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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

자기만족충만

유재민

제225호

2022.11.10

2022 [희곡]코너는 ‘다른 손(hands/guests)’, ‘다시 쓰기’, ‘자기만족충만’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됩니다.

‘자기만족충만’은 작가 스스로가 추구하는 사유 방식, 세계관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입니다.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지점들을 충만하다고 느낄 때까지 끈질기게 탐구합니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와 형식을 작품을 통해 관철시키는 작가중심적 작품들을 만납니다.

등장인물
배우 1, 2, 3 그리고 4


무대 위에는 의자 4개가 일렬로 놓여 있다. 무대 위 배우 2가 관객을 응시한다.
배우 2
어렸을 때요? 저는 공주에요…. 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공주인 줄 알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배우 1과 3, 인형을 들고 등장.
배우 1
아이고 예뻐라.
배우 3
어쩜 이렇게 눈도, 코도 예쁘고, 입도 예뻐? 우리 예슬이~.
배우 1과 3 멈춘다.
배우 2
막내딸로 태어나서 금지옥엽 키워진 저는, 제가 정말 공주인 줄로만 알았어요. 심지어는…
배우 4 풍선을 들고 등장.
배우 4
예쁜 공주님~ 풍선 하나 가질래?
배우 4 멈춘다.
배우 2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도 절 공주님이라고 불렀으니까요. 저는 제가 공주인 줄 알았어요. 옷도 긴 치마만 입고, 머리도 예쁘게 올리고. 근데 초등학교에 가니까 아무도 날 공주라고 부르지 않더라구요. 제가 옛날 만화영화에 나오는 공주랑은 거리가 멀거든요. 그래도 집에선 어른들이 제가 가수들을 따라 하고 재롱을 피우면 공주라고 불렀어요. 하루는 제가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시고 삼촌이.
배우 1
우리 예슬이, 이름처럼 아주 예술가네… 예술가네….
배우 1, 셀프에코를 하며 퇴장.
긴 사이.
배우 2
그때 깨달은 거죠. 그래! 난,
다 같이
예술가였던 거야!
배우 1
그때부터 저는 제가 예술가라고 생각했어요.
배우 3
나는 곧 죽어도 예술을 할 사람이라고. 이 세상은 나를 담기엔 너무 그릇이 작다고
배우 2
제가 보는 모든 것들이 마치 작품 같았고, 나는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연이라고 생각했어요.
배우 4가 으스대며 등장. 화려한 조명이 배우 4를 감싼다.
배우 4
(심취한 포즈로) 내가 가는 길이 곧 작품이 되리라…!
사이.
배우 2
아마 꽤나 꼴불견이었을 거예요. 그때의 저는.
배우 1
근데 상관없었어요. 남들이 날 꼴불견으로 보건, 특이한 애로 보건.
배우 3
오히려 좋았어요. 나는 특별하다는 훈장 같았죠. 남들과는 다른 게 나의 숙명이요 사명이라고 생각했죠.
배우 4
그때부터 예체능이라면 뭐든 해봤죠. 공부는 안 하고 악기도, 노래도, 춤도, 연기도… 잘하려고 노력도 무진장 했고.
배우 2
아 맞다. 사진도 좀 찍어봤네요.
배우 3
카메라 좋은 걸 사지는 못해서 핸드폰 사진기로 이것저것 찍어보다가 나중에는 디카로 찍었어요. 원래는 DSLR을 사고 싶었는데. 아시잖아요. (손으로 돈 모양을 한다)
배우 4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했다가 아주 집에서 쫓겨날 뻔했지.
배우 1, 2, 3, 4 맞장구를 치며 웃는다.
배우 2
미술이요? 아, 미술은….
배우 4
(너스레를 떨며) 사실 제가 그림을 못 그리거든요.
배우 1, 2, 3, 배우 4를 째려본다.
배우 2
아무튼, 왜 연극이었냐고 물으신다면… 그러게요.
배우 1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게 고등학교 올라가는 방학이니까….
배우 3
아, 중학교 진로시간 때였네!
배우 4 진로상담 강연을 하는 배우로 분한다.
배우 4
왜 배우가 되었냐고요? 아주 나이스한 질문이네요. 저는 퍼포밍아트를 사랑해요. 연극이나 뮤지컬을 생각하면 학생 여러분이 좀 더 쉽게 언더스탠할 수 있겠네요. 퍼포밍아트는 종합예술이거든요. 라이팅, 스테이지, 코스튬과 같은 무대미술, 음향과 음악 같은 요소와 퍼포먼스. 모든 걸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바로 배우거든요.
배우 1
그때 결심했죠.
배우 2
아, 나도 배우가 되어야겠다.
배우 3
그래서 연기학원에 갔어요.
배우 1, 2, 3, 4는 무대에 일렬로 서서 다리찢기 등과 같은 자세를 취한다.
배우 4
지옥 같은 나날도 많았고!
배우 3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닌가!
배우 1
