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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의 시작과 끝 사이, 당신이 쓰는 동안

서울연극센터 재개관 기획프로그램 <희곡제: 침묵과 말대꾸> ‘당신이 쓰는 동안’

허선혜

제235호

2023.06.15

5월 26일 금요일 저녁, 서울연극센터 1층에서 재개관 희곡제 부대프로그램인 ‘당신이 쓰는 동안’을 진행했다. ‘당신이 쓰는 동안’은 오픈 토크쇼로서 극작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로 꾸며졌다. 구지수, 배선희, 배해률, 신효진 작가가 패널로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1부는 사전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진행되었고 2부는 관객들이 토크쇼를 보면서 쓴 질문들을 작가가 뽑아서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당신이 쓰는 동안’ 진행자와 참여 작가들이 스탠딩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다. 가장 왼쪽에 앉아 있는 진행자 허선혜가 작가들 쪽으로 등을 돌리고 무언가 질문하고 있고, 그 옆에 있는 작가 배해률이 마이크를 들고 대답하고 있다. 차례로 배선희, 신효진, 구지수 작가가 앉아 있다. 뒷벽에는 서울연극센터 재개관 희곡제 ‘당신이 쓰는 동안’의 홍보물이 보인다.

1부

1. 글쓰기의 루틴이 있나요?
- 철저한 계획형? 벼락치기형?
배선희
청소하는 걸 좋아해서, 차 마시며 천천히 청소하다가 생각난 것들을 글로 옮겨요. 초를 켜기도 하고 쓰고 싶은 작품과 왠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합니다. 왠지 안 풀릴 때는 무작정 나가서 걸으며 오래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어서 끝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지면 루틴은 사라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상에 앉습니다. 안 풀려도 일단 앉고 보는데 그럴 땐 저를 학대하게 됩니다. 머리를 쥐어뜯거나 살을 꼬집거나 흡연과 음주를 지나치게 많이 할 때가 있어요.
처음엔 책도 많이 읽고 여유도 부리고 여기저기 배회하며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하다가 나중엔 꼭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몸을, 저 자신을 조금 덜 소진하는 루틴을 앞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구지수
특별한 루틴은 없는 것 같아요. 대신 하나의 작품을 집필하기 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쓰게 될 이야기에 관련한 자료를 수집해요. 관련 논문을 읽거나 기사를 찾아보고, 당사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아있는 데이터들을 모아나가는 거죠. 그 자료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정리한 후에야 인물이나 이야기의 짜임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긴 수집 과정이 끝나고 나면 초고 자체는 벼락치기처럼 빠르게 쓰는 편입니다. 작품을 고쳐나가는 데에 드는 시간은 또 상황 따라 작품마다 다르고요.
신효진
저는 철저한 계획형이에요. 만약에 제가 세 달 안에 써야 하는 작품이 있다고 하면 리서치 기간을 한 2주에서 3주 정도로 잡고 조사를 한 다음에 크게 덩어리로 나눠서 마감을 만들어요.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카페에 나가서 장면별 마감을 진행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바꿔가는 식이에요. 말로는 되게 그럴듯하지만 실상 매일 카페에 나가서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있다가 돌아올 때도 많고요(웃음). 새로운 장면을 나눠서 쓰는데 예를 들어 ‘오늘은 이 장면에 어디까지 쓰겠다’ 혹은 ‘오늘은 이 장면을 쓰겠다’ 이렇게 목적을 잡고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자신이 너무 불안해요. 제가 또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다는 이상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지키기 위해서 최대한 그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저도 헷갈려요. 사실 작가로서 욕심이 나면 마감을 초과할 수 있는 것인데 마감을 완전히 맞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욕심을 내려놓고 고민의 시간을 조금 단축시켜서 내보내야 하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타협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예전에는 좀 더 작가주의적으로 내가 정말 쓰고 싶고 내가 정말 가고 싶은 방향으로 마감을 늦춰가면서까지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이제는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리고 아침에는 제가 저스러(‘저으러’의 신효진식 표현) 다녀요. 수영하고 글 쓰고 이러는 게 또 행복하더라고요.
