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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서 만난 작은 물시계를 가지고 다니던 여인으로부터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윤미희

186호

2020.09.10


나오는 사람들
스텔라
메이
엠마
이사벨
크리스탈


까만 밤


바닷가, 물안개가 짙게 깔려 있는

무대
한쪽에 메이와 엠마가 앉아 있는 작은 의자 두 개가 있다. 그곳은 바닷가일 수도 있고 극장일 수도 있고 그 어디일 수도 있다.
나머지는 스텔라와 이사벨, 크리스탈의 공간이다. 이곳 또한 바닷가지만 또 바닷가가 아닌 곳일 수도 있다.

한쪽에 메이와 엠마, 함께 앉아 있다.

메이
제목 참 기네.
엠마
그러네.
메이
재미있을까?
엠마
글쎄, 보면 알겠지.
메이
그렇겠지.
엠마
잘 봐.
메이
응.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인다.
그렇게 시작한다.

파도치는 소리 들리고
이사벨과 크리스탈, 각자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둘의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다.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이사벨, 크리스탈에게서 더 가까운 쪽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본다.
가서 줍는다. 그러고는 크리스탈에게

이사벨
저기요.
크리스탈
네?
이사벨
이거……

이사벨, 크리스탈에게 무언가를 내밀며

이사벨
떨어뜨리신 것 같아서요.

크리스탈, 이사벨에게서 받아들고

크리스탈
아닌데, 제 거 아니에요.
이사벨
아, 그럼 누구 거지?
크리스탈
글쎄요.
이사벨
시계 같은데, 좀 특이한 거 같아요. 안에 물이 들어 있어요.
크리스탈
신기하네요.
이사벨
물로 움직이는 시계인가 봐요.
크리스탈
그런 게 있나? 물시계는 엄청 큰 거 아니에요?
이사벨
글쎄요, 저도 처음 봐서…… 근데 엄청 예쁘네요.

크리스탈, 다시 그 무언가를 이사벨에게 내밀며

크리스탈
가지세요.
이사벨
네? 제 것도 아닌데,
크리스탈
주우셨잖아요.
이사벨
그래도, 주인이 찾으러 올 수도 있잖아요.
크리스탈
그럼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참 기다려도 안 오면 가지세요.
이사벨
그럴까요?

이사벨, 크리스탈에게서 그 무언가를 받아든다.

크리스탈
같이 기다려드릴게요.
이사벨
감사합니다.
크리스탈
뭘요.

두 사람, 그렇게 한참을 함께 있고
파도 소리 계속 들린다.

스텔라, 멀리서 다가오며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이사벨에게

스텔라
어? 그거 제거예요.
이사벨
아, 여기요.

이사벨, 스텔라에게 건넨다.

스텔라
감사합니다. 못 찾을 줄 알았는데,
크리스탈
조금만 더 늦었으면 아마 그랬을 거예요. 주인이 오지 않으면 이 분이 가져갈 생각이었거든요.
이사벨
아니에요. 계속 기다릴 생각이었어요.
크리스탈
꽤 오래 기다렸어요.
스텔라
감사합니다.
크리스탈
배고파서 포기하고 가버릴 뻔했어요.
스텔라
감사의 의미로 제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크리스탈
영광입니다.
스텔라
별 말씀을요.

이사벨, 스텔라의 무언가를 계속 바라보며

이사벨
이거 물시계 맞죠?
스텔라
네, 맞아요. 바닷물을 넣으면 돼요.

크리스탈, 이사벨을 툭 치며

크리스탈
갖고 싶다고 말해요. 주인이 오지 않으면 갖기로 했잖아요.
이사벨
주인이 왔잖아요.
크리스탈
안타깝게도?
스텔라
저한테는 다행인 거죠?
이사벨
죄송합니다.
스텔라
갖고 싶으세요?
이사벨
아니에요.
크리스탈
솔직히 말해요.
이사벨
자꾸 왜 그래요?

스텔라, 이사벨에게 물시계를 건넨다.

