난 앞에서 서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연극의 해]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

윤소희

190호

2020.11.05

10월 8일 저녁 11시 7분 울산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다. 늦은 밤 화재가 일어났지만, 거주민들이 2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입주민들을 이불로 받아내고, 몸으로 난간을 부수는 등 서로를 도우며 모두가 안전하게 대피했다는 훈훈한 미담이 이어졌다. 그런데 과연 거주민들 중 장애인은 없었을까? 만약 장애인이 있었다면 모두가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을까? 지난 10월, ‘2020 연극의 해’ 주관으로 이음아트홀에서 열린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의 기획자이자 극단 애인의 김지수 대표는 워크숍의 시작에 앞서 울산 화재를 언급하며 모두에게 장애인 재난대피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우리의 ‘모두’에는 과연 ‘모두’가 속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지난 2월 큰 교통사고를 당해 잠시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혜화동에 6년 넘게 살고 있지만, 휠체어를 타고 마주한 혜화동은 또 다른 공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의 병원인 서울대학교병원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운영하는 이음센터가 자리하고 있음에도 수많은 장벽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턱이 존재하여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그나마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화장실은 지하철 역사 안이나 이음센터 정도였고, 그 외에는 비장애인에게도 비좁은 화장실이 가득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시기에도 비쭉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여러 차례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횡단보도는 왜 이리 길고, 초록불이 켜지는 시간은 왜 이리 짧은지. 서울의 중심지에 속하는 혜화동에서조차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내가 감각하지 못하는 더 열악한 곳에서 느껴질 절망감들이 피부에 다가왔다.

김지수 대표는 지난 봄 공연장을 찾았을 때 “불이 나면 불이야! 불이야! 를 외치고 뛰어나가면 된다”라는 하우스 멘트를 들었던 일화로 화제를 옮겼다. 또 지하철 화재 대피 영상의 끄트머리에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적극 도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꼬집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연 서로에게 어떻게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또 어떻게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질문했다.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것을 넘어 우리는 어떻게 서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까?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은 1부의 연구결과 공유와 조별 워크숍, 2부의 공연과 관객과의 대화로 구성되었다. 1부의 시작에는 워크숍의 공동 기획자인 김원영 변호사가 영국의 개인비상대피계획(PEEP, Personal Emergency Evacuation Plan)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애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각기 다른 컨디션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지 개인별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영국 캔터베리 말로우 씨어터 (Canterbury Marlowe Theater)의 사례를 공유했다. 특히 소극장의 경우 제대로 된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이 때문에 이 개인비상대피계획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발표가 끝나고 우리는 사전에 정해진 조별로 둘러앉아 조별 워크숍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약 현재 이음센터에서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각 조에 속한 장애인 조원들과 함께 어떻게 안전히 대피할지 계획을 세워보는 과제였다. 우리 조에는 전동휠체어를 탄 조원과 전맹 시각장애인 조원이 계셨다. 화재와 같은 재난이 발생할 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어려운데, 이음센터에는 비상 승강기가 있다는 정보에 직접 승강기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비상 승강기는 한 사람이 겨우 탈 정도로 매우 작았고, 직접 손잡이를 잡은 후 버튼을 발로 누르며 내려가야 하는 방식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조원이 사용할 수 없었다. 전동휠체어를 탄 조원은 위급한 상황이라면 전동휠체어에서 분리되더라도 타인에게 업혀서 내려가야 하겠는데, 장애 특성상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혼자서는 업힐 수 없다고 자신의 컨디션을 공유했다. 전맹 시각장애인 조원은 계단을 함께 내려가 줄 1인이 있으면 계단으로도 충분히 대피를 할 수 있겠다고 했다. 우리 조는 두 조원의 개인 컨디션을 경청하고 이음센터에서 급작스런 재난이 발생할 시, 전동휠체어를 탄 조원과 비장애인 3인이 조를 이루고, 전맹 시각장애인 조원과 1인이 조를 이루어 대피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3인의 조원 중 1인은 전동휠체어를 탄 조원을 업고, 다른 1인은 힘이 빠질 때를 대비하여 교대하고, 마지막 1인은 팔에 힘이 없어 제대로 업히지 못하는 조원을 뒤에서 받쳐주기로 하였다. 또한 공연장의 문은 대개 방음 등의 이유로 무겁고 잘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다른 조원이 대피 시 공연장 문을 활짝 열어두기로 정리하였다.
조별 워크숍이 끝나고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모든 과정이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이야기되었다. 또 우리 조가 생각해낸 것 이외에도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눈에 보이는 신체장애뿐 아니라 장기장애나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겪을 재난상황의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나 역시 현재 모든 보조 장치를 제거한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애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곤란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사회 전반에서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까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력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장애 당사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쉬는 시간을 가진 후, 2부에는 다양한 장애유형을 가진 참가자들이 짧은 퍼포먼스를 발표하였다. 공연의 내용은 공연장에 찾아온 장애인 관객들이 티켓 발권 시 개인재난대피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계획대로 대피하는 모습이 담겼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극단 측은 애초에 배우들만 피난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참여자 모두가 대피를 해주어 감동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는 남산예술센터에서의 어셔 경험과 배리어프리 공연을 진행하며 겪은 어려움에 관해 공유했다. 관객과 제일 밀접하게 접촉하는 것은 하우스 어셔이지만 사실 하우스 어셔의 존재는 극장의 아르바이트 용역 인력으로 극장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존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관객들에게는 극장의 직원이나 극장의 하우스 어셔나 동일하게 도움을 청할 대상으로 보일 것이 당연하다.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하우스 어셔가 위기 상황에서 관객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까? 책임이라는 단어를 과연 하우스 어셔가 안고 갈 수 있을까?
재난은 예고하고 나타나지도 않고, 우리를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폭력적인 재난 앞에서 서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길은 모두가 함께 대비하는 길뿐이다. 극단 애인의 하은빈 배우는 말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타인에게 몸을 열 수 있을까?” 타인에게 몸을 맡길 수 있을까?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요즘과 같은 시기에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끝까지 붙잡아야 할 질문일 것이다. 이번 워크숍과 같은 워크숍이 자주, 또 대중적으로 열러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촬영_문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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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윤소희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하우스 어셔로 근무했다.
지금은 느릿느릿 글을 쓰고, 연극을 만들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sohee.you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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