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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연극 전공자들과의 대담

최준태, 조은희, 양찬미, 박준석, 이해인

장영_진행 및 정리

제197호

2021.03.25

연극in 웹진에서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한 연극계 변화에 반응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현장]코너를 통해 지속적으로 연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기사를 통한 발언이나 투고 요청은 webzine@sfac.or.kr 로 전해주시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연극in 편집부
2021년 2월 졸업자들과의 대담은 코로나19와 함께 대학에서의 마지막 한 해를 보냈던 2020년의 이야기, 그리고 여전한 코로나의 영향 아래 학교 바깥으로 나온 2021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획되었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작업의 기회 자체가 거의 없는,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기 위해 이 대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최준태, 연기예술학과 올해 졸업

나는 2019년에 이미 졸업 공연까지 마쳤기 때문에, 주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학교를 다녔다. 2020년 1월 신촌문화발전소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겼다. 공연을 위해 유럽 여행을 취소한 친구, 일본에서 돌아온 일본인 친구 등이 합류했으나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첫 모임 다음 날 취소 통보를 받게 되었다. 지원 사업도, 대관 사업도 즉시 중단되면서 모든 게 제로로 돌아갔다. 모여 준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했고, 공연에 대한 아쉬움을 여전히 갖고 있다.
2020년 9월에 친구의 제안을 받고, 12월 공연을 목표로 공연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연출 하나에 배우 둘, 그렇게 총 세 명이 자취방에서 연습을 시작하고, 대체 장소로 문래동 철공소에서 공연했다. 협소한 공간에서, 3차 대유행을 맞이해 입장 관객 수를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대사를 했는데 ‘네 침이 튀는 기분이라 불편했다’는 피드백을 받고 심각하게 연기 외의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면서 근본적인 질문부터 하게 됐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공연을 하려고 할까?’ 사실 대담 이틀 전, 서울시극단 오디션에 최종 불합격했다. 최종 면접에서 들어보니 경쟁률이 40:1이라고 했다. 졸업하면서 목표로 삼은 게 서울시극단 입단인데, 사실 그 이유는 배우로서의 행복보다는 안정적인 월급 때문이었던 게 컸다. 다행히 불합격을 받아서 조금 더 폭넓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국가에서 주는 청년수당도 신청했다. 구직을 위한 직업군을 미리 정해야 하는데, 상담사님이 ‘배우만 하시면 자리가 없으니까, 카페도 하나 넣을까요’ 라고 물어보았다. 예술계열 학생들을 위한 취업 프로그램은 없는 것 같고 ‘넌 대학에서 연기했으니까, 이제 알아서 해’ 라는 시선에 따르는 고민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공연을 하려고 하는지’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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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극작과 올해 졸업

현재는 여러 공모전에 장막극을 내고 있다. 대학 1학년 말에 등단하게 되면서, 졸업 작품은 시나리오 장편으로 하게 되었다. 2020년 여름,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줌(zoom)을 플랫폼으로 삼아, 마인크래프트로 공간을 만들어서 캐릭터로 공연을 했다. 작년 여름에는 줌으로 공연하는 팀이 아직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꽤 빠르게 대처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극작가들은 제작 단계 전에 대본이 나와야 하니, 어떻게 보면 0단계에 머물러 있다. 작년에 연출 친구와 단막극을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계속 밀리고 밀렸다. 공연을 한다는 것이 희망 고문처럼 느껴졌고, 미안해하는 연출가 친구 대신 스스로 ‘끝’을 말해야 했던 경험도 했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걸 기회로 바꿀 수는 없나?’ 요즘은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실질적인 고민은 지원사업이다. 학교 공연이든 외부 공연이든 공연을 하기 쉽지 않았던 코로나 시대였는데도, 장막극을 정해진 횟수만큼 올리지 못한 경우 지원사업의 기본 요건 자체를 충족 못 해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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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미, 예술경영학과 올해 졸업

