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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앞에서

자기만족충만

이용훈

제221호

2022.06.30

2022 [희곡]코너는 ‘다른 손(hands/guests)’, ‘다시 쓰기’, ‘자기만족충만’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됩니다.

‘자기만족충만’은 작가 스스로가 추구하는 사유 방식, 세계관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입니다.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지점들을 충만하다고 느낄 때까지 끈질기게 탐구합니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와 형식을 작품을 통해 관철시키는 작가중심적 작품들을 만납니다.

(독백, 당신 앞에 검은 오리새끼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어떤 말을 먼저 꺼낼 것인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테이블에서는 다수의 오브제(돌멩이, 뼈조각, 태양지구달 궤도 천문관 모형, 흰 쥐 한 마리)와 환등기, 마운트에 넣어져 있는 슬라이드 필름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연기자는 환등기의 스위치를 누르며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빠르게 또는 느리게 넘긴다.
*괄호 속 이미지는 대체 가능하며 연출자에 의해 읽는 이의 의해 교체 가능하다. 무대 지시문은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나는 책상에 앉아 필름을 하늘로 향해 확인한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환등기를 작동 시킨다.

(모자, 백정, 먹구름, 원시인-원시인 이미지는 네안데르탈인보다는 풍자적인 이미지였으면 좋겠다. 트럼프를 생각했지만, 푸틴으로 교체한다)
날씨를 연구했어. 몽상가, 연금술사, 무당, 백정, 무두쟁이 등등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기도 해. 날씨를 예측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의심 한번 할 수도 있잖아. 확률? 우연? 관찰? ‘나는 날씨를 점치겠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나는 조금 힙해, 그러니 나를 믿어도 좋아’ 이렇게 말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날씨를 예측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알고 싶어 했어. 그건 목마름이나 갈증과는 다른 거야. 굶주림 혹은 허기진다, 라는? 나 많이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이런 거.

(시간, 달, 사람들-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
때는 시간이 생기기 전. 날씨를 연구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당연히 돈이라는 개념과 그것의 축적 가능함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였으니까. 다만 달그림자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동안을 시-간이라며 몇몇의 사람들이 어렴풋이 인지를 하고 있었을 뿐. 시와 간이 쓰여진다. 적는다. 받아적는다. 읊는다. 중얼거린다. 장소는 이곳 여기, 지금 당신들이 앉아 있는 곳이야. 시-간이 흐른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식물, 담뱃잎, 카발리즘의 석판화 이미지, 안개가 자욱한 도시의 마천루, 오후 빛 한적한 공원-룩상부르크 공원)
산으로 들로 바다로 사막으로 떠돌아 다녔어. 식물을 채집했고, 뿌리를 뽑고, 잎사귀를 말렸어. 그들은 그것의 용도와 사용법을 정리했어.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채집한 식물을 씹거나 불을 붙여 연기를 마셨지. 쉿! 들어봐, 그들은 지금 어딘가를 헤매고 있어. 누군가 떠도는 목소리를 들었나 봐. 또 누군가는 빛을 봤다고 했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포근함에 이끌렸어. 그들은 그것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보였어. 그들의 눈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어. 눈이 불타고 눈이 젖고 눈이 마르고 눈이 녹아 흐르고 흐르던 눈이 다시 꽁꽁 얼고, 굳은 믿음. 사람들은 날씨를 예측하길 원해. 내일은 어떨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

나는 환등기의 작동을 멈추고 트레이를 교체한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흡사 프로이트를 닮은 초상, 흡사 다윈을 닮은 초상, 월식의 이미지, 스톤핸즈,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외침)
사람들은 그곳에서 잠시 머물기를 원했어. 그곳은 서울숲이었고 망원동이었고 한강이었고 연안부두에는 갈매기가 날아가고 콧부서토어의 이민자를 위한 쉼터였고 아베이로를 넘나드는 대서양의 파도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어.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사람들은 조금 더 머물기를 원했지. ‘조금 더’ 하고 외쳤어. ‘나는 쉬고 싶군요’. 사람들이 조금 더 그곳에 머물기를 희망하던 어느 날이었지. 달그림자가 사라지고 태양 뒤로 숨어 버렸어. 그때,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야. 달그림자가 일곱 번 가려지고 달의 절반 정도가 사라지고 있다. 날씨를 찾아 헤매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마을과 마을에서 유령처럼 나타나고 사라졌어. 달그림자가 가려지고 사람들이 말하길, 그는 날씨를 예측하기보다 환상을 쫓고 있었던 거야.

