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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서울연극센터 재개관 기획프로그램 〈희곡제: 침묵과 말대꾸〉
낭독공연 참여작가 수다회

이홍도

제236호

2023.06.29

일시:
2023년 6월 9일 금요일 14~17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진행:
이홍도(극작가, 희곡운영단)


참여:
강동훈, 김주희, 나수민, 전서아, 조소민(이상 낭독공연 참여 극작가)
연출, 희곡의 공연화
강동훈
비교적 최근에 공연해서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웃음), 작업 자체가 수월했던 것 같다. 낭독이라서 연극센터 측에서도 크게 부담을 안 주셨다. 공간 자체도 재개관이다 보니까 쾌적해서 연습하는데 항상 있는 잡스러운 스트레스가 덜했다. 좋은 스튜디오에서 공연할 수 있어서 즐겁게 공연했다.
전서아
5월 초에 공연을 했었는데, 시설이나 공간 자체가 쾌적했다. 아무래도 연극센터에서 협의를 해주셔서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공연들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일정이 안 맞아서 공연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다.
나수민
연습 시간이나 연습 장소를 잡는 것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고, 전시회에서 쓰던 멋진 가구들을 낭독공연 할 때 그대로 쓸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준비하는 과정이랑 공연해가는 과정에는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편이다. 그 외의 부분들이 되게 수월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서 좋았다.
김주희
처음에 제안받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지원 신청을 통해서나 지인분 또는 자체제작을 통해서가 아닌 공연의 기회가 8년 만에 처음이어서 낯선 경험으로 시작을 했다. 나의 공연도 그랬고 다른 작가님들 공연을 볼 때도 작가님들이 편안해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추천의 말과 관객과의 대화 등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희곡제 내에서 작가(희곡운영단)가 다른 작가를 응시해주는 것이 좋았다. 힘을 얻었다. 단절·고립된 희곡 쓰기를 벗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조소민
자유도가 높으면서도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배우님들과 대화도 많이 하면서 진행을 했다. 내가 쓴 이야기가 단순히 기후위기를 이야기했다는 인상에서 더 구체화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이 극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을 가질 수 있었다. 공간적으로나 지원적으로나 그런 사유를 많이 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다고 생각했다.
이홍도
작업과정에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작가가 연출을 한다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었다. 작가들에게 부담이나 하중으로 가는 건 아닐지 고민이 없지 않았다. 관객까지 만나고 났을 때 텍스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지면만을 생각하고 썼던 희곡이었는데 덜컥 어느 날 무대화하자는 연락을 받았을 수도 있고. 과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눠주면 좋겠다.
작가 이홍도. 이마를 덮는 앞머리, 투명한 테의 안경을 썼다. 베이지색 긴 소매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있으며,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홍도
강동훈
배우분들과 작업과정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연출을 해야 하는 게 부담은 맞다고. 연출을 전공했으니 연출하는 데 크게 부담은 없었지만, 스스로 연출하는 것을 싫어하는 걸로 봤을 때는 부담이 굉장히 큰 일이다. 이번 낭독극 같은 경우는 연습하면서 배우분들이 연출이라고 느꼈다. 선생님들 제가 연출하기 싫습니다, 알아서 잘 좀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계속 연습을 풀었다(웃음). 낭독이다 보니까 배우분들이 각자 책임지고 연출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크게 뭔가 동선을 긋지 않는 이상. 배우분들도 그렇게 참여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것 같고. 낭독극의 연습에는 꼭 연출을 구하지 않고 배우 중심으로 풀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서아
우선은 다른 팀의 연습 얘기가 들려오는데 어떤 배우님이 오셨다더라, 악기가 나온다더라(웃음), 그런 얘기가 들릴 때 욕심내지 않고 배우와 글에만 집중하려고 싸우는 과정이 어려웠다. 어디까지 연출을 해야 하는지. 글과 작가와 배우만 있는 기획이라고 이해를 하고 욕심을 안 내고 싶었는데, 음향디자이너를 지금이라도 구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는 각자의 팀이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하는 게 취지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덜어보려고 했었고, 그 과정을 돌아봤을 때 연출적으로 어려운 과제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은 전체의 콘셉트가 없는 게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높은 자유도가 오히려 전체를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장점도 있지만 그런 부분이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배우님들과 협업할 때, 이게 공연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희곡이다 보니 굉장히 사소한 질문 하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보다 많이 얘기하게 되더라. 연출적인 도전이 많은 시도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전시 공간에서 낭독하다 보니, 연출적으로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무게감 있는 전시가 들어가다 보니 그 전시를 그대로 살려가야 할지, 그걸 다 밀고 공연에 맞춘 공간을 세팅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세 가지가 이 작품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 어려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다른 작가분들이 이런 것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도 궁금했다.
