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공삼 꿈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나수민
제211호
2021.12.09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인물
때
밤.
밤.
곳
이모의 집 거실. 둥근 테이블이 하나 있다.
이모의 집 거실. 둥근 테이블이 하나 있다.
나, 테이블 앞에 이모와 마주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찻잔과 찻주전자가 있다.
이모, 나의 잔에 차를 따라준다.
테이블 위에는 찻잔과 찻주전자가 있다.
이모, 나의 잔에 차를 따라준다.
- 나
- 딸이 있잖아?
- 이모
- 있지. 마셔 봐. 몸에 좋은 차야.
- 나
- 근데 왜…
- 이모
- 얼른 마셔 봐.
나, 찻잔을 내려다본다.
- 나
- 마시고 싶지 않아.
- 이모
- 몸에 좋다니까.
- 나
- 마시고, 싶지, 않아.
- 이모
- 몸에 좋은데도.
- 나
- 딸이 있잖아.
- 이모
- 있지.
이모, 차를 마신다.
나,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나,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 나
- 근데 아들도 있다니.
- 이모
- 놀란 것 같네.
- 나
- 놀랐지. 나는 몰랐으니까. 나는 이모한테 딸만 있는 줄 알았어. 왜냐하면… 왜냐하면… 딸이 있으니까. 딸이 있잖아.
- 이모
- 영주야.
- 나
- 그거 내 이름 아닌데.
이모, 나의 손을 잡는다.
- 이모
- 이 세상에 태어나 이뤄야 할 일이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게 바로 이거다. (사이) 아들과 딸을 갖는 것.
이모, 다시 차를 마신다.
사이.
사이.
- 나
- 하지만 이미 딸이 있잖아.
- 이모
- 아니지. 이미 아들이 있었지.
- 나
- 딸보다 먼저?
- 이모
- 딸보다 먼저.
사이
- 나
- 이름이 뭔데?
- 이모
- (입모양으로만) ○○○.
- 나
- 뭐라고?
- 이모
- (입모양으로) ○○○.
- 나
- 못 알아듣겠어.
- 이모
- 괜찮아.
- 나
- 몇 살인데?
- 이모
- 여섯 살 이상 스무 살 미만.
- 나
- 그게 뭐야?
이모, 인자하게 미소짓고 다시 차를 마신다.
- 나
- 왜 말하지 않았어? 아들 있다고.
- 이모
- 말했어.
- 나
- 말 안 했어. 언제 생겼는데? 누가 아빠야?
- 이모
- (입모양으로) ○○ ○○○○ ○○.
- 나
- 못 알아듣겠어!
- 이모
- 봐. 난 이미 말했었어.
- 나
- 같이 살아?
- 이모
- 같이 살지.
- 나
- 이모 딸이랑도?
- 이모
- (고개 젓는다)
- 나
- 그럼 딸은 어디 갔어?
- 이모
- (어깨 으쓱인다)
- 나
- 버렸어?
- 이모
- 나갔어.
- 나
- 어디를?
- 이모
- 옥수수모래 사러.
- 나
- 고양이 키워?
- 이모
- (인자하게 웃으며) 아니.
- 나
- 근데 옥수수모래가 왜 필요해?
- 이모
- 부드럽잖아.
- 나
- 그럼 사서 오는 중이야?
- 이모
- 아니. 나갔다니까.
- 나
- 안 돌아와?
- 이모
- (어깨 으쓱인다)
사이
- 나
- 그럼 아들하고만 산다고.
- 이모
- 그런 셈이지.
- 나
- 이모 딸이 5살이니까 아들은 나이가 더 많겠네.
- 이모
- 여섯 살 이상 스무 살 미만이니까.
이모, 다시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차를 채운다.
- 이모
- 영주야.
- 나
- 영주가 누구야?
- 이모
- 너도 마셔 봐.
나, 찻잔을 내려다본다.
- 이모
- 몸에 좋아. 따뜻하고. 향기롭고. 약간… 매콤하고.
- 나
- 매콤해?
- 이모
- 약간… 매콤하지. 몸에 좋아. 마셔 봐.
- 나
- 색깔이 이상한데.
아들, 찻잔을 들고 천천히 걸어 나와 이모 옆에 앉는다.
나, 아들을 빤히 쳐다본다.
이모, 아들의 찻잔에 차를 따라준다.
나, 아들을 빤히 쳐다본다.
이모, 아들의 찻잔에 차를 따라준다.
- 이모
- 알겠지?
- 아들
- 네.
- 이모
- 그럼 됐다. 바다 수영은 어땠어?
- 아들
- 넓더라고요. 탁 트여있고. 시원하고. 약간… 매콤하고. 좋았어요.