스텔라
가지세요.
이사벨
저 주시는 건가요?
스텔라
바닷물이어야 해요. 다른 물은 안 돼요. 꼭 바닷물.
이사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사벨, 물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크리스탈
그럼 식사 대접을 누가 해야 하는 거죠?
이사벨
당연히 제가 해야죠. 이것도 주셨는데,
스텔라
괜찮아요.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이사벨
그래도 제가 꼭 보답하고 싶어요.
스텔라
한 번 잃어버렸던 거고, 두 분 아니었으면 다시 찾지도 못했을 거잖아요.
이사벨
그렇긴 하지만,
스텔라
저도 어차피 주운 거예요. 얼마 전에 여기에서요.
크리스탈
그럼 진짜 주인이 아니었네요?
스텔라
진짜 주인이라…… 그런 셈이죠.

크리스탈, 이사벨을 가리키며

크리스탈
이제 진짜 주인은 이 분이신 건가요?
이사벨
저도 제가 진짜 주인 같지는 않아요. 방금 받은 거니까요.
크리스탈
그럼 이 물시계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요?
스텔라
글쎄요.
이사벨
그 말을 들으니 제가 이걸 진짜 가져도 되나 싶어요.
스텔라
당연히 가져도 되죠. 제가 드린 거잖아요.
이사벨
하지만 그쪽이 진짜 주인은 아니잖아요. 진짜 주인도 아닌데, 마치 제 것처럼 무언가를 주고받는다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세 사람, 생각에 잠긴다.

크리스탈
그럼 기다릴까요?
스텔라
뭘요?
크리스탈
여기에서 주우셨다고 하셨잖아요. 진짜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셋이 같이 기다려요.
스텔라
기다리면 올까요?
크리스탈
진짜 주인이라면 오겠죠.
이사벨
전 기다릴 수 있어요. 진짜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요.
스텔라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한 거예요? 그냥 그쪽이 가지면 되잖아요.
이사벨
찝찝하잖아요.
스텔라
진짜 주인이 와서 다시 달라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이사벨
드려야죠. 진짜 주인이니까.
스텔라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저도 동참할게요.

세 사람, 기다리기 시작하면

크리스탈
밥은 어떻게 하지요?
스텔라
제가 먹을 걸 사올게요. 두 분은 기다리고 계세요.
이사벨
아니에요. 제가 사올게요. 이것도 주셨는데,
스텔라
아직 완전히 소유하신 게 아니잖아요.
크리스탈
그럼 두 분이 같이 다녀오세요. 제가 여기에서 이 물시계를 지키고 있을게요.
이사벨
물시계를요?
크리스탈
왜요?
이사벨
제가 가지고 가고 싶어서요.
크리스탈
기다리기로 했잖아요.
스텔라
뭐가 문제인 거죠?
이사벨
물시계요. 전 제가 가지고 있고 싶어서요. 잠시 동안이라도,
크리스탈
진짜 주인이 나타나면 주기로 했잖아요.
이사벨
그건 좀 있다가…… 그 분이 나타났을 때, 다시 이야기해볼 일이고요.
크리스탈
물시계를 들고 밥 사러 갔다가 진짜 주인이 오면 어떡해요? 와서 기다리고 있던 저를 보고 물시계를 찾으면요? 여기에서 물시계 못 보셨나요? 하면요.
스텔라
그래요. 두고 가요.

이사벨, 머뭇거린다.

크리스탈
혹시 이거 갖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그럼 그냥 가지세요. 주인 기다리지 말고.
이사벨
그건 아니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다시 잃어버리고 싶진 않아서요.
크리스탈
제가 지키고 있을 거라니까요.
이사벨
그게……
크리스탈
저를 못 믿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이사벨
죄송해요.
스텔라
그럴 만 해요. 저도 그러다가 물시계를 잃어버린 거예요.
이사벨
여기에 떨어뜨리신 거 아닌가요?
스텔라
아니요. 누군가에게 맡겼던 거예요.
이사벨
주웠다고 하지 않았어요?
스텔라
주워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그 분이 오셔서 자기 물시계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잠시 맡겼다가 잃어버렸어요.
크리스탈
그럼 이 물시계의 주인이 바로 그분이라는 거죠? 처음에 물시계를 가지고 있었던?
이사벨
그분이 확실한가요?
스텔라
글쎄요. 그분 말로는 그랬어요.
이사벨
느껴지지 않았나요? 진짜 주인이라는 것이,
스텔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아무래도 그 사람 같아요.
크리스탈
그럼 그 사람이 오면 제가 그 사람에게 이 물시계를 꼭 전해줄게요.
이사벨
전해주신다고요?
스텔라
누군지 알고요? 얼굴 모르시잖아요.
크리스탈
그러니까 얼른 다녀오세요.