희곡 다시 읽기, 함께 읽기
<공공구삼 꿈> 낭독공연 사진. 중앙에 파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남색 손수건을 머리띠처럼 묶은 배우가 앉아 있다. 
            그 배우가 앉은 단 위에 오른쪽으로는 하늘색 원피스와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두 명의 배우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고, 왼쪽으로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배우가 서 있다. 
            서 있는 배우 옆으로 원탁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 파란색 액체가 담긴 투명한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다. 배우들 앞에는 모두 보면대가 세워져 있다.
나수민 <공공구삼 꿈>
나수민
내가 쓴 희곡이 내 안에서만 일어나고 끝날까 봐 내가 쓴 희곡을 직접 연출하는 걸 많이 어려워한다.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을 가능성을 닫고 내가 보는 방식만으로 희곡을 일으키는 게, 가끔은 그걸 보는 과정에서 약간 현타가 오더라. 그래서 자신의 희곡을 연출하는 걸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연락을 받곤 하겠다 하고 공동구성으로 연출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연출하겠다고 했으나 포기하고 이 희곡을 왜 쓰게 되었는지, 이 희곡에서 중요한 부분이 어떤 것이 있는지, 텍스트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얘기를 되게 많이 나눴다. 그래서 이 희곡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게끔 배우님들이 되게 많이 의견을 주셨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이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내 희곡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할 가능성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어 좋았다.
배우님들 하고 공연을 만들 때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다.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보니. 이 대사가 어떻게 발화됐으면 좋겠다고 내가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게 좋은지 나쁜지조차 결정하는 게 어렵더라. 연습 과정의 바깥에서 이 부분을 같이 고민해줄 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연습에 매번 모신다기보다 한 번씩 모시는. 다른 작가님들을 한 번씩 모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돌아가면서 한 번씩 연습을 보고 가벼운 대화라도 나누고 나서 확정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님들이 한 번 움직였다가 공연 이틀 전이었나 다시 보면대를 쓰기로 결정했다. 맨 처음 희곡제의 기획 의도를 파악한 것으론 보면대를 세우고 희곡 중심적인 낭독공연을 올리려고 했는데…
아까 전서아 작가님 말씀처럼 이 희곡이 공연화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쓸 때도 그렇고 웹진에 올라왔을 때도 낭독공연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했어서. 그래서 이 희곡이 움직이는 게 더 좋을지 보면대를 놓고 그저 배우분들이 발화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연습 과정에서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다 같이 한 번 결단을 내려서 움직임을 빼고 보면대를 놓은 채 그 자리에서 읽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결정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보면대를 놓고 희곡 중심적으로 하는 낭독공연이라 좋았던 이유는, 희곡 그대로 발화되는 공연을 보기가 힘든데, 지문을 읽는다는 게 되게 좋았다. 단순히 어떤 행동을 직접 움직여서 보여주기보다는 이 작가가 이런 행동을 왜 여기다가 배치를 했는지, 어떤 지문, 예를 들면 사이나 되게 짧은 침묵을 이 작가가 왜 여기 배치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제일 큰 표현 방식이 낭독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희곡 중심적이란 말이랑 굉장히 붙어 있어서… 연습하면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결국 다시 희곡으로 돌아와 공연을 마쳤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 점이 기억에 남는다.
극작가 나수민.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층이 있는 단발머리다. 검은색 테의 안경을 썼고, 카키색에 남색 가로줄이 있는 반소매 니트를 입고 있다.
나수민
김주희
약간의 연출 작업을 했었는데 그때, 너는 좋은 연극 연출은 아니야,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했었다. 그 이후로는 전시나 퍼포먼스 쪽에서 뭔가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연극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래전에 이미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처음에 재개관 희곡제인데 작·연출을 하라고 하셔서 깜짝 놀라가지고 “말아먹으면 어떡해요?”라고 전화로 말씀을 드렸다. 걱정이 많이 되는 만큼 ‘진짜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졌고. 같이해왔던 스태프들, 짧은 기간 내에 나의 희곡을 이해해줄 수 있는 배우들을 믿고 작업을 해나가기로 했다. 물론 ‘다른 손’이란 주제로 쓴 희곡이다 보니 배우 입장에서 어려운 역할이었을 거다.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배우분들에게 부담을 덜 드리면서 작품도 어느 정도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고.
오히려 이걸 상쇄시켜준 것은 계속 ‘희곡제’라는 워딩이었던 것 같다. 희곡제라는 말에서 이 자리가 희곡을 전하는 취지가 상기되는 것 같아서 연습할 때도 희곡에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에게 안전한 상태를 줬던 것 같다. 이 시간 내에 잘 갖춰진 공연을 올리는 것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 좀 더 목적을 두기로 했고, 그 위치에서 머리를 맞대고 얘기했기 때문에 모두가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작업이 되었던 것 같다.