허선혜
해률 작가님, 골똘히 생각하고 계시네요.
배해률
저스(저으)는 거 저도 좋아해요. 근데 저는 저스고 나면 힘들어서 꼭 아침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야 하루가 시작되는 그런 패턴으로 지내서요. 철저한 계획형은 아니고 느슨한 계획을 세워서 하루에 뭐라도 조금씩 쓰고 있어요. 그 정도의 약속만 지키고 있고 그게 뭔가 희곡이 아니어도 일기 써도 ‘잘 살았다’, ‘오늘 할 만큼 했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살고 있어요.
허선혜
희곡을 써야 하는 기간에는 어떠세요?
배해률
다행히도 지금까지 그런 느슨한 계획이 너무 쳐지거나 그런 적이 없었어요. 구지수 작가님하고 또 다른데요. 지수 작가님은 리서치 기간을 길게 잡는다고 하셨는데 저는 일단 쓰고 싶은 게 생기면 얼른 뭔가를 쓰고 나서 그걸 매만져 가는 걸 선호해요. 그러니까 제게는 나만 보는 원고를 얼른 빨리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허선혜
사실 저 같은 경우도 계획형이거든요. 저도 마감을 정해놓고 하는 게 마음 편한 사람이어서 신효진 작가님께 공감이 많이 된 것 같아요.
2. 어디서 어떻게 동시대(성)를 감각하고 만나나요?
- 캐치가 빠른 편인가요? 이미 자기 자신 안에 있나요? 자연스럽게 알게 되나요?
배해률
저는 사실 ‘동시대성’을 달성하면서 작업을 해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내가 동시대에서 느끼고 있는 감각이나 발견하는 이미지들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희곡의 동력으로 삼고 작업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동시대성도 갖추면서 오래오래 살아남는 희곡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계속 갖게 돼요.
신효진
저도 해률 작가님이랑 굉장히 비슷한데요. 오히려 오래 사랑받는 희곡은 동시대성을 그렇게 타지 않는다는 생각이 저한테는 있거든요. 그러니까 시대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이라는 것은 시대를 타지 않고 어느 정도 같은 결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어서요. 저도 물론 동시대성에 굉장히 집착하던 때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거 있잖아요, 아주 명작 영화를 보면 지금 봐도 되게 괜찮은데 그때 유행하는 유행어를 쓴다든가 하면 깨지는 그런 것들요. 사실 시대와 상관없이 다시 봐도 공감이 될 만한 이야기가 조금 더 좋은 이야기라고 저는 믿고 있고 그쪽으로 좀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는 동시대성에 굉장히 천착해서 여러 퀴어 담론이라든가 페미니즘 담론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당연히 다루게 되고 또 그런 것들을 요구받고 그래서 거기에 최선을 다해서 응하려고 했었던 때가 있었는데요. 오히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응하려고 하는 것보다 해률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내가 그걸 감각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가는 게 오히려 더 유행을 타지 않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는 하고 있어요.
작가 신효진. 앞머리가 있고, 층을 낸 머리가 어깨 아래로 내려온다. 검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으며, 왼쪽 팔목에 검은 구슬 팔찌가 보인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신효진
배선희
저는 많이 공부해요. 사실 이전에 뉴스도 잘 못 보던 시간들이 좀 있었는데 지금은 ‘활자 중독’, ‘읽는 것 중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SNS부터 뉴스, 지금 돌고 있는 책들, 이런 책이 좋다더라 하면 그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온다거나 그래요. 청소하거나 작업하거나 연습 외의 시간을 보낼 때 좀 강박적으로 읽고 있어요. 지금 이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고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는지, 그걸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노력이 좀 뒤늦게 생겨났어요.
그런데 그것(동시대성)이 내 몸과 만나진다고 느껴질 때는 대화를 나눌 때예요. 저는 좀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사람인데요. 연극을 보러 가도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항상 불편해요. 몸 자체가 그냥 다 불편해요. 그래서 원칙으로 삼은 게 ‘누군가 대화를 요청하거나, 우리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싶은 순간들을 절대 피하지 않기’, ‘끝까지 대화하기’예요. 집요하게 대화를 하다 보면 불편한 것들이 갑자기 툭 터지면서 편안해지는 순간들, 해방감인지 자유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뭐지?’ 하고 더 만나지는 지점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 기쁨과 충만함, 황홀감을 느껴요. 저 사람의 세계가 내게 스며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를 통하여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에 가닿게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고… 그렇게 감각들이 활성화될 때 동시대성을 느껴요.
