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리어왕 고쳐쓰기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김동국

제204호

2021.07.15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시간
공연중단 후 일주일.
공간
연습실.

미투운동 이전.
무대
원형의 넓은 경사진 무대가 연습실 중앙에 위치해있고 주변에 의자들이 뒤죽박죽 놓여있다.
등장인물
선생님 남. 58세. 극단 대표 겸 배우.
제자 여. 29세. 연출가.
제자는 경사진 무대에 걸터 앉아있다.
선생님은 재창작 된 대본을 읽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지 안경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몇 장 읽은 후 웃는다.
계속 읽는다.
읽던 중 앞부분으로 돌아와 다시 읽는다.
앞뒤를 왔다 갔다 하며 읽는다.
어느 순간 대본을 대충 넘기기 시작한다.
마침내 대본을 읽다가 멈춘다.
대본을 덮는다.
선생님
(안경을 벗으며) 의도가 뭐야?
제자
선생님
의도가 있을 거 아니야? 과감하게 해체하고 다시 쓴 이유가. (대본을 빤히 보며) 이 안에는 리어왕은 없고 … 역할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인물이 등장해 불평, 불만만을 늘어놓는 거 같은데? … 메타연극을 하고 싶은 건가?
제자
고정된 남성중심의 서사를 해체하고 싶었어요. 너무 오래한 거 같아요. 그러니깐 리어왕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덜어내고 싶어요.
선생님
귄위를 덜어 낸다.
선생님, 다시 대본을 편다. 한 대목을 읽는다.
선생님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분다. 리어 등장한다. 리어, “바람아 불어라 비야 불어라. 내 뺨을 갈기갈기 찢어라. 장대 같은 폭우와 폭풍들아 물기둥을 쳐라!” 무대 장치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리어, 다시 말한다. 폭우와 폭풍들아 물기둥을 쳐라! 물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다. 리어, 당황한 채 무대감독에게 신호를 보낸다. 무대감독 무대로 등장한다. 리어, 무대로 등장한 무대감독 때문에 더 당황한다. 무대감독 말한다. “죄송합니다. 물이 다 떨어져서 이 장면은 그냥 넘어가시죠.” 리어, 당황하지 않고 애드리브로 무대감독에게 말한다. “놔라, 너는 누구냐? 누군데 나를 막는 것이냐. 아, 아까부터 날 따라오던 광대구나 그렇지?” 리어 눈을 찡긋한다. 무대감독 말한다. “전 광대가 아니라 무대감독입니다. 폐하. 자, 암전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무대, 물이 아주 조금 떨어진다. 암전.
선생님, 한 동안 대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본다.
선생님
원작의 풀롯을 이렇게 허무하게 없애버리는 게 어디 있냐? 지금 이건 작가가 각색을 하지 않고 그냥 일기를 쓰고 있는 거라고. 좋아. 그렇다 치고 무대감독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뭐야? 이건 리어를 엿 먹이는 거잖아.
제자
장면이 갖는 비극의 무게감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절대 권력자를 해체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리어왕에서 리어가 잘 보여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리어가 잘 보이는 게 뭐가 문제야?
제자
원작에 문제를 삼는 게 아니라 원작을 바라보는 창작자와 관객이라는 겁니다. 선생님. 이 비극을 읽고 학습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책임지실 수 있으세요?
선생님
무슨 말이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돌려 말하지 말지.
제자
… 권위가 있는, 그러니깐 높은 신분의 주인공이 비난받을 만한 짓을 했는데도 그가 세운 공과 권위를 내세워 관객들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게 역겨워요.
선생님
뭐가 있구나? … 그래 뭐 네가 느끼는 어떤 반감, 분노 좋아. 작업에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지. 그런데 개인의 사적인 부분을 작품에 가져오는 건 너무 어리지 않나?
제자
제 사적인 감정을 가져온 게 아니라 오랫동안 답습해온 구조를 말하는 거예요. 예술학교에서는 4대 비극을 교과서처럼 가르쳐요. 어딜 가나 교수님들은 꼭 4대 비극을 예로 들죠. 그런데 고전에서 human은 여성을 배제한 남성을 뜻하죠. 남성중심 서사라는 거예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성서사로 조작된 희곡을 공부했어요. 마치 인간은 남성만 존재하는 거처럼 말이죠. 놀랍지 않으세요?
