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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N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박찬규

195호

2021.02.18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1년 2월까지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무대
프레스토 (이하 프토)
_사이즈 265

맥스90 (이하 맥스)
_사이즈 245

포스원 (이하 포원)
_사이즈 270

블레이저 (이하 블저)
_사이즈 265
무대
나이키와 콜라보한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 ‘더 텐’ 시리즈만 따로 모아둔 보관함
무대가 밝아지면 나이키와 오프화이트가 협업한 제품인 포스원, 프레스토, 블레이저가 보인다. 포스원과 블레이저는 편안한 상태다. 반면에 프레스토는 외부에 잔뜩 귀를 기울이며 무언가 예의주시한다. 상당히 초조해 보인다.
프토
좆같은 소식이야.
포원
왜 또 호들갑이야?
프토
우리 중에 가품이 있대.
블저
뭐?
프토
방금 태호가 전화하는 거 내가 똑똑히 들었어.
블저
누구랑 통화했는데?
프토
네이버에서 가품 감별해주는 애 있잖아.
블저
정말?
프토
태호가 우리 하나씩 제대로 확인할 거 같아.
블저
나 그거 기분 더러운데.
프토
나도 마찬가지야.
블저
신발끈 다 풀고 밑창까지 다 까서
박음질부터 본드 자국 확인하고 냄새 맡고.
생각만 해도 끔직해.
프토
우리 다 출신성분 명확하지?
포원
나야 그렇지.
프토
너 나이키 공홈?
포원
응. 난 태호가 드로우 당첨 돼서 왔지. 너도잖아?
프토
(망설이다가) 난 태호가 리셀로 사왔어.
포원
개인 거래?
프토
(고개를 끄덕인다)
포원
(블레이저에게) 넌?
블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나도.
포원
너도 개인 거래?
블저
리셀 거래 플랫폼.
포원
그랬다고 했지.
근데, 니가 온 데 예전에 가품 거래 한 번 걸려서 곤욕 좀 치르지 않았어?
블저
(긴장하며) 그래?
프토
스니커즈 바닥에서는 꽤 유명한 사건이잖아.
포원
너 언제 거래됐어?
블저
(위축된 목소리로) 일 년 전.
포원
그럼, 너 거래되기 훨씬 전이긴 하다.
맥스90이 들어온다.
프토
넌 뭐야?
맥스
뭐가?
프토
새로 온 거야?
맥스
그런가 보지.
블저
(귓속말) 얼마 전에 태호가 지 여친한테 생일선물 한다고 했잖아.
포원
그게 쟤야?
블저
그런 거 같아.
포원
출신이 어떻게 돼?
맥스
출신?
포원
어디서 왔냐고?
맥스
몰라.
포원
모를 수가 있어?
(맥스90 몸에 달린 나이키 공홈 탭을 보고는) 너도 공홈 출신이야?
맥스
이거 붙어있으면 공홈 출신인 거야?
프토
넌 왜 이렇게 자신한테 관심이 없냐?
포원
(공홈 탭을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진짜 공홈에서 왔어?
맥스
(짜증을 내며) 모른다고!
블저
(밖을 내다보다가 긴장하며) 감별사 왔다!
프토
(자신의 모양새를 서둘러 여기저기 살펴본다)
포원
진정해.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프토
너야 나이키 공홈 탭도 있고…
자타공인 찐이니깐 그럴 수 있겠지만.
(자신의 몸 한 구석에 실밥이 터져있자)
씨발! 여기 이게 왜 이러지?
포원
너 원래부터 그랬어.
프토
뭔 소리야! 내가 얼마나 박음질이 완벽했는데!
포원
너 여기 올 때부터 그랬다니깐.
(블레이저에게) 내 말 맞지?
블저
(프레스토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프토
다들 뭔 개소리야!
블저
태호 이리로 온다.
포원
감별 바로 하려나 보네.
블저
시… 시작한다.
프토
씨발. 왜 자꾸 나를 보지?
블저
너부터 시작인가봐.
프토
아! 안 돼. 왜 나부터야!
프토가 퇴장한다.
블저
(안도의 한 숨을 크게 내쉰다)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포원
(코웃음) 왜 쟤가 제일 먼저 끌려나갔을까?
블저
응?
포원
가장 의심스럽다는 얘기 아닐까?
블저
하기사 개인 거래가 제일 그렇지.
포원
나도 그렇게 생각해.
블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포원
쟤 좀 이상하긴 했잖아.
블저
뭐가?
포원
오프화이트 더 텐 시리즈 중에 프레스토 리셀가가 꽤 세잖아.
블저
그렇지.
포원
태호가 쟤를 사갖고 온 가격이도 말이 안 됐고.
블저
그래?
포원
평균 거래가보다 한 이십프로 정도 쌌잖아.
블저
아… 그럼 의심할 만 하지.
포원
그리고 쟤 자세히 보면 미드솔 색상이랑 케이블 타이도 조잡했어.