보통의 테이블 작업과도 결이 살짝 달랐던 같은데, 아침에 연극센터 다목적실에 와서 커피 마시면서 “이런 건 어때?”, “어쩌면 이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면서 뭔가 인문학 토론회 같은 모임으로 접근하고 이야기하는 과정들에서 희곡 쓰기, 연극 만들기 작업을 모두가 처음에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연습 기간과 기획 의도, 발표 공간이라는 세 요소가 잘 어우러져서 다른 작업에 비해 덜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고. 막상 스튜디오 공간에 가보니까 여기서 낭독공연을 하기엔 공간의 영향력이 큰 거다. 자꾸 더 하고 싶게 만드는 뭔가를 건드리는 거 같아서,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은 눌렀던 그런 작업이었다.
조소민
같은 고민을 했다. 희곡제라는 이름의 힘도 있고, 사전 미팅을 했을 때도 텍스트 중심의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바이올린을 켜시고(웃음), 다른 작가분들의 공연을 전부 다 보는 관객들도 있을 테고 비교가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 연출을 처음 하고, 크레딧에 처음 올라가는 공연이었는데, 연출로서의 나는 굉장히 고집이 있는 사람이구나 깨달았다. 예를 들면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질문이 나왔던 것인데, 조명 연출을 하나도 하지 않았고 음향에도 끝과 시작을 암전 대신 알릴 수 있는 정도의 디자인을 넣었었다. 아마 내가 제일 ‘낭독’만 한 작가였을 것이다. 그런 데서 좀… 겁이 나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텍스트를 먼저 생각하는 작가의 정체성이 강했다. 만약 본공연을 올린다면 본공연에서 하면 되는 연출을 넣으며 관객의 상상력을 뺏어가고 싶지 않았다. 낭독공연은 연출적인 면을 어느 정도 열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집대로 조명은 일절 쓰지 않고 온-오프만 했고 음향도 사실상 오프닝-엔딩으로만 역할을 했다. 배우님들한테 많은 의지를 했던 것 같은데, 배우님들이 연출님 혼자 고민하지 말라고 먼저 말씀을 해주시기도 해서 같이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극에 산호가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세이렌 역할 맡은 세희 배우님이 서치를 해보시다가 산호를 어항에 넣고 취미로 기르는 분들의 영상을 보여주더라. 산호가 해초가 아니라 동물이라는 사실을 그걸 보고 알았다. 쓸 때만 해도 백화현상이라는 이슈가 있는 주체이니까 등장시켜야겠다 해서 단순하게 배치한 것이다. 그런데 오브제가 아니라 동물이었던 거다. 나도 모르게 세이렌이란 캐릭터를 육식동물로 만들었던 거다. 스스로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구나, 내가 썼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쓰고 끝냈으면 몰랐을 부분이었던 터라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다.
<세면대 옆 세이렌> 낭독공연 사진. 단 위에 초록색 원피스에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이 섞인 머플러를 두른 배우와 
            청록색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배우가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단 아래에는 비스듬한 방향으로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조소민 작가가 앉아 있다. 
            배우들과 작가의 앞에는 모두 보면대와 마이크가 놓여 있다.
조소민 <세면대 옆 세이렌>
김주희
여기 계신 작가님들의 작품과 연극센터 공간을 느껴보려고 모든 희곡제 공연을 다 봤고, 관객과의 대화와 희곡 공모 현장감상도 참여해봤다. 이게 무엇일지를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낭독공연을 예로 들자면, 매주 화요일 저녁에 와서 30분 낭독공연을 보고 30분 작가를 만난다는 게 무슨 경험일까, 그런 걸 느껴보고 싶어서 해봤는데, 관객들에게 이런 경험의 기회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이라는 말과 축제라는 말이 붙은 ‘희곡제’라는 말도 참 낯설거니와 극작가를 만나러 내가 저녁에 시간을 내고 와서 작가님은 어떤 작가님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듣고 있는 마음이 참 낯설고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희곡 축제가 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좀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희곡 창작 후 시간이 흐른 다음에 연출로서 참여하다 보니 내가 정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든 생각은 ‘다른 손’이란 주제 자체가 막강하구나, 그 주제에서 내가 자유로운가 하는 생각이었다. 관객과의 대화 중 ‘어떤 것에서 착안해서 쓰게 되었나’하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기후위기나 비인간에 대한 부분만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거나 규정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주제에 밀착해 쓰인 것으로 그 자리에서 말을 하고 있더라. 지금 내가 뭔가 압도되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섞여서 살아가고 있는 상태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예상하지 못한 몸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더 정확히 말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전서아
작품을 처음 썼을 때 지구라는 공간과 외계라는 공간의 대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공간에 사는 두 존재가 만나는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낭독공연을 준비하며 배우님들과 얘기하다가 이것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는 해석을 먼저 제안해주셨다. 그래서 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이 되어서 낭독공연까지 크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이게 어떤 시간에 대한 얘기고, 다른 시간 속에서 계속 연결되어 있는 존재에 대한 사랑 얘기구나’하고 나중에 깨달았던 경험이 있다. 관객과의 대화까지 그 흐름이 이어졌고 그걸 보면서 이 희곡이 처음에 웹진에 발표되었을 때는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멋진 희곡이라고 생각했는데(웃음), 내가 그 희곡을 다 몰랐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걸 배우님들과 같이 써냈고 마지막으로 관객분들과 같이 맺었다는….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2020년에 코로나19를 거치며 썼던 초고의 감각과는 너무 달랐고, 결국 시간에 대한 얘기로 맺는 변화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과연 작가가 홀로 희곡을 쓰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던 경험이었다.
