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장효정
제76호
2015.09.17
혀,장효정,10분희곡릴레이
등장인물
의원 (50대, 국회의원)
목사 (30대, 목사)
직원 (20대, 직원)
붉은 빛이 도는 정육식당, 테이블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특별한 능력이 부여되는 신체 부위를 판매하는 메뉴판이 걸려있다.
의원과 목사, 등장해 각 테이블에 앉는다.
의원과 목사, 테이블 위에 지폐를 올려둔다.
- 의·목
- (동시에) 여기 거짓말쟁이 혀 하나요.
- 직원
- 저, 죄송한데… 지금 거짓말쟁이 혀가 하나뿐이라….
- 의원
- 아….
- 직원
- 그럼 어느 쪽에 드릴까요?
- 목사
- 그럼 전 내일 오죠.
- 직원
- 저 그게….
- 의원
- 아니, 내가 양보하지.
- 목사
- 아뇨, 제가 내일 올게요.
- 의원
- 아니, 내가 내일 온다구.
- 목사
- 아니요, 제가 양보할게요.
- 의원
- (웃으며) 젊은 놈이 참 고집 한 번 세다. 내가 양보한다잖아.
- 직원
-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내일 오셔도 거짓말쟁이 혀는 드실 수가 없어요.
- 목사
- 그럼 언제 올까요? 모레? 낼모레?
- 직원
-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인정하는 솔직한 거짓말쟁이는 찾기 어려워서…
- 의원
- 그럼 언제 오라는 거예요?
- 직원
- 그게… 언제라고 정확히 말씀을 못드려요.
- 목사
- 어… 그렇담 양보 못하죠. 여기로 주세요.
- 의원
- 양보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죠. 여기로 주세요.
- 직원
- (혀를 들고) 어… 그럼 어디에?
- 의·목
- 여기요.
- 의원
- (돈을 테이블에 올리며) 돈을 따블로 쳐주지.
- 목사
- (돈을 테이블에 올리며) 그럼 전 돈을 따따블로 쳐드릴게요.
- 의원
- 아이고, 웨이터 선생. 내가 진짜 급해서 그래.
- 목사
- 선생님, 저도 진짜 진짜 진짜 급하다구요. 할레루음보살.
- 의원
- (돈을 테이블에 올리며) 그렇담 따따블 받고 따따블 더!
- 목사
- (옷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럼 전 제가 가진거 다 드리죠.
- 의원
- (옷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렇담 나두.
- 목사
- (자신의 몸을 살피다 양말도 벗는다) 이것두 다 가져요.
- 의원
- (넥타이를 벗으려다 벗지 못하고) 넌 뭐하는 놈이길래 거짓말쟁이 혀를 먹어서까지 거짓말을 잘하려고 안달이야? 뭐, 정수기라도 파시나봐?
- 목사
- 그러는 아저씨는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시길래 거짓말을 잘하려고 안달이세요?
- 의원
- 뭐? 내가 이래봬도 나랏일 하는 사람이야.
- 목사
- 아, 나랏일. 그러니까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죠. 정치한다는 사람이 거짓말쟁이 혀를 못 먹어 안달이라니, 오 구원하소서. 나무아멘.
- 의원
- 네깟놈이 정치에 대해 뭘 안다 그래? 나는 이번 선거 때 꼭 당선돼야해. 군 면제 때 쓴 돈이며 입당할 때 쓴 돈이며 남은 건 사채 빚뿐이야. 난 이 혀가 꼭 필요해.
- 목사
- 아니 당선 되는 거랑 거짓말 잘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 의원
- 한 표 한 표가 누가 더 거짓말을 잘하느냐에 달렸어. 하지만 난 선천적으로 거짓말만 하면 말이 심하게 느려져.
- 목사
- 그럼 느리게 천천히 거짓말 하세요.
- 의원
- 느려도 보통 느린게 아냐. 5분에 한 음절 겨우 나올까 말까해서 청문회며 연설회며 입 한 번 제대로 떼어본 적 없어.
조명 바뀌며 연설회장.
국회의원 띠를 매고 연설을 한다.
- 목사
- 의원님은 당선이 되시면 어떤 정치를 하고 싶으세요?
- 의원
- 그거야 물론 우리 서민들이 아주 잘 (슬로우모션) --------------------------
- 목사
- 시간초과입니다.
- 의원
- 일분만요, 아니 삼십초, 아니 십초. 그니까 서민을 위한 (슬로우모션) ------------
조명 바뀌며 정육식당.
