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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수영반, 고급스러운 회원님께

다른 손(hands/guests) ⁺

경지은

제237호

2023.07.13

[희곡]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고 써야 할 희곡들을 싣습니다. 올해는 ‘+’가 더해진 ‘다른 손⁺의 희곡 쓰기’를 선보입니다. ‘다른 손’의 주제적 카테고리 안과 밖에서 쓰여진 새로운 작품들을 만납니다.

등장인물
발차는 힘이 좋아

시간
그달의 처음 무렵

공간
수영장 내부

1
음-파 호흡

수영장 안.
주황색 땡땡이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회원이 젖은 채로 입장한다.

발차는 힘이 좋아
지난해, 장례식장에 갔을 때 상주를 마주 보고 무의식중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말을 내뱉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상주에게 안녕을 묻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주황색 땡땡이입니다. 나쁜 의도를 갖고 인사를 건넨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속내가 너무 뻔하잖아요. 다만 저는 상을 당한 날에도 상주를 난감하게 만들고 남들에게 몇 번이고 회자되는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제가 초보용 얕은 풀장에서 발차기만 하고 있어서 짐작도 못 하시겠지만 제 직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입니다. 이 말은 즉 이번 일을 코미디 재료로 삼아 무대 위에서 당신을 저격하며 당신을 낮추고 낮잡아 펀치-업을 날릴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어쩌면 다행이네요. 진짜 주먹은 아니니까요. 진정 다행입니다. 이런 류의 농담은 즐겨 하지 않거든요. 실은 그런 일을 꾸미기엔 몸이 아파서요. 그 사건 이후로 몸이 좋지 않더니 역병에 걸려 집에서 격리 중입니다.
안녕이라, 아무 탈 없이 편안하냐고 안부를 묻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회원님의 안부를 묻기에는 제가 염치가 없어서요. 우리의 첫 만남 이후로 (아, 회원님은 그동안 저를 주시하고 계셨으니까 제게만 유효한 첫 만남이겠네요) 저는 지난 일주일 동안 길을 걷다가도 ‘음-파-합’, 잠에 들다가도 ‘음-파-합’, 수영복 쇼핑을 하다가도 ‘음-파-합’. 회원님 덕분에 숨이 계속 가쁘고 답답해서 ‘파’하고 여러 번 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자주 짧게 호흡하다 보면 그다음 호흡에 영향을 미치더군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발차는 힘이 좋아는 강사로 분한다.
이따금 cheer up! 박수 소리.
강사의 목소리가 수영장을 울린다.

발차는 힘이 좋아
회원님, 이 편지를 읽으면서 ‘음’하고 깊이 호흡하세요. 숨을 헐떡이다가 코로 물을 먹으면 안 됩니다. 집중하세요. 본인만의 페이스를 잃지 마세요. 고급반이니까 더욱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회원님께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 중이어서 저는 지금 ‘합’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깊은 심연 속에서 잠수 중입니다.

잠수한다.
침묵의 빛이 수영장을 비춘다.

발차는 힘이 좋아
(음-파!) 다시 고개를 내밀었을 땐 회원님이 몸 담그고 있는 수영장 물은 두 갈래로 나뉘어 솟구쳐 오르고 수영장 바닥에 홀로 서 있을 저는 이 레인을 따라 당신을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우리는 짙은 색상의 수경을 끼고 두 눈을 마주치겠지요. 네. 저는 연극배우이기도 합니다. 제 손짓 한 번으로 염소 가득한 수영장 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물은 배수구 구멍으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그 힘에 휘말려 회원님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비극 풍에 농담을 섞어 만든 연극적 상상입니다. 복수의 화신이 된 저는 회원님께 감히 안부를 물을 염치가 없습니다. 더불어 다음 주 수업 날이 오기 전까지 가까운 친구들에게 당신에 대해 험담을 했습니다. 만족스럽습니다.
2
레인 코스 로프 경계선

수영장 안, 풀장 밖.