생고생해놓고 아무 데도 못 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배우 2
그래도 버텼어요!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 예술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다 같이
으아아!
비명 끝에 모두 바닥에 쓰러진다. 천장에서 종이 한 장, 합격증이 떨어진다.
배우 2
그리고… 시작된 거죠.
배우 4
마이 예대 라이프!
배우 1
마치 훈장을 받은 것만 같았어요.
배우 3
이름만 들어도 짜릿했죠.
다 같이
연영과!
배우 3과 배우 4가 가운데에 선다.
배우 3
혹시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배우 4
아, 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연영과에요….
배우 1
연영과와 예대생! 이 얼마나 멋진 수식어인지!
배우 2
모든 게 잘 풀릴 것만 같았어요. 예대를 수석졸업해서 온갖 공연과 매체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국민 배우로 자리 잡고… 연기력을 인정받아서….
배우 3 높은 단 위에 올라가 종이를 들고 캐스팅을 발표한다.
배우 3
20NN년 연극학부 시즌 공연 갈매기 캐스팅 발표합니다. 니나 역에 아무나….
배우 3 음소거로 대사를 마임한다. 배우 1, 2, 4 배우 3을 쳐다본다.
배우 1
니나가 아니었어요. 주인공이 아니라니….
배우 4
그럼 내가 뭔데! 아르까지나야?
배우 3 다시 목소리를 높인다.
배우 3
하녀 역에 국예슬.
배우 3 멈춘다. 잠깐 사이. 모두 절규한다.
배우 4
하녀라니? 그런 역할이 있었어?
배우 1
교수님이 그냥 모두한테 무대 설 기회 주려고 급조한 역할 아니야?
배우 3
마샤도 아니고… 하녀라니… 하녀라니!
배우 2
말은 해? 몇 분이나 나오냐고?
다 같이
니나는 나야. 나라구!!!
모두 주저앉는다.
배우 2
제가 처음 맛본 쓰디쓴 패배의 맛이었어요. 왜냐하면 사실 확신했거든요. 딱 오디션을 보고 나왔을 때.
배우 4
(위풍당당하게) 찢었다.
배우 3
교수님들도 제가 준비한 독백이 끝나니까 웃으셨거든요. 그 미소로 확신했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니나를, 그리고 그 외에 무수히 많은 여주인공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배우 1
근데 니나가 아니라니.
사이.
배우 3
아픔을 뒤로하고 상황을 분석했죠. 그리곤 결론을 내렸어요.
배우 1
내가 니나가 되지 못한 건….
배우 4
(벌떡 일어나며) 내가 신입생이라서야!
배우 1, 2, 3 배우 4를 쳐다본다.
배우 4
아무리 그래도 상도덕이 있지. 나 같이 갓 들어온 신입생을 덜컥 주연으로 캐스팅하면 좀 그렇다고 교수님이 생각하신 거지. 선배들이 텃세 부릴 수도 있잖아. 아~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졸업하는 사람들한테 한 번 더 학공에 주연으로 설 기회를 주고 싶으셨던 거야. 실제로 니나 맡은 선배 인성 개차반이기로 유명했어요. 가뜩이나 분장실에 화장대 모자란데 지 혼자 두 칸 쓰더라니까요.
배우 2
아무튼 그렇게 정신승리로 무장한 저는 스타니스랍스키 선생님의,
배우 3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
배우 1
라는 말을 가슴에 새긴 채, 저의 첫 배역에 최선을 다했어요.
각각 대본을 외우는 등 연습을 하는 동작을 한다.
배우 2
연습이란 게… 참 신기해요. 첫 연습 때의 각오는 잠시. 너무 가기 싫고 귀찮을 때도 있거든요. 근데 사람들한테….
배우 1
나 연습이 있어서.
배우 4
…라고 말하니까 있어 보이는 거 있죠.
배우 3
제가 뭐라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애들은 그냥 강의실에 앉아서 노트필기하고, 전공책 읽고 그러잖아요.
배우 4
근데 전 동기, 선배들이랑 같이 “창작”이라는 걸 하고 있는 거죠.
배우 1, 2, 3
(홀린듯) “창작”
배우 4
다들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연습은 힘들었지만 창작을 위해서라면.
배우 3
그런 생각도 했어. 꼭 무대에서 죽고 싶다 뭐 이런.
배우 1
그리고 외부 공연에 비교적 일찍 나가게 됐거든요.
배우 2
또래 친구들이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고 알바 할 때. 나는 무대에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했으니까요.
배우 3
조금이지만 돈도 받았고
배우 4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상식 음악과 함께 화면에 예술인 패스가 뜬다.
배우 1
국.예.슬.
배우 2 감격한 듯 배우 1에게 간다. 배우 3과 4 박수를 친다.
배우 1
위 사람은 대한민국의 예술의 무궁한 발전에 기여하고 공연예술의 위상을 드높여 위 증표를 수여합니다.
배우 2
예술인 패스가 나오자 전 다시 태어났어요.
