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시대에 맞춰 예술을 대하는 연습

2021 '거리예술x워크숍'

최호범

제196호

2021.03.11

2007년 12월,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 엄청난 양의 기름이 유출되는 재난이 일어났었다.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의 모습을 보고 옷가지를 대충 챙겨 태안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봉사자들과 여관방을 함께 잡아 얼마간을 머물며 낮에는 파도에 밀려 나온 기름을 닦고, 저녁에는 위생복과 장화를 닦고 짝을 맞추며 지냈었다. 며칠이 지나 어떤 예술가가 기름을 온몸에 묻힌 바다생물과 새 조형물을 쇳대로 만들어 해변에 꽂는 일을 했다.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었고, 지나다니는 봉사자들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고, 주변에서 초상집에서 정신 나간 짓을 한다는 호통에 예술가가 자리를 떴었던 불편한 기억이 있다.
본문이미지1
사진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71129129300063
그리고 코로나가 그 기억을 끄집어냈다
‘메르스 같은 건가?’ 했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사람들 간 이동과 만남이 금기시됐고 거의 모든 지역축제와 공공공간에서 관객을 만나는 거리예술 사업들도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로 취소되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전염병의 확산에, 문화예술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들은 대책 마련이 어려웠고 거리예술은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치부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치료법을 찾는 게 중요했던 만큼 무너지는 생태계의 심각성도 함께 언급되고 대책을 찾았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가 바뀌어도 상황은 여전했다. 올해는 더 나은 계획을 찾기 위해 한국거리예술협회에서 준비한 “거리예술X워크숍”에 참가하게 됐다.
본문이미지2
그래도 해야 하는 이야기들
사흘 동안 이어진 워크숍의 모든 과정은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협회 운영위원이나 발제자가 하나의 화두를 꺼내면 다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몇 개의 소모임으로 나뉘어 조금 더 깊이 이야기해보고, 다시 한곳에 모여 소회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째 날에는 먼저 “올해도 태풍이 오겠지”라는 주제로 기후위기와 환경에서 발견되는 이상 신호들을 이야기했다. 그 뒤에는 공연이나 축제에서 사용하는 화약류나 무수히 많은 플라스틱과 폐기물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의식하거나 개선해야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 발제인 “변해도 너무 변했어”에서는 공공공간의 ‘공공성’과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에 ‘누구나’라는 단어가 주는 착시를 짚으며 대규모 집회현장, 장애인의 거리예술 접근성 등 저마다 생각하고 있는 관객의 범위와 거리예술을 펼치는 공간과 통제에 필요성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었다. 참가자들과 두 개의 발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들을 주고받다 보니, ‘코로나 이전과 같은 활동을 하기 어려운 이 시점에서, 시대의 변화나 다음 단계로 여겨졌던 이야기를 지금 꺼내어 논의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여자로서 가장 많은 관심이 갔던 발제인 “뾰족한 수라도 있니”에서는 전년도에 온-오프라인 방식을 병행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외에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취소하지 않고 진행된 프로젝트들의 운영이나 참여 소회를 나누었다. 발제 이후 온라인에서의 거리예술에 대한 의견이 많이 나왔다.
필자 또한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의 해법을 온라인에서 찾고자 했었고 분명 새로운 발견들도 있었으나, 관객과의 상호작용이나 거리예술의 현장성 구현의 한계를 강하게 느꼈다. 본 워크숍은 ‘온라인이 거리예술의 피난처는 될 수 있어도 개척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과제를 남겼다. 첫째 날에는 세 개의 발제를 4시간 동안 다루어야 했기에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 말 그대로 뾰족한 수는 아직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며 워크숍에 참여했지만 그래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본문이미지3
안전한 창작을 위하여
둘째 날은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한 공연예술가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KTS(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워킹그룹과 함께 했다. 창작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창작환경 개선사례 등을 수년에 걸친 조사와 토론, 집필로 만들어낸 KTS를 모든 참가자가 돌아가며 강독한 후에 오디션, 계약, 연습, 공연과 공연 종료 후까지 창작단계별로 나뉘어 거리예술 현장과 대입해보며 심도 있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신체의 피해를 예방하는 일차적 안전관리는 물론이고 성폭력이나 언어폭력에 의한 정신적 피해를 예방하는 것 또한 중요한 안전관리인 것을 참가자들이 공감했고, 워킹그룹을 구성해 거리예술 환경에 맞춘 규약을 연구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소규모로 창작이 진행되거나 예산의 문제로 일인이 다수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빈번한 거리예술의 창작환경에서 포괄적인 개념의 안전관리 담당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도 이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제도적 개선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날인 셋째 날은 참가자들끼리 안부를 전하고 ‘거리예술 표준계약서’를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됐다. 예시로 준비한 거리예술 축제의 계약서를 펼쳐놓고 조항마다 의미와 합리성, 개선 필요성 등을 조목조목 따져보며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작품의 사진을 수년 동안 홍보에 이용할 수 있다거나, 작품의 기획과 준비가 대체로 인정되지 않는 것, 우천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공연이 취소되는 피해를 공연자가 떠안는 조항 등 많은 부분에서의 문제 제기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을 쌓아나갔다. 계약서는 돈을 주는 기관에서 작성하면 그대로 사인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계약서를 공연 며칠 전이나 당일에서야 작성하거나 심지어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니 조건을 살펴보고 수정을 요청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를 계기로 지난 사업들의 계약서를 어떻게 만들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참가자들이 의견이 현행 계약법과 상충하는 것일 때 나는 그 의견에 끝까지 귀를 기울였던가 하는 반성과 후회가 남는다. 불과 수년 전만 하여도 공연계약서에는 기관은 제공자로서의 ‘갑’, 예술가는 수혜자로서의 ‘을’로 나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위 ‘불편한 것’들에 대한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경청해야 할 것이다.
본문이미지4
작년 8월, 한 영상에서 어떤 공원에서 진행 중인 예술가의 공연을 공원 관리직원을 자처하는 자가 폭력을 행사해 중단시키는 모습을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예술가가 그 와중에도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공연의 중단을 알리자 관객들은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고, 해당 가해 직원을 나무라는 모습이 충격을 달래주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어찌 보면, 당장 올해의 활동도 걱정일 사람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고 비추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예술을 대하는 관객들의 자세가 2007년과 2020년이 달랐던 것처럼, 더 건강한 거리예술 창작환경과 생태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제공_한국거리예술협회]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최호범

최호범
기획사에서 공연, 축제를 기획하는 일을 배우고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chb@sfac.or.kr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