한편으로는 누구도 대화하자고 하지 않고, 나도 체력이 떨어져서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어요. 예전에는 언어라는 것이 항상 제게서 미끄러지는 것만 같아서, 두려움에 말을 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실수하거나 잘 모르겠을 때, 오히려 두려울 때 더 말하려고 노력해요. 저는 평소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하는 게 어려운 데요. 최근에 한 친구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자신을 명명하는 것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다양한 맥락들에서 유동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라는 것들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대화를 통해 계속 복잡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때, 동시대성을 인지해요.
구지수
이 문제에 대해 빠르다, 늦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요. 따지자면 저는 기질적으로 뭔가를 감각하거나 불편을 발견해내는 것에 아주 느리고 둔감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겁한 방법이지만, 기민하고 사려 깊은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존경하는 친구들이 무엇을 감각하고 있는지, 어떤 것들이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멈춰 세우고, 또 죽게 만드는지. 나는 왜 이유도 모른 채 답답함을 앓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귀 기울이고, 고민하며 많은 것들을 감각해요.
3. 어떤 다른 손(님)에 주목하고 있나요?
- 그 사유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고 있나요?
신효진
저는 사실 요즘에는 ‘그로테스크’와 ‘괴이’, ‘공포’에 관련된 고민이 되게 깊은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에 사는 게 좀 불안하다고 할까요? 실존적인 불안함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지점들이 요즘에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요. 이것을 어떻게 하면 ‘그로테스크’, ‘공포’ 혹은 ‘괴기’ 이런 걸로 보여주고 같이 감각할 수가 있을까, 이런 게 요즘 화두인 것 같아요. 많은 괴물들이 장애 신체를 비꼬는 모습으로 나온다든지 하는 기존의 문제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이런 것들이 지적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렇다면 그걸 경유하지 않고 어떻게 ‘그로테스크’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다른 손’이라는 것은 주제라고 느껴지는데, ‘본인이 요즘 관심 가는 게 무엇인가요?’ 약간 이런 느낌인 것 같은데요. 저의 변하지 않는 관심은 ‘죽음’에 대한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이상하게 사랑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있어요.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조금 더 가고 있고, 그러니까 ‘그로테스크’와 ‘사랑’이라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대립되는 것 같은 주제가 제 안에서 나온 이유가 있을 텐데 하면서 찾아가는 중이에요. ‘어떤 형태의 사랑까지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인가’ 이런 것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배해률
‘다른 손’을 희곡에 등장하는 내가 아닌 타자 모두라고 생각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왔고요. 작품을 쓸 때마다 다 고유한 경험을 하고, 고유한 생각의 흐름을 겪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장 ‘다른 손’을 생각해봤는데 지금 ‘염소’가 나오는 희곡을 쓰고 있거든요. 제가 여행을 갔는데 누군가 염소가 가는 길을 따라서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사람들이 탐방로로 이용하고 있더라고요. 그 길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자료 조사를 하면서 ‘염소 구제 작업’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요. 섬에다가 무단으로 방목한 염소들을 이제 공무원들이 다시 잡아들여서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작업이에요. 그 작업을 하다가 누군가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는 순간 이 사람과 이 사람이 잡으려 했던 염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충동이 들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해나가고 있었고요.
그래서 나름대로 그 염소와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봤어요. 그중에 염소를 사육하는 노하우에 대해서 알려주는 영상들이 있는 거예요. 저는 염소의 어떤 생애 주기나 혼자 사는지 다 같이 사는 게 좋은지 이런 것들을 찾아보려고 눌렀는데, 사실 누르지 말아야지, 하고 눌러버린 기분이었거든요.
