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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이것을 합니까

‘궁리소 뛰다’의 [즉흥 수행법] 워크숍

배소현

제205호

2021.07.29

1.

지난 4월부터 강원도 화천 예술텃밭1) 에 모이는 예술가들이 있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후 1시가 되면 이 땅에서 가장 북쪽에 속하는 마을에 예술가들의 몸이 하나둘 도착한다. 출발지는 각기 다른 방식의 작업과 고민들, 연속되는 매일의 삶이다. 시대적 참여 요건으로 매번 모두 선제적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 음성 판정 문자 메시지를 여권 삼아 몸들이 도착한 곳의 이름은 ‘즉흥 수행법’ 워크숍이다. 도착한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퍼포먼스로 자신을 소개하고, 나흘간 매일 밤 즉흥 잼과 게릴라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2.

그래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즉흥卽興, improvisation의 사전적 유의어는 ‘즉각, 충동, 본능, 돌발, 감정’이다. 반의어는 ‘계획, 의도, 고의’다. ‘수행’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 수행遂行, performance의 유의어는 ‘실천, 실행, 이행’이다. 두 번째 수행修行, practice의 유의어는 ‘수련, 단련, 훈련, 연습, 수양’이다. 워크숍은 본래 ‘일터’ 혹은 ‘작업장’을 뜻한다고 한다.

3.

그런데 이 워크숍은 어쩐지 자신의 작업장을 떠나오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닫힌 괄호의 결과물을 생산하고자 하지 않으며, 즉각 생성되는 찰나들을 경험하고 인지하는 것으로 충분한 자리다. 그러므로 창발의 순간을 경험하기. 생성의 문법에 몸을 두기. 생성은 끝이 아닌 중간에 있다. 과정의 연속인 이 워크숍의 형식은 고정된 작업장이라기보다는 여정에 가깝겠다. 그러므로 마침표를 유예하기. ‘그리고’로 이어지기. 물음표의 길을 걸으며 생성의 지도를 그려가기.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의 언어를 발견하기. 언제든 허물기. 탈주하기.

4.

즉흥수행법의 첫 여정은 황혜란2)이 진행했다. 루스 자포라Ruth Zaporah의 ‘액션시어터Action Theatre’ 워크숍에서 진행되는 액서사이즈들을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톺아보았다. 여정의 안내자 혜란은 ‘경험하라’는 주문을 자주 했다. ‘공간을 경험하세요.’ ‘상대방을 경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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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란
잠들어있던 인지의 촉수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몸들은 낯설어진 공기 속에서 근본적인 질문들에 맞닥뜨려진다. 경험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볼 때, 정말로 보고 있는가. 정말로 듣고 있는가. 행위의 수행자로서 우리는 정말로 그것들을 하고 있는가. 무대 위의 몸들은 무엇이든 수행하기 위한 상태가 되곤 한다. 준비된 몸이 추구되며, 잘 반응하기 위한 ‘보기’와 ‘듣기’가 수행된다. 무언가 행하기 위해 목적된 몸과, 그 순간 존재하는 모든 것에 다만 놓인 몸이 현존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몸의 동사는 ‘하다’인가, ‘되다’인가. 몸들이 공간에 놓여있다. 바닥을 딛는 발바닥의 감각이 문득 생경하다. 무대란 무엇이며 무대를 만드는 몸이란 어떤 것 이길래, 공연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우리의 말과 행위를 공연으로 만들길래, 무대를 사는 몸들은 처음 땅을 딛는 사람들처럼 최초의 감각으로 세상을 다시 배우는가.
액션시어터 워크숍 이후 참여자들은 인비테이션invitation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충동과 반응하기를 초대받기와 초대되기로 수행해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행위를 주체적 ‘행하기’로부터 해방시켜 본다. 각자의 몸에 ‘오는 것’과 ‘도착하는 것’을 ‘받기’와 그리하여 ‘되어짐’의 흐름에 놓는다. 몸에 도착하는 초대장들을 알아보고 되어짐에 몸을 맡겨 응함으로써 충동을 행위로 현재화하고, 그로 인해 생성되는 다음의 연속들을 몸으로 경험해 본다. 경험하기를 경험하기. 루스 자포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을 바깥으로 뒤집어 놓듯’ 개인의 영역에서 생성되는 내적 역동과 풍경들을 액션, 행위로 드러내며 경험하는 가운데 피부를 테두리 삼아 구획되어진 몸과 세계 사이의 연결이 회복되는 순간을 만난다. 그러다 문득 동료들이 빚어내는 놀라운 즉흥의 순간들을 목격한다. 의도치 않게 행위 된 것들 사이 불현듯 찾아오는 지극한 아름다움과 재미 앞에서, 그것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궁리해본다. 무엇이, 왜 아름다우며 무엇이, 왜 재미있는가. 즉흥과 현존은 그것들과 어떻게 닿아있는가. 고정될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인 공연의 재미와 아름다움은 현장을 공동구성 중인 관객의 존재와 어떻게 상호작용 되는가. 질문들이 싹튼 몸들은 잠시 헤어져 각자의 삶과 작업으로 돌아갔다.

