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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목동아

다른 손(hands/guests)⁺

김지현

제241호

2023.09.07

[희곡]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고 써야 할 희곡들을 싣습니다. 올해는 ‘+’가 더해진 ‘다른 손⁺의 희곡 쓰기’를 선보입니다. ‘다른 손’의 주제적 카테고리 안과 밖에서 쓰여진 새로운 작품들을 만납니다.

등장인물
지후     20세, 여자
엄마     51세, 여자
그 외

지후, 막 일어난 얼굴로 하품하며 방에서 나온다.
거실 소파에 털썩 앉는다. 아직 졸리다. 여름 옷차림.
엄마, 현관에서 택배상자 들고 오면서

엄마
너 무슨 택배 왔다.
지후
(졸린) 어 그거 엄마가 주문해 달라 한 그거 같은데, 엄마 세럼.
엄마
(반색) 아 엄마 세럼.

지후, 영 졸린지 소파 등받이에 뺨 대고 기댄다.
엄마, 거실 테이블에 택배 상자 올린 뒤 풀기 시작한다.

엄마
(풀다가) … 이게 뭐야? 어머. (이해가 안 가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계속 푼다) 어머머머 이게 뭐야? 뭐니 이게…?
지후
(졸린 눈 뜨고) 왜? (엄마가 꺼내든 리코더 케이스 보고) 어 리코더! (눈이 번쩍 뜨이며 반색) 아 리코더! 내 리코더!
엄마
?!
지후
(받아 들고) 맞다 내 리코더! (신난) 리코더 왔구나! (케이스에서 리코더 꺼내며) 진짜 빨리 왔다. 이거 어제 주문했거든? (신통한) 근데 오늘 온 거야.
엄마
주문했다고 이거를?
지후
(리코더 구경하며) 응.
엄마
(너무나 혼란) 왜?
지후
불려고.
엄마
불려고? 리코더를?
지후
응.
엄마
(여전히 혼란) 왜?
지후
(신난) 뭔가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 없잖아. 뭔가 음악이 진짜 필요해 사람은.
엄마
…….
지후
(리코더만 신나게 살피고 있다)
엄마
… 그래서 이거를 샀어 리코더를? … 불고 싶어서?
지후
(운지법 적힌 종이도 살펴보고) 응.
엄마
(정말 궁금할 지경) … 언제 불고 싶니 이걸?
지후
(구체적으론 생각 안 해봤다, 리코더 닦으라고 넣어준 천도 뒤집어보고 살피며) 그냥…… 알바 끝나고 집에 와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좀 불고 싶고…….

엄마, 너무 기가 막혀 더 이상의 질문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
(가까스로) … 이게 얼마니?
지후
사만 팔천 원. 구천 원인가? 아 그건 배송비다. 팔천 원. 사만 팔천 원.
엄마
(계속되는 기막힘)
지후
(엄마 얼굴 보고,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엄마. 이건 아울로스 리코더야.
후기가 삼천백세 개에다 삑사리가 안 나기로 유명해.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리코더가 아냐.
(인터넷 후기 보여줄 기세) 볼래 후기?
엄마
(기막힌) 아니? 삼천 개 아니고 삼만 개여도 왜 사니 리코더를? 사만 팔천 원 주고?
(답답한) 후기 다 초등학교 부모들이 올렸지. 아니 기타 있겠다, 뭐 클라리넷,
지후
(생각만 해도 힘든) 언제 배워! 그리고 기타는 난 매력을 모르겠어.
엄마
…….
지후
근데 리코더는 내가 어릴 때 수행평가 봤잖아. 그지.
엄마
(머리 아픈) …….
지후
나 다 A 받은 거 기억 나지. (좋은 생각 난) 엄마도 하나 사줄까? 같이 불래?
엄마
(너무나 어이가 없다) 아니? 바빠 죽겠는데 엄마가 지금 너랑 마주 앉아서 리코더 불게 생겼니?
지후
(리코더 돌려 조절하며) 왜 합주하자.
엄마
(말같이 듣지 않고) 너 그러면 어디 밖에 가지고 나가서 불어. 집에선 불지 마,
지후
왜?
엄마
엄마가 명색이 음악학원 원장이었는 데다가 너 언니는 작곡한다고 다 알고 있는데, 너 12층도 알고 이제 16층도 알아. 3층에 예나 엄마도 알고. 엄마 동대표 회장 됐어. 사람들 다 알아. 근데 그 집에서 이렇게 네가 부는 리코더 소리가 나 봐. 어머 저 집은 엄마는 음악학원 원장을 했다는데 왜 저런 소리가 나 그러지 않겠니?
지후
(외롭다) …….