배우 3
자칭 예술가에서
배우 4
국.가.공.인. 예술인으로!
배우 1
그때 생각했죠.
배우 2
아… 나는 돈 없어도 예술만 있으면, 연극만 하면 살 수 있구나! 그런데….
음악과 화면이 꺼진다.
배우 3
그게 아니었던 거죠.
배우 1
예술인 패스를 받으면 공연 할인을 해줘요.
배우 4
근데 어차피 못 봐요. 돈이 없거든.
배우 2
공연 기회가 와도 페이가 없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식대 지원이면 아주 복지가 좋은 편에 속하는 거죠.
배우 3
돈을 안 쓰면 그나마 다행이지. 사비 들여서 공연 올릴 때가 더 많아요.
배우 1
지원사업이요? 지원금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 하난 줄 알아요?
배우 4
오디션이요? 보는 족족 떨어져요.
배우 1
그래서 직접 공연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지원사업도 알아보고 기획안도 쓰고 대관도 알아보고, 조명도 하고, 뭐도 하고…. 아주 원우먼 제작사였다니까요?
배우 2
그래. 지원사업 얘기 다시 나오니까 말하는데요.
배우 3
제가 출연자 지급료를 기입해서 기획안을 썼거든요. 근데 글쎄….
배우 4
어머~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돈까지 받으려고 해요?
배우 2
라던지.
배우 1
여기 예산 사용에 대한 부분. 인건비를 줄이고 무대 소품비를 늘려.
배우 3
배를 곯아야만 예술이 나오나요.
배우 1
하루는 대학 동기를 만났어요. 전공은 달랐는데 항상 저 보고 멋있다고 해줬던 애. 취업 턱을 낸다고 해서 만났어요. 꽤 비싼 레스토랑에 갔는데 턱턱 시키고 돈도 자기가 내는 거 있죠.
배우 2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나눠서 내자.
배우 4
아, 이 정도 살만큼은 벌어.
배우 1, 2, 3 모여서 배우 4를 바라본다. 배우 4, 그대로 멈춘다.
배우 1
야 졸라 멋있다.
배우 2
내가 아니라 얘가 멋지네.
배우 3
개멋있다 진짜.
배우 4
(정지 상태에서 풀리며) 나 재연하면서 소름 돋았어, 지금.
배우 2
근데 친구가 멋져보이는 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제가…너무….
배우 3
초라해 보였어요.
사이.
배우 1
분명 내가 앞서갔는데.
배우 4
멋있는 건… 나였는데.
긴 사이.
배우 2
친구들도 일을 시작하니까 내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더라구요.
배우 3
분명 출발은 내가 먼저 한 것 같은데.
배우 4
난 자리를 잡지도 못했는데.
배우 1
내 공연의 관객석은 동기들과 지인들, 가족으로만 가득 차서 티켓 수익도 안 나는데….
배우 3
친구는 자리를 잡아가는 게 보이니까. 내 현재가, 내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배우 4
계속 이렇게 살면 먹고 살 수는 있는 걸까?
사이.
배우 2
금전적인 거 무시 못 해요.
배우 1
제가 그리던 예술가로서의 모습에 생활고는 없었거든요.
배우 3
저는 제가 바라던 예술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어요.
배우 2
그런 말 하잖아요. 예술은 원래 가난한 거다.
배우 4
개소리!
배우 2
연습이랑 병행해야 하니까 알바를 하거든요. 부모님이 원하는 정규직이 아니잖아요.
배우 1
배우가 될 수 있긴 한 거니?
배우 3
지금이라도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배우 4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하니?
다 같이
언제? 언제? 언제?
배우 4
안 되겠다! 독립을 해야겠어!
배우 4 핸드폰을 들어 부동산 어플을 켠다. 배우 1, 2, 3 가운데로 모여든다.
배우 3
안 되겠다! 그냥 여기 살아야겠어!
배우 1
돈을 벌어서 나가자!
배우 2
근데 한번 또래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드니까 저의 모든 게 부끄러워지더라구요.
배우 1, 3, 4 배우 2를 중앙에 둘러싸고 선다.
배우 1, 3, 4
언제? 언제? 언제?
배우 2
부모님 잔소리 하루 이틀 듣는 것도 아닌데. 원래는 그냥 흘려들을 수 있었는데. 사춘기가 늦게 온 것 같았어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야 할 시절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이제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무서웠어요. 그래서 알바를 미친 듯이 하기 시작했어요. 뭔가에 홀린 듯. 나의 온종일을, 한 주를 빼곡하게 돈을 버는 일로 채웠죠. 일에 집중하면 다른 생각 안 해도 되니까요.
배우 1, 3, 4 음소거를 한 듯 입만 움직인다.
배우2
