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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묻지 못했으나, 돌이켜보니 꼭 했어야 하는 질문들

‘2020 연극의 해’ 결산 온라인 토론회 : 언도큐멘타

정리_연극in 편집부

195호

2021.02.18

2020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연극의 해’의 사업은 그간 해당 장르에서 관성적으로 해오던 축제성, 행사성 프로그램 대신, 연극의 가치와 담론을 점검하고 확장하는데 포커스를 맞추었습니다. 코로나 시국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업의 취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연극의 해’의 진행은 더더욱 결과로서의 연극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연극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극in에서도 하반기 내내, 거의 유일한 ‘현장’으로 자리매김했던, 연극의 해 사업들을 소개해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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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2020 연극의 해’를 결산하는 온라인 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자리는 연극의 해를 만들어왔던 주체들이 그간의 과정을 보고하고 그 의미를 공유하는 마지막 정리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론회의 타이틀은 ‘2020 연극의 해’를 통해 바라본 한국연극의 현재, 그리고 미래’였습니다. 이처럼 결산을 ‘토론회’의 형식으로 진행한 것은, 연극계 구성원이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토론회의 세션은 “안전한 창작환경”과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 그리고 “관객소통의 다변화”와 “언도큐멘타”로 총 4개의 파트로 나누어졌습니다. 각 주제아래 진행되었던 여러 사업들에서 나타난 성과와 한계 등을 나누었습니다. 연극in에서는 본 결산 토론회 가운데 마지막 파트였던 ‘언도큐멘타-한국연극 다시써라’를 [현장]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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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도큐멘타 : 한국연극 다시써라>(구성 김방옥, 연출 박근형)는 작년 연극의 해 사업 가운데 ‘유일한’ 기념공연으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양일간 진행된 사업입니다. 본 공연은 기존의 한국 근현대연극의 역사, 개념, 범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으나, 이를 관람한 관객들과 창작자들로부터 극중 대사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부재와, 성폭력 피해자 작품의 언급, 극중 장애인 인물의 대상화 등을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언도큐멘타’라는 미학적 개념 또한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의견도 더해졌습니다. 극적인 개념을 탑재한 ‘공연’으로 설정된 만큼, 본 작업에 대한 활발한 비평과 토론을 기대하였으나, 특이하게도 사태가 벌어진 직후 제작진이 작품에 대한 ‘사과’를 SNS에 게재하였고, 문제를 제기했던 주체들 중에서는 이를 일부분 수용(?)하겠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집행위원장(심재찬)이 추후에 토론의 자리를 기약하는 방식으로 본 사태는 일단락 되었고, 작품에 대한 내부적인 합평회 없이, 해를 넘겨 1월 토론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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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도큐멘타 : 한국연극 다시써라>를 통해 바라보는 한국연극의 과제와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결산 토론회(사회 성지수)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의 홍예원 연출가와 김민조 연극평론가, 이산 배우,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는 이진희 문화예술위원회 7기 위원, 임인자 집행위원이 참석하였습니다. 발제와 토론에 임한 참여자들은 한결 같이 참담한 마음으로, 본 사태를 분석하고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말 그대로 한국연극의 무능함과 취약점에 대하여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아쉽게도 언도큐멘타의 창작진과 일반 관객은 자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각 에피소드를 담당했던 창작진의 소회와 이를 예약하고 관람했던 관객들의 의견은 생략되었습니다. 정확한 경과보고와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했던 공연의 성과는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과제와 제언은 있었지만, 그러한 과제를 유발시킨, 여러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그러한 의식적 침묵(?)은 공연에서 시도하려 했던, 기획의 의도마저도 퇴색시켜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본 토론회에서는 작품의 제작과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결과물이 갖는 의의와 한계점이 명확하게 조명된 것은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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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in에서는 본 토론회의 현장 필자를 쉽사리 섭외할 수 없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정리하거나 발언하기 어려움을 토로한 필자들을 통해, 이 사태가 복잡하게 중첩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조언을 통해 편집부에서는 이 사태를 다음과 같이 분리하였습니다.
먼저, 공연 기획과 제작에 대한 차원입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를 주관했던 집행위원회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왜 ‘유일한 기념공연’으로 기획이 되고 제작되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결과물에 대한 차원입니다. 작품을 함께 만들었던 창작진의 생각과 더불어, 공연에 담긴 의미와 해석을 따져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 기획의도와 실제 구현된 것이 왜 다른지, 총체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완성도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따져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과물 이후의 차원입니다. 관객의 항의와 창작진의 문제제기, 이번 토론회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을 망라하여,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들을 점검해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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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in에서 의도한 [현장]의 기록은, ‘결과물 이후의 차원’에 가깝습니다. 다만 토론회를 지켜보는 내내, 앞서 언급한 여러 차원들이 뒤섞여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고, 따라서 이 사안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서 성찰하기에는, 아직 그 ‘의제’를 뒷받침하는 전제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부는 토론회를 기록하는 대신, 현장에 있었던 분들에게 ‘질문’의 형태로 소회를 풀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편집부가 느낀 답답함을 두고 보는 대신, ‘우리 안의 불편한 질문’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현장에서 묻지 못했으나, 돌이켜보니 꼭 했어야 하는 질문들”이라는 내용의 청탁이었고, 총 세분이 답변을 주셨습니다. 지면을 통해 김민조, 이산, 장지영 님께서 주신 질문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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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극사는 왜,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것일까요? 한국연극사라는 기록과 평가의 체제가 지금-여기에서 생산되고 있는 연극을 위해 어떤 효용성을 갖는지 실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성 연극의 권력적 구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바꾸고 새롭게 창안해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그동안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탐문해야 할 필요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언도큐멘타>의 도전과 실패는 연극사 없이 현재의 좌표를 찾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드러내주는 사례 같습니다. 질문을 옮겨보자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록을 남기고 읽어야 하는 것일까요? 연극사라는 ‘꿰인 실’ 없이 현재의 연극이 미래의 연극과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2. <언도큐멘타>의 실패 요인 중 하나는 역사의 ‘바깥’이나 ‘위’에서 현실을 조망하는 평가자의 위치성을 고수했던 문제로부터 비롯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 연극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록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나 태도가 필요한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발화 주체를 다양화하고 보다 많은 실천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해소되는 문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자를 관찰하고 기록할 때 우리가 필연적으로 객관(화)의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거리는 타자로부터 얼마나 멀거나 가까워야 하는 것일까요? ‘좋은 객관성’과 ‘나쁜 객관성’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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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 연극의해 사업은 '한국연극'이라는 범주가 특정한 계층, 지역, 성별, 학벌 등 조건 안에 있는 연극인들의 활동으로 구획되어 있음에 문제의식을 느낀 연극인들의 정치적 역량이 발휘되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다수의 사업들이 '연극계'라는 공동체의 상을 보다 다양한 얼굴, 다양한 삶이 자리한 풍경으로 그려볼 수 있는 건강한 자극을 만들어냈습니다. 언도큐멘타의 과정과 결과가 보여준 것은, 이러한 자극에도 불구하고 '한국연극사 다시 쓰기'가 불평등의 역사를 지워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적 보수성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연극의해 사업들을 가능하게 했던 부당한 권력을 향한 청명한 시선, 평화와 안전을 우선순위로 두는 정치를 토대로 연극사를 쓰는 시도는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요? 아니, 어디에서 이미 시작되었을까요? 충분히 주목받고 있을까요? 책임을 외면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질문과 제안은 지난 결산토론회에서 이미 던진 바 있습니다. 이제 곳곳에서 책임을 이미 수행하며 기존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투쟁을 해나가는 연극인들과 연대하기 위한 질문을 던집니다.

