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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파이 개미

다른 손(hands/guests)⁺

박하늘

제238호

2023.07.27

[희곡]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고 써야 할 희곡들을 싣습니다. 올해는 ‘+’가 더해진 ‘다른 손⁺의 희곡 쓰기’를 선보입니다. ‘다른 손’의 주제적 카테고리 안과 밖에서 쓰여진 새로운 작품들을 만납니다.

등장인물
해녀, 개미, 빵집 아이1(청인), 빵집 아이2(청각장애인), 어시장 상인, 관광객들 목소리, 의사 목소리
아이들은 쌍둥이여도 되고 아니어도 된다.

시공간
현재(2023년), 섬마을
해가 잘 드는 바닷가 마을에서 사람들은 성실하게 일하고 나른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
1장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해녀의 집.
창문 틈으로 들어온 개미 한 마리가,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해녀의 손등을 기어가다가 문다.

해녀
아야.

개미는 해녀의 손짓에 소금 파이로 떨어진다.

개미
아야.

해녀가 자다 깨서 손등을 만지며 두리번거린다. 손톱으로 열 십자를 긋고 침을 바른다. 한숨 그리고 하품.

개미는 크게 말하고 해녀는 작게 말해야 서로 들린다.
다음의 ‘나는/아니야’는 다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 괄호 안은 참고만 한다.

개미
나는. (너 때문에 아프잖아!)
해녀
아니야. (꿈에서 본 걸 부정한다, 소금 더미에 짓눌리는 꿈)
개미
나는. (… 약간 문 건데)
해녀
아니야. (두리번거리며 / 환청이 들리는 건가)
개미
나는. (어? 나 여기 있어!)
해녀
아니야. (웃음 / 그럼 그렇지, 잘못 들었나 보네)
개미
나는. (한숨 / 여기 있는데…)
해녀
아니야. (기지개를 켠다 / 정신 차리자!)
개미
나는. (그렇다면, 들키지 말고 이곳에 머물겠어!)
해녀
아니야. (안 돼!)
개미
왜?
해녀
왜?
개미
내 말이 들려?
해녀
어. 어?
개미
너 나를 죽이려고 했지. (계속 아픈 중이다)
해녀
누구야? 어딨어? (해녀의 손등에서 떨어져 나간 개미가 해녀에게 보이지 않는다)
개미
여기? 나도 잘 모르겠는데. 푹신푹신하고… 냄새가 좋은데… 맛은…
해녀
내 소금 파이! (빵을 흔들어 개미를 떨어뜨리고 밟으려는데)
개미
야!
해녀
어? … 너는!
개미
안 뺏어 먹어 걱정 마. 나 소금 싫어해.
해녀
… 이거 내 빵이야.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난 개미랑 못 살아.
개미
저기, 그러지 말고.
해녀
니가 물어서 이렇게 된 거 봐. (침 바른다)
개미
문 건 미안해. 나도 놀라서 그만… 근데 내가 사정이 있거든. 꼭 먹이를 찾아서 돌아가야 돼. 어… 이렇게 하면 어때? 다른 개미들은 절대 이곳에 데려오지 않을게. 응?
해녀
뭐? 다른 개미들?
개미
있지, 나 겨우 살아남았어. 모래사장에서 오래 헤맸거든. 모래가 워낙 푹신푹신해서 사람들한테 잘 안 밟히긴 했는데, 너무 무서웠어. 이 집은 나만 알고 있을게. 응? 창문에 틈이 살짝 있어서 거기로 들어온 건데. 여기 오기 전까지 간신히 파도를 피해서 사람들이 남긴 것들로 버틴 거야.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일반 쓰레기 사이에서…
해녀
널 어떻게 믿어.
개미
사실은 나 임신했어. 그래서 안전한 곳이 필요해. 부탁할게.
해녀
이 집에다 새끼를 깐다고? 절대 안 돼! 빨리 나가.
개미
아니 아니. 안전하게만 머물다가 간다고. 알 낳기 전에 나가. 진짜 약속해.
해녀
거짓말. 여왕 개미만 알 까는 거 아냐? 계속 내 피 빨아먹으려고 그러지? 가만 안 둬. 개미가 싫어하는 소금 가득 뿌려버린다, 바퀴벌레 들여오거나, 이건 아니고. 진짜 안 나가면 밟아 죽일 거야.
개미
야!
해녀
깜짝이야. 언제 또 다리에. (어느새 해녀 다리에 바짝 붙어 앉은 개미)
개미
이것 봐, 나 이제 안 물잖아. 여기서 바퀴벌레도 잘 내쫓고, 다른 개미들도 못 오게 문지기 노릇도 잘할게. 너도 이런 개미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아? 어때? 잘 생각해봐. 응?
해녀
일단 일주일이야. 그 안에 다른 벌레 들어오기만 해봐. 그럼 넌 바로 추방이야. 알았어?
개미
응! 지켜봐 봐.
해녀
그래…
2장

