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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에 기록한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가 될 것이다

부산문화예술계 미투운동 기록프로젝트 온라인 아카이브 전시

문지현_시각예술가

제200호

2021.05.13

"수어통역 영상보기"
(촬영/편집 : 김지성, 녹음 : 윤비원, 음향 믹싱 : 임나윤)
음성낭독_조현지
음성낭독_박승현
온라인 전시의 첫 화면에 들어가면,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는 기록한다.’ 라는 문장이 보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다. 문장 옆에 마우스 커서가 깜박 거리고 있다. 아직 우리가 기억하는 것도, 기록하는 것도 현재진행 중이라는 말이다. 이를 보는 순간, 미묘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깜박거리는 커서는 경고등처럼 보이기도 했고, 보는 이에게 무언가를 계속 건드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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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는 기록한다.’는 제목의 전시는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에서 주최한, 부산문화예술계 미투운동 기록물을 4월 5일에서 4월30일까지 온라인에서 아카이빙하고 있는 전시이다.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운동은 2016년 10월,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여성 예술인들은 ‘침묵보다 변화’를 외치며, 문화예술계 성폭력에 맞서는 집담회와 캠페인을 직접 기획하며 예술 현장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2018년 봄, 세계적인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부산, 경남 지역의 연극계, 영화계, 예술대학, 예술 공공기관 등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또한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본 아카이브 전시는 말하고, 행동하고, 변화를 만들어 낸 예술인들의 운동이, 개인의 서사를 넘어 지역사회가 함께 기억해야 할 공공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을 담아 기획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진, 인터뷰 영상 등 아카이브 자료와 마지막 섹션에서 관람객이 직접 약속문을 적어 게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섹션인 <#1_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2016년 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서 2018년 문화예술계 미투운동까지, 문화예술계 성폭력에 맞서 말하고 행동하며 변화를 만들어낸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미투 이후 우리는#1>, <문화예술계 미투 이후 우리는#2> 이라는 타이틀 아래 미투 운동을 이끈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송원씨는 “지역을 넘어서 여기에 여성예술인이 살고 있다는 의미도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또한, 익명성이 보장 되지 않는 지역, 피해자의 입을 다물게 하는 특수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용기에 기대어 이를 희생시켜 거대한 힘에 맞서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그는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말하는 것과 그것이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대해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가해자는 돌아왔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는 새로운 과제를 직면하고 있다. 개인에게는 미투가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 하나씩 다시 이야기해보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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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섹션인 <#2 문화예술계 성폭력 OUT!>에서는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에 맞선 예술인들의 행동이 사진으로 남겨져 있다. 2017년 5월, 문화다양성 축제에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OUT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8월 락페스티벌 내 반성폭력을 주장하는 ‘락 페미’ 캠페인을 개최하였다. 2018년 10월, 부산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 지원 및 대응센터 상시 운영을 촉구하는 활동에서 2019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한 부산 페미축제 행진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여러 활동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활동을 살펴 볼 수 있었는데, 세 번째 섹션과 함께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 섹션인 <#3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운동 연대기>에는 2016년에서 2020년까지 연대해 왔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2016년부터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성폭력 발화문서를 아카이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성폭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집담회 <#우리는_연결될수록_강하다>를 개최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2017년에는 부산성폭력상담소와 협력하여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신고창구> 개설 및 지원 안내를 하였고, 2018년에는 부산 문화예술계에서도 미투 운동이 확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일어났다. 3월에 부산문화예술계 미투에 대응하는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가 결성되어 성폭력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 제안서를 부산시 문화예술과에 제출했다. 2019년에는 예술 공공기단 대표이사 선임재고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고, 4월부터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지원 센터 <부산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예방센터>를 운영하게 되었다. 2020년에는 부산시가 부산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예방센터를 중단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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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섹션 <#4 변화를 위한 약속문>에서는 관람객 스스로가 안전하고 성평등한 예술환경을 위한 약속문을 적어 게시판에 아카이브 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우리의 약속이 변화를 만듭니다.’라는 문장이 화면에 띄워져 있었는데, 사람들의 목소리, 여성들의 ‘문장’들이 아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었다. 우리 사회는 예민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외려 그에 대한 불편함을 강조한다. 허나 여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목소리들이 갖는 뾰족함, 예리함이야말로 모두의 존엄성을 제대로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번 아카이브 전시는 온라인 환경이라는 특성상, 관람하는데 다소 불편한 점이 있었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연대기가 잘 스크롤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한 번에 둘러보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다. 2016년에서 2020년의 연대기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펼쳐져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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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한다는 것을 넘어서 목소리를 더욱 더 크게 낼 것이다. 그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목소리로 우리는 역사를 새로이 만들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여성들이 더더욱 해야만 하는 일이다. 화면을 채운 큰 따옴표 안의 말을 인용해본다.

이제부터 우리의 서사를 우리가 직접 쓸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이 우리의 서사를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 이성미 시인

그간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침묵하기를 강요 받아왔다. 목소리가 담장을 넘는 것을,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아온 사회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힘을 스스로가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소리는 힘이 될 것이다. 침묵한다는 것은, 나의 말할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여성들은 이제 말하기를 선택 할 것이고, 선택한 것이다. 말하기를 선택함으로써 힘을 가질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역사가 될 것이다.

*온라인 아카이브 전시 바로가기 >>> http://wrwr-project.com

[사진 : 아카이브 전시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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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현

문지현
그림을 그립니다. 계속해서 멋대로 살 수 있기를 원하고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munjihyeonxx@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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