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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에 맞서며 우리의 권리를 쟁취해가다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을 앞둔 광주의 이야기

장도국

제228호

2022.12.22

광주 예술계 문제 해결 과정에 함께해 주시는 소중한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은 흔들리는 창을 통해 보고/ 보이지 않던 빛은 어두워진 밤과 함께 만나낼 수 있다. 깜빡거리며 신호를 보내는 아프고 괴로운 빛들 곁으로 가서 어둠이 되자/ 어떤 것도 파괴하지 않고 빛을 밝혀주는 어둠이 되자/ 밝아올 아침이 되면 쉴 수 있겠지/ 어둠이 되자”

“한 방울의 빗방울이 대지를 적시지 않고서 어찌 저 나무의 푸르름과 꽃의 향기가 있으랴/ 한 방울의 빗방울이 대지에 닿으면 그 방울은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내가 되고 너와 우리가 되고 닿는 자리에 있을 그 무엇이 된다/ 나는 무엇이 될까 걱정이 되어 가끔 눈물이 날 것만 같을 때/ 나는 빗방울을 생각하기로 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예술인도 노동자다 21대 국회는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하라”라는 붉은 피켓을 든 한 남성이 서있다. 남성은 짧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과 마스크를 끼고, 진한 파란색의 후드티 속에 연한 파란색의 셔츠를 입었다. 남성의 뒤로는 야광 잠바를 입은 대여섯 명의 의경들이 보인다.

한 사람의 예술인을 지켜내는 일에 소중한 동료들의 시간과 마음이 쓰이고 있습니다. 더 나은 오늘의 상황을 만들 수 있었던 모든 일의 시작에는 예술계 동료들의 연대와 응원, 함께한 실천이 있었습니다.

부재한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할 만큼 책임지는 이 하나 없는 문화와 예술, 인권과 평화의 도시 광주에서 문제를 알리는 일은 배우의 일상과 장도국 개인의 일상 전부를 걸어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작품도 하지 못한 채 올해가 끝날 것 같지만 언제나 불안한 환경에서 불공정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던 예술인의 권리를 보호할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것이 한 편의 작품을 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역할을 맡게 된다면 누구보다 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웃어보기도 합니다.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안이 만들어지는 배경과 과정, 조례의 핵심 내용과 이 과정에 함께하며 느꼈던 저의 생각을 짧게 공유해보려 합니다.

광주시립극단의 사건으로 촉발된 ‘반복되는 고용차별과 인권침해 사건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의 사진이다. 아홉 명의 사람들이 ‘예술인도 노동자입니다’, ‘우리에겐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필요합니다’ 등의 문구가 쓰여있는 피켓을 들고 일렬로 서 있다. 그들은 발목 높이에 “권리도 지위도 없는 광주시립극단 프리랜서 유령단원”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펼쳐져 있다. 다음은 플래카드 하단에 적힌 집회 정보이다. 일시_2021년 4월 19일, 장소_국가인권위 앞, 주최_광주시립극단 부조리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예술인 소셜 유니온, 문화연대.

1. 조례 제정 배경

사건 사고의 예방과 대처를 위해 미리 만들어졌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이 조례 역시 아픈 사건을 근거로 만들어졌습니다. 2020년 광주시립극단의 여름 수시 공연 <전우치 comeback with 바리>의 제작, 연습, 공연 과정에서 발생했던 작품 참여 예술인에 대한 노동인권침해,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성희롱, 안전사고 발생, 사찰 사건에서 직업인으로서 권리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예술인을 보호할 제도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프리랜서 예술인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과 가해자 징계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하고 토론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으로 권리 보장 조례 제정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예술인에 대한 상해/산재 보험 가입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2021년 7월 10일 광주시의회 김나윤 의원실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 자리에서 의회와 광주시, 문화기관과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인 권리와 지위 보장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고 그 결과로 조례 제정을 약속받았습니다.

2. 조례 준비 과정

2022년 1월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한 민간협치 TF가 구성되었습니다. TF 위원을 구성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약속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의견 수렴과 과정에 대한 철저한 공유,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 방안 마련, 권리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프리랜서와 예비예술인에 대한 실태조사, 성별, 나이, 지위, 장르 등에 따른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위원의 구성과 평등한 소통의 약속, 책임을 다할 의지가 확고한 위원을 위촉할 것.

그 결과 TF 위원은 조례를 대표 발의할 광주광역시의회 김나윤 시의원과 광주시 문화체육실, 광주문화재단, 광주문화예술회관, 현장 예술인, 법조인, 언론인, 예술대학 교수, 시민사회 활동가 등 1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되지 않기 위해 매월 모임을 진행했고, 예술 현장과의 소통, 실무 조력 등을 위해 만든 소위원회도 열심히 활동하는 중입니다.