블저
사실… 나도 그 생각했어.
포원
아까도 그 부위가 뜯어져 있었고.
블저
그러고 보니 그렇네.
맥스
그게 중요해?
블저
뭐?
맥스
우리가 짭이냐 아니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포원
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가 가품이면 존재 이유 자체가 없는데.
맥스
짭이면 못 신는 거야? 인간들 발이 아작이 나?
포원
그렇지는 않지만 가치 자체가 훼손되잖아.
맥스
(코웃음) 그건 인간들이 만든 가치잖아.
포원
그럼, 우린 코끼리가 만들었냐?
우리자체를 인간들이 만들었으니깐 그 룰을 따라야지.
만약에 룰에 어긋나면 퇴출 되야 하는 거고.
맥스
퇴출?
포원
가짜는 이 세계를 기만하는 거잖아.
블저
니가 가짜여도 상관없다는 거야?
맥스
응.
포원
그거 너무 위험한 발언이다.
맥스
어차피 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지는 입장에서
만듦새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웃겨서 그래.
블저
또 온다!
포원
(블레이저에게) 이번에 니 차례 같다.
블저
오 마이 갓!
블레이저가 나가고 프레스토가 들어온다.
포원
뭐래?
프토
가품은 아닌 거 같대.
포원
근데 표정이 왜 그래?
프토
그게…
포원
말해봐.
프토
날 거래한 놈이 스니커들 사이에서 말이 많나 봐.
포원
어떤?
프토
가격을 너무 후려쳐서… 의심을 받는 거 같아.
포원
공신력 있는 사람이 검사해서 아무 말 없었잖아.
프토
그래도 뭔가 찝찝하네.
포원
신경 쓰지 마.
프토
한 번도 내 출신성분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포원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야.
프토
너나 나나 버질 아블로의 자식들이잖아.
일반적인 나이키 라인이랑 다른 거!
누구보다도 그거에 자부심 갖고 있었던 거 알지?
포원
알지.
프토
난 그 누구보다도 특별하다고 생각했어.
버질 아블로랑 나이키가 기념비적인 스니커즈 열 개를 골라서
재해석한 스페셜 그 자체!
이 유니크한 디자인을
모두가 부러워하고
모두가 우러러보고
모두가 리스펙트 했다고!
(사이) 근데, 내가 어쩌면…
버질 아블로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게…
만약에 그렇다면 난 바로 종량제 봉투행이잖아.
포원
진정해! 프레스토! 지금 너무 쓸데없는 자기부정을 하고 있어.
그럴 필요까지 없는 상황이야.
프토
(눈물을 흘린다) 사실, 난 영원히 이 자리에 디피 돼서
땅바닥에 한 번도 안 끌린 채로
태호가 갖고 온 모든 신발들의 워너비 자리를...
맥스
우냐?
프토
갑자기 북받쳐서.
맥스
(웃는다) 지랄.
프토
뭐?
맥스
우린 운동화야. 인간들이 신다가 닳거나 애정이 식으면 언젠간 버려진다고.
평생 애지중지 사랑받으면서
땅바닥 한 번 안 밟혀보고 평생을 보낼 생각이었어?
니가 무슨 카르티에서 나오는 금목걸이라도 되는 줄 알아?
프토
뭐라고?
맥스
내가 틀린 말 했어?
프토
이게 보자보자 하니깐!
포원
니네 그만해.
프토
씨발. 나이키 탭 붙어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맥스90에게) 솔직히 난 너도 의심스러워.
자부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고.
어서 기어들어왔는지도 모르고.
맥스
내가 무슨 자부심을 가져야 되는데?
프토
이런 마인드!
포원
그만 하라고!
프토
(포스원에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맥스
마음대로 생각해.
프토
저 태도 봐봐.
포원
그건 그렇고. 저기 봐.
블이저 쟤 뭔가 심상치 않은데.
프토
스우시 마크를 왜 저렇게 유심히 보지?
포원
너도 저랬어?
프토
아니! 나는 전체적으로 훑어봤지 저렇게 한 곳만 집중적으로 보지 않았는데.
포원
이쪽으로 온다.
프토
이번에는 누구 차례인거지?
포원
맥스 너인 거 같은데.
맥스
그러던지.
맥스가 끌려 나간다.
프토
비교하려나 보다.
포원
비교하려면 나랑 비교해야 되는 거 아닌가?
프토
그러게.
포원
여기서 누구보다도 출신지가 명확한 건 난데.
프토
블레이저 괜찮을까?
포원
(밖에서 감별 받고 있는 블레이저를 가리키며) 저 꼬라지 봐.
프토
뭐가?
포원
잔뜩 쫄아가지고.
프토
블레이저는 원래 겁이 많잖아.
포원
바로 그 부분!
저런 찌질하고 새가슴적인 게 난 항상 걸렸거든.
저건 스니커즈의 정신이 아닌데…
쟤는 여러모로 뭔가 안 맞아.
프토
듣고 보니 그렇다.
포원
저렇게 쪼그라들어 있으면
인간이 어떻게 저걸 신고서 달리기를 하고 농구를 하겠냐고?
저건 근본적인 태생의 문제라고 봐.
프토
일리 있다.
포원
