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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와의 조우, 대항으로서의 아카이브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규연

제199호

2021.04.29

지난 주말 (4월 17일-18일) 제13회 광주 비엔날레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미술 관련 업계 종사자도 아닌 데다 그다지 성실한 현대미술 관객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국제 규모의 현대미술 행사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때문이었다. 광주에서 대화를 나눈 현지 시민들은 모두 비엔날레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전시관에는 주말을 맞은 가족 단위의 관객과 어린이 관객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퀴어, 포스트 휴머니즘, 샤머니즘과 토테미즘 등을 소환한 제3세계의 민속예술 등이 전시의 주요 제재였는데, 특히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를 막론하고 광주 지역의 역사성을 소재로 한 기획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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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 <마음산책>

그중 장소의 역사성과의 밀접함이 가장 외적으로 드러난 전시는 단연 구 국군광주병원에서 진행된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메이투데이MaytoDay>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항쟁 시민들이 강제로 연행되어 치료와 고문, 심문을 받던 장소인 구 국군광주병원에서 전시 관람객들은 1980년 5월의 광주와 역사적 트라우마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동시대의 광주를 함께 목격한다.

전시가 진행된 국군광주병원 옛터는 기존의 국군광주병원이 전남 함평으로 이전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시민에게 공개되지 않은 장소로, 건물 내부 곳곳에는 깨진 창문 사이로 파고든 식물과 뜯어진 장판, 노출된 전기선 등 10년 동안 방치된 흔적과 이전에 시설을 사용하던 군인들의 생활감이 그대로 남아있다. 관객들은 복도를 건너거나 복도 안쪽의 작은 방들에 들어가 작품을 관람하게 되는데, 5.18 민주화운동을 상기시키는 설치작품에는 광주의 근대사로부터 비롯된 서사성이, 평면적인 회화작품에는 해석의 다양성과 3차원적인 입체성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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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이처럼 전시 장소의 특수한 역사성을 내세운 만큼 이번 <메이투데이MaytoDay>에서는 구 국군광주병원의 공간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살린 설치 작업이 돋보였다. 가령 문선희는 1980년 당시 유년생이었던, 광주에서의 항쟁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수집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광주 아이들의 목소리로 녹음했다. 그리고 병원 2층으로 향하는 보행로를 데이지꽃으로 가득 채워 길을 조성한 뒤 앞의 사운드와 결합해 과거와 현재를 조우시켰는데, 관객이 2층으로 향하다 다시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전시관 너머의 미래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한국의 트라우마적인 근현대사와 동시대성을 접목한 해외 작가의 전시로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 설치된 시셀 톨라스의 <_EQ_IQ_EQ_>(2019년-현재)가 있다. 천장과 벽면이 유리로 된 글라스폴리곤에 입장하게 되면 관람객은 전시장에 진열되어있는 습하고 비릿한 현무암의 냄새를 맡게 된다. 톨라스는 제주 4.3 사건을 경험한 제주도민 양신하가 70년간 기록한 수기를 바탕으로 사적인 아카이브와 관객의 후각적, 촉각적 경험를 연결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둥글게 깎인 현무암에는 각각 다른 연도와 날짜가 금속 태그로 부착되어있는데, 관람객은 이 돌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양신하가 당시 적었던 일기를 읽게 된다. 양신하의 수기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글쓰기라는 점에서, 공식적인 지위를 점하는 역사쓰기에 대항하는 대안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써 톨라스는 시각과 후각, 촉각을 매개로 관객이 4.3 사건에 관한 사적인 내러티브에 접근하도록 하면서 공식적인 기록 이면의 제주 4.3 사건을 마주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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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셀 톨라스, <_EQ_IQ_EQ_> 테오 에쉐투, <고스트 댄스>
광주비엔날레관에서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진행된 전시 역시 죽음과 애도를 테마로 하는 큐레이팅이 돋보였다. 비엔날레 전시가 진행된 기획전시관에는 국립광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가회민화박물관, 샤머니즘 박물관 등 다양한 국내 박물관들의 민속예술작품과 유골, 그 외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브제들이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과 병치되어있었다. 그 중 테오 에쉐투의 영상작품 <고스트댄스>(2020)는 서구 박물관과 그곳에 아카이브된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문화 간 위계질서를 고발한다. 카세키 유코의 부토와, 전통 및 현대 아프리카의 춤을 혼합한 이디발도 에르네스토의 즉흥무용은 각각 정제된 움직임과 동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전통적인 박물관의 권위에 저항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는 만화경적 이미지와 거울상으로 편집된 비디오 편집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을 부여한다.
그러나 비엔날레관에서 진행된 메인 전시가 무엇을 목표로 하였는지는 의문이 들었다. 공동체 정신과 예술적, 회복적 잠재력을 내세운 주제 아래 기획된 전시는 그다지 전위적이거나 급진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도 못했고,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라고 보기에도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방대한 규모의 작품들을 영리하거나 세밀하게 큐레이팅하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에 비해 소규모 기획의 전시들이 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개별적인 작품들은 흥미롭게 느껴진 반면 이것이 전시를 통해 적극적으로 역사화 될 만큼 치밀한 큐레이팅이 이루어졌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 외 제3세계의 토착문화나 퀴어문화를 소환하는 만큼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본 전시에는 좀 더 섬세한 기획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가부장제와 인류세, 신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여러 담론을 소환해 광주의 지역성과 연계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고 헤게모니에 저항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토착예술, 유물들을 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 방식과 접목시킴으로써 동시대적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의미를 시공간적으로 확장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비록 아쉬운 점들은 있었지만, 시대, 국가와 무관하게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전시와 작품들은 시민적 연대감과 동시에 위로와 치유의 메세지를 전달해주었다.
광주 비엔날레 전시 장소 중 한 곳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옆 5.18 민주광장에는 4.16 세월호 참사와 미얀마 민주 항쟁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고, 비엔날레 전시관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시민들이 나들이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광주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기획으로 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테마를 내세운 만큼, 광주 비엔날레가 더욱 치밀한 큐레이팅을 선보이며 동시대 관객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제공 : 전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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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연

전규연
관객의 정체성을 맴돌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이다. 연극이 불안정한 형식이라 좋다. 공연계 내의 담론 형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연극리뷰 모임을 진행 중이다.
wjsrbdus9455@naver.com
blog.naver.com/goldenvelv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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