발차는 힘이 좋아
우리는 화요일, 목요일 여성 수영반의 일원입니다. 새벽 6시 수영을 마치고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다르게 평일 오전 10시 수업은 센터에 서둘러 도착하지 않아도 되고 느긋한 샤워 후에 여유롭게 머리카락을 말릴 수도 있습니다. 화목한 날들입니다. 우리는 물에서 만납니다. 수영이란 활동은 몸에 물이 휘감겨 있는 상태니까 물 밖에서 일어나는 중력 에너지와는 다르게 낯선 감각과 차원 안에서 우리는 만나고 있는 거예요. 다만 우리 사이에는 수영장 레인 코스 로프로 경계선을 두고 있습니다. 숙련도에 따른 계급이 있습니다. 회원님은 고급스러운 최상위 고급반 레인에서, 저는 초심 풀장에 있습니다. 힘의 방향을 역행하는 물속에서도 권력은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지는 역설이겠지요. 세 번째 수업을 듣는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인파 속에서 따로 불려 나와 초심 풀장에서 혼자 벽을 잡고 발차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보는 고독합니다. 고독사로 죽기 전에 부랴부랴 숨을 쉬고 있을 때 회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으로 툭툭 치며) 여기서는 실내 수영복 입어야 해요. 지금 입고 있는 건 야외수영복이고, 여기는 실내니까. 회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와서 그래요. 실내 수영복 사서 입어요.”

발차는 힘이 좋아
감사합니다. 미끄러운 수영장 바닥을 직접 두 발로 디뎌 가며 몇 미터를 걸어와서 친히 제게 수영장 룰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물론 강사님께 여쭤보니 그런 규칙은 없다고 했지만요. 저는 연극배우입니다. 하는 일이라곤 10년 넘게 수도권 지역에 분포한 지하 연습실을 떠돌면서 습기에 젖은 대본을 펼쳐두고 ‘왜?’라는 질문만 던지고 있지요. 옆에는 가까운 중국집에서 먹다 남긴 군만두가 한가득합니다. 군만두를 씹으며 질문을 했습니다.
‘실내 수영복의 정의’
‘실내 수영복과 야외수영복의 차이’
‘실내 수영복과 야외수영복을 나누는 기준’
‘실내·외 호환 가능한 수영복 디자인 교집합 영역’
‘수영복 화두를 꺼낸 ‘회원들’ 무리에 대한 인원 점검 및 호명’
‘수영 센터 권력 구도 작동 원리’
‘당신은 누구인가.’
‘인물 구축을 위한 리서치 인터뷰’
‘수업 시간 내 사적 대화로 까먹은 내 수강료 일부 환불 책정 동의 여부’
‘호칭 정리’
‘여성은 왜 ‘아주머니’, ‘아줌마’로 불리면 왜 왜 부아가 치미는가.’
‘‘장풍 쏘듯 손바닥으로 물을 끼얹어?’ 내면에서 발생하는 폭력적인 욕망을 한 줄로 정의하시오.’
‘이 장면의 주제는 무엇인가.’
‘인물의 목표를 방해하는 반동 인물의 등장’
‘초보자가 느끼는 공포심을 땅에서 사용하는 주된 감각, 시각과 청각이 아닌 물에서 확장되는 후각, 미각으로 표현하시오.’
발차는 힘이 좋아
질문을 한 줄 한 줄 글로 써서 보니까 우리가 다니는 수영장 레인과 닮아있네요. 암튼. 그 유명한 수영장 텃세에 물에서 오줌을 지릴 무렵 제가 떠올린 모든 질문을 다 내뱉을 순 없었지만, 질문 몇 개에 아주머니, 아니 회원님은 대답하지 못하셨습니다. 회원님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찰나 수영 강사가 저를 가르치려고 왔고 저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강사에게 “이 수영복 입으면 안 되나요? 저기… 이분이… 이 수영복을 입지 말라고 하셔서요.” 말끝에 살짝 고양이 소리도 낸 것 같습니다옹. 회원님은 한증막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습니다.
3
화목한 화요일을 위한 귤팁

풀장 안, 물속.

발차는 힘이 좋아
실내 수영복과 야외수영복의 차이는 결과적으로 가슴 캡이 봉긋하게 솟아 가슴이 드러나냐, 드러나지 않느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대적으로 젊디젊었지요. 물론 염소가 풀어진 수영장 물로부터 수영복 물 빠짐이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천 재질이 달라지기도 하고,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물속에서 저항력을 줄이는 선수용 실내 수영복도 있지만 회원님의 단호한 압박에서 그런 귤팁은 읽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언어 아래에 있는 숨은 의미를 찾는 것을 즐겨 하는 사람입니다. 물 위보다 물 아래에 있는 풍경을 더 좋아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제 귤팁을 알려드릴게요. 물 아래로 내려가면 물결을 볼 수 있고 물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적막하고 숨이 차면 때때로 슬픈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가라앉은 채로 떠오르는 거죠. 수면 위에는 휘황찬란한 무늬의 수영복을 입고 메이커 용품을 차고 있는 수영인들이 떠 있고 그 아래에는 허우적거리는 분주한 하체가 보입니다. 중심을 잡으려 발버둥을 치는 다리를 보면 물의 속성과 가까운 느낌이라 더 친숙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물 아래에는 우리를 분리하는 레인 부표가 없습니다. 이따금 가랑이 사이에 낀 수영복을 빼내거나 자신의 음모를 정리하는 손길도 봐요. 매주 맞닥뜨리는 벗은 몸에 대한 수치심과 그 수치심을 매일매일 가지런하고 매끄럽게 만드는 여성으로 자란 제 몸을 발견합니다.