어린 염소의 뿔을 자르는 영상이었는데 그 유튜버 분께서 염소가 비명을 지르고 하는 그 와중에도 너무 태연하게 설명을 잘하더라고요. ‘나는 너를 마음대로 함부로 해도 돼, 함부로 할 수 있어’라는 그 태도가 무서웠어요. 사실 ‘다른 손’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예전의 작업에서는 ‘나는 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해’, ‘나는 그 존재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어’, ‘그가 느끼고 있는 감각을 나는 알 수 없어’라는 것을 디폴트 값으로 했다면, 최근에는 ‘분명히 아는 것도 있을 거라는 것’이 되게 중요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염소가 분명히 아파하고 있고 저기에는 무감한 인간이 있어’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으니까요. 아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었고 그래서 내가 다른 점에 대해서 알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도 필요하구나, 생각하면서 ‘다른 손’들을 만나가고 있습니다.
작가 배해률. 살짝 웨이브가 있는 앞머리. 푸른색 셔츠에 옅은 청바지를 입고 있다. 왼손에는 스마트폰을, 오른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배해률
배선희
저는 정신병적 여성 주체의 목소리를 쓰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이때 이 여성 주체는 생물학적인 여성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생물학적인 여성의 경험이 반영된 주체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이러한 방향의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있고 저 역시 그것을 지향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지난해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작업을 하기 전에는 제가 ‘여성’이라고 의식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냥 제가 인간인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그 작업을 하면서 ‘이제 정말 미쳤나?’, ‘왜 자꾸 죽음에 끌리고 이렇게 힘든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아, 내가 이런(정신병적) 주체이기 때문에 그랬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최근에 알렌카 주판치치의 『왓 이즈 섹스?』라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결국 성적 존재인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동안 너무 불편했구나, 그래서 자꾸 섹슈얼리티를 중화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 더는 그러지 않겠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여성적 주체가 드러나는 작품을 좀 더 많이 보거나, 제가 만들고 싶어요.
주목하고 있는 ‘다른 손’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사실 동료 한 명이 떠올랐는데요. 김연재 작가님이 최근 신촌극장에서 공연한 ‘런더앤싸이트닝’의 〈오차의 범위 ost〉 라는 공연에서 「작문 연습」이라는 희곡을 쓰셨는데,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오거든요. ‘오, 주님. 한 대만 더 때려주세요’. 설명을 하기 참 어려운데요. 이 문장에 제 마음이 담겨있어요. 비슷한 이유로 ‘버지니아울프’의 『파도』라고 하는 소설에서, 인물이 하늘의 구름(을 타는 별)을 보고 하는 말이 있어요. ‘날 먹어(Consume me)’. 그런 목소리를 듣거나 읽을 때 저는 숨이 쉬어져요. ‘이런 상태의 나도 살아도 되는구나’하는 안도감을 느껴요. 이상하고 미친 사람들이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품고 있어요.
구지수
비인간 동물의 권리에 대해 주목하고 쓰고 있어요. 가해자인 나와는 분명하게 다른 손이지만 생명을 가진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요. 단순히 동물을 애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과 같은 생명권을 지니고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농장 동물, 전시동물, 실험동물 등. 모든 비인간 동물에 대해서요. 인간이 그들에게 행하는 폭력과 착취 구조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요. 현대인은 착취의 결과물을 마음 편히 누리기 위해 죄책감을 차단하는 소비방식을 만드는 데 완전히 성공했기 때문에, 그 구조를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유의미한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몰라서, 모르기 때문에 그냥 먹거나 입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그랬고요. 비가시화된 시스템에 대해 최대한 적나라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설득과 실천을 위해서요.
4. 관심 주제, 소재를 ‘희곡’에 실현함으로써 기는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고 있나요?
신효진
저는 오히려 희곡이 건축물 같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문은 여기로 통하기 위한 곳이고, 이 문은 열면 화장실이고, 여기를 열면 침실이고 이런 느낌이 되게 강하거든요.