- 목사
- 심하게 느려지네요.
- 의원
- 그렇다니까. 그니까 이 거짓말쟁이 혀는 내가 먹을거야.
- 목사
- 안돼요. 저도 절대 양보 못해요.
- 의원
- (목사의 옷을 들어) 아, 뭐하는 놈인가 했더니 사이비교주구만.
- 목사
- 사이비교주라뇨, 제가 이래봬도 정식 기독교 목사에요. 목사. 나무아멘타불.
- 의원
- 나무아멘타불은 뭔 개소리야. 목사가 거짓말로 뭐, 하나님이라도 팔게?
- 목사
- 그러는 아저씨는 뭐 나라라도 파시게요?
- 의원
- 때에 따라선 어쩔 수 없이 나라를 팔기도 해. 근데 난 못 팔아.
- 목사
- 저도 때에 따라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팔죠. 근데 저도 못 팔아요.
- 의원
- 알게 뭐야.
목사와 의원, 직원에게 접시를 뺏어 싸운다.
직원, 목사와 의원이 벗어둔 옷과 돈더미를 트렁크에 챙긴다. 의원, 목사가 숨겨둔 목탁을 발견한다.
- 의원
- 얼씨구, 목탁 치는 목사. 이거 사이비 맞네.
- 목사
- 이보세요. 저 4년제 신학대학 졸업한 목사에요. 대학원도 나왔어요. 단지 제가 믿는 종교가 불교일 뿐이죠.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어요. 나무아멘타불.
- 의원
- 불교를 믿는 목사? 그게 뭔 부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소리야.
- 목사
- 지금은 목사지만, 이래봬도 제가 불교 모태신앙이거든요.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집안이 빚더미에 앉았죠.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교회가 돈이 좀 되더라고요. 세금도 없고. 나무아멘타불.
- 의원
- 그래? 그럼 열심히 살면 되겠네. 뭐가 문제야?
- 목사
- 아무나 돈을 잘 버는 목사가 되는 게 아니에요. 신자들한테 돈을 끌어오려면 말, 특히 거짓말을 잘 해야 해요. 할레루음보살.
- 의원
- 그럼 거짓말 열심히 하세요.
- 목사
- 이놈의 혀가 제멋대로 할레루음보살, 나무아멘타불 하고 튀어나와요. 신자들도 나를 못 믿겠다고 십일조 한 푼 안내고요.
조명 바뀌며 교회.
의원 기도한다.
- 의원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목사
- 기도하겠습니다. 불당에 계신 부처님 아버지.
- 의원
- 목사님?
- 목사
- 흠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옵고 할레루음보살
- 의원
- 목사님!
- 목사
- 나라와 해탈과 열반이 부처님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나무아멘. 형제님, 자매님, 헌금은 내고 가셔야지요. 형제님, 자매님, 부처님!
조명 바뀌며 정육식당.
- 의원
- 어쨌든 그건 당신 사정이지. 난 이번에 꼭 당선이 돼야해. 내가 먹을 거야.
- 목사
- 서민을 위한다면서요. 서민, 제가 바로 서민이죠.
- 의원
- 그건 일단 당선이 된 다음에 ---------------------------------------------
- 목사
- 애초에 서민은 관심도 없군요. 오, 나무아멘타불.
- 의원
- 서민이고 나발이고 내가 먼저 살아야지. 내가 먹을 거야.
- 목사
- 학자금 대출에 교회 월세, 전기세, 수도세. 제가 먹어요.
의원, 그릇에서 혀를 꺼내 한 입 크게 베어문다.
목사, 의원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 목사
- 아저씨 미쳤어요? 그걸 왜 아저씨가 먹어요? 구원하소서, 부처님아버지.
- 의원
- 자네도 먹어.
- 목사
- 먹긴 뭘 먹어요.
- 의원
- 아직 반 남았어. 나눠 먹자.
의원, 말과는 다르게 반쪽의 혀를 숨긴다.
목사, 남은 거짓말쟁이 혀를 뺏으려 한다.
의원과 목사, 몸싸움한다.
- 의원
- 남은 반쪽 자네가 먹어, 진짜 맛있어.
- 목사
- 줘야 먹죠. 장난해요?
- 의원
- 거짓말쟁이 혀 정말 최고야!
목사, 의원에게 억지로 혀를 빼앗아 먹는다.