5.

5월에 다시 모인 몸들은 새로운 안내자 바리나모3)와 나흘간 접촉즉흥을 했다. 몸들은 이제 피부를 접촉면 삼아 물속을 유영하듯 흐르기 시작했다. 피부는 몸의 가장 바깥 면인 동시에 외부와 닿는 가장 가까운 장소이자 경계면이다. 접촉즉흥은 피부와 세계의 닿음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피부로 감싸진 몸은 언제나 공기와 닿아있다. 인식하지 못할 뿐, 삶이라는 연속된 즉흥 속에서 몸들은 언제나 숨 쉬듯 접촉즉흥 중이다. 그런 몸들이 이제 닿음을 감각과 행위의 중심에 두고 접촉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타자, 주체와 객체, 외부와 내부를 나누는 경계면들로 분할 구성되어있던 세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피부는 깊어져 내부가 되고, 여럿은 하나가 되며, 닿지 않아도 연결된다. 닫혀있던 문법들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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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나모
이 해체와 재구성 속에서 안내자 바리나모는 ‘노네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의도적으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다. 이름은 대개 모호하고 울퉁불퉁한 것들을 명확하고 매끈하게 규정한다. 안정감과 편안함 만큼 한정 지어진다. 어떤 대상을 언제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보고 듣고 느끼고, 만날 수 있을까. 관습에서 벗어나 매 순간을 새로운 경험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이름 지어지기 이전, 규정되어지기 이전, 습관화되기 이전의 불안하고 무한하며 생생한 가능성의 세계를 회복하는 길과 무대라 이름 지어진 시공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무대를 무대라 부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 속성이 무대를 일상과 경계 지으며, 어떤 속성이 무대와 일상 사이 경계를 허무는가. 또한 퍼포머의 몸은 일상과 무대를 어떻게 구분하며, 어떻게 달라지는가. 스마트폰 액정과 화면이 피부가 되었다. 바이러스로 물리적 접촉이 금기시되어간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몸으로서 그럼에도 피부를 맞대는 일, 극장에 모여 시공간을 공동 점유하는 일, 발생되는 현재를 공동 경험하는 일은 생명체로서의 인간과 삶의 어떤 속성과 맞닿아있는가.
몸들은 화천의 습기 속에서 사라진 기관들- 꼬리뼈를 기억하며 접촉하고 움직였다. 다른 몸에게 자신의 몸을 온전히 맡겨보았고, 맡겨진 몸들의 물성과 무게를 감당했다. 어떤 몸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보다 커다란 몸을 가볍게 둘러멨고, 어떤 몸은 처음으로 높게 들어 올려졌다. 이러한 경험은 어째서 우리를 눈물겹고 충만하게 만드는가.

6.

여름이 왔다. 신록이 제법 짙어진 6월의 즉흥 수행법 여정은 세 번째 안내자 김신록4)과 함께했다. 신록의 안내로 몸들은 ‘뷰포인트View Point’라는 훈련 방식이자 인식틀을 통해 몸이 놓인 환경과 환경의 일부로서의 몸을 요소별로 짚어가며 무대와 즉흥의 속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즉흥이란 즉각적으로 발생되는 무언가다. 이 발생은 반드시 ‘무언가에 의해서’ 일어난다. 몸들은 언제나 이 ‘의해서’의 작용으로 행위하게 되며, 행위의 값은 외부의 자극과 개인이 만나 일어나는 고유한 함수작용의 결과다. 삶에서든 무대에서든 하나의 공식으로 설명되는 일은 거의 없다. 겹겹의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작용들을 그럼에도 최대한 잘게 쪼개어보고, 그것들의 복합적인 작용을 면밀하게 인지해보는 것은 느낌의 세계에 언어의 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 모호하게 덩어리진 세계를 구성하는 면들과 그것을 구성하는 무수한 선들 그리고 점들을 인식하며 활용할 수 있는 눈과 선택지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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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안내자 신록은 몸과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며 상호작용 되고 있는지 감각하되, 그것을 최대한 지각적으로 경험해보기를 주문했다. 나와 나의 외부로서의 내가 공존할 수 있을까. 즉흥 세션이 끝나면 방금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예리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몸들은 자신이 언제 무엇에 의해 무엇을 수행했는지 기억하고 그것을 최대한 정확히 재현해내기 위해 애썼다. 공연 연습은 대개 두 가지 단계를 밟는다. 장면과 행위를 구성하기, 구성되어 연습으로 익숙해진 그것을 언제나 그 순간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행위 하기. 즉흥이 반복 재현될 수 있을까. 즉흥적 행위가 재현의 스코어가 된 뒤에도 즉흥적으로 발생되기 위해 배우의 몸은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즉흥 수행법의 첫 안내자 혜란이 주문했던 ‘경험하기’와 닿아있다. 경험은 최초성을 속성으로 지닌다.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이 겪어 발견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은 재경험 된다. 동일해 보이는 것들에 존재하는 무수한 차이를 인지할 때 모든 순간이 새롭다. 그럴 때 순간은 경험이 된다.
신록은 완성되지 않은 몸unfinished body,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 등 다양한 인식과 훈련 개념들을 소개했다. 몸들은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은 애매한 지점들에 머무르며 그 상태들을 연결했고, 비어있거나 인식되지 않던 공간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개념들을 인식하고 행위로 수행하며, 몸들은 익숙함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도달해버리고 말던 쉽고 안정된 선택들로부터 조용히 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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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수행법 워크숍 현장

