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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손으로 글쓰기

2020 [희곡] 결산

김연재_극작가

193호

2020.12.17

웹진 연극in [희곡] 코너는 올해 하반기 웹진의 전반적 개편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도모했다. 기존 [희곡] 코너는 10분 희곡 공모에 당선된 작품들을 게재하고 있었으나 공모가 중단됨에 따라 지난해 4월을 마지막으로 희곡이 게재되지 않던 상태였다. 김연재, 김은한, 윤미희 세 명의 극작가와 웹진 연극in 편집부, 서울연극센터 스탭으로 이루어진 희곡 운영단은 약 다섯 개월간 [희곡] 코너의 정체성과 목표, 연재 방식과 주제, 주제에 따른 희곡을 집필해줄 극작가와 연계 행사 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9월부터 12월까지 약 세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열네 편의 희곡이 “다른 손(hands/guests)”이라는 주제로 연재되었다. 

2020년 연극in [희곡] 코너의 변화와 운영

우리는 웹진의 유일한 창작 코너인 [희곡]이 희곡을 위한 지면이 거의 없는 예술계 환경 속에서 희곡 아카이빙의 장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 동시대적 문제를 공통 주제로 선정하여 주제에 대한 젊은 극작가들의 사유를 모으고자 했다. 현재 [희곡]코너의 주제인 “다른 손”은 인수공통감염병이 도는 일회용품 시대에 연극이 갈 길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선정된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 이후 더욱 대두되고 있는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손(hands)”은 각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희곡 형식에 대한 질문을 경유한다. 남근적 서사가 해체된 이후의 자리에서 어떤 탈중심적 글쓰기를 시도할지 톺아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손(guests)”에는 인간 외의 많은 존재와 공존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희곡으로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여러 작가들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어떻게 성찰하고 있는지 읽어내는 일이 인류세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리라 기대했다.

주제뿐 아니라 희곡 연재의 방식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공모에 선정된 다수의 작품을 순서대로 게재하는 것이 아닌, 등단과 비등단을 가리지 않고 주제에 닿아있는 고민을 해온 작가들에게 희곡을 청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작가들의 활동 분야는 보다 느슨하게 설정했다. 또한 기존 10분 희곡 공모보다 늘어난 분량의 작품을 연재함으로써 소수 작품에 깊이와 주목도를 더하고자 했다.

개편 이후 [희곡] 코너에 글을 연재한 극작가들의 참여 경험은 어땠을까. 지난 12월 10일, 올해 [희곡] 코너 참여 작가들과 1, 2월에 참여하기로 예정된 작가, 희곡 운영단과 연극in 편집부, 서울연극센터 스탭들이 온라인에서 모여 극작가들의 글쓰기 경험과 독서 경험, [희곡] 코너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대화했다.
“다른 손”이라는 주제

인간을 벗어나 인간 아닌 주체의 입장에서 세계를 감각하는 희곡을 쓰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할 것이다. 작가들은 어떻게 더 자기답게 그리고 더 아름답게 실패할 것인지 끈질기게 고민했던 것 같다.

<세계의 끝과 그곳을 떠나는 자들>의 양은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떠나서 글쓰기를 하는 것,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탈인간적 글쓰기라는 시도 자체에 내포된 불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모든 신은 한 점으로 모인다>의 강세진 작가 또한 “나는 무엇이 사람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아닌 다른 방향성으로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웠다.”면서 “내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면 어떨까,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인간이 아닌 신의 관점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고 주제를 해석하고 작업에 착수한 경험을 공유했다. <줄넘기를 찾는 사람들>의 이휘웅 작가는 “연극이 비인간, 탈인간이라는 주제로 나아가는 데 가장 제약이 많은 장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방향이 우리의 미래겠지만, 이런 방향으로 멋있게 다 떨치고 나아가면 좋겠지만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다른 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어려움이 <줄넘기를 찾는 사람들>로 나왔다. 환경 문제나 지인의 실종이라는 거대한 사건들이 줄넘기라는 어릴 적의 장난스런 사물로 계속해서 환원된다. 줄넘기에게 발목을 잡힌다.”고 말했다. 글쓰기의 불가능성을 주요한 감각으로 삼고 있는 희곡들 속에서 이 지리멸렬한 불가능성이 한 발자국 내딛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떤 숭고함을 만나기도 했을 것이다.