극작가 전서아. 짧은 커트 머리에 앞머리가 한쪽 이마를 덮고 있다. 분홍색 반소매 남방을 입었고, 양손을 깍지 낀 채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 손목에는 파란색과 초록색, 흰색이 엮인 실팔찌가, 왼 손목에는 투명 스트랩 시곗줄이 보인다.
전서아
김주희
서아 작가님은 작품 안에 있는 느낌으로 해설 역할로 들어오셨던 것 같고, 소민 작가님은 작품 밖에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작가님들이 무대에서 해설을 할 거란 생각을 못 했어서, 어떤 의도에서 무대에 오르셨을지, 진짜 너무 놀랐고 작가님들 너무 떨리시는 거 아닐지 괜히 몰입하고 그랬다. 그런 지점에서 두 작가님들은 어떤 동기에서 해설의 위치로 무대에 계셨는지 너무 궁금했고 듣고 싶었다.
전서아
낭독공연 처음 준비할 때는 지문을 읽는단 선택지가 저한테 없었고, 배우들이 읽거나 서로의 지문을 읽어주는 그런 형태를 구상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걸 내가 혼자 쓰고 있지 않고, 발화되는 과정도 쓰기로 느껴져서 같이 쓰는 것이 낭독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배우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발화를 같이 하는 한 부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연습하던 대로 앉았고 같이 쓰고 있다는 느낌으로 같이 읽었다. 뭔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희곡을 같이 다시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데 그걸 다 마치고 나니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아서(웃음),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근데 별로 떨리지 않았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고. 그리고 한 번쯤은 이렇게 배우들과 모든 환경이 작가를 배려하는 순간 무대에 서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다른 작품은 그럴 수 없었을 것 같고.
김주희
같이 쓴다는 걸, 쓰고 있는 중이란 걸 말하기 위해 마이크를 쓰지 않고 육성으로 전해주신 것일까.
전서아
그렇다. 나만 마이크를 쓰면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 같을까 봐.
조소민
엄청난 결정을 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웃음). 지문은 작가로서 서술자가 된 채로 지시를 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지문에서 살리고 싶었던 부분을 다른 배우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엄청 떨었다. 하지만 돌아가도 똑같이 읽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같이 나눴으면 해서’라고 하는 세이렌의 대사가 있었는데, 내가 해설이라는 역할로 관객들 앞에 무대 위 얼굴을 비춤으로써 나름 실천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작가로부터 시작한 것이니, 나의 페르소나가 조금씩 있는 두 명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해설이라는 역할, 넓게 보면 서술자와 작가라는 역할을 내가 직접 함으로써 관객과의 대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대화했다고 생각한다. 단을 내렸던 이유는 사실 잘 안 보였으면 좋겠어서 내렸던 거였는데(웃음). 그런데 방향을 튼 것은 관객을 보면서 관객과 비슷한 위치에서, 그냥 캐릭터이지만 않은 해설을, 당연한 얘기지만 어쨌든 캐릭터와 관객과 텍스트 바깥의 경계에 있는 존재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작가 조소민. 앞머리를 눈썹 위로 반듯하게 내렸고, 어깨 너머까지 오는 머리를 뒤로 반만 묶었다. 반소매의 회색 남방을 입고 있다.