물 위, 떠다니는 두개골.
이따금 cheer up! 박수 소리.

발차는 힘이 좋아
수영은 여성의 몸에 대한 역사가 낱낱이 드러나요. 혼자서 바다 수영을 즐기고 있을 때는 미약하게 느껴지던 부분이 단체로 수영하는 여성들을 보고 있으면 강력해집니다. 그래서 괴롭고 그래서 더 황홀합니다. 그러던 중에 당신이 제게 찾아온 거죠. 대단하세요. 수영을 하면서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혹은 혼란스럽지 않게 지금까지 수영을 즐길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회원님이 무슨 반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적이 없으니까요. 고급반이시죠? 초급반에서 본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수영한다.
갈 때 킥판 들고 호흡, 올 때 킥판 들고 팔돌리기.

발차는 힘이 좋아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억울해요. 아까 가슴 캡 이야기요. 그쪽이 말한 실내 수영복 가슴선은 가슴골을 훨씬 뒤덮는 디자인이고 수영인들이 가슴선이 높은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만 제 가슴살이 출렁이는 물처럼 넘쳐흘렀다면 최소한 이해는 했을 (동의는 안 해요) 겁니다. 회원님은 가슴 캡을 구명부표처럼 사용하는 저를 한 방 먹이셨습니다. 한편으론 내 귀여운 가슴이 성적으로 읽히다니 전례 없던 여성성을 증명받은 느낌이라 찰나에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성적으로 읽히는 가슴은 성별에 따라서 드러내고 감추기를 반복해요. 새까맣게 그을린 날씬한 몸을 가진 젊은 여성이 가슴 캡이 도드라진 주황색 땡땡이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을 활보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은 부분이 있으셨겠죠. 50분 수업을 2회 받는 동안 한 무리가 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주시했다니 여러분이 조금 변태스럽긴 합니다.
이 복합적인 작동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여성 수영인을 위한 여성주의 입문 입수 음-파-합] 강좌를 여는 상상을 했습니다. 같은 음(같은 소리를 내는 목적)으로 파(어그러뜨리고)를 하고 합(일정 부분 여럿을 한데 모으는)하는 방향성으로 만드는 느슨한 연대 따위요. 수강료는 유료로 해서 진행할 예정이니 한번 방문해 주세요.는 농담입니다. 줄곧 수업이 끝나고 고급반 회원님들이 저를 둘러싸고 욕하는 상상에 잠겨있었습니다.
마지막 항변은, 이번 강습을 계기로 새 수영복을 사는 것이 유일무이한 의류 소비 결심이었어요. 우유부단한 제가 몇 날 며칠을 고심해서 수영복을 골랐는데 주문한 수영복이 작아서 반품한 상태였다고요! 아무래도 다음 수업에 바로 실내 수영복을 입고 가면 그 ‘회원들’ 무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이라 몇 주는 안 입고 버텨보기로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만약 돌아오는 수업 시간에 제게 또 한 소리, 어조, 어투 등 언어를 포함한 분위기, 몸짓, 호흡, 표정, 비언어적 수동 공격을 일삼는다면 저는 빠른 시일 내에 고급반으로 진급하겠습니다. 마지막 훈련에서 팔 돌리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강사님은 말없이 흐뭇한 따봉을 날려주셨습니다. 항간에는 중급반 인원들이 고급반으로 진급하길 꺼린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텃세가 너무 심하다고요. 저는 속력을 내보겠습니다. 회원님. 화요일, 저를 환영해 주세요.
4
보글보글, 첨벙

물. 우물쭈물 혹은 우쭐하게 유영하는 몸이 입장한다.

