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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버섯을 주울 수 있는 숲에 관한 전설

다른 손(hands/guests)⁺

고경진

제245호

2023.11.09

[희곡]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고 써야 할 희곡들을 싣습니다. 올해는 ‘+’가 더해진 ‘다른 손⁺의 희곡 쓰기’를 선보입니다. ‘다른 손’의 주제적 카테고리 안과 밖에서 쓰여진 새로운 작품들을 만납니다.

인물
루(여성)
경(여성)
던(여성)
장소
숲속 어딘가.
어쩌면 숲으로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시간
어느 오후
일러두기
* 루의 대사는 정확히 들리지 않습니다.
* 2장의 대사는 경과 던이 자유롭게 나누어 읽습니다.

1. 등장

쉬이이- 쉬이- 쉬- 바람 불고 이파리 흔들립니다.
기둥 두꺼운 나무들 사이로 무성한 풀숲 보입니다.
경이, (자신을 가리키며) 여기 있습니다.

경, 풀숲 속으로 사라집니다.

사이.

(불쑥) 찾-았-어-?
(소리만) 아-직-!

경, 다시 사라집니다.

사이.

(소리만) 찾-았-어-?
(동시에) 아-직-!
(동시에) 아-직-!
(휘둥그레) 눈,
(휘둥그레) 마주칩니다.
뭐야?
뭐가?
나한테 한 말이야.
나한테 한 말인 줄 알았어.
넌 뭘 찾고 있었는데?
넌 뭘 찾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네가 찾고 있는 게 더 중요해 보여서.
버섯.
버섯?
응, 투명한 버섯.
투명한 버섯?
그래, 투명한 버섯. 넌?
응?
찾고 있던 거. 네가.
그게… 버섯, 나도 버섯을 찾고 있었는데!
너도?
진짜 신기하다, 그치?
(갸우뚱) 그러게, 우리 말곤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
응, (소리 들려왔던 쪽 가리키며) 루랑 나.
루?
응, 루. 루랑 같이 버섯을 찾고 있었어.
루는 어디 있는데?
글쎄?
루는 언제 오는데?
버섯을 찾으면?
그럼 그동안 우리도 버섯 찾고 있으면 되겠다.
멀뚱. (시선 피해보지만)
(경에게 성큼) 그래서 버섯은 어떻게 생겼어?

경, 곤란합니다.

본 적 없어.
본 적 없어?
투명하댔잖아.
아! (갸우뚱) 아?
민망합니다.
그럼 어떻게 찾아?
더 민망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경이 한 손으로 무심하게 물결 그립니다. 던은 모르겠습니다. 양손으로 그립니다. 어느새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툭.

던 옆에 섭니다.

잘 봐, 하는 표정으로 경이 다시 물결 그립니다. 섬세하게. 나릿나릿. 던, 따라합니다. 양손으로 그립니다. 이제 손가락을 접었다 폅니다. 버섯을 쥐어 보는 것처럼. 반복.

알쏭달쏭한 표정도 짓습니다. 계속 짓다가,

미간 펴지고, 입 벌어지고, 고개 끄덕여지고, 눈 마주칩니다.

조명 달라집니다.

노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춤이라도 추는 것 같습니다.

2. 미션

천천히 동작 바꿔보겠습니다.

상체 구부려 양팔로 수풀 펄럭입니다. 펄럭이며 돌아다닙니다.

쪼그려 앉아 오리걸음 합니다. 흙바닥을 비비거나 두드립니다.

뒤뚱 넘어집니다. 킬킬 웃습니다. 일으켜주러 갑니다. 당깁니다. 점프.

운동화 벗고 양말 벗고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합니다. 온 발바닥으로 점프. 점프.
점프하며 고조됩니다. 땅을 차며 달립니다. 가장 멀어집니다. 가장 멀어졌습니다.

노래도 멀리 들리지 않습니다.

헉헉,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헉헉, 뒹굴 드러누웠습니다.

이때 구릅니다. 이렇게 구릅니다. 이쪽으로 구릅니다.

살며시 일어나 앉습니다.

한 사람은 어깨가 닿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팔꿈치가 닿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까워졌습니다. 가장 가까워집니다.

조금 쉬어 볼까 합니다.

3. 휴식

개운하게 내쉬는 숨소리.

뭔가 만져지는 게 있었어?
어?
(손가락 오물조물)
어, 아니. 넌?
나도.

사이.

계속 찾았어, 이렇게?
계속 찾았어, 아마도?
재밌었겠다.