선생님
난 잘 모르겠네. 왜 그런 반감을 가질까? 그러니깐 왜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냐는 거지. 작품이란 건 그런 걸 따지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서 그냥 좋은 작품인지 구린 작품인지 판단할 뿐이지 않나?
제자
작품 이전에 남성만이 독차지한다면 그건 문제가 되죠. 고전에서 human은 남성만을 가리키는 좌표죠. 여성들의 언어는 애초에 기록되지 않았거든요. 여성들에게 사고를 넓혀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않아요. 그저 여성은 최후의 순간에 비극의 가치를 높여 주기 위해 도모하거나 소비되는 역할로만 존재하죠.
제자, 수업 당시 리어왕을 읽고 쓴 독후감을 가져와 선생님 앞에 내려놓는다. 독후감을 읽는다.
제자
온통 리어왕이 불쌍하다. 고네릴, 리건이 벌을 받아야 한다. 사악하다. 나쁘다. 리어왕은 자신의 딸들을 사랑해서 비극을 맞이하게 된 거다. … 아이들의 사고를 들여다보면 온통 리어왕 시점입니다. 물론 리어왕 얘기니까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고정된 성으로 치우쳐져 있는 사고만을 읽고 자란다면 어떤 주체성을 가지게 될까요? 아이들은 고네릴과 리건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행동을 했는지 관심 없어요.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나쁜 년으로 묘사되고 있으니까요. 그저 리어왕만 불쌍한 거예요. 얼마나 잘났으면 4대 비극 제목이 죄다 남자래요? 많아야 13살이에요. 10살만 되도 아이들은 성을 두고 편을 갈라요. 막연하게 남자라서 여자가 싫고 여자라서 남자를 싫어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떡하니 남성이름만이 있는 4대 비극의 고전독서라니.
선생님
그래… 뭐. 젊은 예술가야… 훌륭한 생각이야. 그런데 내가 듣기에는 작가를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멈춰지지 않네. 작가를 기만했다고 생각은 안하나?
제자
아니요. 셰익스피어를 기만하지 않아요.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그대로 올리고 있는 이 상황이 그저 안타까울 뿐 인거죠. 셰익스피어의 공연이 계속 올려 진다는 건 이 사회의 악습을 바꿀 의향이 없다는 거니까요.
선생님
원작 그대로 올리는 게 어째서 악습으로 연결이 되는 거지? 너무 꼬여있는 거 아닌가?
제자
이야기 힘이 얼마나 무서워요? 셰익스피어의 플롯은 여전히 무서운 속도로 학습하고 답습하고 있는 거예요. 여성역할을 장치로만 사용하는데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남성서사가 온몸으로 체화된 거죠. 이 학생들을 보면 그렇지 않나요? 어릴 때부터 나도 모르게 자신의 성역할을 연기해 나가는 거예요. 각자의 성을 학습하고 답습하는 거라고요. 얼마나 끔찍해요?
선생님
그래서 이 따위로 각색 했다는 거야? 너 지금 애들 노는 거랑 공연하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해? 애들은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알아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겠지.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난 지금 이 공연을 통해 내 명성, 내 위치를 지켜야 하는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대본을 공연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 흥분한 채 무대에 오른다.
선생님
여기에서 말도 안 되는 이 대사를 가지고 떠들라고? 관객들이 얼마나 나를 우습게보겠어? 너 이런 생각은 안 해봤니?
제자
선생님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공연한다는 게 아닌데요? 앞으로 고정된 성으로 학습 될 아이들을 얘기하는 겁니다.
선생님
좋아.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니? 내 공연을 보러오는 수많은 젊은 예비 예술가들이 있어. 지금도 꾸준히 공연을 보러오지. 그럼 이 어린 친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거야? 이 친구들이 갈망하는 꿈을 무시하는 건가?
제자
글쎄요. 선생님의 공연을 보러오는 걸까요? 선생님이 심어 놓은 예고강사, 입시학원 강사들이 학원생을 입시에 붙이기 위해서 데려 오는 건 아닐까요?
선생님, 웃으며 박수를 친다.
선생님
… 너 정말 기가 막힌다. 좋아. 그래. 근데 너의 그 정의로운 마음이 과연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거 아주 값싼 감정이야. 정말 책임을 져야할 때 모르는 척 도망가는 근본도 없는 추상적인 감정에 동요된 책임감이라고. 악어의 눈물 같은 거지. 오히려 애들한테 상처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네가 책임질 수 없어. 그저 넌 선택적 분노이니까.