발차는 힘이 좋아
아직도 수영장을 걸을 때마다 킥판으로 가랑이 사이에 삐져나온 털을 가리면서 걸어요. 이제는 제모하는 횟수가 줄었지만 수영을 시작하려고 가랑이를 벌리거나 팔을 크게 휘두를 때 샤프심처럼 삐져나온 털을 남자 수영 강사에게 들킬까 봐 괜히 마음을 졸이기도 합니다. 지난번엔 월경해서 수영장에 갈 수가 없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에 [생리할 때 수영장]을 검색하니까 생리혈이 수영장에 퍼질 수도 있고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질을 오염시킬 수 있으니까, 다수가 추천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간다면 탐폰을 쓰라는 식. 월경하는 동안 질로 외부 물질이 침입하면 감염이 될 수 있으니까 안 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요. 땀, 침, 정액, 냉, 소변, 워터파크에는 똥도 떠다닌다는데 인간의 몸에 묻거나 흘러나오는 체액은 수영장에도 한가득할 텐데 땀, 침, 정액, 냉, 소변, 똥, 체액과 월경혈이 다른 건 뭘까요? 몸속에 있을 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 몸 밖으로 나오면 왜 다 더러운 것이 될까요. 특히나 여성의 피는 왜 오염이라고 여겨질까요?

발차는 힘이 좋아가 물속에서 몸을 떤다.

발차는 힘이 좋아
나는 월경하는 동안 수영장에 가질 못했어요. 회원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성별이 달라도 같은 기간 동안 같은 금액을 지불하고 시설을 이용하지만 월경한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한 달에 몇 번씩, 꼭, 그곳을 가면 안 되는 사람이 됩니다. 특정 공간에 참여할 수 없고 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용 금액에 차이가 있거나 삭감되는 회차가 다음 달로 이월되지 않아요. 처음 듣는 터무니없는 소리일까요. 맞아요. 그냥 상상을 해봤어요. 그냥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날이 되면 여성은 자연스럽게 그곳에 가지 못해요. 다음 방문 때 물어보려고요. 수영하고 묻는 게 낫겠어요. 수영하고 나면 배가 허기져도 에너지 영역이 훨씬 충만해지거든요. 질문에는 용기가 따르니까요. 수영하고 물어보는 게 낫겠어요.
수영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팔을 더 크고 높게 멀리 보내면서 물을 젓기 시작했어요. 가랑이를 벌려서 발차기를 해요. 거뭇거뭇한 살이 광활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의 수치스러운 몸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며 앞으로 뻗어나갈 때마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수업 막바지에는 호흡이 짧아지고 거칠어지죠. 기진맥진 힘이 풀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올 때면 같은 반 최고령 회원님이 환하게 맞이해 줘요. 저보고 발차는 힘이 좋대요. “발차는 힘이 좋아!” 그분은 자주 코너에서 쉬고 있지만 레이스 흐름이 끊기지 않게 회원들을 다정하게 북돋고 누가 다리에 쥐가 나진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요. 그리고 가장 늦게 풀장을 나오시죠. 운동이 끝나면 샤워장에서 서로에 등을 밀어주더라고요? 나중에 저한테도 닿지 않는 등을 밀어주는 사람이 생길 수 있을까요? 다양한 영법과 스피드를 구사하는 그곳에서의 레이스는 어떤가요? 혹시 잠수와 영법을 함께 하는 잠영도 배우나요? 맙소사. 저번에 보니까 밖에서 점프로 입수해서 레이스를 하고 나오던데 모두 표정이 밝았어요. 거친 숨을 내뿜으며 발갛게 상기된 볼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덕분에 가까운 미래를 떠올릴 수 있었어요. 나도 계속 계속 연마하다 보면 물과 어우러지는 몸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겠다는 ‘기대’요. 빨리 화요일이 왔으면 좋겠네요.
수영을 하려면 몸과 물이 하나가 되어야 한대요. 왠지 그 말은 잘 안 믿게 돼요. 하나가 되는 건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내가 자주 가라앉을 때 몸 안에서 보글보글 떠올라요. 아파서 쉬는 동안 책을 읽었어요. 짧은 구절을 나눕니다.

“네 가지 원소 중에서 물만이 우리를 기꺼이 환영하고 그 액상의 품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새처럼 공기 속을 날아오르지 못하고, 두더지처럼 흙 속을 파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샐러맨더처럼 불을 뚫고 지나가지도 못하지만,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는 있다.”

발차는 힘이 좋아
이번 주도 같은 액상에 뛰어들어요. 물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생존하고 건강하고 경쟁하고 몰입해 봅시다. 첨벙.

그가 액상으로 뛰어들자
접영을 꿈꾸는 두 팔이 날개처럼 거대해진다.
날개가 수면을 내리치는 순간
수영장 물이 두 갈래로 나뉘어 솟구쳐 오른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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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은

경지은
극장에 머무는 동안 당신과 내가 대체로 즐겁기를 바랍니다. 연극의 세계와 관객을 잇고 싶은 감각 전달자. actkj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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