(울고 있는 아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아이, 동물원을 구경하는 사람들, 컵에 담긴 물, 바닥에서 떨어진 아이스크림)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보다는 환상을 쫓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지. 날씨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말했어. 어디서도 날씨를 찾을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고.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쫓고 있다. 시간은 흐른다. 날씨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아무도 모른다. 혹시 여러분들은 알고 있나?

(잉글랜드 백파이프, 대서양의 파도가 인쇄된 엽서, 촛불과 해골)
파도가 일어서고 눕는 바다를 상상해보자고. 대풍이 몰려오는 경포대 말고 조금 더 멀리 가보자고 남태평양, 대서양? 그 정도 바다에 수면 아래 깊은 곳 말이야. 그 밑에 날씨를 측정하는 도구가 설치되어 있어. 어떤 도구인지를 상상해봐. 그건 동물의 내장으로 만들었을 거야. 몇 개의 주둥이가 있고. 외부에서 주입된 공기가 내부에서 수축하고 팽창하는 정도에 따라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최신 지식이 접목된 것이라고, 그런 게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하지만 기계는 작동하지 않을 거야. 사실은 정확히 작동하고 있는데, 있을 건데. 미세하게 떨리는, 미약하게 반응하는, 내장 주머니를 관찰할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이 없을 뿐이라고. 이것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어. 결국 올 거야, 올 거라 나는 믿고 싶어.

나는 두 팔을 위로 쳐든다. 뒷머리를 받친다. 나는 처음보다 조금 더 여유로운 자세를 취한다.

(클로즈업 된 눈, 케네디의 암살을 목격한 사람들, 허공에서 폭발한 우주로켓, 50년대 탄광 광부와 70년대 골목길 풍경, 베를린 중앙역 우크라이나 난민의 대기 줄, 눈사람, 한 밤 눈 덮인 공원)
1700년이 흘렀을까. 아니면 한참이 지난 어느 세기일 수도 있지. 도구는 그곳 깊은 바다에서 여전히 작동 중이고 자리하고 있어. 날씨를 예측하고 싶어서 만든 도구지만, 그 도구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우스꽝스럽잖아. 믿을 수 없겠지. 머리를 굴려보라고.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날씨 측정은 절대 불가능이다.’ 사람들은 실망했고, 실망은 포기를 낳고, 포기는 망각을 낳았어. 날씨 측정을 부정하고 싶었겠지. 측정할 수 없는 그들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은 결국 날씨는 환상이야,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싶었어. 날씨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누가 말했더라. “그렇습니다. 아직 촛불이 꺼지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라고.

환등기의 이미지는 이미 다 돌아갔고, 나는 빈 화면을 계속 돌린다. 환등기의 빛을 비추는 커튼은 여전히 밝고 환하다. 나는 트레이를 교체한다.

(파리의 골목, 꽃병, 호랑이, 하이에나에게 재갈을 물린 사람, 해변에 아프리카 난민, 네팔 포카라 호수 해 질 녘 풍경)
날씨를 까맣게 잊을 무렵 떠돌이 약초꾼이 마을에 나타났지. 그는 작은 약병 하나를 배낭에서 꺼냈어. 병 속 물약을 마시면 날씨를 만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떠돌이 약초꾼이었지. 마을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어. 오래전 그들 핏줄들이 꿈속에 빠져 영원히 잠들어 버린 사건들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던 거야. 그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무엇을 더 믿어야 하나. 우리에게 믿을 것이 더 남아 있는가?

나는 갈증을 느낀다. 목이 마르다. 침을 삼킨다.