지후, 리코더 들고 소파에 앉는다.

엄마
피아노를 쳐. 집에 피아노 있는데 피아노를 쳐.
지후
(불퉁) 못 쳐. 집에 오면 여덟 신데 왜 쳐 그 시간에. 미안해 윗집이랑 아랫집에.
엄마
이게 더 미안해. 이건 대낮에 불어도 미안해.
지후
아니 왜 미안해? 리코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데 풍성하고,
엄마
아후…….
지후
아니 들어 봐.
엄마
(머리 아프다) 아휴.
지후
아니 들어보라고. (큰 맘 먹었다는 듯) 뭐 불어줄까. (엄마 좋아하는 곡 떠올려) 그거 ‘아 목동아?’
엄마
너를 어떡하니?
지후
분다.
엄마
…….
지후
(연주 시작하겠다는 눈빛)

엄마, 밖에 들릴까 무서워 창문 닫는다.
지후, 아울로스 리코더에서 어떤 깊은 울림의 소리가 날지 떨린다.
그러나 울려 퍼지는 삑사리.
음도 제대로 못 짚어 자꾸 틀린다.
심지어 높은 파는 낼 구멍이 없다.
반음을 내려면 구멍을 반만 막아야 하는데 소리 헛나가고,
쇳소리 난다.
연주 멈춘다.
다룰 수 없는 리코더.

엄마
(하는 양을 보다가 웃긴) 부니까 좀 좋아졌어 기분이?

엄마, 자기 방으로 간다.
지후, 괜히 리코더 이리저리 돌려가며 다시 맞추고, 다시 심기일전해 불어보지만
여전히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소리들.
어느 곡은 요행히 좀 된다 싶다가도, 학생용 소프라노 리코더의 한계상, 원하는 음역대를 연주할 수가 없어 한 옥타브만 올라가도 연주가 중단된다.
그래도 이 음 저 음 불어보는데

엄마
(참다못해 방에서) 뱀 나와!

리코더와 자기 사이 거대한 벽을 느끼고 만 지후.
미 소리를 내려고 연신 숨을 빽빽 넣어보지만
나는 소리는 탁한 레뿐이다.
지후, 상심한 나머지 소파에 툭, 리코더 던지듯 놓는다.
지후, 소파 등받이에 머리 기댄 채, 여전히 상심한 눈으로, 투명한 리코더라도 잡은 듯 허공에 손가락 올리고 움직이는데, 다음 음 솔, 그다음 라, 한 음씩 들려온다. 점점 유려해지는 소리들.
지후, 허공의 상상 속 리코더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연주를 하고 있다.
뻗어나가고 돌아오고 휘몰아치는 소리들.
온갖 음역대를 넘나든다.
거실 조명까지 아늑한 빛으로 조절된다.
심지어 지후의 솔로에 맞춰 합주해주는 오케스트라 소리까지 들려온다.
지후, 연주 갈무리되며 몰입한 나머지 눈을 감는다. 더 바라는 것 없다.
무대 같이 암전된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밝아진 집(무대) 전체를 휘감은 뱀.
뱀, 빛난다.
뱀, 집을 휘감은 채 자기 혼자 흥겹게 춤추느라 바쁘다.
방금 지후가 불었던 리코더 음악을 혼자 휘파람으로 불며 그에 맞춰 연신 춤춘다.
음악에 취한 상태.
지후, 얼어붙어 있다가

지후
저기
(못 듣고 춤만)
지후
저기 (더 크게) 저기!
(그제야 휙 머리만 돌려 지후를 보는)
지후
너 뱀이야?
아, (춤추며) 어!

뱀이 집을 감싸고 춤추다 휙 격하게 율동하자
기울어지는 집.
지후, 바닥에 주저앉아 미끄러지며

지후
으아아!