주제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웹진이라는 매체를 결합하여 희곡을 쓴 작가들도 있었다. <HEMNES>를 쓴 박한결 작가는 “우리가 인간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 몸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탈인간적 글쓰기라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제를 제안받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몸이라는 물리적 걸림돌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포스트 휴머니즘이라는 개념에 희곡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했고, 링크로 희곡을 써보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VR공연 플랫폼 ‘VR씨어터’의 데이터센터 드라이브를 배경으로 하는 희곡 <극장no.005068jnj5b6>의 강한나 작가는 최근 코로나 팬더믹 시대의 공연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상황들을 조망하며 언택트로 진행되는 공연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다. 작가는 기후정의 창작집단 콜렉티브 뒹굴이 기획, 주최한 ‘기후위기와 예술하기’세미나에서 희곡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온라인이 곧 친환경이라는 생각이 위험한 허상이며 온라인상의 데이터 드라이브 또한 물리적인 공간을 소모하는 물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사와 지문을 “디지털 언어”의 형식을 빌어 표현하는 등 주제와 언어의 질감이 매체와 적절하게 만나 웹진을 읽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한솔 작가는 텍스트의 편집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연출했다. <BA선생>을 쓰며 “나의 속마음, 이를테면 삭제하려고 했던 문장들을 웹에 게재되는 텍스트라는 특성을 통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서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고민을 지속하는 동시에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에 대한 평소의 관심을 연장해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바퀴벌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희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조우다. 인간의 세계와 인간 아닌 것의 세계가 어떻게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두 세계가 만남으로써 양쪽의 존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감각손식물>의 김서현 작가 또한 “지금까지 썼던 희곡의 대부분이 인간 중심 서사였다. 다른 손이라는 주제를 접했을 때 오히려 다양한 것을 써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희생되는 것들에 주목하고 싶었다.”면서 비인간 존재들과 조우하려 했던 글쓰기 경험을 공유했다. 1월에 희곡을 게재할 예정인 허선혜 작가는 “우리가 자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갚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많지 않다. 이 지면을 빌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환경과 생태에 관한 시선으로 주제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앞서 연재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작품 내용을 나와 관련시키고 있었다. 다른 손으로 희곡쓰기, 라고 하지만 희곡들을 동물 관객이나 로봇 관객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 않나. 결국 인간 독자 및 관객이 읽고 보게 될 것인데 희곡 속에서 어떤 인간적 가치를 찾아 나갈지 고민하는 것 또한 필요하겠다.”며 독자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암약하는 삼면화>의 김은한 작가는 “사물의 입장에서 써보자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주변의 사물들에 대해서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며 곤충, 식물 등의 자연뿐만 아니라 일상의 사물을 시선의 주체로 삼으려 시도한 경험을 회상했다. 나 또한 <매립지에서>가 주변의 잡음들, 어디로 가는지 모를 도시의 쓰레기들, 만들기보다 없애는 게 더 성가신 것들이 가는 공간을 상상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이번 경험을 통해 당사자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는 작가들도 있었다. <자갈>의 배해률 작가는 “희곡을 쓸 때 당사자성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희곡 속의 존재들을 내가 정말 이해하고 쓰고 있는가라는 평소의 고민이 ‘다른 손’이라는 주제와 만났다.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의 고민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탁의 방식에 대해서 “청탁을 받은 경험 자체가 많지 않다. 나를 어떤 식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 글을 나에게 부탁하려 하는구나, 하고 청탁의 의도가 명확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손이라는 주제가 그런 무서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라고 덧붙였다. <SHEEP 새끼>의 곽시원 작가는 “희곡이 독립적인 텍스트로 발표되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하게 느껴졌다. 따라서 희곡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불편하면 좋은 콘텐츠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내 글을 읽고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독자들을 생각하며 글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희곡에 지적 재미뿐 아니라 오락과 여가로서의 기능이 있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전했다. 담론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을 때 주제와 희곡에 접근하기 어려웠다는 점은 이번 기획의 아쉬운 부분이다.
청탁, 원고료, 후속 활동