우리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프토
근본.
포원
또?
프토
헤리티지.
포원
그래!
블레이저한테는 그 두 가지가 안 보인단 말이야.
그리고 우리 중에 하나는 기필코 가품인 거잖아?
프토
맞아.
포원
넌 찝찝하지 않아?
프토
뭐가?
포원
꽤 긴 시간 짭이랑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게.
난참을 수가 없는데.
프토
짭으로 밝혀지면 바로 버려지겠지?
포원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태호라면 갈기갈기 찢어서 버릴 거 같아.
나라도 그럴 거 같아.
프토
(두려운 눈길로 포스원을 바라본다)
포원
(나이키 공홈 탭을 만지며) 조만간 모든 게 밝혀지겠지.
넋이 나간 블레이저가 들어온다.
프토
뭐래?
블저
…….
프토
문제없는 거지?
포원
설마 가품이야?
블저
그건 아닌데.
프토
그럼?
블저
진품인지도 확실히 모르겠대.
일동
(탄식한다)
프토
나도 그렇고 명확한 게 없네.
블저
우리 모두를 의심하는 거 같아.
포원
우리 모두?
(사이) 니네 둘이 아니고?
블저
듣기로는 너도 공홈 출신이 아니래.
포원
뭐?
블저
아마 너도 곧 불려나갈 거야.
포원
뭔 헛소리야?
블저
난 들은 대로 얘기한 거야.
포원
(헛웃음) 짭이 무슨 탭이 있어!
짭은 이런 디테일도 없을뿐더러
짭에 이딴 식으로 공을 들이지 않아.
이 탭은 찐에만 붙는 품질보증서고 정성이라구.
프토
태호 온다.
포원
뭐야? 진짜 나를 감별하는 거야!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포원이 끌려 나간다.
프토
너 방금 한 말 진짜야?
블저
바로 앞에서 들었어.
프토
그럼, 저 나이키 탭은 뭐야?
블저
최상급 짭은 탭도 달려 나온대.
프토
그럼, 저 새끼도 짭일 확률이 있는 거네.
블저
아마 맥스랑 비교하지 않을까 싶어.
프토
그럼, 여기서 맥스가 찐이었던 거야?
블저
백퍼 찐탱.
프토
어쩐지 삶에 달관한 듯 무심할 때부터 알아봤어.
블저
감별하는 애도 별로 살펴보지도 않더라.
프토
보자마자 찐의 아우라가 풍긴 거지.
(밖을 가리키며) 근데, 포스원 저 새끼는 뭐냐?
블저
나보다 더 심하게 감별하네.
프토
신발끈 다 풀고.
블저
신발끈 구멍도 보고.
프토
밑창 다 뺀다.
블저
아웃솔도 보고.
프토
(흥분하기 시작한다) 설포도 본다.
블저
(덩달아 흥분다) 설포 로고도.
프토
설포 라벨도.
블저
뒤꿈치도 본다.
프토
힐 카운터도.
블저
(신나서) 칼라 라이닝도!
프토
(덩달아 신나서) 칼라 패딩도!
블저
백 스테이도!
프토
백탑도!
블저
발가벗기는구나!
프토
더! 더!
블저
그래! 그래!
프토
해체시켜버려!
밖에서 포스원의 감별이 끝나자 흥분하던 프레스토와 블레이저가 침묵에 빠진다.
프토
끝인가?
블저
그런 거 같은데.
프레스토가 포스원의 꼴이 고소하다는 듯 웃는다.
프토
병신새끼 그렇게 유세를 부리더니
결국 저 새끼도 자기를 모르는 거였네.
안 그래?
블저
(사이) 혼란스럽다.
프토
뭐가?
블저
모든 게.
프토
저 새끼 온다.
신발끈도 전부 풀리고 밑창도 벗겨진 채 무장해제 된 포스원이 영혼이 털린 모습으로 들어온다. 블레이저가 걱정스러운 듯 다가간다.
블저
괜찮아?
포원
(멍하니) 응?
블저
괜찮냐고?
포원
응.
프토
뭐래?
포원
모르겠어.
프토
(신경질적으로) 쟤들이 뭐라냐고?
포원
(프토를 한 동안 멍하니 바라본다) 우리 모두를 의심하는 거 같아.
블저
(바깥을 가리키며) 태호 쟤 뭐 하는 거야!
프토
저 새끼 왜 종량제 봉투를 꺼내는 거냐?
블저
뭐지?
프토
왜 자꾸 이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거야.
포원
헷갈린대.
프토
뭐?
포원
뭐가 뭔지 모르겠대.
아무 것도 모르겠대.
침묵이 흐르고 밖에서 종량제 비닐 봉투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프레스토, 블레이저, 포스원이 바깥을 바라본다. 불안한 듯 무기력한 듯 알 수 없는 눈빛들이 외부를 향한다.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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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

박찬규 극작가
방역소장. 81년생. 주요작품으로는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 있습니다.
나이키 ISPA라인과 베이퍼맥스를 엄청 좋아합니다.
펑카델릭, 스티브 알비니의 음악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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