(일본식 정원, 달, 해 질 녘 산업단지, 거리의 취객들, 누군가의 토사물, 네팔 히말라야, 열기구, 병원 로비 풍경, 전신주에 걸친 영혼이 파지직 하고 방금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떠돌이를 경계했지. 달그림자가 사라지고 나타나고 무수히 반복되는 동안. 태양의 색깔이 진하게 흘러가고 있어. 쫓아내자, 믿어보자, 날씨는 불행을 동반한다. 누군가가 외쳤지. 불신에 찬 그들. 약초꾼은 홀연히 사라졌다. 단 한 병을 담겨두고 말이야. 달그림자가 숨어 버렸지. 색의 온도가 짙은 파란색으로 올라갈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몇몇의 사람들이 약을 들이켰어. 수많은 사람들이 약제를 사용해 무의식으로 들어가고 꿈속을 헤매이던 한 시절이 있었어. 날씨를 측정할 수 있는 신기한 도구들. 옛 기억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 혹시 나도 우리도 운이 따른다면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전설 속 꿈에 들어가 보자는 생각. 꿈은 언제나 달콤하니까. 무의식은 말이야, 아무도 모른다고. 누가 알겠어? 무의식이든 그게 꿈이든. 날씨는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어. 물약을 마셨던 사람들이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지. 어떤 사람은 눈이 멀고, 어떤 사람은 귀가 막혔어.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어. 날씨는 예측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맛보여줬지. 그 맛은 너무 오묘한 맛이라, 뭐랄까… 녹차 사만코의 맛 같다고나 할까. 날씨는 떠돌이처럼 흩어지고 잊혀지고.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옆에 머물러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존재인 거야. 발자국이 없는 헬륨풍선 같은 존재. 사라지기를, 어서 사라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북극, 남극, 북극, 남극, 북극, 남극, 이누이트의 얼굴 사진)
날씨는 그저 먼 과거의 신비한 대상이고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악몽이야. 날씨는 정성스럽게 세공된 다이아몬드지만 냉동고에 투명한 얼음 같아. 날씨는 이불 속 누런 얼룩 솜뭉치지만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야. 날씨는 아코디언의 ‘가’ 건반이지만 누르면 ‘가-’하고 사라져버린다. 날씨의 입김이 볼에 닿고 있는데, 볼은 결코 빨개지면 안 되는 것 같잖아.

(알퐁스 도데의 초상, 양, 산, 풍차, 목동들, 배낭을 울러맨 트레킹족, 아이슬란드)
산속에서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누군가 내려왔다. 흰 털을 머리부터 발목까지 덮은 사람들이었어. 또 누군가는 회색 털을 허리를 두르기도 했다. 그들의 배낭에는 여러 가지 도구들과 약초와 쥐 몇 마리가 있었어. 뒤집어쓴 털가죽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경계하게 만들었지만, 점차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온 그들을 그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그들은 그렇게 마을과 마을에 조용히 천천히 자리 잡았지. 나이 지긋한 촌로가 말하길. <그들은 강물이야. 흐르는 강물 말고. 헤메이는 강물. 갈라지는 강물. 스며드는 강물. 그러다 큰 강줄기를 만드는. 들짐승을 조련하고 집짐승으로 키우는 사람들. 별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그저 구경하고 관찰하고 들풀에 맺히는 흔적을 찾는 사람들. 개에게 사회 조직을 가르치고 조직 관리의 방법론을 가르치는 지성적인 사람들이라고. 낯선 사람들이라고> 훗날 우리는 역사적으로 한 명의 사람을 기억한다. 그는 프로방스 산악 지대에서 마을 사람과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이었어. 사람들은 그들을 목동이라고 불렀지. 사람들은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다만, 강물은 흐른다, 라고 생각했을 뿐. 이른 아침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비비면 달아나는 선 잠 같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이 어딘가에 모여 노래를 부르면 그들의 목소리는, 그 목소리는 바람과 수분을 불러온다. 구름은 노래가 되고 별자리의 행적이 잎사귀 가장자리에 머무르는 이슬이 된다. 심드렁한 개와 늙은 주인이 광장에서 노래 부르는 목동을 지켜보고 있었어. 동네 아이들이 한바탕 웃고 떠들었어. 한 무리의 청년들이 이리 몰려와서 저리 몰려갔어.

나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오브제 하나를 집어 든다. 치즈 조각을 집을까 뼈 조각을 집을까 고민한다.

