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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뜨기

다른 손(hands/guests)⁺

최현비

제246호

2023.11.30

[희곡]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고 써야 할 희곡들을 싣습니다. 올해는 ‘+’가 더해진 ‘다른 손⁺의 희곡 쓰기’를 선보입니다. ‘다른 손’의 주제적 카테고리 안과 밖에서 쓰여진 새로운 작품들을 만납니다.

등장인물
여자1
무대
여자1의 방

여자1, 휴대폰으로 음성 녹음본을 튼다.
녹음본 들려오면, 여자1은 실을 꺼내 실뜨기를 시작한다.

여자2의 음성
…… 정말이야. 이젠 안 들린다니까. 거울이 없는데 어떻게 들리겠니. 그런데 있잖아. 그 전에 니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 나? 그 말이 뭐였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서. 한 6년 전이었나, 7년 전이었나. 여름에. 그해 여름이 엄청 더웠어. 그래, 강. 강이 있었지. 집 앞에 강에서. 그날 매운탕 끓이려고 몰래 낚시했잖아. 그때 니가 잡힌 물고기 보면서 뭐라 그랬는데. 그때 뭐라고 했었어?
여자1의 음성
…… 6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해.
여자2의 음성
분명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말 기억 안 나?
여자1의 음성
도대체 왜 그래.
여자2의 음성
(사이) 그 말이었나 보다.

여자1, 실뜨기를 멈추고 다른 녹음본을 튼다.
녹음본 들려오면, 여자1은 실뜨기를 다시 시작한다.

여자1의 음성
어때?
여자2의 음성
좋아.
여자1의 음성
정말이야?
여자2의 음성
응. 사람도 없고. 한적하고. 내가 워낙 사람들 많은 거 싫어했잖아. 복잡하고. 그런 거 이제 너무 지쳤어. 여긴 정말 아무도 없거든. 그게 좋아.
여자1의 음성
있던데 조금은.
여자2의 음성
그러니까…… 내 말은 사람 같은 사람들이. 예전에 매일 봐야 하는 사람들 같은 그런 사람들 있잖아.
여자1의 음성
아.
여자2의 음성
아침에 매일 산책을 하잖아. 여긴 걸을 데가 많아서 좋아. 공기도 좋지. 집에서 오 분만 걸어 나가면 강이 있어. 외양간 조금 지나면. 너도 봤지. 그게 역까지 이어지는 거야. 그 옆에 조그만 길이 있거든. 차는 못 다녀. 엄청 좁은 길이야. 비포장도로까지는 아닌데, 어쨌든 그래. 차는 못 다니는 길. 거기는 그런 길 없지. 다 차가 다니지. 아무튼 그런 길을 걷는다. 소들 울음소리 들으면서. 한 시간. 아니…… 한 시간 반 정도를. 그렇게 매일 산책을 해. 해가 뜨는 걸 보는 거지.

사이.

여자2의 음성
듣고 있니?
여자1의 음성
응.
여자2의 음성
그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해가 뜨고 다시 왔던 길을 걸어가는데.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웃긴 거 있지. 산책 나갈 때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그래, 해가 뜨는 게 순식간이야. 정말 순식간이더라. 환해져서 집에 가는데 너 알지. 좀 돌아서 올 때도 있거든. 장 봐야 해서. 역 뒷길로 조금 돌아서 걷다 보면 읍내 같은 거 나왔잖아. 저번에 차 타고 가면서 말해줬잖아 내가. 기억나? 왜, 거기. 분교도 있고.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편의점도 있고. 아무튼 거기를 지나는데, 있잖아. 너도 나중에 와서 가봐. 중간중간에 사람 사는 집들이 있거든. 진짜 사람이 거기서 살아. 근데 문이, 문이 엄청나게 작다. 문이 거의 니 키의 반만 해. 정말이라니까. 아직도 그런 데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 엄청 늙은 할머니들. 피부가 있지, 비누껍질 같아. 흘러내리면서 막. 그 할머니들 대문을 열어놓고 살아. 안에 슬쩍 들여다봤거든. 너무 궁금하잖아. 사람이 왜. 문이 열려 있으면 들여다보고 싶잖아. 그래서 봤지. 어떻게 사나 하고. 근데 거기 뭐가 있었는지 아니. 날틀 있잖아. 왜 옛날에 길쌈할 때 틀 같은 거. 옷감 짜기 전에. 넌 모를 수도 있겠다. 엄청 옛날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 집에서 봤거든. 쓰는 건 못 봤고. 그냥 엄청 옛날부터 거기 있었나 봐. 계속 있는 거지. 그 집에 그게 있더라. 그 할머니들도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왜. 거기 계속 있는 거야. 엄청 오래 전부터. 너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고.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거지. 엄청 신기하더라. 너도 보면 좋아하겠다. 나중에 보여줄게. 시간 나면 와.

침묵.

여자2의 음성
듣고 있니?

여자1, 실뜨기를 멈추고 다른 녹음본을 튼다.
녹음본 들려오면, 여자1은 실뜨기를 다시 시작한다.