이 말은 경의 표정을 바꾸고,

경은 예사롭지 않게 주변 공기를 탐색합니다.

한 번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꿀꺽)
냄새가 다를 것 같아. 풀냄새 말고,
흙냄새 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 자세를 낮춰 코를 바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킁킁. 킁킁. 킁킁. 근데,

근데,
근데?
풀에선 무슨 냄새가 나?
어, 음, 좋은 냄새?

피식, 하늘 보고 누워 봅니다. 무슨 냄새인지는 몰라도 좋은 냄새 더 맡고 싶기 때문입니다. 개운하게 들이마시는 숨소리.

흙에서도 좋은 냄새가 나.
좋다.

지나가는 햇볕도 고요합니다.

황금빛 버섯이 가득한 숲이 있었대. 그러니까 황금빛 버섯으로 가득한 곳이 숲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했대. 거기선 통통하고 향 좋은 버섯이 잘 자라서 여자들이 버섯을 따러 숲에 가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여자들이 챙겨간 소쿠리마다 버섯을 한 송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거야. 텅텅 빈 소쿠리로 돌아왔으면 무지 속상한 게 당연하잖아, 근데 이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숲에 가기 전보다, 뭐랄까, 활기가 도는 것 같은 거야. 얼마나 활기가 돌았으면, 보는 사람마다 그들의 얼굴과 양손에서 금빛으로 번쩍번쩍 거리는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대. 얼마 안 가, 소문이 돌았지. 숲에 황금빛 버섯이 자란다. 여자들이 그 황금빛 버섯을 몽땅 따서 자기들끼리만 아는 곳에 숨겨 놨다. 그래서 숲에 다녀올 때마다 저렇게 얼굴이고 손이고 온몸에 황금빛이 묻어있는 거다. 너희, 버섯 어디에 숨겼어. 얼마에 팔려고. 팔아서 뭐 하려고. 질문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뾰족해진 밤이 있었고, 아침 해가 금빛으로 번쩍거리자 숲에 가는 여자들이 모두 숲에 간 것처럼 아무도 없었대. 버섯을 담아오던 소쿠리도 보이지 않았거든. 그렇지만 반나절이 지나도 하루가 지나도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대. 여자들도. 소쿠리도.

사이

어디로 간 걸까?
어디로 갔을 것 같아?
버섯,
있는 곳?
어딨지?

넘어가는 햇볕이 금빛으로 번쩍거립니다.

4. 하산

이제 가야겠다.
……
같이 가지 않을래?
……

던이 일어났습니다.

이만 가자.

경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직 못 찾았잖아. 버섯.
금방 해가 질 거야.
같이 찾기로 했잖아. 버섯.
여기에 계속 있을 순 없어.
나는 있어야 해.
왜?
버섯.
왜.
기다려야 해.
루를?
그래.
루는 오지 않았잖아.
아직 오지 않았잖아.
내려가서 따뜻한 스프를 먹자. 저녁을 먹고 나면 영화도 보는 거야. 잠옷도 빌려줄게.
그렇지만 나는 루와 버섯을 찾고 있었어.
그렇지만 나는 너와 버섯을 찾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루랑 놀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나는 너랑 놀고 있었는데.

사이.

여기서 기다릴게.
루를?
너를. 내일도 와. 내일 또 놀자.
버섯을 찾고 있었던 적 없었어.

이 말도 경의 표정을 바꿀 것입니다.

아무도 버섯을 찾지 못했잖아.
그래서?
그런 버섯은 없나 보지.
보지도 못했으면서.
보지도 못했으니까.
아무도 버섯을 찾지 못했잖아.
그래서?
루는 버섯을 찾고 있을까?
글쎄?
루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루가 어디 있다고 생각해?
루가 어디 갔다고 생각해.

사이

넌?
난 여기 있지.
찾고 있던 거. 네가.
뭘 찾고 있었더라.
안 찾아도 돼?
찾고 싶으면 기억나겠지.
루가 어디 갔다고 생각해?
루가 어디 있다고 생각해.
내일도 여기 와서 놀까?
멀뚱. (시선 피해보지만)
(던에게 성큼) 아무것도 찾지 말자.

그들에게 온통 황금빛이 묻습니다.

금방 해가 지며,

암전.

무성한 풀숲 스치는 소리 사이로 황금빛으로 번쩍, 번쩍 빛나는 버섯 가득합니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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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진

고경진
움직이고 싶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몸으로 쓰는 글을 궁금해하며 몸을 쓰고 있습니다. @poevv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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