(정육점, 인디언, 고래, 피노키오, 스티브 호킹의 초상, 치즈를 먹는 사람, 수영을 하는 사람, 짐을 실은 당나귀와 주인)
뼈와 뼈 사이가 아프거나. 허리에 통증이 생기면. 코끝에 콧물이 맺히면. 잠에서 깨어날 때 눈가에 맺히는 눈곱의 위치에 따라. 구두 뒤축의 닳은 방향에 따라. 싱크대 배수구의 음식 찌꺼기의 냄새에 따라. 떠오르는 단어를 무작위로 나열하고 조사를 붙이면. 침을 뱉어서 튀는 거리와 방향에 따라. 벼룩 간의 크기에 따라. 앞으로의 날씨는 예측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어. 조상님이나, 먼 곳에 정착한 누군가, 신성한 동물이 (역사가들은 흰 닭 또는 두더지라고) 나오면 날씨를 알 수 있다고. 춤을 추고, 웃고, 떠들면서, 하늘에 빌면, 날씨가 새겨진다는 믿음, 목동들은 중앙에 불을 피우고 북을 두드리고 입으로 동물 소리를 내면서 춤을 추고 담배를 나눠 피우고 빌고 또 빌고 있어. 간절한 믿음이 들리니? 그 마음은 서북 쪽 끝에 살고 있는 목동들에게도 같은 거야. 동물의 배설물을 무의식적으로 밟고, 염소의 방광을 꺼내서, 그 형태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어. 하늘의 별자리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고 읽고 또 읽는다면 날씨가 스스로 다가온다 하지. 고구마별처럼. 주전자의 끓는점과 고래의 썩은 이빨을, 빗자루의 닳고 닳은 털끝을, 곰팡이 낀 치즈의 냄새를, 연필 머리의 이빨자국을, 바지 끝자락에 묻은 고양이 똥을, 아침에 마시는 검은 콩 두유를, 좌변기에 물통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그리고 사랑과 증오를 우울과 애증을 조롱과 멸시를 그리고 그리고 오래되고 낡은 시간과 다가올 먼 시간에서, 하물며 깊은 바다의 설치된 오래전 도구에서도 일정한 주기가 존재한다고 말이야.

나는 두 팔을 벌려 하늘로 향한다. 마음껏 환호하고 마음껏 소리친다. 함께 기뻐하고 나눈다.

(해방의 순간, 세계를 경악케 한 순간, 접시에 놓인 당근케익)
사람들은 날씨 측정 자체를 여전히 부정하면서 동시에 세상 모든 날씨를 예측 가능하다고 믿기 시작했어. 날씨는 측정할 수 없지만 예측 가능하다. 날씨는 예측할 수 없지만 측정 가능하다.

나는 환등기의 트레이를 교체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불가리아의 농부, 숲, 자작나무, 호수, 여객선,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
구름을 분류하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2300개의 별자리를 솟구치고 내리치는 비를 꾸준하게 바라본다. 그들은 산 밑 어딘가에서 작은 조직을 결성하려고 해. 목동들은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조직을 키우고 조금 더 키워나간다. 12명의 목동과 헛간에서 그들과 지내던 쥐 몇 마리가 전부였지만. 그 조직을 최초로 이끈 사람은 산 속에서 양 23마리를 자연과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한 목동이다. 얼마나 황홀한 결과인가? 수만 년 전부터 구름과 별자리를 바라보던 목동들은 미약하게나마 날씨 예보를 흉내 낼 수 있는 오늘날을 축복하고 있어.

나는 자세를 바로잡는다.

(너무나 현대적인 물건들, 우유,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 자전거, 베너, 한강에서 요트를 타는 사람, 담배를 집고 있는 손, 헬멧)
얼마나 많은 달그림자가 태양 뒤에 숨었던 걸까.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서서히 이해를 하고 있어. 부의 축적만큼 날씨도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궁금해. 포크의 날을 2개로 만들까? 3개로 만들까? 선풍기의 날개를 3개로 만들까? 4개로 만들까? 세상 모든 것들을 고민하는 시대가 왔고. 드디어 도착했고. 모든 것을 고민한다 해도 여전히 날씨는 모두에게 최우선의 고민이야. 풀어야 할 영원한 과제이기도 해.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목동들의 주옥같은 경험을 체계적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깨달았어. 숫돌을 만들고 아코디언을 만들고 볼펜을 만들고 오븐을 만들었지. 쿠키를 대량 생산하는 컨베이어 벨트와 강에 작은 수력 풍차를 만들었고. 밭을 갈던 한 농부의 머리 속에서 냉장고의 개념이 싹트고 있었어.

나는 더 데드 사우스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환등기에는 어떠한 이미지도 없다. 철꺽철꺽 빈 트레이가 넘어간다.)
아주 멍청한 소리를 내지르는 검은 오리새끼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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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이용훈
물류창고에서 상하차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희곡과 시를 쓰고 있습니다. 시집 『근무일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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