제가 쓸 때도 그걸 의식하면서 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고 싶지 않은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화장실 문을 열면 왜 화장실일까? 이게 되게 이상한 질문인데 저에게는 한계점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침실로 연결이 될 수가 있을까. 침실 문을 열고 나왔는데 어떻게 하면 옥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옥상으로 어떻게 갈까. 또 옥상에서 화장실로 다시 어떻게 내려올까. 그런 식의 희곡을 시도해보고 싶고 만들어보고 싶은데요. 이것이 행동과 말로만 설명이 되어야 하고 시간과 장소, 그런 거에 대한 교육을 받아서 오히려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최근에 가장 어려운 지점이에요. 어떻게 타개해 나가고 있냐면 그냥 마음대로 쓰는 것이죠. 내가 이렇게 하면 배우가 어떻게든 이해를 해서 잘 해주겠지 하면서, 조금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구지수
동물권에 대한 희곡을 쓰는 내내 스스로가 타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담아내는 것이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언어가 가장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화가 난 것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내내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황당하고 현타가 오기도 하는데요. 고민 끝에서 늘 어쩔 수 없다는 결론으로 돌아오게 돼요. 여타 해방운동과 다르게 동물해방운동은 해방하고자 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저항할 수 없잖아요. 결국 인간에 의한 운동이어야 하니, 억압의 주체이자 ‘앨라이’인 인간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게 과제이자 관건이라고 믿으면서요.
내 신념과 작품 간의 완벽한 일관성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동물들이고, 저는 그 고통의 총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언어를 찾아내 쓰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부조화를 인정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는 거죠.
작가 구지수. 앞머리가 있고, 가슴께까지 오는 밝은 갈색의 생머리. 투명한 테의 각진 안경을 썼으며,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다.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구지수
배해률
저도 신효진 작가님이랑 비슷한 생각인데요. 희곡을 쓰다 보면 매끄럽게 쓰고 싶다는 충동을 많이 느껴요. 그러니까 정말로 여기에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여기는 거실이 있어야 하고, 어떤 소재나 주제를 떠올리게 되면 그에 맞는 시놉시스나 양식이나 장르가 따라붙는 것 같다는 믿음, 이상하게 그런 믿음이 생겨버리는 게 있어요. 그건 분명히 학습된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제일 힘든데 일단 어쨌든 시놉시스를 쓰는 단계에서는 그것에 기대어서 쓰는 것 같아요. 그러고 난 뒤에 희곡을 쓰는 과정에서는 단단하게 시작점을 만들어 놨다는 어떤 착각 속에서 다시 만들어둔 것들을 잊어버리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그러다 보면 여기저기 튀게 되는데 오히려 이리저리 튀는 이야기들이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에는 많이 하고 있어요. 역시나 너무 비약 같은 것들이 희곡에서 발견된다 한들 함께 작업하는 배우님들과 연출님들을 믿고 있습니다. 나만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배선희
저는 배우이다 보니까 무대 위에서 몸을 쓰는 노동자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서 몸을 좀 더 구부리거나 좀 더 엎드리거나 좀 더 뻗거나 좀 더 휘어지게 하거나 더 그러려고 노력을 해요. 근데 그런 과정에 있어서, 그러고자 하는 욕망과 저의 의무에 있어서, 글쓰기는 왜 이게 더 구부려져야 하는지 왜 이게 더 뻗어져야 하는지 왜 뛰어야 하는지를, 세밀히 밝혀주는,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생각과 마음을 내과 수술하듯 밝혀주고 봉합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저의 글쓰기는 몸과 굉장히 닿아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불화하고 불편한 중에 이뤄져요. 주체라고 하는 게 단일한, 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분열된 감각으로 살아가는 주체인데 그러다 보니까 (그 분열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그러니까 제게 가장 어려운 것은 ‘나랑 너무 많이 싸운다’.
작년에 했던 공연에서 ‘망상’, ‘환청’ 이런 얘기도 고백하긴 했었지만 ‘욕’이라든가 어떤 목소리들… 그것과 너무 많이 싸워서 뭔갈 쓰거나 창작하기에 앞서 진이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럴 때 혼자선 버티기 어렵더라고요. 저는 큰일 났다 싶으면, 또 나만의 약속이 있는데요. ‘반드시 친구에게 전화한다’거든요. 얘기를 나누고 들어주는 과정에서 이걸 왜 하고 싶었는지, 왜 쓰고 싶었는지 이런 게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반복해 나가면서 작업을 해왔고 그 속에서 조금씩 근육이 붙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어쩌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좀 덜 넘어지지 않을까. 덜 자해하지 않을까. 조금은 더 편안해지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토크쇼 전경. 무대 쪽에서 진행자와 작가들의 뒷모습을 걸고 객석을 찍은 사진이다. 열댓 명의 관객이 이곳저곳에 편안하게 흩어져 앉아 있다. 서울연극센터 1층 창밖으로 나무와 벤치 등 바깥 풍경이 보인다.