지후, 본능적으로 뱀 아무 데나 잡아채는데
뱀, 꼬집히자 고통에

아야야!
지후
으아아!
(빽) 야아!!
지후
미안미안미안.
(아프다) 아야.
지후
(다급히) 미안, 미안.
(눈물이 뚝뚝, 목청껏 서러운 비명) 아야아아.
지후
(너무 우니까 당황해서) 피나?
피나서 우는 게 아니고!
지후
그러면?
(매정히 눈물 닦아내며 마음 가라앉히고) 좀 그래.
지후
뭐가?
넌 아무것도 모르지?
지후
응?
(꼬리로 자기 가슴을 치며) 내가, 어? 네 뱀이, 어?
지후
(놀라) 네가 내 뱀이야?
그래! 근데! 너는!
지후
(혼란) …….
(참고 한숨 푹) 물론…… 네가 잘 만들긴 해.
지후
뭘?
저 해 속에, 지금 네가 롤러코스터 하나 만들었어.
지후
?!
네가 연주하면 새로운 게 막 만들어진단 말이야.

지후, 혼란 속에

지후
진짜? 뭐가 생기는데?
다르지. 뭐 언제는 그네 생기고, 언제는 길 네 개 생기고, 이번엔 막 롤러코스터.

뱀, 지후를 태우고 날아오른다.

지후
(뱀이 말한 것들 정말 보인다) 어!
(날며) 봐 저기! 내가 말하니까 보이지? 저거도! 진짜 재밌거든? 네가 만든 거?

뱀, 하늘 투어 하듯 신나게 날아다니다, 다시 거실로 내려와 지후를 내려놓는다.

근데 좀 그래.
지후
(환상적인 비행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들뜬) 뭐가 그래?
탈 땐 재밌는데 계속 나 혼자만 타니까 좀 그래. 좀…… 헛헛해! 계속 혼자….
지후
!
맨날 혼자… 맨날… 계속… 아까도… 맨날… (다시 눈물이 삼켜지는데)
지후
(영문 모르겠는) …… 나 같이 타자고?
(성질) 넌 못 타! 뱀들만 탈 수 있어. 우리 뱀들한테 생기는 거야.
지후
(놀라) 뱀이 또 있어?
(어이없는) 있지.
지후
아니아니 너 같은 뱀이 또 있어? 너처럼…….
나는 네 뱀이라니까? 사람한텐 다- 뱀이 있어. 너네 엄마 뱀도 있어. 너네 아빠 뱀도 있고 새봄이 뱀도 있고 현경이 뱀도 있고,
지후
(두리번) 어딨어?
지금 각자 뭐 하겠지. 주인이 잘 안 불러내는 애들도 많아서 자고 있거나 그러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알아?
지후
(약간 실망한) 잔다고?
(배은망덕함에 벌컥) 우리 보통 바빠! 그래 넌 모르겠지. (열거) 네가 도저히 맨땅을 걸을 수 없을 만큼 발이 아플 때면 나는 아주 맑고 시원한 비를 내려 땅을 부드럽게 하지. 네가 너무 화나고 흥분해서 별수 없이 네 손에 마법의 손톱이 뻗어날 때면 그것이 너를 할퀴지 못하게 다른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네 온몸에, 모든 사람들에게, 투명하고 빛나는 방패를 만들어줘야 할 때도 있어. 그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냐! 핫도그는 기억하니? 이미 식어버린 핫도그를 데워 김을 모락모락 피우지.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파삭해지니까. 넌 그냥 ‘오 아직 안 식었네’ 했지만 그건 모조리 나의 노력이었어. 모조리, 모조리, 모조리…… 모조리…… 하나도 빠짐없이……. 난 도움도 안 청했어. 너의 뱀은 나니까. 네가 휘파람이 뭔지 궁금해할 때 입술을 아주 살짝 움직였을 때 처음으로 네 앞니 밑에서 태어나 빠져나왔으니까…….
지후
(할 말을 못 찾다가) 미안….
(노려보곤 숨 고르는)
지후
(조심스레) 그리고 또 뭐해 너네? 그럼 나 저번에 육교에서 넘어질 땐 왜 안 잡아줬어?
우리도 잠 자야 해.
지후
(수긍) 너네끼리 막 얘기해?
얘기하지.
지후
무슨 얘기해?
(걱정 말라는 듯 성가셔하며) 너네 욕 잘 안 해. 그냥 오늘 뭐 할까 이런 얘기하지.
지후
근데 왜 외로워? 너네끼리 같이 얘기도 잘하네.
근데 오늘 네가 만든 롤러코스터 이런 건 같이 못 탄다고. 네가 만든 걸 같이 못 탄다고 다른 뱀들은. 네가 엄청 맛있는 붕어빵 만들어도 같이 못 먹어. 네가 엄청 빠른 바람 만들어도 같이 못 타. 못 봐. 걔네는 아무것도 못 봐.
지후
아무것도?
그래 나만 본다고 나만! 네가 나만 들려주니까!
지후
뭘?
리코더 소리. 네 연주가 다른 뱀한테도 들려야,
지후
!
걔네도 네가 만든 것들 볼 수 있어. 네 연주가 들려야!
지후
(당혹) 어떻게 하면 들리는데?
불어야지.
지후
불었잖아.
잘 불어야지. 그냥 불면 뱀들 안 나와.
지후
(이해 안 가는) 넌 나왔잖아.
네가 잘 불어서 나온 거야. 난 네가 상상 속에서 분 소리도 다 들을 수 있으니까. 난 네 뱀이니까. 근데 다른 뱀들은 못 들어. 네 뱀 아니니까. 상상 속에서 분 건 못 들어.
지후
아…….
(지후가 팽개친 진짜 리코더 가리키며) 저걸로 불어야 돼. 진짜 리코더로. 그래야 다른 사람 뱀들한테도 들려.
지후
(새로 산 리코더 돌아보며) 저걸로?
응.
지후
(난색) 아… 저걸로?
저걸로.
지후
저건…….
(끄덕끄덕)
지후
저건… 잘 안 불리는데….
차근차근히 하면 돼.
지후
차근차근히?
(아주 손쉽게 말하는) 그래 연습을 차근차근히. 그럼 다 돼.
지후
…….
진짜 엄청 힘들긴 할 거야.
지후
거 봐.
그래도 해!!!
지후
(귀 아픈)
알았어?
지후
(내키지 않는)
너희 엄마 뱀이 네 롤러코스터 타보고 싶다고 했어.
지후
…….
궁금하대.
지후
…….
(본심 나오는) 너네 엄마 뱀이, 그거 타게 해주면 나한테 사탕도 하나 준다고 했어.
지후
(주머니 뒤적이며) 사탕 나도 있어.
필요 없어 뱀들 게 더 맛있어. 네 건 츄파춥스잖아! 우린 여의주 사탕이라고.
지후
…….
알았어?!
지후
(새로 산 리코더 보며 한숨 나는) 아니 저거 삑사리 나고,
저건 원래 삑사리 안 나. 저건 아울로스 리코더야. 후기가 삼천백세 개야.

