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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이 늘어나는 것

제4회 페미니즘 연극제 : 페미니즘 포럼_확장하는 페미니즘과 기후위기

박하늘

제205호

2021.07.29

작품 활동을 하면서 소비하는 것들이 마음에 걸릴 때가 있다. 함께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종이를 출력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료를 단체 주문하며, 잡식으로 식사 메뉴를 선택한다. 예술가의 삶과 태도가 작업과 하나로 묶여 나아갈 수 있다면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공동체의 정치를 꿈꾼다면 어떤 동료와 발맞출 수 있을까? 재난의 고리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공연 취소 소식이 잇따른다. 공연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나가야 할까. 자연과 생명체에 대한 반성 없이는 창작 활동도 일상도 이전으로 회복될 수 없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갑자기 몰려온 바이러스들이 아닌, 천천히 미필적 고의로 우리가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비건도 페미니스트도 환경운동가라고도 선언하지 못하며, 앞서가는 이들 쪽을 향해 걷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다만 천천히 공동의 작업 방식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이유를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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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포럼 화면 캡쳐 이미지
지난 13일 온라인 줌으로 진행된 ‘제4회 페미니즘 연극제 포럼’ <확장하는 페미니즘과 기후위기>에 참석했다. 발제자로 ‘바람컴퍼니’의 한윤미 연출가, <무제의 길>의 김보람 연출가가 참여했다. 이혜원 사회자가 “쓰러져가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먼저 한윤미 연출이 지난 공연<고기, 돼지>를 소개하며 돼지의 생산과 소비, 살처분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가? 왜 어떤 동물은 식용이고, 어떤 동물은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가? 돼지는 스툴에서 살아가고 호르몬을 맞으며 3~4년간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7~10번 정도 반복하다가 죽게 된다. 이렇듯 재생산을 통제하는 방식은 가부장제, 여성을 도구화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공연은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 모두가 행복한 식사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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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돼지> 공연사진
ⓒ서울거리예술축제

한윤미 연출은 비인간 중심적 사고를 통해 각종 환경문제와 전염병, 의식주에 걸쳐 동물의 착취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공연에서 그치지 않고 삶으로 연결된다. ‘동물’이나 ‘동물에게 얻은 물질’ 소비하지 않기, 동물을 전시하는 서비스 반대하기, 무언가를 저평가할 때 동물 비유하지 않기를 실천한다. 작업에 쓰이는 재료뿐만 아니라 전기 사용, 쓰레기 배출 최소화 등 지구환경에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 공연 <고기, 돼지>는 현재 생추어리와 어질리티가 추가되며, 비닐 소재의 대체재 찾기 등 긴 호흡으로 고민을 진행 중이다. 완벽하지 않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모두가 천천히 비건을 실천했으면 하는 게 한윤미 연출의 바람이다.

이혜원(모더레이터)도 비거니즘이 마치 완벽을 강요당하는 페미니즘처럼 느껴지지만, 각자가 가능한 만큼 시도해볼 것을 제안했다. 우리 식탁에 놓이는 것들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보는 거다. 구제역과 아프리카돼지열병 같은 동물의 질병도, 동물들에게도 거리 두기가 있다면, 자유가 있다면, 다른 환경이 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김보람 연출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대부분 숲이었다는 것을 환기했다.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와 같은 작업을 해야 하나 고민했고, 두려움, 죄책감, 막중한 책임감 속에 예술가로서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그렇게 작년 말에 <움직이는 숲>이라는 보드게임 형식의 작품을 창작했다. 작품은 기후위기로 미래를 위협받는 나무들을 이동시키는 게 가능한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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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숲> (사진제공_김보람)

김보람 연출에 따르면,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난 100년 사이 약 1도 상승했다. 우리 주변 식물 중 25%가 사라지고 있다. 씨앗은 광합성을 통해 나무가 되고, 나무는 해에서 흡수한 영양소로 산소를 배출한다. 인간은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나무를 잘라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고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움직이는 숲>은 이러한 인간들의 개발에 맞서 원시림을 살리기 위한 시도를 한다. 나무를 생추어리로 옮기는 게 가능할까? 김보람 연출은 예술가로서 연구자나 토목 관리자를 응원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싶었고, 우리가 기후위기에 맞서 할 일이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관람한 사회자 이혜원은 각자의 성공을 위해 경쟁하는 게임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선택하고 책임져 나가야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움직이는 숲>은 10월 아르코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며, ‘보드게임’으로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혜원에게 페미니즘을 처음 만난 순간과 기후위기를 처음 인지한 순간은 많이 닮아있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많은 사람의 생이 들어있어 조심스럽고, 이거 하나만 잘하기도 쉽지 않은데 다 완벽해야 할 것 같은 부담과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페미니스트가 너무 당연해서 없어져야 하는데, 페미니즘 연극제가 4회까지 이어오는 것에, 얼마간 투쟁의 의지를 다지는 듯했다. 기후 우울, 생태 우울, 코로나 우울. 우울할 게 너무 많은 시대다. 우리를 둘러싼 지구가 너무 거대한 규모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니 ‘장마라고 했는데 비가 안 오네’라고 안도할 게 아니라, 기후위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것들로 인한 책임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예술가인 나는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자는 얘기다. ‘확장하는 페미니즘과 기후위기’, 서로 다른 고민 같지만 두 가지 고민이 함께 만나면서, 더 큰 힘을 얻으며 동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속 가능한 활동이 역시나 숙제일 것이다. 김보람 연출은 자신이 뭘 해도 쓰레기를 배출하겠지만, 의미 있게 탄소를 배출하고 의미 있게 뭔가를 소비하려 노력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나무의 쪼가리, 부속물, 부스러기들을 압축시켜서 작업에 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이렇게 작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분명히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담론을 나누고 움직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한윤미 연출 역시 공연을 유의미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인간 동물이 모여서 비인간 동물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게 그들(비인간 동물)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한다. 또 거리에서 주로 작업하는데, 전기 대신 자연광을 쓰고 싶어서 밝은 시간대에만 하는 등, 가능하면 최대한 뭔가 안 하는 걸 찾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죄책감이나 우울감을 갖기보다는 뭔가 발생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작업도 계속할 수 있고 우리도 살 수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있지만, 구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기에 마음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해 같이 계속 고민하고, 현장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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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포럼 화면 캡쳐 이미지
포럼을 듣고 예술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혜원의 말처럼 인간과 비인간, 종을 넘어서 돌봄과 연대가 정말 필요한 시대다. 그동안 페미니즘과 기후위기, 비건에 관한 글과 영상을 조금씩 접해왔다. 혼자서 완성형의 것들을 빠르게 접하는 것도 좋았지만, 이번 포럼에서 온라인으로나마 현재진행형으로 속도를 맞춰 소통해서 좋았다. 발화자의 목소리에 수어 통역과 속기 자막이 함께 호흡하며 만든 공동의 감각도 편안했다. 발제를 공유 받는 입장에 가까웠지만, 고민을 이어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한윤미 연출의 말처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동료들이 있어 기쁘고, 페미니즘 연극제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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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

박하늘
연극과 다원예술 분야에서 배우, 창작, 음성해설 등을 협업하고 있습니다.
@skypark_han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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