2부

관객들에게 받은 질문에 대답하기
질문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떻게 어떤 발상과 어떤 고민들로 태어난 걸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그리고 그 인물과 만나게 된 계기를 알려줄 수 있나요?
배해률
사실 대상과 고민들은 그때마다 달라서 지금 당장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얘기하는 게 어렵기는 한데요. 지금은 〈여기, 한때, 가가〉라는 작품에서 ‘재호’라는 인물이 떠올랐고요. 〈여기, 한때, 가가〉라는 작품은 허름한 빌라에 한때 레이디 가가가 소유주였다는 말만 믿고 모였던 세입자들의 이야기였어요. ‘재호’는 그 허름한 빌라를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인물인데 자신의 선의가 타인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돼요.
실제로 제가 모 연예인이 집주인이었던 빌라에서 살 때 정말 많은 불행을 겪었었고 그로 인해서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어요. 그때마다 뭔가 요구를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요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재호’를 만들었고요. 그 의지의 끝이 어디일 수 있을지를 ‘재호’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국 이야기를 쓸 때는 흐름 상 ‘재호’를 무너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썼는데 막상 무대에서 ‘재호’가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는 것을 보니까 되게 그 모습이 숭고하고 멋있더라고요. 그 생각이 갑자기 났어요.
질문
작업을 할 때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점이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배선희
저는 극복하려고 할수록 더 안 좋아질 뿐이라는 얘기를 먼저 나누고 싶어요.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가, 과연? 그러니까 내가 연극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게 전달이 될까? 이해가 될까? 하는 지점들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계속 찾아오는 것 같은데요. 모두를 이해시키거나 설득시킬 수는 당연히 없는 것이고요. 그 두려움이라는 건 사실 떨림이잖아요?
근데 그 떨림이라는 건 진동이고… 저는 객석의 관객 또한 같이 떤다고(진동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이 품고 있는 떨림이 없다면 저 역시 공연을 볼 때 마음이 떨리지 않는 것 같아요. 삶의 어떤 영감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러한 어떤 진동 안에서 흔들리는 빛을 찾고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려움이라는 것은 정말 소중한 감정이고 오히려 잃지 않기 위해 신경 쓸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허선혜
저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떨림’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향한 떨림도 있고 다양한 떨림이 있는데, 다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배선희
공포감이 느껴질 땐 우선 방어를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안전하다거나 편안해지고 싶기 때문에 어떤 방어책들을 마련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다시 의심해요. ‘이게 정말 필요한가?’ 그렇게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다시 벗겨내다 보면 다시 또 떨릴 수밖에 없는 위치로 돌아와요. 제가 관객으로서 극장에 가는 것은 저기서 막 흔들리고 있는 어떤 존재들을 만나고 싶어서 거든요. 거기에는 배우뿐만 아니라 공연에서 경험으로 만나지는 모든 것들… 각각의 다른 질문들을 품은 목소리들이 있고… 그 세계의 진동이 (극장에) 모여 있는데, 우연히 만난 우리가 함께 흔들리고 떨리는 그 경험을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질문
다른 유형의 글들도 있는데 유난히 희곡이 끌렸던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혹은 다른 글들도 쓰는 경우가 있나요?
신효진
다른 질문들을 보니까 ‘사건’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어쨌든 저는 희곡에서 거대하고 장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한 인물이 변화하거나 혹은 태도가 바뀌는 그 순간이 사건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마음의 상태가 바뀌거나 하는 것도 사건이라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무대 위에서 어떤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다 같이 목격하는 게 너무 좋아요.