제자
선택적 분노요?
선생님
그래 선택적 분노.
선생님, 대본을 이리저리 넘기다 고네릴과 리건의 대목은 편다.
선생님
딸들의 분량이 왜 이렇게 많아야 하는 건데? 리건이 말한다. “에드먼드도 나와 똑같은 나쁜 놈이다. 그런데 에드먼드는 반성을 하는 대목이 있고 우리는 없다. 게다가 에드먼드는 스스로 의식이 있을 때 죽음을 선택한다. 나도 에드먼드처럼 반성할 대목과 스스로 죽음 맞이할 수 있는 대목을 달라!” (대본을 책상에 던지며) 여기가 시위장소야? 그건 광화문 가서나 하라고 어떻게 이걸 대사라고 생각하고 쓴 거야? 억지로 서사를 만든다고 생각은 안 해? 이 이야기는 리어왕 얘기야. 딸들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네가 말하는 여성서사? 고네릴과 리건은 이미 욕망을 품고 있잖아? 여자들이 역할을 맡을 수 없을 때 셰익스피어는 여성역할을 창조했어. 그것도 아주 탐욕적인 인물로 말이야. 근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제자는 분필을 들고 경사진 무대에 올라 정중앙을 선으로 길게 나눈다.
왼쪽에는 ‘독백’ 오른쪽에는 ‘대화’라고 적는다.
대화라고 적힌 공간에는 작은 크기로 ‘질문’/‘대답’, ‘사실을 나타내는 대사’/‘생각을 나타내는 대사’, ‘상대방의 의견에 수긍하는 대사’/‘상대방의 의견에 반대하는 대사’라고 적는다.
독백이라고 적힌 공간으로 넘어가 원작 리어왕에서 독백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중앙 상단에 human이라고 적는다.
제자
(대화라고 적힌 칸에 선다) 대화라는 건 선생님처럼 일방적으로 진행되면 안 되겠죠. 이 대화 칸에서 고네릴과 리건은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을까요?
선생님
질문이라면⋯
제자
(말을 끊으며) 없겠죠. 질문은 주로 남성들이 하거든요. (사실을 나타내는 대사/ 생각을 나타내는 대사 칸으로 이동한다) 고네릴과 리건이 생각을 나타내는 대사가 있다면 아버지를 막연하게 미워하고 에드먼드를 막연하게 좋아하는 대목들이 있어요. 타당성도 없고 주체도 없는 대사죠. 작가가 굳이 공을 들여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없어요. 리어왕의 비극을 완성하는데 도움만 주면 되니까요. (상대방의 의견에 수긍하는 대사/상대방의 의견에 반대하는 대사 칸에 선다) “연출님, 고네릴과 리건이 왜 이렇게 악녀로 존재해야 해요? 왜 음탕해 보이는 모습을 취해야 해요?” 고정된 남성서사에 기울어진 연출들은 “고네릴, 리건이잖아. 그러니깐 조금 더 섹시한 모습을 취해봐, 조금 더 못되게 굴어봐.” 등 성적 대상화로만 존재하게 만들어요. 연출의 권위를 누르지 못하는 배우들은 납득이 가지 않아도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인물에 대해 수긍하려고 애쓰죠. (독백 칸으로 넘어간다) 이들의 독백은 없어요. 그저 작가에게 농락당한 고네릴은 급하게 마지막에 등장해 리건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거둡니다. 이제 소모를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딸들이 필요가 없어서 가차 없이 죽여 버리는 거예요. 있어봤자 짐이거든요.
선생님
알겠어. 오늘 그… 여성서사? 좋아. 잘 배웠어. 앞으로 고민해나갈게. (바닥을 지우며) 이제 공연 연습을 하자. 원래 대본대로. 원작이 좋은데 굳이 왜 바꾸려 해? 원작을 능가할 만큼 대단하지 않다면 원작을 잘 살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잖아? 그것만으로도 어려워. 자, 이제 이 대본들을 치우자.
선생님, 대본들을 한쪽으로 치운다.
제자
이미 배우들한테도 공지했어요.
선생님
뭘? 이거? 너 돌았니?
제자
원작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인물의 생각들이 사유될 수 없는 것에 문제를 일으키는 거라고요. 원작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요. 상품적인 생산과 효율을 따지는 게 아니라고요.