코로나 이전에는 학교의 시설과 장비들을 100% 중 80% 정도 활용했다고 한다면, 시설 사용료와 장비 사용료가 포함된 등록금을 동일하게 냈는데도 작년 코로나 상황에서는 10~20% 정도밖에 사용을 못 한 것 같다. 학교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너무나 보수적으로 대처한 것은 아닐까.
작년에는 기획팀으로서 정말로 모든 게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그러다 보니 너무 미안했다. 기획자는 가장 현실적인 지점들과 관객을 만나는 순간까지를 고민해야 하고, 동시에 플랜 B, C도 갖고 있어야 하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해도, ‘관객은 안전한지?’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믿고, 우리는 얼마나 믿지?’를 끝까지 현실적으로 고민하다 보니 관객을 받지 않는 공연도 생겼다.
계속해서 같이 지원사업을 넣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나는 사실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모두가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박적으로 창작의 결과물을 내야하고, 잠시라도 몸을 쉬면 생존할 수 없게 될 것 같은 강박감을 가졌음을 깨달았다. 공연계는 제도적으로 최소한의 휴식도 보장받을 수 없는 곳 같고, 그러다 보니 사회 자체가 우리를 강박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닐까. 이제는 정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게 아니라 벼랑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공연계의 문제들은 가릴 것 없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다.
작년에는 관객을 만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어, 극장에서 하우스 어셔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셔로 일하면서 관객을 처음 맞이하는 포지션이었는데, 극장 내에서 조율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어셔에게 매번 임기응변식으로 내려오는 지침들에 힘들었었다.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보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관객도, 어셔들도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소통이 어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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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석, 연극학과 올해 졸업

내가 졸업한 학교는 1학기에 졸업 공연을 올린다. 여름에 젊은 연극제가 계획되어 있는데, 주최 측에서 겨울까지 많은 일정 연기를 하다 보니, 학생 측에서 먼저 참여를 포기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심해지니, 다 낭독극으로 전환하라고 학교 측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조명도 쓰지 못하고 연습실 사용 인원과 사용 시간도 제한되다 보니, 무척 힘들게 졸업 공연을 올렸다. 1학년들이 2-4학년들의 공연에 투입이 되어 공연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배우게 되는데, 작년의 신입생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안타까웠다.
연습 도중 스태프든 배우든 한 명이라도 확진자 접촉자가 발생하면 모든 프로덕션이 멈추게 된다. 그렇게 연습 기간이 너무 줄어서, ‘우리 과연 관객과 만날 수는 있을까?’ 걱정했다. 많은 사람의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서, 정말 힘들고 소중하게 공연을 했다. 이렇게 사회 초년생들이, 어떤 작품이든 따지지 않고 다 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올해 2월부터 대구 시립극단에서 일하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연극에 더 도전해봤을 것 같다. 시립극단을 선택한 것은 월급과 안정적인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연일 매진이 되는 국공립 공연들의 사례를 보며, 국공립 극단 타이틀이 그래도 관객을 극장까지 오게 하는 힘이 크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공립 극단에서는 연극을 어떻게 제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제작할 것인지가 너무 궁금했다.
이곳에서도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다. 배우로서는 마스크를 낀다는 것 자체가, 전달 측면에서 너무 답답하다. 연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훈련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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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연출과 올해 졸업

내가 졸업한 학교의 경우 연출과뿐만 아니라 무대미술과, 예술경영과, 연기과 모두가 공연에 참여하는 것이 졸업요건이다. 1학기에 공연들을 낭독으로 전환하라는 공고가 내려왔고, 2학기엔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제안서를 냈는데, 근방의 교회에서 대규모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학교가 폐쇄되다시피 해서 ‘2학기에도 낭독으로 전환되겠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2학기 때는 낭독에 대한 더욱 강한 권고가 내려왔고, 학교에서 내려오는 흐릿한 지침들이 힘들었다. ‘모두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선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라’는 말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매주 회의 상황에서 하나씩 다른 제약이 들어오니, 답답하기도 했다. 배우 간 컨택이 제한된 상황에서 어떻게 극을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학생 연출가이고, 내가 실력이 엄청나지 않은데, 움직임을 거의 쓸 수 없으니, 디렉션도 실제적인 말이 아니라 자꾸 느낌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합평회도 줌으로 진행하면서, ‘정말 모든 게 다 변했구나’ 체감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니, 기준이 없었다. 공연이 다 끝날 때쯤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공연 진행 매뉴얼이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연출이 모든 걸 정하지는 않지만, 프로덕션을 구성한 입장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학교의 모호한 지침 아래 미지의 코로나를 겪으면서, 계속 연출로서 프로덕션에 답변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낭독 공연 전환에 대해, ‘이렇게만 하면 우린 안전한가?’하는 근본적인 의문도 있었다. 안전함을 느끼며 창의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라는 모호한 말에 대한 오기가 생겨서, ‘그 안전함이라는 걸 수치로 표현하겠다!’ (웃음) 하고, 배우 간 거리 1M 이상, 관객과 관객 간 1M 이상, 배우 관객 간 1.5M 이상 띄우기를 철저히 지켜서 공간구성을 완전히 다시 했다. 소통을 위해서는, 계속 팀을 다 불러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이 되는지 의문인 부분도 솔직히 얘기했다. 우리가 결과를 만드는 데 제약이 걸린 상태로 한 학기를 매달리는 건데, 그럼 영상이든 아카이빙이든 각자 하고 싶은 걸 다 하자고 말했다. 우리가 재미라도 얻지 않으면 손해니까,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자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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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을 진행한 극작가 장영은, (안 그래도 확고하지 않았지만) 코로나와 함께 사정없이 흔들렸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직업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말했다. 이후부터 대담 참여자들은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직업적 지속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공유해주었다.