살아가면서 저희가 같은 사건을 보게 될 일도 없잖아요. 같은 업무를 보게 될 이유도 별로 없고, 이 사람은 나랑 만날 때는 이런 모습이지만 저 사람이랑 만날 때는 또 다른 모습이고요. 일관된 어떤 모습을 만나기가 참 어려운데 희곡에서는 일관된 사람을 만날 수가 있고요. 물론 그것에 대한 감상은 각자 다르지만 그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을 함께 목격하는 바로 그 순간이 저한테는 희곡에서 절대 바꿀 수 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건이 대단하지 않더라도요.
그리고 다른 글, ‘드라마’도 쓰고 있는데 비슷한 이유입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목격하는 것이 좋아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질문
구지수 작가님,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구지수
저는 주변에 오래 전부터 비건을 실천한 지인들이 많은 편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동물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마주하기를 회피했어요. 그것을 마주 본 후에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크게 바뀔 게 없는데도,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 제가 결국에는 비건이 되고 동물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 긴 시간 동안 친구들이 꾸준히 제게 육식주의 시스템에 대해 다정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준 덕분이에요. 내가 지금 먹은 닭과 돼지가 한 번도 풀과 땅을 밟거나 하늘을 본 적이 없이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길고양이에게 물과 밥을 주는 것과 비거니즘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걸 꾸준히 얘기해줬어요. 결국 친구가 추천한 <도미니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고, 그 계기를 기점으로 삶이 많이 달라졌죠.
허선혜
제가 하나 뽑아보겠습니다.
질문
이제까지 쓰셨던 작품 중 딱 하나의 작품만 작가님의 마지막과 함께할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하실 건가요?
배해률
아직 쓰지 않은 것. 전작들이 별로였다는 말은 아니고요. 너무 중요한 결정인 것 같아가지고요.
배선희
전 작품과 함께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더 단순해지고 싶은데요. 앤 카슨의 시집에 ‘왓쳐’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목격자’에 가까운 의미로 이해를 하고 있거든요. 에밀리 브론테의 시에서 자기 자신이 ‘왓쳐’라고 얘기하는 내용을 앤 카슨이 인용하면서 시를 펼쳐나가는 것인데요. 그걸 읽다가 내가 되고 싶은 게 ‘왓쳐’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의 것들을 잘 보고, 잘 만나는 사람으로 있고 싶기 때문에 뭔가 이전에 했던 작품들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작가 배선희. 가운데 가르마에 앞머리가 있는 짧은 커트 머리. 옅은 민트색에 분홍색과 보라색의 잔꽃이 들어간 원피스를 입었다.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배선희
신효진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고 싶은데 내 인생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제 동료들이 유작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작품은 <머핀과 치와와>입니다. 그 작품이 저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원하는 곳까지는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아이가 이거 하나는 남기고 갔답니다’라고 이야기해 주실 분이 계시다면 <머핀과 치와와>를 말해주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구지수
저도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긴 한데, 굳이 골라보자면 웹진에 올라갔던 <훔쳐온 손님>으로 하겠습니다. 대표작이거나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계속 고쳐나가고 부끄러워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쏟아내듯 허겁지겁 썼던 작품이고 부족함이 많은 글이라, 마지막 순간까지 저와 함께 변화해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관객
다들 쓰고 싶은 방식이 명확하시잖아요. 동물권이고 어떤 분은 여성 주체이고 어떤 분은 사랑, 그런 것들을 찾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해서요. 저는 제가 아는 것에 한해서만 써야 한다는 것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러니까 단순히 내가 좋아한 것들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신효진
저는 제 얘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그동안 제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한테 TMI를 많이 주고,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이제 더 이상 나로는 재료를 쓸 수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근데 저는 그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글에는 자기가 녹아들 수밖에 없잖아요.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자기가 바라보는 세상을 쓸 수밖에 없는데, 경험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더 이상 이제 내 이야기에 대해서 쓸 게 없다고 생각이 들 때까지 써야 그제야 비로소 눈이 바깥으로 돌아가는 것 같거든요. 나를 먼저 소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꼭 희곡이 아니더라도 일기를 많이 쓴다든지 나에 대해서 정말 많은 걸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선희