바닷속.
바닷속을 헤엄치는 해녀 주위로 간혹 변형된 물살이들이 헤엄친다. 처음 보는 물살이에 놀란 해녀가 뒤로 헤엄치다 다시 물살이들을 잡는다. 그러나 변형된 물살이는 잡지 않는다. 잡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수압을 거쳐서 기이하게 들려온다. ‘바닷바람 진짜 좋다, 역시 섬으로 여행 오길 잘했어, 온 김에 원 없이 먹고 놀다 가자’ 등등. 그때 플라스틱 병 하나가 해녀 머리 위로 떨어진다.

해녀
아야.

또 다시 사람들 웃고 떠드는 소리. 이번엔 온갖 쓰레기들이 왕창 떨어진다.
해녀가 쓰레기 더미에 쌓여 둥둥 떠다닌다. 마치 쓰레기 고래 같다. 사람들은 더욱 크고 괴상하게 웃고 떠든다.

3장

수산시장 경매장.
육지에서 해녀가 풀어놓은 것들에는 쓰레기가 한가득 있다.

상인
요즘 왜 이렇게 못 잡아, 한두 번도 아니구 계속 이러면 우리 장사 못 해.
해녀
요즘 잡는 게 좀 힘들어요.
상인
거르는 건 우리가 하니까 다 잡아 와. 뭘 생각해 거기서, 숨도 가쁜데.
해녀
올 초부터 왜 이렇게 바다가 힘이 드나 모르겠어요.
상인
자기도 먹고 살아야지. 안 그래도 지금 고기 값이 많이 올랐다니까. 이럴 때 잡아야 남들보다 더 많이 벌지. 알겠지?
해녀
근데 고기보다 쓰레기가 더 잡힌다니까요. 그것들도 돈이 되면 지금 엄청 벌 텐데(웃음).
상인
망할 놈의 인간들! 어? 아니 지난번에도 여기서 회 떠갖고 바닷가 가서 먹겠다는 거야. 부탁을 부탁을 그렇게 해갖고 그렇게 해줬더니만. 아니 그냥 다 처먹고 죄다 버려두고 갔더라니까. 아주 그냥 썩을 놈의 인간들, 징그러워 죽겄어.
해녀
그러니까요. 조용하고 좋았는데 어쩌다 관광지가 돼 가지고.
상인
그러니까 자기가 많이 잡아 와야지. 돈 많이 벌어갖구 관광객 없이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아버리게.
해녀
그럴까요? (웃음)
상인
참, 그 뉴스 봤어?
해녀
아.
상인
자기가 보기엔 어때? 진짜 그런 게 보이는가?
해녀
네…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라서 도망가다가, 다시 잡으려고도 했는데… 그게 진짜 방사능 오염수 때문이면 너무 위험한 거잖아요. 그걸 아니까 더 못 잡겠더라고요. 그게 뭔지 아는데, 잡아다 감쪽같이 회 떠갖고 모른 척하고 팔 수는 없을 거 같아서…
상인
이제 어떻게 먹고 사나… 물질이 쉽지 않겄어.
해녀
그래도 해녀 일을 십오 년을 했는데, 힘닿는 데까지 더 해봐야죠. 일단 그렇게 알고 계세요.
4장

모래사장
아이1은 입을 크게 벌려 천천히 말하고 몇 가지는 수어로 얘기한다. 아이2는 수어를 하며 입모양도 해 보인다.

아이1
많이 찾았어? 봐 봐.
아이2
여기.
아이1
나도 이만큼.
아이2
더 많이 있어.
아이1
응. 나도 봤어.
아이2
하자.

아이1과 아이2는 모래사장 한편에 쓰레기로 된 마을을 짓는 중이다.