- 이모
- 그럼 됐다.
아들과 이모, 동시에 차를 마신다.
나, 그들을 보고 있다.
나, 그들을 보고 있다.
- 아들
- 안녕.
- 나
- … 안녕.
- 이모
- 둘이 오랜만에 보지.
- 나
- 처음 보는데.
- 아들
- 차 좀 줄까?
- 나
- 많아.
- 이모
- 이쪽은 영주다.
- 아들
- 안녕, 영주.
- 나
- 아… (체념) 그래, 안녕.
- 이모
- 어때 보이니?
- 나
- 뭐가?
- 이모
- 내 아들.
아들, 나를 향해 인자하게 웃는다.
- 나
- 안 닮았어.
- 이모
- 나 닮은 건 딸로 족하지. 날 안 닮아서 좋아.
- 아들
- 엄마랑 저는 닮았어요.
- 나
- 안 닮았어.
- 아들
- 약간 매콤한 거 좋아하는 거. 그거 닮았잖아요.
- 이모
- 그래 그럼 됐지.
아들과 이모, 서로 찻잔을 부딪치고는 차를 마신다.
이모, 찻주전자를 들어 다시 차를 따르려는데 주전자가 비었다.
이모, 찻주전자를 들어 다시 차를 따르려는데 주전자가 비었다.
- 이모
- 어머, 이 약간… 매콤한 차가 벌써 떨어졌네.
- 아들
- 제가 갔다 올게요.
- 이모
- 아니야, 내가 갔다 올게.
- 나
- 가지 마, 이모.
- 이모
- 영주야, 이모 금방 갔다 올게.
- 나
- 이모!
이모, 찻주전자를 들고 잠시 사라진다.
아들, 차를 마시며 나를 본다.
나 역시 차를 마시는 아들을 본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아들, 차를 마시며 나를 본다.
나 역시 차를 마시는 아들을 본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 나
- 옥수수모래 사러 갔다면서.
- 아들
- 응?
- 나
- 딸 말이야. 옥수수모래 사러 갔다던데. 곧 돌아올 거래.
- 아들
- 아니야. 오지 않아.
- 나
- 어떻게 알아?
- 아들
- 고양이가 없잖아.
사이
- 나
- 옥수수모래는 고양이 때문에 필요한 게 아니래. 그냥, 그냥, 부드러워서 필요한 거지.
- 아들
- 그래,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없으니까 결국엔 오지 않을 거야.
사이
- 나
- 니가 내쫓았지?
- 아들
- 고양이는 원래부터 없었어.
- 나
- 고양이 말고 딸.
아들,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본다.
사이.
사이.
- 아들
- 왜 차를 안 마셔?
- 나
- 마시고 싶지 않아.
- 아들
- 왜?
- 나
- 색깔이 이상해. 대답이나 해.
- 아들
- 영주야. 바다 수영해본 적 있어?
- 나
- 나 영주 아니야.
- 아들
- 요 앞에 바다 있잖아.
- 나
- 거긴 초등학교야.
- 아들
- 난 거기서 바다 수영하는 게 제일 좋아.
- 나
- 딸 어디에 버렸어?
- 아들
- 바다에는 모래도 많고.
- 나
- 어디에 버렸냐고!
딸이 옥수수모래 포대를 어깨에 이고 들어온다.
- 딸
- 사왔어. 졸라 무겁다. 이거 받아줄 사람?
- 아들
- 왔구나.
- 딸
- (발치에 옥수수모래를 패대기치듯 던지고) 졸라 졸라 졸라 무겁구나. 옥수수모래라는 건.
- 아들
- 그냥 모래가 아니니까.
- 딸
- (나를 보고) 안녕.
- 나
- … 영주야.
- 딸
- 엄마는?
- 아들
- 차가 없어서.
- 딸
- 아, 그 약간… 매콤한 차?
- 나
- 영주야.
- 딸
- 언니는 왜 차를 안 마셔?
- 나
- 영주야?
- 딸
- 응.
- 나
- 너… 많이 컸다.
- 딸
- 응. 나갔다 왔더니 졸라 금방 크네.
- 아들
- 남는 찻잔이 없네.
- 딸
- 괜찮아.
- 나
- 버려진 줄 알았어.
- 딸
- 누가?
- 나
- 네가.
- 아들
- 바다 수영은 해봤어?
- 딸
- 아직. 금방 가봐야 돼.
- 나
- 어디 가
- 딸
- 언니.
딸, 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 딸
- 엄마가 나한테 그랬어. (입모양으로) ○ ○○ ○○○ ○ ○○○ ○○ ○○○○ ○○.