3. 조례 내용

광주 예술인의 권리와 지위 보장을 위한 조례에는 예술인권리보장 법의 주요 내용에 근거한 ▲표현의 자유 보장 ▲안전한 창작환경 조성 ▲성희롱/성폭력 근절 ▲노동권리 ▲독립적인 권익지원센터 설립 및 운영 ▲권리 보장 심의위원회 구성 ▲예술인 보호 책임자 지정 ▲피해구제와 예방, 교육 등에 관한 내용이 조례에 담길 예정입니다.

사회자를 바라보고 있다. 무대 앞에 위치한 사회자는 마이크를 들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무대 아래에는 8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정사각형 형태의 책상이 여러 개 마련되어있고, 참석자들이 모여 앉아 서류를 살피거나 사회자를 바라보고 있다. 무대 뒷벽에는 ‘예술인 권리 확대를 위한 새로운 시작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행사의 제목과 ‘일정 2022년 10월 25일 광주청소년실디자인센터 5층 랄랄라홀’ 이라는 행사 개요가 적혀있다.
사진 제공: 필자

4. 남겨진 과제

제정된 조례를 근거로 권리 보장 정책을 잘 수립을 위한 추가 실태조사도 필요하고,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하는 일만큼 예방을 위한 정책도 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실행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1월에 진행되는 최종 공청회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2023년 3월에 조례를 제정할 예정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관련 조례를 만드는 과정 역시 복사와 붙여넣기가 아닌 이러한 과정이 전제되길 바라봅니다.

마치며

우리 사회에서 문제를 공론화한 분들이 공론화 이후 마주하는 일들은 왜 이토록 힘든 것일까요? 공론화된 사건 속에 있는 피해와 아픔만큼 공론화 이후 진행되는 입증과 다툼, 수사와 재판, 사실 왜곡 등의 상황에서 문제의 직/간접 당사자들이 겪는 2차 피해의 아픔도 놓치지 말고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밝히는 과정에서 파헤쳐진 환경을 정비하는 일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떠한 진단도 없이 결과만 기다리는 무책임한 존재들이 헤집어진 환경을 정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 환경에 진입할 새로운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과정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알리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 사과하는 일, 책임지는 일, 함께하는 일은 미룰수록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무너지고 무책임에 대한 원망(원한)이 쌓인다면 그 회복은 예술계 환경을 개선해가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모두가 결과를 기다릴 때 우리는 함께 과정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2차 피해, 원한, 파헤쳐진 것들 옆에서 불안해하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잘 몰라서도 못하고, 두려워서도 함께 하기를 주저합니다. 공론화와 함께 발생하는 2차 피해, 원한, 배제, 폭력, 반격, 증오, 낙인과 이곳저곳을 살피는 입증과 다툼 속에는 차마 한 치의 양보도 해줄 수 없는 우리와 그들이 존재했습니다. 사죄와 반성이 전제된다 해도 그들의 잘못을 온전히 용서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함께 살아갈 내일의 그들에 대한 기대(희망)는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써보면 좋겠습니다.

문제를 직면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과정, 문제 해결의 주체와 함께 고민된 대안을 제도화하는 과정, 만들어진 결과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들을 함께 경험해가면 좋겠습니다. 더이상 대표된 누군가에게 부탁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법과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책임자들은 자신이 위치한 자리가 주는 ‘권한’만을 행사할 뿐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임’은 주인을 잃었고, 권한 하나 없는 이들만이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채 일터의 안전과 예술인의 존엄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예술인 권리보장 조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사람들의 모습이다. 광주시청 본관 입구에 19명의 사람들이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모여 있다.

짧은 글에서 지난 4년 동안 광주 예술계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와 개선 과정 일체를 공유할 수 없음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지금도 광주에서는 예술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사립대학에서 발생한 입시/채용 비리, 예술대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일들이 진행 중입니다. 직접 찾아뵙고 더 자세한 내용을 공유드릴 마음이 있습니다. 010.4520.7307은 제 핸드폰 번호입니다. 편하게 연락주셔도 좋습니다. 활동가 역할을 캐스팅하기 위해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의 연락도 좋습니다. (하하하) 연결의 힘을 믿습니다.

한 사람의 예술인을 지켜내는 일이, 한 사회의 문화예술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생각은 오늘도 변함없습니다.

[사진 출처: 광주시립극단 부조리 문제 해결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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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국

장도국
한 사람의 예술인을 지켜내는 작품(삶)에서 열연 중인 배우 장도국입니다.
@jangdoguk/010.4520.7307(연대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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