아이2
이렇게 다 지으면 여기 와서 꽃게가 살까?
아이1
글쎄. 어! 지렁이다.
아이2
우리 마을이 마음에 드나 봐. 개미도 있어 개미.
아이1
개미 엄청 많다.
아이2
과자 봉지.
아이1
과자 먹으려고 온 거네.
아이2
쓰레기 더 모아올까? 마을 사람을 늘려야지.
아이1
마을 동물? 곤충? 벌레? 으… 우리 그냥 치우자. 쓰레기통에 갖다 버릴까.
아이2
엄청 열심히 만들었는데?
아이1
아깝기는 하지.
아이2
여기에다가만 쓰레기 쌓이게 우리가 다 모으는 거야. 다 모아서 만들고 보여주자.
아이1
그다음에 버릴 거지?
아이2
응. 배고파.
아이1
엄마한테 갈까.
아이2
엄마 빵 맛있어.
아이1
그때 그거 소금 파이였지.
아이2
응. 이거.
아이1
그냥 떨어뜨린 거 아냐?
아이2
아냐. 빵집 창가에서 봤어. 한입 물고 뱉는 거. 너무해.
아이1
엄마가 발견하기 전에 우리가 여기 갖고 와서 숨겨두었잖아.
아이2
응. 여기. 근데 정말 맛없나 봐. 과자 봉지 가득 있는 개미들도 먹지를 않아.
아이1
우리 엄마 빵 맛있는데.
아이2
어!
아이1
(가리키는 곳을 본다)

마주 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일그러지며 불안하다.
멀리서 해녀가 바닷속을 들어가려다 멈칫하길 반복한다. 주저앉아 주변을 살피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다. 아이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구어와 수어로 인사하는 해녀.

해녀
안녕!
아이1,2
안녕하세요.
해녀
너희 여기서 뭐해?
아이1
집 짓고 놀았어요.
해녀
진짜 많이 만들었네. 근데 이게 다…
아이1
주워 왔어요. 여기저기 많아요.
아이2
우리가 버린 거 아니에요.
아이1
사람들이 버리고 간 거예요.
해녀
어 나도 알아. 바다에서 많이 보거든. 저 그물망으로 한가득씩 담겨.
아이2
우리 섬이 쓰레기통인가.
아이1
우리가 만든 거 어때요?
해녀
어… 쓰레기들로… 잘 만들었네. 음식물도 있구나, 그래서 개미가… 저건 소금 파이…?
아이2
왜 버렸어요?
아이1
야아…
아이2
우리 엄마가 만든 빵 맛있는데 왜 버렸어요?
아이1
우리가 봤어요. 아줌마가 저번에 빵집 앞에서 한 입 먹고 버리는 거.
해녀
아, 그거…
아이2
아줌마 진짜 나빠요.

멀리서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영아 랑아 어딨어- 집에 가자- 저녁 먹게 빨리 와-”
아이1이 아이2에게 수어로 설명하고,
뛰어가는 아이들.

해녀
(쓰레기 마을에 놓인 소금 파이 조각을 보며) 맛없어서 버린 게 아닌데…
5장

해녀의 집.
코로나19 확진으로 자가격리 중이다.

해녀
너도 걸리기 싫으면 이제 나가.
개미
진짜 확진이야? 그럼 나도 옮는 건가?
해녀
모르지. 인간한테만 옮기는 건가?
개미
가까이 오지 마.
해녀
이참에 나가면 되겠네. 아님 너도 걸리든가.
개미
아니야. 난 안 걸릴 거야.
해녀
마음대로 해. 근데 너, 그새 알 깐 거 아니지?
개미
당연하지! 그래서 애들한테 아직 말 못 했어?
해녀
응. 야 나 아프니까, 더 이상 말 시키지 마.
개미
내 새끼들은 잘 자라고 있겠지? 알은 언제쯤 까게 될까. 어디 가서 낳으면 좋을까.
해녀
글쎄… 여기만 아니면…
개미
그래. 거기 쓰레기 마을이라고 했나. 거기 개미들 많이 있다고 그랬지?
해녀
글쎄…
개미
먹을 것도 있고…
해녀
음식물 쓰레기…?
개미
왜 걱정돼?
해녀
아니야.
개미
그래. 나 없으면 바퀴벌레 생길까 봐 그러지?
해녀
그러고 보니 진짜 없었네.
개미
헤헤.
해녀
쓰레기 마을은 곧 없어질 거야. 안전한 데를 잘 찾아봐.
개미
없어져? 왜?
해녀
쓰레기니까 치워야지.
개미
그럼 애들은? 애들이 만든 건데?
해녀
개미
애들 놀게 그냥 두면 안 돼?
해녀
… 소금 파이 말이야.
개미
뭐?
해녀
소금 파이를 한입 베어 무는데, 너무 무서운 거야. 입안 가득 오염된 바다가 퍼지는 거 같아서 바로 확 뱉었어.
개미
소금이 원래 무서운 거야.
해녀
애들이 그걸 챙겨뒀더라고.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애들한테 진짜 이유를 말해줘도 괜찮을까.
개미
애들도 알 건 알아야지. (주방의 소금통을 가리키며) 작은 알갱이 하나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해녀
잘 말할 수 있을까?
개미
오해가 생기는 것보다 낫잖아. 근데 있지. 우리 같이 살면서 주파수가 맞아졌나 봐.
해녀
무슨 소리야?
개미
크게 얘기 안 했는데 너 들리는구나.
해녀
나도 작게 말 안 했는데… 소름…
개미
나 아무래도 여기 계속 살아야 할 거 같아.
해녀
(작게) 아니야.
6장