- 나
- 못 알아듣겠어.
- 딸
- 나 그 말 듣고 정신 차렸어. 그래서 옥수수모래를 사러 나갔지. 근데 사방을 뒤져봐도 옥수수모래를 안 파는 거야. 정말 모든 곳을 돌아다녔거든. 코사마트 레몬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이케아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더 현대도 가봤다. 근데 옥수수모래가 없어.
- 나
- 옥수수모래가 왜 필요한데? 고양이도 없잖아.
- 딸
- 내가 옥수수모래를 어디서 찾았게?
- 나
- 모르겠어.
- 딸
- 바다에서 찾았어.
- 아들
- 바다 좋지. 바다 수영하는 거 정말 좋아.
- 딸
- 언니도 한 번 가 봐. 요 앞이야.
- 나
- 진짜로 갈 거야?
- 딸
- 응.
- 나
- 안 가면 안 돼?
- 딸
- 응.
- 나
- 왜?
- 딸
- 고양이가 없잖아. 고양이를 찾으러 가야 돼.
- 나
- 고양이 없어도 되잖아.
- 아들
- 안 되지. 이젠 옥수수모래가 있잖아. 고양이가 있어야 해.
- 나
- 니가 가서 찾으면 되잖아!
- 아들
- 난 안 돼. 엄마 곁에 있어야 돼.
- 나
- 이모 곁엔 영주가 있으면 되잖아.
- 딸
- 언니 난 엄마랑 같이 못 있어.
- 나
- 왜?
- 딸
- 엄마가 나한테 말을 했으니까.
- 나
- 뭘? 대체 뭘! 나 진짜 못 알아듣겠단 말이야, 너희가 하는 말들 다 못 알아듣겠어! 진짜 모르겠어.
나, 아이처럼 엉엉 운다.
딸,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귀에 대고 소리친다.
딸,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귀에 대고 소리친다.
- 딸
- 난 이제 더 이상 너 때문에 시간 빼앗기기 싫어!
사이
- 딸
- 라고 했잖아. 이제 알겠지?
사이
- 딸
- 그럼 난 갈게. 안녕.
딸, 떠난다.
아들, 딸에게 손을 흔든다.
나, 딸이 떠난 자리를 보고 있다.
아들, 딸에게 손을 흔든다.
나, 딸이 떠난 자리를 보고 있다.
- 아들
- 영주야.
- 나
- (아들을 본다)
- 아들
- 차를 좀 마셔 봐. 몸에 좋아. 따뜻하고. 향기롭고. 약간… 매콤하고.
나, 찻잔을 오래 본다.
- 아들
- 다 마신 다음에 바다 수영을 하러 가봐.
- 나
- 거긴 초등학교 자리인데.
- 아들
- 이젠 바다가 됐어.
- 나
- 몰랐어.
- 아들
- 나가보면 알아.
- 나
- 하나도 모르겠어. 여기는.
- 아들
- 괜찮아. 차를 마셔 봐.
- 나
- 왜 자꾸 마시라는 거야?
- 아들
- 기억하라고. (사이) 몸에 좋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거. 이것만 기억해. 중요한 건 이게 다니까.
나, 찻잔을 다시 내려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찻잔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끼운다.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신다.
나, 차를 끝까지 다 마시고 찻잔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천천히 찻잔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끼운다.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신다.
나, 차를 끝까지 다 마시고 찻잔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 아들
- 어때?
사이
- 나
- 맛있어. 약간… 매콤하고.
- 아들
- 매콤하지.
- 나
- 좀만 더 줘.
- 아들
- 안 돼.
- 나
- 왜?
- 아들
- 없으니까.
나, 빈 찻잔을 보다가
- 나
- 내가 여기 다시 온 게 몇 번째야?
- 아들
- 안 세어 봤는데. 네가 처음 왔을 땐 바다가 초등학교였지.
- 나
- 그럼 너는-
- 아들
- (말 끊고) 이제 일어나.
- 나
- 왜?
- 아들
- 내가 여기 있을 거니까.
사이
나,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자리에서 일어난다.
- 나
- 다시는 안 올 거야.
사이
- 아들
- 그래. (사이) 나가면 바다 수영 꼭 해봐.
나, 뭔가 더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떠난다.
아들, 혼자 테이블에 앉아 찻잔을 보고 있다.
사이.
이모가 찻주전자를 들고 돌아옴과 동시에 모든 게 어두워지며 사라진다.
막.
아들, 혼자 테이블에 앉아 찻잔을 보고 있다.
사이.
이모가 찻주전자를 들고 돌아옴과 동시에 모든 게 어두워지며 사라진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