여자2의 음성
…… 다른 말은 안 했어. 그냥 그 말만 하고 가더라. 이렇게 찾기 힘든 곳에 사세요. 나한테 그랬어. 그러고 가더라. 진짜 기분 나쁘지 않니. 그리고 너 그거 아니. 여기는 다 일회용품으로 갖다줘. 원래 그릇으로 주지 않니. 시골이라 그래. 다시 오기 싫으니까. 힘드니까.
여자1의 음성
뭘 시켰는데?
여자2의 음성
쟁반짜장.
여자1의 음성
여기서도 다 일회용품으로 줘.
여자2의 음성
그거 다 환경오염인데.
여자1의 음성
요즘엔 다 그래.
여자2의 음성
너는 먹지 마. 몸에 좋지도 않아. 나도 이제 절대로 안 시켜 먹으려고. 어떻게 된 게 젓가락도 안 주대. 차라리 읍내에 나가서 먹지. 근데 여기는 나가기 힘들어서. 그게 맘처럼 안 된다 잘. 한 번 나가려면 차를 또 타야 하잖니. 너도 알지. 와 봤으니까.

사이.

여자2의 음성
무슨 소리가 그렇게 들려?
여자1의 음성
밖이야.
여자2의 음성
어딘데?
여자1의 음성
오랜만에 나왔어.
여자2의 음성
뭐 하려고?
여자1의 음성
살 게 있어서.
여자2의 음성
그래. 거기는 뭐든 가까우니까. 편하겠지.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여기는 한 번 나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돼. 거긴 밤에도 엄청 환하지. 불빛이 많아서. 예전에 왜, 우리 밤마다 심야영화 보러 가기도 했었잖아. 엄청 늦은 새벽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너가 일부러 재미없는 영화 보자고 했잖아. 우리 둘만 봤었는데. 너는 결국 졸았지. 그때 너 얼마나 웃겼는지 아니.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웃겨. 요즘에도 영화관 자주 가니? 거기는 어디든 가까우니까. 밤에도 환하고. 여긴 밤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근데 있잖니. 여긴 별이 정말 많아. 별이…… 근데 너 뭘 산다고?
여자1의 음성
실.
여자2의 음성
실?
여자1의 음성
실뜨기를 좀 해보려고.

침묵.

여자2의 음성
그래. 너는 아직 어리니까.

여자1, 실뜨기를 멈추고 다른 녹음본을 튼다.
녹음본 들려오면, 여자1은 실뜨기를 다시 시작한다.

여자1의 음성
날틀이라고 했어.
여자2의 음성
베틀이었다니까. 옷감 짜는 거.
여자1의 음성
……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여자2의 음성
너 자꾸 그러지 마.
여자1의 음성
계속 들었던 얘기니까 그러지.

긴 사이.

여자2의 음성
며칠 전부터 소리가 자꾸 들린다. 계속 그렇다고. 거울만 보면. 아침에 이 닦는데도 그랬다니까. 근데 분명히 사람 목소리야. 정말이다. 사람이 그러는 거야. 신기하지 않니. 유독 거울만 보면 그래. 창문 보면 안 들린다. 너 우리 집 창이 유리였던 거 기억하지. 다를 게 뭐니. 그게 정말-
여자1의 음성
-아니…… 다시 말해봐. 정확히.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사이.

여자2의 음성
음메.
여자1의 음성
뭐?
여자2의 음성
음메. 그런다고. 웃기지.
여자1의 음성
집 앞에 외양간 있잖아. 소가-
여자2의 음성
-아니라니까. 사람 목소리라니까. 사람이 흉내 내는 거야. 정말이라니까. 내가 그거 구분도 못 하겠니 설마.
여자1의 음성
언제부터 그랬다고?
여자2의 음성
글쎄. 한 일주일 정도 됐나. 이런 말을 너한테 하기 좀 부끄러운데. 하루는 정말 심심해서 화장을 좀 해봤거든. 너가 사준 화장품 있잖아. 그 외제 마스카라. 거울을 보면서 마스카라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거야. 무슨 맥락도 없이. 잘못 들은 줄 알았지. 처음에는 정말. 정말 잘못 들은 줄 알았어.
여자1의 음성
사람이…… 그러니까 정확히 누가?
여자2의 음성
그냥 어떤 여자야.

여자1, 실뜨기를 멈추고 다른 녹음본을 튼다.
녹음본 들려오면, 여자1은 실뜨기를 다시 시작한다.
긴 사이.

여자1의 음성
듣고 있어?
여자2의 음성
…… 응. 근데 잘 들리지는 않아.

여자1, 실뜨기를 멈추고 다른 녹음본을 튼다.
녹음본 들려오면, 여자1은 실뜨기를 다시 시작한다.

여자2의 음성
…… 있었지. 예전에 언제였나. 여행 갔을 때 봤잖아. 기억나? 해돋이 봤던 것 같은데 아닌가. 바다 앞에서. 기차를 탔었어. 니가 엄청 울었잖아. 해 뜨는 게 무섭다고 했었어. 해가 떠 있는 건 안 무서운데, 해가 뜨는 게 무섭다고 했었어. 기억나? 왜, 니가 막 울고 있으니까. 앞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손톱가위 줬잖아. 손톱을 자르면 달처럼 보이니까 손톱 잘라서 보라고. 그거 받고 너 더 크게 울었는데. 그 생각이 나. 넌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다. 너무 어렸을 때라. 난 이제 늙었어. 그런데도 기억이 나.

실뜨기의 매듭이 모두 풀리며 처음 상태로 돌아간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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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비

최현비
‘임시극장’에서 글을 쓰고 연출을 합니다. 2rum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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