선생님
야! 왜 효율과 생산을 안 따져? 연극도 상품이야.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그러니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지.
제자
⋯ 선생님이 제 예술적 범위를 허용해준다 했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바꿔도 좋다고 하셨잖아요.
선생님
이렇게 싸구려로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하라는 게 아니잖아. 연출의 욕심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아? 고전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신선해 보이는 척 센세이션한 척 만들어서 평론가나 연극계에서 인재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여성 얘기다 뭐다 하는데 사실은 이기적인 연출의 욕망이 아닌가 싶네. 기성세대를 비판하려면 기성세대를 최소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지. 결국 이 공간, 현장, 삶에서 니들만 사는 게 아니잖아.
선생님, 대본을 들고 경사진 무대를 오른다.
선생님
코델리아는 리어왕을 납치한 후 손과 발을 묶는다. 리어왕은 말한다. “이 악녀 역시 넌 딸들 중에 제일 악녀야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코델리아 리어왕에게 차꼬를 씌운다. “아버지가 죽지 않기를 바라요. 아버지가 죽지 않으면 비극은 없는 거니까요” 리어왕 “관객이 나의 비극을 보지 못하는 게 그게 날 죽이는 거야. 내 비극은 완성이 되어야 한다. 코델리아야, 미안하다 얼른 이거 풀어줘 그리고 멋있게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자 얼른 이거 풀고 나에게 업히거라. 딸의 죽음에 애통해하며 울부짖을 때 관객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니?” (대본을 넘기며) 세상에 원작의 대사는 찾아볼 수가 없네.
선생님, 꾸며진 무대를 둘러본다.
선생님
원래 예정된 공연이었잖아. 불가피하게 연출의 사고로 인해서 투입된 거 알잖아. 정말 이 작품을 연출하라는 게 아니라 경험을 쌓기 위해서 오케이 한 거라고. 좋잖아 이 정도 스케일의 공연도 참여해보고. 너도 사정 알고 연락한 거 아니야?
제자
그렇죠. 그런데 연출의 잘못이지 그 친구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선생님
제자
선생님 모르시지 않았잖아요.
선생님
연습하다 오해가 생긴 거야. 나쁜 관계도 아니었고.
제자
그건 누구 생각인데요?
선생님
누구 생각이라니? 우리 모두의 생각이야.
제자
그런데 그 친구는 왜 하차한 거예요?
선생님
궁금한 게 뭔데?
제자
정확히 말해야죠. 연출이 그 배우에게 성추행 한 거고 선생님은 그 상황을 모른 척 하신 거잖아요. 부끄럽게 생각하시고 반성하셔야죠.
선생님
이러는 이유가 궁금하네. 이렇게 구는 이유가 뭐야? 그 배우를 아나? 그래서 그런 건가?
제자, 연출의도가 실린 프로그램 북을 선생님에게 건넨다.
선생님은 프로그램 북을 읽는다.
선생님
이게 뭐지?
제자
제 연출의도입니다.
선생님
무엇을 환원하자는 거야?
제자
선생님의 권위, 폭력, 위계요. 반성하시고 죄를 치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비극을 덜어내는 거죠.
선생님
… 그러니깐 지금 이렇게 리어왕을 각색한 이유가 오로지 나랑 연출 때문에 이런 미친 짓을 한다는 거야? 나를 엿 먹이려고? 왜?
제자
⋯ 리어왕의 비극 위해서 죽어간 딸들을 살리려고요.
배우들,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여기까지 이제 그만 떠들자.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허황된 생각도 그만하자.
선생님, 배우들과 인사를 나눈다. 배우들은 분위기를 살피며 각자 자리에 앉아 연습 준비를 한다.
선생님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오해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자, 경사진 무대에 올라 연출의도를 읽는다.
제자
공들여 쌓아 올린 연극의 위상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이 공연의 각색 방향은 그 동안 폭력으로 쌓아 올린 공을 환원하자는 취지의 공연이다. 이 환원하는 공연으로 그들의 권위와 위계, 폭력으로 세운 공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잘못을 뉘우칠 수 있기를 바란다. … 선생님, 연극은 여기서 끝나기도 해야겠죠.
막.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동국

김동국
극단 숨다에서 글을 쓰고 연출을 하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 <악어>, <별의 별주부전>, <환상일지>가 있다. kor123617@naver.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