조소민
희곡을 말하다_관객과의 대화
나수민
보통 관객과의 대화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데 이번엔 되게 즐거웠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맞고 틀림을 묻는 질문보다는 진짜 순수하게 이 희곡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 질문을 하는 관객분들이 다들 쓰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분들이 맞을지 아닐지 모르겠으나 미래에 쓸 거 같고 현재에 쓰고 있을 것 같고 과거에 썼던 것 같은… 쓴다는 행위에 대한 질문들도 많이 받았고,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것은 왜 사이라는 지문을 거기에 배치했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사실 나는 사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희곡을 쓸 때도, 그리고 희곡을 텍스트로 읽을 때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사이인데 그것과 관련해서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아, 이래서 희곡제라는 이름이 붙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이 희곡을 쓰면서도 공연화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공연화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낭독공연을 진행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는 닫아놓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희곡이나 공연이 생각보다 아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이번 낭독공연을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할 때도 다들 희곡에 집중해서 봐주시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고. 질문들도, 내가 방어하거나 해명하거나 설명을 한다기보다는 상호작용이 굉장히 잘되는 대화여서 되게 좋았다. 이번에는 공연 때 오퍼를 하느라고 공연을 집중해서 못 보고 엄청 떨면서 봤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때 오히려 더 풀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배우님들께 죄송하지만, 공연보다 관객과의 대화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웃음). 그게 감상입니다. 하지만 잘해주셨습니다.
조소민
<마지막 미노타우로스>를 봤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간과 짐승은 더 아래에 낮은 곳에 앉아 있었고 새끼 역할의 배우분은 더 높은 의자에 있었던 거다. 미노타우로스 캐릭터가 더 위쪽으로 앉아 있었다.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 있어서 약간은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 같은 배치라고 생각했는데 높이가 다른 의자를 사용한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김주희
미노타우로스가 인간과 짐승이 혼재된, 또 다른 종인데 일단은 연출적으로 기골이 장대해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배우님의 체격은 그것과 거리가 멀어서 그러면 어떤 장치로 기골이 장대해 보이는, 그러나 아이 같은 존재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것에 초점을 맞춰서 제일 높은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제일 키 높은 의자를 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앉도록 해서 배우님을 불편하게 해드리기로 했다(웃음). 다행히 배우분들도 그런 마음을 알아주시더라.
이번에 관객과의 대화를 처음 해봤다. 대화라는 행위가 이렇게 낯선 행위라는 걸 몰랐다. 또, 초기 작품부터 줄곧 작품을 봐주셨던 분이 계신데 그분이 그날 마지막에 나의 그간의 설움들을 대신해서 뭔가 외쳐주시는 느낌으로 말씀을 하시더라. ‘당신의 작품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는 듯한 느낌.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까 그 경험 때문에, 그 공간에서 이 작품이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 미노타우로스> 낭독공연 사진. 무대에 두 개의 단이 쌓여 있다. 가장 아래에는 큐빅 위에 앉은 배우가 중앙에, 
          그 윗단에는 양옆으로 각각 의자에 앉은 배우들이 있고, 가장 윗단에는 중앙에 스탠딩 의자에 앉은 배우가 있다. 모든 배우들의 앞에는 보면대가 놓여 있다.
김주희 <마지막 미노타우로스>
강동훈
희곡을 읽고 오신 분들이 많았다. 웹진에 게재된 희곡이다 보니, 또 짧으니까. 작품 쓸 때 찾아봤을 법한 조사를 해오신, 되게 엄청 세세한 디테일을 물어봐 주신 관객분도 계셨다. 심지어 희곡을 읽고, 관객과의 대화 때 질문을 하고 싶으셔서 낭독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다가 들어와 질문을 하신 분도 계셨다. 그런 것들로 인해 희곡제가 재밌었고, 관객과의 대화가 평소보다 심도 있고 편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짧은 희곡에 이런 장점이 있더라(웃음). 길이가 짧아서 관객들에게 뭘 줘야 하나 얘기를 많이 했다. ‘30분짜리 낭독공연, 나 같으면 안 갈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어떻게 재밌을 수 있게, 안줏거리가 될 수 있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TV 보고 밥 먹으면서 ‘<더 글로리> 봤냐’ 얘기 하듯, ‘그 공연 어땠어’ 물어보면서 ‘니 취향이었어? 난 별로였어’ 뭐 이 정도의 이런 안줏거리에 오르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친구를 데리고 올 수도 있는 것이고. 가볍게, 많은 분들이 찾아 올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낭독공연이 꾸준히 연달아 이어져도 의미가 있고 나름의 팬층이 생길 거라는 생각도 했다. 지금보다도 오히려 더 부담이 없는 형태로 말이다.
전시와 만나는 낭독공연의 무대
나수민
연출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많이 몰랐는데 무대 구성에 생각보다 연출 몫이 크더라. 다른 작가님들은 무대 구성을 할 때 연출적으로 어떤 게 제일 어려웠고 어떤 게 제일 재밌었나 여쭤보고 싶다. 내가 짧게 말하자면, 맨 처음에 배우들이 움직일 거라 생각하고 무대 구성을 했다가 보면대를 사용하면서, 빠르게 손으로 그려 연극센터 담당자분께 넘겨드렸다. 의자로 인물들의 성격이나 위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이번에 제일 큰 어려움이자 재미였고, 인물들의 거리에 대해서도… 낭독공연은 움직임이 없으니까 프레임 하나로 계속 보게 되는데 인물들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조정해야 이 인물들이 따로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있는 걸로 보이는지, 또는 같은 무대에 있지만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 그게 제일 큰 어려움이자 재미였다.