다시, 배우 최준태

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작년부터 연기훈련 아카이빙을 하고 있다. 연습실에 나가서 선생님들한테 배운 것들, 잡지에서 읽은 훈련법들, 유튜브 영상을 따라 연기훈련을 시도해보면서 영상을 찍고 개인 블로그에 기록을 남긴다.

다시, 극작가 조은희

다른 분들처럼, ‘내가 이걸 계속해도 되나?’ 계속 생각했다. 어제도 버스 타고 오면서 ‘이러다 굶어 죽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코로나 이전에도 내가 떼돈 벌겠다고 연극했던 게 아님을 어제 자기 직전에 깨달았다. 해롤드 핀터 전집을 읽다가, 핀터가 전쟁 통에서도 글을 쓴 걸 보고, 핀터처럼 ‘나도 내가 쓰고 싶은 걸 써야겠다’(웃음) 그래도 ‘나라도 연극을 놓지 않고 사랑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기획자 양찬미

다들 그렇듯, 직업적 지속 가능성은 오래전부터의 고민이다. ‘계속해도 되나? 사실 나만 놓으면 끝나는 거 아닌가? 나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사람인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졸업이 동기부여가 됐고, ‘도전은 해보자’ 하고 올해 서울프린지 네트워크에서 일하게 되었다. 8월이면 축제를 하는 곳이고, 신청 자격이나 제한이 없이 자유 참가를 하는 곳이다 보니, ‘예술가들이 조금 더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일하게 된 것도 있다. 이 일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취미로 연극을 보더라도, 소비하는 관객으로서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연 생태계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고,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냥 관객 한 명으로서, 가끔 블로그에 글 쓰는 리뷰어 한 명이 되더라도, 현장에 계속 관심을 갖는 게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배우 박준석

예술가적 정체성이라는 게, 물론 연극으로 돈을 적게나마 벌고는 있지만 계속되는 고민이다. ‘연극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계속할 것 같으면, 정말 많은 예술인들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시시콜콜한 얘기라도 나눌 수 있는, 그런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막 바깥으로 나온 입장에서, ‘관객을 극장까지 오게 하는 힘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를 가장 궁금해하고 있다. 과거의 연극은 분명히 힘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힘을 잃은 것 같아서. 연극의 힘을 어떻게 되찾을지를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연출가 이해인

예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고민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외부의 시선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연한 건 없고, 또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이건 당연해’라는 편견 어린 시선을 깨부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에는, ‘요새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많은데 연극이 왜 있을까’ 또 ‘나는 왜 연극을 하려고 할까?’를 생각해보고 있다. 이제는 연극이 영상화되고, 클로즈업되고, 편집되어 송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친구와 나눈 얘기 중 하나가, 아무리 무대에서 조명이 꺼져 있는 곳이라도 그걸 보는 관객이 있다는 게, 연극이 가진 특수한 요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질에 대한 생각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연극만이 가진 것, 우리만이 가진 것을 해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해치지 않는 것이 맞나?’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연극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놓치는 순간 연극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익숙한 다른 장르에 편입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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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

장영
극단 프로젝트 414 연출부, 독립연극잡지 이화연극의 필진으로 활동했다. 2018년 국립극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 희곡공모에서 『G의 영역』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playplaygho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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