주어진 주제에 맞춰 글을 쓰는 일뿐 아니라 청탁받은 희곡을 쓰는 일 또한 극작가에게 낯선 경험이다. 희곡의 맨 첫 독자가 공연 팀의 구성원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구독자라는 점, 희곡이 웹상에 게재된다는 점 또한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가을 손님>을 쓴 이은용 작가는 “청탁을 받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희곡은 어떻게 써야 되는가. 그리고 청탁받은 희곡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내가 더 이상 의식의 흐름대로 책임감 없이 쓰면 안 되고 좋은 글을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제일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냐.Part2>의 신해연 작가는 “청탁을 받아 지면을 얻어서 희곡 작업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희곡 장르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여과 없이 만나는 장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많은 작가들이 희곡을 쓰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작가들은 서로를 만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지면을 통해서 동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희곡 지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청탁이라는 방식만이 희곡 지면의 필요성에 응답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지면이라는 곳이 서로 응집성을 가지는 작품들이 모이는 장이라면 분명 어떤 기획이 필요할 것이고 청탁은 기획에 맞는 글을 모으는 방법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희곡] 코너 개편 과정에서 청탁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에 관하여 여러 비판이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이 문제를 더 숙고할 것이다. 운영진은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웹진으로서 보다 다양한 시선의 필진을 섭외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청탁 시 원고료는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우리는 간담회를 통해 ‘분량은 적을수록, 원고료는 많을수록 좋다’는 결론에 다다랐는데 이 유쾌한 결론의 이면에는 예술 노동의 가치에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이 기준이 없이도 예술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 있는 듯하다. 적절한 원고료는 극작가를 존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사실 극작가인 우리들에게도 원고료에 대한 기준이 없다. 배해률 작가는 “극작가에게는 희곡을 무대화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며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수준의 페이가 내게 적절한가, 나는 어떤 페이를 받으며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 말한다. 곽시원 작가 또한 “게재된 이후 희곡이 어떻게 쓰이는지, 희곡을 가지고 어떤 다른 것들을 시행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게재하는 것만으로 원고료의 적정성을 따지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극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페이가 순수 원고료인지 아니면 이후 프로덕션 진행에 참여하는 노동이 반영된 금액인지 불명확하다는 점 또한 희곡의 원고료를 책정하는 데 어려움을 더하는 것 같다. 희곡의 원고료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희곡] 코너의 후속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팝업북 형식의 이미지 낭독, 오디오극, 인형극, 낭독극 등 다양한 발표 방식이 제안되었다. 정진세 에디터는 [희곡]코너의 작품들이 낭독극이나 희곡 페스티벌로 가기 전에 웹이라는 환경을 이용해 보다 입체적인 “중간 결과물”의 형태를 띤다면 더 많은 독자와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코하마에서 만난 작은 물시계를 가지고 다니던 여인으로부터>의 윤미희 작가는 “희곡 코너를 새로 여는 역할을 맡아 즐거웠다. 첫 독자였던 유혜영 에디터가 희곡을 읽으며 킥킥거리고 웃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웹진 연극in [희곡]이 그랬으면 좋겠다. 때론 진지하고 때론 유쾌하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앞으로의 바람을 이야기했다.이한솔 작가는 공연 형식의 희곡 발표 외에도 작품에 대한 리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희곡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나 리뷰단이 있다면, 독자들이 모두 화내는 상상밖에 하지 못하는 작가는 긍정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지 몰라요.”
우리는 우리가 어떤 텍스트까지 희곡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연출 대본이라는 것이 당연하게 존재하고 공동창작으로 대본을 구성하는 요즘의 창작 환경에서 희곡을 쓰는 사람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싶었다. 장르간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 굳이 “희곡”이라고 딱딱한 이름을 붙이고 꽤나 보수적인 태도로 장르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싶었다. 대체 우리들의 욕망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코로나 이전에는 희곡이 무대화되는 과정에 집중했었으나 요즘은 희곡이라는 장르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는 강세진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 춥고 긴 밤들에 열 네 편의 희곡들을 읽어보면 어떨까? 연극in 독자들께 2021년에도 계속될 [희곡] 코너를 기대해 주시기를 그리고 언제든 피드백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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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

김연재 극작가
작가, 단추학자, 이미지 수집가
<매립지>,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폴라 목> 등을 썼다. 기계 및 광물과 상호침투하는 배우의 몸 그리고 오컬티즘에 관심이 있다.
인스타그램 @publish_ser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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