이홍도
강동훈 작가님도 마주 보는 무대를 쓰셔서 고민하셨던 게 있겠다.
강동훈
그 부분이 유일하게 부담이었다. 사실 내가 정면으로 하는 무대를 별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배려를 해주셔서, 연극센터 담당자님과 같이 이렇게 저렇게 해보며 짰다. 사실 계획안을 보낼 때 먼저 ChatGPT한테 물어봤다. 해외 가는 비행기여서 급하게(웃음). 랜덤박스로 정해주면 안 되나, 정해져 있으면 안 되나 생각은 했었다. 무대가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무대 관련해서 이러저러한 배치 정도를 상의할 수 있는 분이 한 분 있었다면 편하긴 하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초록곰팡이> 낭독공연 사진. 두 배우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스탠딩 의자에 마주 앉아 있다. 
          의자가 놓인 곳은 나무 바닥이고, 그 사이에 푸른색 카펫이 깔려 있다. 왼편에 앉은 배우는 흰색 긴 소매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었으며 헤드셋을 쓴 채 보면대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편에 앉은 배우는, 단발머리에 남색 재킷을 입고 썬글라스를 끼고 있다. 앞에 둔 보면대의 전면에 “정의의이름으로널(ID)”라는 역할 이름이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강동훈 <초록곰팡이>
김주희
전시되어 있던 오브제들에 어떻게 접근하셨는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 희곡의 세계가 황량하고 황폐하고 아무것도 남겨진 게 없는 세계였다. 그래서 전시 물품을 철수하고 재배치해야 했는데, 30분 안에 할 수 있을지, 이것으로 이 희곡의 어떤 점을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너무 많은 분들을 수고스럽게 해드리는 것 같다는 죄책감과 압박감이 컸다. 하지만 결국 ‘죄송한 거 한 번 더 죄송하자’는 마음으로 전시 물품들을 다 엎어서 그런 것들로 무너진 세계를 표현해보려 했다. 나무 데크나 이런 것들을 대멸종 이후의 잔재같이 무대 곳곳에 비치해놓기도 했는데 다른 작가님들은 이걸 어떻게 작품에 가져오실까 궁금해하면서 봤다.
조소민
나 또한 수고스러움을 얹었던 작가 중 하나인데 얘기가 안 나왔던 것은 아니다. 전시 오브제 중에 의자가 있기도 하고 식물들도 있으니, 연습 때마다 그걸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역시 내 극에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아서 철수를 하는 쪽으로 생각했다. 내 희곡의 배경이 화장실이었는데 따지자면 전시는 거실 같은 디자인으로 느껴져서 치우는 걸 선택했다. 그다음에 무대 구성을 생각했다. 텍스트 중심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어서 무대에 뭔가를 올리고 싶은 생각이 없긴 했다. 대신 의자를 사선으로 마주 보게끔 배치했다. 전면으로 관객을 향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몰랐는데 내 희곡에 마주 본다든지 시선을 돌리고 피하는 게 곳곳에 있더라. 그게 읽다 보니 굉장히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어떤 부분은 마주 보지 않고 어떤 부분은 마주 보고, 이렇게 하기가 어수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낭독공연은 보면대가 정면에 있고 고개를 들어야 할 때 관객 쪽을 보는데, 그러면 관객을 봤다가 옆을 봤다가 하는 게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시선 처리를 하는 방향도 논의해봤는데 배우님들께서 고개를 고정한 채 상대를 전혀 보지 않으면 상호작용을 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래서 시선 처리는 해야 할 것 같은데 혼재되면 곤란할 것 같아서, 서로를 향해서 의자를 틀어서 놓는 정도의 무대적인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전서아
아무것도 없는 별이라는 설정과 물리적 환경이 안 맞더라. 희곡제와 재개관 프로그램들을 잘 엮고 싶어서 최대한 전시 공간을 살려보려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실패했고, 비웠고(웃음). 근데 그런 고민이 있었다. 이 낭독을 보러온 분들이 전시로 연계가 될 수 있게 하는 동선, 아니면 전시를 보러왔다가 낭독공연이나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하는 동선을 고민했다. 일단은 다 사이드로 빼봤는데, 그러고 나니 전시와 공연이 너무 따로 놀았다. 그걸 계속 고민하다가 절충안 정도를 선택한 것 같다. 무대는 비우고 전시공간은 객석 밖으로 빼는. 전시 따로 낭독공연 따로 가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선 처리나 동선에 관련해서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움직임을 많이 썼던 것 같다.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앉는다든지, 등을 딱 돌린다든지, 나중에는 객석 바깥까지 동선을 다 썼다. 많은 공연이 전시를 철거했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론 죄책감이 들었어서. 셋업 기간에 휴일이 겹쳐서 굉장한 죄책감을.
