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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을 팝니다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

강한나

제223호

2022.10.13

연극in에 기사를 쓴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 기사는 유난히 시작부터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진행 중인 작업을 소개하는 기사 자체가 처음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본업은 본투비 극작가이고 싶지만, 어째선지 늘 딴짓을 더 많이 하며 살아온 나에게 2022년은 기획자로서 열일하게 만들어준 해였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은 아마도 대다수 독자님들이 처음 들어보실 것 같다. 관심 어린 눈으로 기사를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현재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매체는 희곡마켓 SNS 계정(페이스북 페이지,인스타그램), 그리고 ‘언티티디’라고 하는 랜딩페이지 빌더 서비스를 이용해 개설한 (희곡마켓 웹페이지)다. 페이지 소개에 “이 페이지는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의 파일럿 버전입니다.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은 극작가 강한나가 기획 중인 프로젝트이자 조만간(언젠간) 창립/출시 예정인 서비스로서 희곡 및 부가 콘텐츠들을 판매/공유/열람하는 웹플랫폼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사실 지금의 형태는 처음 이 프로젝트 기획을 시작했던 2021년 초에 상상하고 그려본 플랫폼의 모습이, 초보 기획자인 나의 능력 밖의 것이라는 현타를 세게 맞고 나온 대안과 실험의 형태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딱 그 만큼부터 실행에 옮겨온 덕분에 지금의 여정까지 지속해올 수 있었다.
희곡마켓의 핵심은 온라인 환경을 이용해 희곡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용 중인 언티티디라는 서비스는 디지털 파일을 구매/결제/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그 과정에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희곡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판타지는 사실 상징적인 의미에 가깝다. 소속이 없이 혼자 작업하는, 게다가 연출을 겸하지 않는 작가로서 희곡 기반의 작업을 일궈나갈 수 있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 나가고, 그것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해줄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솔루션, 혹은 힌트나 영감들을 온라인 환경 안에서 찾아보려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상을 하는 극작가들이 어딘가 존재할 거라 생각했고, 따로 또 같이 유연하게 모이고 흩어지며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활동 거점으로 만들어보고자, ‘희곡을 대신 판매해드린다’는 슬로건으로 오픈 채널을 열면서 본격적인 기획을 시작했다. 또 극작가 개인으로서는, 이런저런 사정들로 발표되지 못했지만 애정하는 작품 「셰어하우스」를 테스트 판매하기 시작했다. 2021년 7월 말을 시작으로 이런 초기 활동들이 이루어졌다.

창작희곡 「셰어하우스」 온라인독회 워크숍의 자료다. 워크숍은 2021년 10월 31일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화상 프로그램 ZOOM을 통해 진행되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쓰여 있다. “나는 누구와 무엇과 동거하고 싶은가? 나의 가상 혹은 희망 하우스메이트들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어떻게 공간을 구획하고 나누며 공생할까? 1인가구로 살고 싶다면 비인간 존재들(반려동물, 반려식물, 물건들, 가구들 등등)과 공간 안에서 어떻게 관계 맺고 살고 싶은가?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셰어하우스 수칙이 나올 수 있을까?”
<셰어하우스> 온라인 독회 워크숍 자료 (사진 제공: 필자)

희곡 자체를 판매하는 것 외에도, 희곡작품들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방식의 부가 프로그램들을 통해 플랫폼 공간이 재생산되고 확장하게끔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축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플랫폼인데다가, 나의 경우 극작가로서의 인지도까지 낮은 편인 탓에, 희곡을 판매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바로 판매가 활발히 이루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희곡마켓의 부가적인 콘텐츠, 프로그램, 활동들은 잠재적 희곡구매자들을 불러 모으는 일종의 판촉행위? 마케팅? 브랜딩? 그 비슷한 것이다. 2021년 가을엔 그러한 부가 프로그램으로 ‘창작희곡 「셰어하우스」 온라인독회 워크숍’과 「셰어하우스」 스핀오프 시리즈 「마리의 붉은토끼하우스 적응기」 연재를 진행했다.
플랫폼이라고 이름 붙이기 무색하게 덩그러니 혼자 놀기 하며 작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놀랍게도 오픈 채널을 통해 자신이 쓴 희곡작품들을 투고하는 작가들이 실제로 존재했다. 2021년 10월부터 연말까지 심혜림 작가의 창작희곡 「축제」, 「좋아하니까」, 「장마전선」, 한수현 작가의 「죽음은 비누라」를 희곡마켓 웹페이지에 업로드해 ‘대신 판매’를 진행했다. 이렇게 작년에 희곡마켓에 모인 작가들과 작품으로부터 올해 2022년 기획프로그램들이 나올 수 있었다.
2022 기획프로그램 첫 번째 <마켓 한켠 살롱>은, 희곡마켓에 모이게 된 세 명의 작가 강한나, 심혜림, 한수현이 각자 주로 영감을 얻게 되는 삶의 영역이나 분야, 소재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공유하고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 시리즈로, 희곡마켓 유튜브 채널에 7월 13일부터 27일까지 주간으로 총 3회차 영상이 발행되었다. 희곡의 바탕에는 작가의 삶이라는 배경과 맥락이 있다. SNS 시대에 극작가들의 일상이 쉬이 엿보일 수 있는 환경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영상을 매체로 작가가 드러날 때 좀 더 극작가의 삶이 집중조명되는 감각이 있었다.