7.

그래서, 왜 이것을 하는가. 매일의 삶이 이미 즉흥의 연속인데, 왜 굳이 일상을 잠시 제쳐두고 모여 즉흥을 수행遂行하고 수행修行하며 궁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며 계속 달라져 갈 것이다. 나에게 무엇을 위해 훈련을 하느냐는 질문은 무엇을 위해 연극을 하느냐는 질문과 같다. 연극은 하는 입장에서도 보는 입장에서도 삶의 연습이자 기록이며 사랑이고 저항이다. 극장과 무대는 연습실이자 현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소꿉놀이 등 온갖 상황극과 역할놀이를 하며, 남몰래 독백하듯 혼잣말을 하며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를 연습하고 준비해왔다. 삶에서 마주할 즉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놀이를 잃어버린 뒤 몸은 극장을 찾았다. 객석에서 타자의 얼굴과 몸을 몸으로서 바라보고, 연습실과 무대에서 몸으로서 자신을 마주하고, 타자가 사는 시간에 닿고자 시도하며 때론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인정하는 과정은 자신을 외부화 시키는 동시에 삶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던 일들을 겸허하게 삶의 내부로 가져온다. 각자 자기 삶의 당사자로서, 당사자가 아닌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몸으로서 경험하는 수행 가운데 우리는 점차 서로의 연대자가 되어갈 수 있다. 그중에서도 즉흥 수행은 매 순간과 나를 연결하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서로를 비로소 만나게 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이자 연결된 존재로서의 몸을 잠시일지라도 회복시킨다. 삶도 무대도 아무리 계획하고 준비하더라도 결국 매 순간 즉흥이며, 촘촘한 상호작용이다. 온전히 나만의 것이란 없다. 그러므로 함께 겪어나가다 보면 보이지 않던 다음이 어느새 현재가 되어 우리를 스쳐 지나가리라는 것을 즉흥을 통해 배운다. 즉흥 수행이란 그러므로 원인인 동시에 결과인 매 순간의 되어짐에 몸을 놓아두고,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며 감당하는 실천이자 연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궁리소 뛰다에서 진행되는 즉흥 수행법의 첫 번째 여정은 일단 가을까지 이어진다. 8월에는 홍정아 안내자의 진행으로 소매틱 무브먼트 리츄얼을 기반으로 하는 즉흥 방법론을 탐구하고, 9월에는 배요섭 안내자가 그간의 여정을 반추하며 뛰다의 움직임 명상을 기반으로 통합적인 즉흥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 모든 시간 이후의 몸을 기다리며, 마지막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겠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것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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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수행법 워크숍 단체사진

[사진촬영_최용석]

  1. 화천 예술텃밭은 자연과 일상, 창작 활동의 순환 속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레지던시 공간이자 극장이다. 궁리소 뛰다가 운영하고 있다.
  2. 황혜란은 ‘궁리소 뛰다’의 궁리원이자 배우다. 궁리소의 전신인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창단멤버로 활동해왔으며, 에스토니아 노타페NOTAFE 페스티벌에서 루스 자포라가 직접 진행하는 액션시어터 워크숍에 참여하며 훈련했다.
  3. 바리나모는 김바리와 주나모가 공동작업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창작하는 무용가 듀오다. 몸/움직임 연구와 춤, 공연 및 라이브 전시, 즉흥작업, 영상작업과 워크숍 등 장르와 삶/예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4. 김신록은 배우이자 창작자이며 워크숍 리더다. 뉴욕 시티 컨서바터리 과정에서 뷰포인트, 스즈키 메소드, 컴포지션 등을 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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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현

배소현
배우, 창작자. 글을 쓰고 무대에 섭니다. 청소년극 ‘고등어’를 썼고, 연극 ‘휴먼푸가’, ‘보더라인’ 등에 출연했습니다. 궁리소 뛰다의 ‘즉흥수행법’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soaringhor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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