<무루가 저기 있다> 낭독공연 사진. 무대 중앙에 초록색의 등받이가 있는 좌석 네 개가 나란히 붙은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의자의 가운데 두 자리를 비워 놓은 채 양 끝에 각각 푸른색 남방을 입은 배우와 연두색 니트를 입은 배우가 앉아 있다. 
          그 뒤로는 흡사 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이미지의 큰 직물이 걸려 있다. 
          양옆으로 거리를 두고 각각 “지문”이라고 쓰인 보면대 앞에 전서아 작가가, “우주선 목소리”라고 쓰인 보면대 앞에 또 다른 배우가 앉아 있다.
전서아 <무루가 저기 있다>
김주희
우리는 축제인데 연극센터 선생님들께는 축제가 아닌 것 같아서 즐기기에 죄송한 부분도 있었다.
전서아
처음엔 개인적인 감정인가 싶었는데, 같이 만드는 입장에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어쨌든 참여 작가로서 기획프로그램과 연극센터 사이 유대감이 어느 정도 느껴지기 때문에. 내가 조금 예민한가 싶었다. 어떻게든 덜 치우게 하고 싶고 그런 부분이 너무 많아서.
나수민
TV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컸었다. ‘이게 제일 치우기 어렵겠다’ 싶어서 TV를 그 자리에 놓고 객석을 구성할까 생각을 했다. 낭독공연에서 무대 소품으로 세련된 테이블을 하나 썼는데 잠깐 들어봤더니 진짜 무거운 거다. 어떻게 이걸 매번 치우시지… 배우님들 하고 전시공간에 왔을 때, 정말 죄송하지만 이케아 온 느낌이었다. 너무 좋은 가구들이 많고, 앉아보고 ‘어떤 게 더 잘 어울리려나’ 생각했고. 그런데 무대가 되니 여긴 이케아가 아닌 거다. 공연 당일에도 낮에는 전시가 진행되니까 짧은 시간 안에 이걸 치워주시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실지 몰랐다. 그때 너무 죄송한 마음이 컸어서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었다.
조소민
연계 전시라서 작가 입장에서도 뭔가 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있었다. 희곡이라는 인풋에 대해 전시라는 아웃풋을 만드신 것처럼, 전시에도 작가들이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조금 더 작가가 전시와 연계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다 상호작용하는 컨텐츠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이크에 대고 낭독하면 새가 우는 장치가 엄청 재미있어서, 그런 것도 공연의 한 부분으로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희곡제를 마치고
이홍도
작가분들끼리 서로 나눠주실 질문이 더 있는지?
전서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이 희곡제를 통해서 가장 변화한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작가로서.
강동훈
작업하면서 ‘이 작품, 이 스토리가 유효한가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예전에 써둔 게 웹진에 박제되어 있는데(웃음), 이걸 2023년 관객들과 만나러 끌어오다 보니… 지금도 유효한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극작가 강동훈. 베이지색 라운드 티셔츠에 옅은 하늘색 셔츠를 입고 소매를 접어 반쯤 걷어 올렸다.
강동훈
김주희
좀 거대한 담론이나 스케일의 작품이 아닐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비주류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취지의 사업이나 공간에서 발표하면 좋을지, 길을 잃었을지 모를 그런 희곡들을 희곡운영단분들이 고려해준 느낌도 받았던 것 같다. 그런 작품을 기다려왔던 관객분들에게는 되게 좋은 시간이지 않았을까. 작품들에 그런 공통점이 살짝 있었던 것 같다.
나수민
아까 어떤 작가분이 모든 게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나 또한 이번 희곡제 준비하면서 굉장히 많이 느꼈다. 이전에는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이 희곡을 방어하지 않으면 아무도 애써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질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희곡제 준비하면서는 어떤 질문을 받아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좀 더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었달까. 내가 이 희곡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않아도 그걸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보다 좋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쓰면서 가장 좋을 때는 아무도 안 보는 희곡을 쓸 때,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하면 쓰는 과정에서도 제일 즐거운데 <공구공삼 꿈> 쓸 때도 이 희곡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상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10분 정도의 분량으로 딱 쓰니까 굉장히 즐거웠다. 희곡을 모두와 함께 낭독공연으로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이번 과정을 거치면서 제일 많이 깨달았다. 오히려 처음 시작할 땐 부담이 많았는데 다 끝나고 나니까 되게 부담이 없어졌다. 그냥 공연을 준비하는 내 기본자세에서도 힘이 많이 빠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았던 과정이었다.