질문의 방향을 좀 바꿔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보다 자꾸 생각이 나거나 나를 잡아당기는 어떤 것에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 글쓰기가 이뤄지는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작가가 되겠다, 무엇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먼저 정하기보다는 그냥 어떤 관계 안에서 계속 신경 쓰이는 것, 보이는 것 그런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게 도움 될 것 같아요. ‘왜 자꾸 생각나지?’, ‘밟히지?’ 저는 그 질문이 중요한데요.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게 너무 좋아요.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맞닥뜨리는 것, 그 끝에 가고 싶기 때문에, 질문을 계속 하면서 천천히 나아가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저 경탄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지경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순간을 늘 꿈꾸는데요. 그곳에 삶의 실재에서 떨어져 나온 진리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근처에 있는 비밀 같은 것, 감탄할 수밖에 없거나 그냥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을 더 기대하면서 그냥 마음껏 길을 잃으시면 좋겠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배해률
저도 희곡 쓰는 작업 초반에 다른 동료 작가들은 뭔가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고 그들 각자만의 고유의 세계가 있는데 나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냥 매번 그 순간에 쓸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계속 써나가면서 쓰고 있어서예요. 지금도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같고요. 그때 당시에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나 걸리는 것들에 계속 집중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허선혜
이것은 사전 질문이었는데 마지막에 드리고 싶은 질문이어서 늦게 질문드려봅니다. 작가님들이 만나고 싶은 희곡이 있다면 어떤 희곡인가요?
구지수
연극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유의미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종 차별이나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낯설게 여기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모든 동물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희곡이 많아지기를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삼겹살을 먹지 않고 우유를 마사지 않는 인물들을 보고 싶어요. 서사를 위해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작품 속에서 동물을 먹거나 사용하는 행위를 소거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희곡뿐 아니라 공연 제작 과정에서도 ‘동물성’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런 시도들이 물질적 차원에서 선명히 의식된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
신효진
저는 희곡집을 사고 싶은 희곡을 만나고 싶어요.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른데 저는 그 간극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쓴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되게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극장을 계속 가는데 그래서 그 반대로 공연을 보고서 이 이야기의 영혼이 뭘까 궁금해지는 그런 희곡을 만나는 게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배선희
저는 사실 굉장한 독자예요. 쓰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쓴 글의 열렬한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에 엘렌 식수의 『아야이! 문학의 비명』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런 문장을 봤어요. ‘세상은 끝났고 나는 너를 품는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그래!’라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이 끝난 지점에서 품는 행동을 한다는 게 엄청난 힘처럼 느껴졌어요. 단지 온화한 방식으로 품는 것만이 아니라, 제가 상상을 했을 때는 어떤 고통이 있을 것도 같고, 미움도 있을 것 같고, 눈물범벅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복잡한 심경과 맥락을 함께 끌어안는 것이 아닐까… 품는 방식 또한 너무 다양할 것 같아요. 스스로 ‘못하겠어’라는 포기가 빠르다 보니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계속 발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글)에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배해률
저는 극장에 가면 객석에 앉아서 ‘너무 좋은 이야기구나’ 하면서 볼 때마다 스스로도, 그 공간 자체도, 위선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위선적이지 않을 수 있는 극장과 희곡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또 불안에 대해서 긍정하고 충분히 불안해할 수 있는 존재들을 좀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허선혜
오늘 이렇게 저희가 네 분의 작가님들 모시고서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저는 질문을 구상할 때에 이런 대답들을 해주시겠지, 생각을 한 부분도 있었는데 그것이 깨지는 순간도 있었고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고 새롭게 배워가는 것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오픈 토크쇼 ‘당신이 쓰는 동안’을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자 허선혜. 웨이브가 있는 짧은 머리다. 흰 티셔츠에 검은 재킷, 청바지를 입었다. 왼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오른손을 들어 무언가 설명하는 중이다. 양 팔목에 노란색 팔찌와 노란 밴드의 손목시계가 보인다.
허선혜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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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혜

허선혜
극작가입니다.
연결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창작살롱 나비꼬리에서 다양한 만남을 위한 기획/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qeqe0321@naver.com
https://www.instagram.com/nabico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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