바닷가. 쓰레기로 만든 마을.
진료비 계산서와 약봉지를 들고 멍하니 앉아 있는 해녀. 잔뜩 사온 빵을 먹으면서 울고 있다.
병원의 의사와 해녀 목소리 회상.

해녀
이게 후유증인지 몸이 계속 아파서요.
의사
잠은 잘 주무시나요? 숨이 차거나 가슴에 통증을 느끼진 않고요?
해녀
꿈을 자주 꾸거든요. 제가 빵을 좋아하는데, 꿈속에서 한입 먹으면 이상한 물고기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와서 팔딱거리면서 요동치는 거예요. 그러면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고…
의사
일단 잠은 잘 주무셔야 되고요. 혹시 해외에 다녀오신 적이 있나요?
해녀
아니요. 이 섬에서만 십오 년 살았어요.
의사
코로나 후유증은 아니고 협심증인데요. 혹시 최근에 뉴스 보셨나요? 과거에 일본에서 방사능에 노출됐었던 노인분들한테서 발생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가슴이 짓눌리는 거 같은 통증을 느끼는 건데, 일단 약 드시면서 경과를 보시죠…
해녀
협심증이요? 친구 아버지가 그걸로 돌아가셨었는데…
의사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거예요.
해녀
선생님 저 물질하면 안 되는 건가요?
의사
제가 해오신 일을 어떻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지금은 치료법도 많이 좋아졌으니까 다음 주에 뵙도록 하죠. 우리가 바다하고 관계를 다 끊고 살 수는 없겠죠.
해녀
네… (한숨)

해녀는 진료비 계산서를 구겨 쓰레기 마을에 던진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한아름 가지고 다가온다.

아이1
뭐야. 그것밖에 안 가져 왔어요? 우린 이만큼 가져왔는데.
아이2
엄청 많죠.
해녀
안녕 안녕.
아이2
(아이1에게) 아줌마 울었나?
아이1
아줌마 울었어요?
해녀
아니 안 울었어.
아이2
(아이1에게) 약.
아이1
(아이2에게) 아줌마 어디 아픈가?
해녀
아니야, 그냥 조금.
아이2
(빵 봉지 발견) 우리 집 빵이다.
해녀
너희도 먹을래?

아이1과 아이2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해녀가 아이들에게 빵을 가득 내민다.

아이2
피자빵…
아이1
초코…

세 사람 나란히 앉아 빵을 나누어 먹는다.

아이1
빵집은 안 오고 왜 여기만 와요?
아이2
아줌마 다시 우리 집 빵 먹어요?
해녀
빵 먹지. 내가 너희 집 빵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이2
근데 왜 그때는 버렸어요?
해녀
그게. 나, 병원에서 소금 알레르기 생겼다고 약 먹어야 한대. 절대로 너희 집 빵이 맛없어서 그랬던 거 아니다. 봐, 소금파이 말고 다른 빵은 맛있게 먹잖아.
아이2
그럼 소금만 아니면 되는 거예요?
아이1
소금 파이 못 먹어도 괜찮아요?
해녀
이렇게 맛있는 빵이 많이 있어서 괜찮지.
아이2
소금빵은 소금이 핵심인데.
해녀
그동안 바닷속에서 소금물 많이 먹어서 아주아주 충분해.
아이2
그래도…
아이1
아줌마는 소금 엄청나게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바닷물에도 그렇게 오래 있고, 빵도 소금빵만 먹고. 그런데 이젠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어요?
해녀
응. 약 먹으면 괜찮을 거야. 우리 이거 다 먹고, 쓰레기 마을 같이 만들까? 나도 저기 그물망에서 쓰레기 많이 챙겨올게.
아이2
좋아요. 많이 가져와요. 쓰레기 마을 크게 만들어야지.