이홍도
향후 계획으로 넘어가 보겠다. 최근에 가지고 계신 관심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올해 무슨 공연이 있다고 홍보해주셔도 좋을 것 같다.
조소민
최근 관심사는 아니고 작년부터 계속 다루려고 했던 소재인데 요즘 생츄어리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어떤 구조 속에 있던 개별적인 동물들을 구조해서 터를 만드는 과정에 굉장히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그래서 만약 새 작품을 쓴다면 생츄어리를 은유하거나 그것을 다루는 작품을 쓸 것 같다. 8월 달에 <세면대 옆 세이렌>이랑 같은 배우진으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야외공연을 할 것 같다. 그때도 역시 작·연출을 할 예정이다. 또한 비인간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는 2인극을 쓸 것 같다. 8월 달에 토끼굴에서 하게 되었다.
김주희
낭독공연을 올리고 나서 든 생각이기도 하고 나수민 작가님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와 관련된 고민을 살짝 언급하셨던 것 같은데, 내가 작가로서 어떤 글쓰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이 공연을 통해 보다 명확해진 것 같다. 크게 두 축으로, 매직 리얼리즘 기법을 통해 환상성을 기반으로 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 매우 사실적이라든지, 그 역으로, 내가 말을 붙인 거지만, 리얼리즘의 매직이라고 해서 굉장히 사실적인 것들이 오히려 환상을 낳고 탄생시킨다든지 하는, 작품을 올리고 나서 시간이 흐른 뒤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병행하면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공연을 올리고 관객과 만나고 배우와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지만 이게 뭔가 희곡제여서 가능했던 것 같고. 참여하는 모든 시선의 방향이 희곡에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희곡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올해는 공연을 올리기보다는 혼자서 좀 공부를 한다거나 그동안 너무 많은 지원서에 도전하느라 망가진 몸을 치료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또, 희곡 쓰기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넓히기 위해서 관련 워크숍 또는 예술교육의 자리에 좀 참여할 계획이다.
극작가 김주희. 가슴께까지 오는 긴 머리. 어깨 부근을 기준으로 아래쪽과 위쪽의 머리 색깔이 확연히 구분된다. 아래쪽은 노란색, 위쪽은 검은색에 가깝다. 
          하얀색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있으며,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주희
나수민
지금까지 주로 청소년극 작업을 해왔어서 관심사는 전에서부터 이어졌던 거지만 초등학생과 뇌과학을 합쳐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제대로 공부 안 한 상태에서 초고를 써둔 게 있는데 공부하고 나자 글을 완전히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에는 청소년극을 올릴 예정이다. 올해 남은 작업도 다 청소년극들이긴 한데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은, 청소년극만 쓸 것이냐, 그 질문이 가끔 이상하게 다가오더라. 청소년이 주가 되는 희곡을 청소년극이라 부르는 거라면 아마 앞으로도 계속 청소년극을 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관객과의 대화 때 말씀드렸지만 청소년극이라는 이름에 대한 정의를 내 안에서도 많이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올해 왔고, 올해는 그것을 차차 정리해나가는 과정으로 아마 흘러갈 것 같다.
전서아
<무루가 저기 있다>를 컨택 즉흥과 연결해서 올해 인천에서 공연을 올리게 될 것 같다. 9~10월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완전히 새롭게 연출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독공연을 준비하면서 가능성을 봤던 것 같다. 요즘 작가로서의 관심사는 아프고 미치고 나쁜 방식으로 사는 여자들에 대한 얘기다. 나 는 항상 사랑 얘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디까지 사랑을 할 수 있고 어떤 한계까지 사랑을 해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고 싶은 것 같다. 나에게는 항상 이해되지 않는 여자들이 사랑의 대상인 거 같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고 질문을 많이 하는 희곡을 쓰고 싶고, 그게 아마 나를 구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강동훈
작품은 뮤지컬이랑 시나리오를 쓸 거 같고, 올해 희곡은 한 작품 정도 신작 발표를 할 계획이다. 그리고 지금 <그게 다예요>가 공연되고 있다. 요즘은 미래기술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스토리 디자인을 기반으로 웹 개발을 하는 중이다. 이후 웹 개발뿐만 아니라 미래기술 관련해서 스토리 공학, 스토리 디자인을 연계해서 여러 프로젝트들을 추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수다회 전경. 마룻바닥에 벽면은 옅은 베이지색의 공간. 가운데를 비워둔 채 책상 네 개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다. 
          각 책상에 참여자들이 하나, 둘씩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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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도

이홍도
『이홍도 자서전(나의 극작 인생)』 외.
ghdehs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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