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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패했다

남산예술센터 폐관에 부쳐

강훈구_연출가

193호

2020.12.17

결국 남산예술센터가 문을 닫는다. 마지막 공연은 진즉에 끝났다. 12월 19일까지 모든 짐을 빼서 나와야 한단다. 코로나바이러스의 3차 유행으로 이별 행사도 취소되었다. 지난 10년간 100편이 넘는 연극을 숨 가쁘게 제작해 온 극장의 마지막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쓸쓸하다. 연극이나 연극인들이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집 마련이 이렇게나 어렵다.

2009년, 서울시는 10억을 들여 수리하고 서울예술대학교(학교법인 동랑예술원)에 연간 10억의 임대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드라마센터를 임차하여 남산예술센터를 운영하였다. 덕분에 그동안 (유치진과 유치진 일가에 의해) 선택된 자들만 설 수 있었던 가장 오래된 연극전용극장의 문이 열렸다. 그 문은 생각보다 널찍하게 열렸던 것 같다.

내세울 경력이라곤 하나도 없던 나 또한, (단 하루뿐이었지만) 서치라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이 극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대관료를 지불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극장이었고, (백오십만 원의) 제작비를 지원받은 첫 번째 공연이었다. 그날 이후, 남산은 나의 극장이 되었다. 희곡을 쓰며 장면을 상상할 때면, 나는 부끄럽게도 남산을 떠올렸다. 아이디어를 아주 잘 다듬는다면 내가 2026년쯤에는 여기서 공동기획 공연을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남산은 내가 오를 수도 있는 유일한 무대였다. 그것은 가져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막연하지만 확실한 희망이었다.

남산은 그랬다. 남산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품이 공연될 수 있는 극장이었고,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극장이었고, 미투 운동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반성을 시작했던 극장이었고, 극장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배리어 프리) 고민하는 극장이었다. 그래서 2018년 1월 서울예술대학교가 계약 종료를 통보하였고 이를 계기로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회의’(이하 공공정비)가 꾸려졌을 때, 내가 거기 참여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백 명이 넘는 연극인들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블랙리스트 때 그랬던 것처럼, 미투 운동 때 그랬던 것처럼, 많은 연극인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우리의 극장을 사수할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극장을 반드시 지켜내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공공정비는 세 차례의 공개토론회를 개최하며, 연극인들의 공론을 모으려 했다. 내적으로는 연구자들이 연구 TF를 꾸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유치진의 드라마센터 사유화 과정에 대해서 밝히고, 이를 담은 연구서 <유치진과 드라마센터>(2019, 연극과 인간)를 발간하였다. 외적으로도 선전 활동에 나섰다. 연구 결과를 압축하여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카드뉴스, 영상물을 제작하여 업로드하고, 현장연극인들의 연대성명을 받아 공유하였다. 하지만 공개토론회는 대체로 썰렁했으며,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의 구독자는 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명동과 혜화는 4호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우리의 목소리는 쉽사리 현장 연극인들에게 가닿지 않는 것 같았다. 서울예술대학교는 한 번도 공론의 장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극장환수는 공공정비의 의견이지 현장 연극인의 의견이 아니지 않느냐’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는 드라마센터의 공공성과 역사성에 대해서는 어떤 공식적인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방과하다 계약 종료를 결정했다. 연극이 쫓겨난 자리에 SM이 K팝 글로벌 스타 육성기관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유치진에게 다시 한번 극장을 빼앗기게 되었다.
남산예술센터의 작별인사
남산예술센터의 작별인사 (출처 : 남산예술센터 페이스북페이지)
우리는 완벽히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옳았고, 정의로웠던 것 같은데. 확실한 것은 우리가 밝힌 사실(유치진의 탈법적, 초법적 드라마센터 사유화 과정)이 아니라, 그 사실이 실정법을 전혀 위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싱겁게도 나는 공공정비 활동 이전에는 유치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그가 한국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것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이분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희곡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유치진의 제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과는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서울예대에 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운동이 실패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나는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의 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그가 정말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바로 오이디푸스인 것은 아닐까.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고, 아버지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유치진은 “드라마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1)는 약속을 어기고, 공공극장 드라마센터의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립예술대학을 세웠다. 대학에 가야 연극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연극 영화과가 돈이 된다는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백 개가 넘는 연극영화과가 생겨났다. 대학은 연극인들의 산실이고, 밥줄이다. 곳곳에 복제된 예술대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대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을 한국 연극에 동기화하여 공급하는 중개소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제 대학의 외부에서 연극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유치진은 상업극을 경멸하며, 교화적 대중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일관되게 작품 활동을 해 왔다. “관객과 소통하면서 그들에 재미와 교훈을 주는 연극의 교화적 대중성은 유치진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측면이며, 그가 언제나 연극계의 중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2) 유치진은 (일제와 이승만, 박정희의) 국가에 교화적 대중성을 가진 연극을 바치고, 관객을 얻었다. 국립극단을 얻었다. 교화가 곧 공공이라는 믿음과 함께, 정치성이 소거된 연극과 함께, 국공립극장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2020년에도 여전히 국립극단의 미션은 국립극단을 세운 유치진의 뜻대로 “좋은 연극으로 한국 연극의 맥을 잇고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3)이다. 국공립극장의 외부에서 연극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드라마센터 논쟁은 역설적으로 유치진이 연극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공표하는 효과를 낳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힘이 셌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버지인 이유는 그가 옳아서가 아니었다. 정의로워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먹고살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드라마센터를 꿀꺽해놓고도 사유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다 먹고살게 해주겠다는데, 이게 어떻게 사유화인가. 연극을 가장 많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자신이 연극을 하는 것이, 자신이 무대에 서는 것이, 자신이 연극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바로 공공적인 것이었다. 바로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복기의 시간이다. 왜 많은 연극인은 공공극장을 지키는데 연대하지 않았을까? 관객으로 극장을 찾던 많은 시민은 왜 연대하지 않았을까? 드라마센터와 남산예술센터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유치진의 극장에서 좀 더 많은 유치진의 극장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여전히 연극 엘리트들의 극장은 아니었을까? 여전히 시민의 극장은 아니었던 것 아닐까? 과연 얼마나 열려있던 극장이었을까? 그렇다면 국립극단은, 아르코 예술극장은 공공극장인가? 그 극장들이 사라진다고 한다면, 극장을 지키겠다고 나설 연극인들이 얼마나 될까? 함께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면 공공극장은 무엇일까? 어떤 극장이 공공극장일까? 극장도 빼앗긴 처량한 처지지만 우리는 이 질문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유치진과 우리의 싸움은,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회의의 싸움은 분명 여기서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 <「드라마센터는 사유화되지 않는다-정상화 모색하는 유치진씨」> 한국일보, 1966. 9. 1.
  2. <유치진과 한국연극의 대중성>, 이정숙, 지식과 교양, 2019
  3. 국립극단 기관 운영방향, <국립극단의 조직과 운영현황 공유>, 이성열(국립극단 예술감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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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구

강훈구
<공놀이클럽> 회장. 전위적발라드하드락듀오 <정권교체> 리더. 주로 하는 일 없이 바쁘고. 가끔 희곡을 쓰고, 아주 가끔 연극 연출을 하고, 아주 아주 가끔 노래를 합니다.
saborami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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