2. '가해자의 작품'이 자리하고 '가해자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공동체의 위험성을 체감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연극인들의 목소리입니다. 가해에 대한 합당한 책임부여와 피해에 대한 지원이 너무나 부족한 현실을 체감하기에 외치는 요구입니다. 안전은 선언으로도 이루어지지 않고, 약속과 규칙은 항상 넘어서야할 한계를 동반합니다. '연극계'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 크든 작든 자신의 영향력을 바르게 사용하려는 노력을 일상에서 기울여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우리는 안전을 요구하고 또 실현하기 위해 서로 무엇을 독려하고 무엇을 감수해야할까요? 영향력이 작게 느껴져 좌절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영향력을 잘못 발휘해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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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도큐멘타-한국 연극 다시 써라>에 대해 제기되었던 문제들은 연극에서의 재현의 윤리에 대한 질문과 어느 정도는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현의 주체, 재현의 내용을 문제로 삼으며 새로운 한국 연극사 쓰기를 주장한 이 작업은 왜 공연의 형태로 무대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까? 이 기획이 굳이 한 편의 연극으로 완성되어야 했던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2. 연극의해 결산 토론회 <언도큐멘타> 섹션에는 세 분의 발제자와 두 분의 토론자님이 계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타당하고 귀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만, 참관자로서 저는 공연의 당사자는 거의 참석하지 않은/못한 상황에서 이분들만을 토론장에 모시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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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극의 해 SNS페이지]

<언도큐멘타 : 한국연극 다시써라> 결산토론회 유튜브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lMCzQc-c5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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