그때, 엄마, 방에서 나온다. 엄마, 냉장고에서 뭔가 꺼내 마신다.
지후, 그런 엄마를 돌아보며

지후
우리 엄마 뱀 이름은 뭐야?
콩자
지후
어떤 스타일이야?
종잡을 수 없어. 사진 보여줄까?

뱀, 몸으로 프로젝터 빔 같은 빛 내쏘아서,
무대에 지후의 뱀과 엄마의 뱀이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 찬다.
지후, 사진 올려다보다가, 쏟아지는 사진의 빛 속에서,
흔들리는 얼굴이지만 영 내키지 않는 듯 진짜 리코더를 집어 들고 한 음을 불어보는데 불안정한 소리.
뱀, 일시에 팍 빔 끄고 귀 아픈 듯

안녕 그럼 난 가볼게. 은하수에서 목욕할 시간이야.
지후
…….

지후, 막상 리코더 잡으니 다음 음 내보는 것에만 골몰해 있다.
그러나 다음 음 소리도 형편없고
뱀, 영 귀 아픈지 서둘러 간다.
지후, 인사도 없이 그다음 음,
계속 연습하는 모습.
천천히 암전이 된다.

다시 무대 밝아지면,
무대는 집 부엌이다.
부엌 가운데 서서 창틀 화분에 물 주고 있던 엄마. 몇 달이 흘렀는지 겨울 옷차림.
뒤에서 한 음 한 음
나직하게 들려오는 ‘아 목동아(Oh, Danny Boy)’ 리코더 연주 소리에,
화분에 물은 계속 주지만 손이 점차 느려진다.
그러다 손 완전히 멎고
연주도 끝난다.
멈춰 있는 엄마.

잠시의 완전한 침묵.
거실 소파에 앉아서 연주 마친 지후.
여전히 손 멎어 있는 엄마.

엄마, 이윽고 윗집과 아랫집에도 들리도록 창문을 연다.

엄마
한 번 더 불어 봐. (이웃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 좀 크게.

암전이 된다.
암전된 무대에, 롤러코스터 타는 뱀들의 신나는 함성 소리 울려 퍼진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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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김지현
독립 문예지 베개 6호에 실험산문 「수술동의서」를 실었습니다.
jihudo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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