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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대응시스템 전국구 공동 구축을 위한 행동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부산연극계 자치규약 <세이프 온 스테이지 S.O.S>

박하늘_배우

194호

2021.01.21

필자는 KTS(Korea Theatre Standards) 워킹그룹의 파트너로 작년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이하 KTS) 낭독 프로젝트 <목소리>에 참여했다. 또한 ‘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가 주최한 KTS 수원, 서울 워크숍에 참여한 바 있다. 워크숍을 통해 행동강령이 아닌 표준이 되어야 할 귀한 소책자를 습득했다. 현장 예술인, 기관 담당자와 함께 규약 강독 및 토론을 이어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년 12월에 열린 ‘아르코 현장 대토론회’에서 ‘세션4 CH2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응시스템 구축을 위한 도전과 과제’ 중 ‘[제언6]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응의 제도적 한계 : 지역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에 대해 살펴보았다. 송진희 작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응시스템 안에서 조사 과정이 부재한 이유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을 지역성과 관련해 이야기했다. 부산의 경우 2018년 성희롱·성폭력 임시대응센터를 예술인들이 운영했을 때 세가지 축이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성희롱·성폭력문제는 사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화예술계, 예술대학, 지원사업 내에서 규제 없이 발생한다. 신고는 되었지만 시스템의 부재로 사건이 종결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다. 사건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예술계 가해자의 행동 범위는 지역으로까지 이어진다. 조사과정을 통해서 그 내용이 공적 데이터나 기록으로 공유되면 가해자가 징계받고, 다른 사업에 참여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피해자는 또다시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듯 피해자 관점의 성폭력 대응체계 구축과 이를 어떻게 현장과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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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아르코 현장 대토론회] 세션4.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pc3BXbNcD2Y
토론자들은 경찰이나 인권위의 조사가 아니라 어떻게 내부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가지고 접근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최현정 변호사는 사건 처리 내용을 보면 내부절차가 없거나 내부절차가 있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피해자가 언론화를 선택한다고 했다. 또 민간, 공공에서의 좀 더 적극적인 보호, 합리적인 제도의 시행이 이후 법률제정에 반영될 수 있으므로 내부단체나 기관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했다.
송진희 작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통합적인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가해자 지원배제나 항목, 서약서, 예방 교육 의무화 같은 시행지침을 지킬 수 있게 지역재단과 연계하여 일원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르코도 지역협력부 안에 문화 다양성이나 정책연구조사와 같은 범위들이 있는데, 지역과 연결될 때는 성평등이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지역에는 성평등 네트워크가 2년간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며, 토론회에서 지역에 관한 의제를 같이 논의하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산 배우는 성폭력 문제만이 아니라 젠더 이슈 외에도 많은 인권침해 사례들을 공공이 다루고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또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고 피해자의 주도권이 보장되는 시스템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화용 작가는 ‘예술가나 예술 주체들은 지원을 받는 대상이고 위원회는 지원을 하는 기관’이라는 식의 구도가 아닌 이들 모두 예술계 공동체로 인식할 것을 제언했다. 치명타 작가는 명색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0년 반성폭력 규정, 매뉴얼이 없어 사건이 터질 때 자문단을 불러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주먹구구식의 체계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일침했다. 아르코가 지역문화재단에도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초석을 잘 다져야 한다. 아르코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다. 끝으로 오영주 본부장은 앞으로 현장과 계속 소통하고 배우면서 체계적으로 대응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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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표지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는 2016년 00계_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으로, 예술계의 만연한 성폭력 문화를 용인하지 않아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단체다. 2020년 부산연극계에서 안전하고 평등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한 스탠다드 <Safe On Stage(이하 S.O.S)>를 기획, 제작했다. 부산문화재단에서 프로젝트 결과 보고회 ‘연극살롱-세이프 온 스테이지’를 개최하고, 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세미나를 진행하고, 성평등 포럼에서 과제와 전망을 논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 왔다. 현재는 부산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기록프로젝트 <WRWR: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는 기록한다> 일환으로 출판물을 준비하고 있다.

S.O.S는 부산문화재단이 지역 연극계 관계자들과 미국 CTS(Chicago Theatre Standards, 이하CTS)를 모델로 추진했으며, 극단별 워크숍 등을 거쳐 부산연극계 상황에 맞는 규약으로 완성했다. 2020 문화다양성 무지개다리 사업으로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심혜림, 송진희, 조은하가 집필하였다. S.O.S는 ‘안전, 존중,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강제 규약은 아니지만 보편적 인권을 지킬 권리, 작품 전 단계부터 오디션, 계약, 연습, 리허설, 분장실, 공연, 뒤풀이 등 제작 전 과정에 걸쳐 실천 사항을 명시했다. 사전예방 및 성희롱·성폭력 대응 가이드, 체크리스트, 피해자를 위한 Q&A, 참고자료 및 연계 기관 정보도 담겨있다.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단체와 프로젝트 상황에 맞게 비영리적으로 수정·보완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 덕분에 S.O.S를 참고한 극단 자체 내부 규약을 만드는 움직임들도 엿보인다.
S.O.S 내용 중 눈에 띄는 점을 곱씹어 보고자 한다. “공연장 안전지원센터에서 안전 교육과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을 사전에 듣고 숙지합니다.” “(계약서에) 나이, 성별, 인종, 장애, 성적지향, 성정체성 등에 관한 차별과 괴롭힘을 허용하지 않음을 명시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성적 농담 및 외모와 신체에 대한 품평을 하지 않습니다.”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에 유의합니다.” “나의 성인지 감수성을 점검하고, 전문가나 기관을 통해 교육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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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와 KTS에 대한 각각의 워크숍에서 공통되는 의견들이 있었다. 하나는 연극 내 성희롱·성폭력의 문제가 보편적 인권으로, 서로의 상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아무리 훌륭한 작품일지라도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장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전엔 나도 작품을 좀 더 우선시하는 편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사람을 잃고 몸과 마음을 다치고 나서야 사람과 안전이 먼저라는 걸 깨달았다. 예술 활동 중 어떤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피해를 입은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있다. 일용직 노동자인 예술인은 피해회복 지원을 위해 혼자 많은 것을 감당해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론화 및 연대와 공동행동이 필요하고, 구조가 개선돼야 할 것이다.

2018년 연극계 미투 운동이 뜨겁게 일던 때 올라왔던 글 몇 개를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지난 일이 될 수 없는, 여전히 살아있는 말들이었다. AI 캐릭터에 대한 성희롱이 발생하는 시대에 절망을 느끼지만, 그나마 안전한 세계가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 다행이다. KTS와 S.O.S가 만들어지기까지 힘써준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이러한 워크숍이 열리고 책자가 발간되었을 때, 현장 예술인과 기관 담당자, 예술을 사랑하는 모두가 빠짐없이 보거나 읽는 게 정말 중요할 것이다. 나의 언어로 체화하여 다시 이야기할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논의의 장에 참여자 대다수가 (지정 성별) 여성이라는 점은 문제이지만, 규약집을 함께 강독하고 토론하는 동료들을 만남으로써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과 믿음,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CTS를 본보기 삼아 KTS와 S.O.S가 나왔듯, 많은 이들이 이 ‘표준’을 현장에서 계속 적용하며 수정·보완해 더 나은 규약들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연스러운 문화로 잘 스며들어지기를 바란다.

세이프 온 스테이지 결과자료집 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bscf.or.kr/03/0103.php

[사진제공_송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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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

박하늘
연극과 다원예술 분야에서 배우, 창작, 음성해설 등을 협업하고 있습니다.
@skypark_han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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