분홍색 격자무늬 보가 깔린 테이블 위에 분홍색 토끼인형과 분홍색 옷을 입은 곰 인형이 놓여 있다. 그 앞쪽에 종이 악보를 이용하는 수동 원목 오르골이 있고, 오르골의 손잡이를 돌리는 손이 보인다. 오르골의 왼쪽에는 『조르주 바타유-불가능』이라는 제목의 책이 놓여 있다. 뒷벽에는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여성의 일러스트를 보라색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마켓 한켠 살롱>의 한 장면 (사진 제공: 필자)

2022 기획프로그램 두 번째 ‘창작희곡 <좋아하니까> 스핀오프’는, 작년에 플랫폼에 발표된 창작희곡콘텐츠 「좋아하니까」(심혜림 作)의 주제를 독자들의 언어로 모아보는 번외희곡 콘텐츠로서, 현재 독자 참여형 창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심혜림 작가의 「좋아하니까」는 “좋아하니까”라는 말을 방패 삼아 가려지는 폭력의 여러 모습들을, 4개의 장에 걸쳐(프롤로그 포함 5개) 각기 다른 옴니버스 이야기로 보여주는 희곡이다. 「좋아하니까」라는 희곡이 희곡마켓에 투고됐을 때 기획자로서 생각했다. 이 희곡을 읽는 독자들도 이 작품의 이야기를 각자의 삶에서 가지고 있을 거라고. 더 펼쳐지지 않은 새로운 장의 에피소드들을 독자들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살아오면서 겪은, 좋아한다는 말로 포장된 폭력들. 그 말에 묻혀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상처들. 좋아한다는 말이면 다 괜찮은 줄로만 알았던, 상대방의 입장은 돌아보지 못했던 후회와 반성들. 그 경험담들을 지난 8월에 공개모집 하여 제보받았다. 그중 5개의 사연을 희곡으로 재구성했고, 이 기사가 발행될 즈음이면 희곡마켓 웹페이지에서 ‘「좋아하니까」 스핀오프’ 콘텐츠도 발행을 마쳤을 것이다.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하니 오셔서 부담 없이 읽어보시면 좋겠다.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 2022 기획프로그램 두 번째 창작희곡 <좋아하니까> 스핀오프 독자참여형 창작 프로젝트에 함께해주실 독자님들을 모십니다!
창작희곡 「좋아하니까」 스핀오프 온라인 홍보물

위의 두 가지 프로그램들은, 향유자 참여와 극작가-향유자 간 연결감, 라포 형성에 중점을 둔 콘텐츠들을 통해 희곡 독자층 커뮤니티 형성으로 확장될 수 있는 마중물이 되는 것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관객 커뮤니티 못잖게 희곡 독자 커뮤니티도 형성되어, 희곡마켓 외에도 여러 희곡 기반 프로젝트들이 활기를 띠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극작가들의 활동 거점들이 점조직처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재미나고 멋진 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벌어지면 좋겠다. 공공지원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하고 싶은 작업을 자유로이 펼치는 낙관적인 상상을 나는 여전히 버리지 못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작년 올해 이 프로젝트가 여기까지 굴러올 수 있었던 건 공공지원금 덕도 크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올 한 해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고, 어쩌면 손을 놔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 프로젝트 안에서 이루어지고 창조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중심이 ‘희곡’이라는 점에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생각보다 희곡이 가진 힘은 크고, 희곡이 동력이 되어 누군가는 상상하고, 움직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이 희곡을 즐기고 향유하는 다양한 층위의 경험들이 가능한 플랫폼으로서 자리하기를 바라며, 기획자로서 한동안 달려오느라 태웠던 의지와 에너지 게이지를 재충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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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나

강한나
희곡 쓰는 극작가지만, 올해 기획 일에 집중한 탓에 희곡 쓰기도 분발해야 할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본인 pick 대표작은 희곡마켓에 발표한 창작희곡 「셰어하우스」, 그리고 웹진 연극in [희곡] 코너 ‘다른 손(hands/guests)의 희곡 쓰기’ 「극장no.005068jnj5b6」
www.facebook.com/Psyche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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