의원, 목사의 멱살을 잡는다.
- 의원
- 나머지 반을 자네가 먹다니, 정말 잘했어.
- 목사
- 맛있다. 정말 맛있어요. 할렐루야,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혀가 있다니. 전지전능한 그리스도의 은총을!
- 의원
- (멱살을 잡고 흔들며) 나머지 반을 자네가 먹다니, 자네는 대통령감이야.
- 목사
- 이렇게 양보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평생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의원, 당황한 기색을 잡지 못하고 직원의 멱살을 잡는다.
목사, 답답한 듯 가슴을 친다.
- 의원
- 아니 이 사람아, 이 혀 효과가 정말 좋잖아. 이렇게 맛있는데 효과도 좋다니. 완벽해.
- 목사
- 할레루야, 효과가 너무 좋아 미치겠어.
목사, 직원의 멱살을 잡는다.
직원, 둘을 보며 깔깔 거리며 웃는다.
- 목사
- 이렇게 효과 좋은 혀를 판 당신한테, 억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아.
- 의원
- 우리나라를 최고의 강국으로 만들고 서민경제를 살릴 거야. 이번에 당선되면 이 가게를 국가 지정 최고의 음식점으로 만들겠어.
- 직원
- 정말이죠?
- 의·목
- (답답해하며) 그럼, 정말이지!
직원, 멱살 잡은 손을 뿌리치고 턴다.
- 직원
-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의원
- 당신은 최고야.
- 목사
- 이 거짓말쟁이 혀는 정말 최고라고.
- 직원
- 그런데 제가 미처 부작용을 말씀 못드렸네요. 거짓말쟁이 혀를 반쪽만 먹게 되면 절대 진실을 말할 수 없는 혀가 되죠. 결국 두 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이 거짓말이죠.
- 목사
-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축복을 내리노니. 부작용에 대해 이렇게나 빠른 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의원
- (발을 구르며 답답하다는 듯) 정말 행복해, 부작용을 이렇게 빨리 알 수 있었다니! 행복해, 거짓말쟁이 혀 만세!
직원, 둘을 지켜보다 다른 접시를 가져온다.
목사와 의원, 행동 멈춘다.
직원, 접시 커버를 열어 선홍빛의 혀를 꺼낸다.
- 직원
- 이건 진실의 혀입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죠. 단 거짓말쟁이 혀와 부작용은 동일합니다. 물론 하나뿐이죠. 누가 드실 거죠?
- 의원
- 네가 먹어.
- 목사
- 아저씨가 드세요. 전 절대 먹고 싶지 않아요. 아멘.
- 의원
- 나도 절대 먹고 싶지 않아, 제발 네가 먹어.
- 목사
- 저도 절대 먹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좋아요. 할렐루야.
직원, 가방을 꺼내 그들 앞에 벌린다.
의원과 목사, 시계며 넥타이, 목탁을 가방에 넣는다.
- 의원
- 이거 다 줄게, 제발 이 사람한테 양보하게 해줘.
- 목사
- 교회도 드릴게요. 제발 이 분께 양보하게 해줘요.
- 직원
- 두 분 다 서로 양보하겠다고 하시니 할 수 없죠. 저는 이만.
직원, 가방을 끌고 빠른 걸음으로 퇴장.
의원과 목사, 직원을 잡으려 한다.
의원이 넘어지자 목사의 다리를 잡는다.
- 의원
- 저 놈은 무조건 네가 잡아야 해. 꼭 네가 잡아.
- 목사
- (다리를 빼려하며) 아저씨가 잡으세요. 저 놈은 무조건 아저씨가 잡아서 칭찬하세요.
의원과 목사, 몸싸움한다.
암전. 조명 IN.
의원과 목사, 쓰러져있다.
직원, 무대 가운데로 등장한다.
- 직원
- 여기 (의원과 목사 가리키며) 거짓말쟁이 혀가 두 개 있습니다. 어느 쪽에 드릴까요?
가방을 열고 씨익 웃는다.
암전.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엔 그저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 대답한다. 연극의 막, 덧마루, 캐미라이트 뭐라도 좋으니 그저 연극의 일부가 되고 싶다. 현재는 서울예대 극작과에서 내 삶을 이리 저리 접어보고 있다. 학도 접어보고 비행기도 접어보고 너덜너덜해지도록 접고 또 접어볼 것이다. 이렇게 접고 또 접어 무대의 모서리가 되어도 좋으니 종국엔 연극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