인물들 동작을 거꾸로 해서 장면을 조금 앞으로 돌아가 다시 해 보인다.
세 사람 나란히 빵을 나누어 먹는다.

아이1
빵집은 안 오고 왜 여기만 와요?
아이2
아줌마 다시 우리 집 빵 먹어요?
해녀
빵 먹지. 내가 너희 집 빵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이2
근데 왜 그때는 버렸어요?
해녀
나, 이제 다시는 소금을 먹지 않을 거야. 소금이 가득한 저 바다에서 난 봤어. 오염된 것들 때문에 물고기들이 이상하게 변했어. 그러니까 이제 너희들도 물고기도 소금도 절대로 먹어선 안 돼. 모든 게 다 오염돼 있어. 우리 마을은 거대한 쓰레기 마을이야. 난 더 이상 바다에도 들어가지 않을 거야. 소금이 무서워. 우리가 먹는 거에 소금이 안 들어간 게 있을 거 같아? 물고기처럼 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곧 보게 될 거야.

아이들 울면서 뛰어나간다.
해녀는 쓰레기 마을을 부순다.

7장

해녀의 집.

개미
정말 애들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해녀
개미
너 정말 실망이다.
해녀
애들도 알 건 알아야 한다며.
개미
그래도 좀 풀어서 말했어야지. 애들이 놀랐을 거 아냐.
해녀
풀어서?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둘러서 둘러서 좋게? 난 거짓말 못 해. 진단 받고 발길이 향하는 대로 간 데가 거기였어. 애들이 만든 그 쓰레기 마을이, 바로 내가 사는 곳이었다고. 알겠어? 이렇게 다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바다에서 열심히 헤엄쳐 왔는데… 근데 이제 죽는다잖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위험한 거라는데. 너라면 어떻게 풀어서 말했을 거 같은데?
개미
그래서 쓰레기 섬에서 이대로 살다 죽을 거야?
해녀
누가 그렇대?
개미
그렇게 나약한 소리 하면 나 여기 눌러 살 거야.
해녀
… 떠나려고 했어?
개미
곧 알을 낳을 때가 된 거 같아.
해녀
니가 알을 낳으면, 우리가 여기서 다 같이 살 수 있을까?
개미
무슨 말이야?
해녀
너도 위험한 개미 떼가 될까 봐 무서워. 좋아하는 것들이 다 무섭게 변하니까.
개미
나는 떠날 거야. 코로나는 안 옮았지만, 인간보다 무서운 바이러스는 없는 거 같아. 여기서 알을 낳을 수는 없지.
해녀
그 전에 내가 널 죽이면?
개미
뭐라고?
해녀
바이러스 인간이 개미를 죽일 수도 있잖아.
개미
너 설마.
해녀
이 집에 새 식구들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개미
정말?
해녀
나, 물질도 계속하려고. 소금을 아예 안 먹고 살 수도 없지 않겠어?
개미
나는 소금 없이도 잘 살 수 있는데.
해녀
그래!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두려울 게 뭐 있겠어.
개미
누가 죽는대! 죽는단 말 하지 마.
해녀
나중엔 이 집도 너한테 물려줄게.
개미
나이스.
해녀
이제 소금 따위 무섭지 않아. (소금을 한소끔 집어 먹는다)
개미
(기겁한다)
해녀
물질도 계속 하고, 바다에서 쓰레기도 건져 올릴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하나씩 해볼 거야.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이대로 잃을 순 없으니까.
개미
나, 곧 알 낳을 거 같아!

개미는 산통을 느낀다.
해녀는 잠시 놀라고, 진심으로 기뻐한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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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

박하늘
연극과 다원예술 분야에서 배우, 창작, 음성해설 등을 협업하고 있습니다.
@skypark_han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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