현재를 사는 기분. 다른 걱정 안 해도 되고,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일만 신경 쓰면 되니까요. 창작도, 연극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별로 할 필요가 없었어요. 당장이 급하니까.
배우 4
그리고 통장에 일정하게 숫자가 찍히니까.
배우 1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수치가 증명해주니까.
배우 3
그래서 더 예술이 아닌 일에 온 정신을 쏟아부었나 봐요.
배우 4
근데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리기 시작했어요. 예술이.
배우 3
처음에는 생계유지를 위해서 시간이 안 나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배우 1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미뤄졌던 게.
배우 2
내 일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때가 왔어요.
배우 3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지쳐 잠들고.
배우 4
주말엔 가끔 친구도 만나고.
배우 2
나는 사실.
배우 1
죽을 만큼 바쁜 게 아니었어요.
배우 2
안주했던 거예요.
배우 3
더 신기한 건요, 나는 아직 살아 있었어요.
배우 4
예술과 멀리 떨어져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는데.
배우 1
죽지 않았어요.
배우 2
잠깐이나마 그만두고 나니까. 보이더라구요.
사이. 배우 1, 3, 4 퇴장.
배우 2
네. 이게 제가 연극을 그만둔 계기입니다. 독립도 하지 못했어요. 나에게 중요한 건 더 이상 그게 아니었거든요. 만족스러운 답변이 되지는 않았으려나요? 제가 연극을, 예술을 그만둔 이유는 당신이 볼 때는 꽤나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일 수도 있겠네요.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다든지, 사람에 질렸다든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든지. 뭐 이런 극적인 사건이 없어 당신을 실망시킨 것 같네요. 하지만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이제 다른 반대편 갈래길로 출발하는 일만 남았어요.
배우 2 일어선다.
배우 2
어렸을 때 어느새 내가 공주가 아닌 걸 깨달았던 것처럼. 나는 모든 걸 감수하면서 예술을 업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어릴 적 내가 공주가 아니어도 잘 살았던 것처럼. 나는 괜찮을 거예요. 죽도록 힘들겠죠.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이들을 보며, 꿋꿋이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며 복작복작 뭔가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보며. 나는 가슴 저리게 부러워할 거예요. 아마 당분간 연극도 못 보고, 극장을 피할 수도 있겠네요.
사이.
배우 2
근데요, 대단한 일이거든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다 바쳐 해왔던 일을 그만두는 거.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실패가 아니에요. 당신 눈에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지만요. 끌어모은 용기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거,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니까요.
사이.
배우 2
(장난스레) 그리고 예술인 패스 없으면 예술가가 아닌가요? 업으로 하는 예술가는 아니겠지만. 어떤 형태이건, 제 삶에 예술은 항상 함께 할 거니까요.
배우 2 퇴장.
배우 2
아.
배우 2 다시 돌아와 예술인 패스를 내민다.
배우 2
다시 반납합니다. 제겐 이제 필요가 없어서요.
사이.
배우 2
언젠가 또 만나요. 당분간은 못 보겠지만.
배우 2 퇴장한다. 암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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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민

유재민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마음이 바뀌는 사람. 그래서 자기소개가 힘든 사람. 자기소개를 쓰는 와중에도 나중에 보면 오글거릴까 봐 걱정한다. 어찌 됐든 글을 계속 쓰고자 한다.
yibi.writ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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