스텔라, 가려하는데
이사벨, 여전히 머뭇거린다.

크리스탈
다들 배 안 고파요?
스텔라
그럼 다녀올게요.
이사벨
물시계…… 잘 지켜주세요. 그리고 좀 기다려주세요. 혹시 진짜 주인이 와서 바로 가져간다고 해도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주세요. 밥도 넉넉하게 사올게요. 그러니 같이 먹자고 해주세요.
크리스탈
얘기는 해볼게요. 그 사람이 괜찮다고 하면요.
스텔라
어서 가요.

스텔라, 재촉하고
이사벨, 따라 가면서 계속 뒤돌아보며 물시계를 바라본다.

남은 크리스탈, 한참을 그렇게 물시계를 지키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메이, 크리스탈에게 다가와서

메이
여기에서 뭐하세요?
크리스탈
네?
메이
아까부터 계속 여기에 계신 것 같아서요.
크리스탈
저를 보고 계셨어요?
메이
저쪽에서요.
크리스탈
아, 누굴 좀 기다리고 있어요.
메이
누구를요?
크리스탈
어, 그러니까……
메이
혹시 그 물시계 어디에서 나셨어요?
크리스탈
주인이세요?
메이
제 물시계 같기는 해요.
크리스탈
지금 이 물시계 주인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메이
한 번 봐도 될까요?

크리스탈, 메이에게 물시계를 건네준다.

메이
제 물시계가 맞는 것 같아요.
크리스탈
주인이시구나! 드디어 찾았네요. 한참 기다렸어요.
메이
근데 이거 어디에서 나신 거예요?
크리스탈
어떤 분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그 분도 주운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메이
아, 그랬구나.
크리스탈
근데 그 분이 누군가에게 맡기셨다가 또 잃어버리셔서, 그 누군가는 이 물시계의 주인이었던 분이고요. 근데 진짜 주인이 또 이렇게 나타났고…… 어쨌든 이걸 또 다른 분이 주워서 가지고 있다가 잠시 주인이었던 분도 만나고 이렇게 진짜 주인도 만났네요.
메이
엄청 돌아다니다가 다시 제 손으로 들어온 거네요. 잘 갖고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크리스탈
저야 뭐 잠깐 지킨 것뿐인데요, 뭐.
메이
감사합니다.
크리스탈
아닙니다. 다신 잃어버리지 마세요.
메이
그럼 전 이만.

메이, 물시계를 가지고 떠나려는데

크리스탈
잠시 만요.
메이
네?
크리스탈
사실 아까 말씀 드린 분들이, 그러니까 이 물시계를 한 번씩 소유했던 분들이, 지금 밥을 사러 갔거든요. 곧 올 거니까 같이 좀 기다려주시겠어요?
메이
네? 왜요?
크리스탈
그분들이 물시계 주인을 엄청 궁금해 했거든요.
메이
글쎄요. 제가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크리스탈
잠깐이면 돼요. 간지 꽤 됐거든요.

때마침 이사벨과 스텔라, 오고 있다.
엠마도 함께 오고 있다.

크리스탈
어? 저기 오네요.

크리스탈, 손 흔들며 소리친다.

크리스탈
주인 찾았어요!

스텔라, 역시 소리치며

스텔라
주인 찾았어요! 이 분이 주인이에요!

엠마, 먼저 와서 메이의 물시계를 바라본다.

엠마
제 물시계예요!
메이
그럴 리가요, 이건 제 물시계예요!

스텔라, 엠마를 가리키며

스텔라
이 분이 제가 아까 말했던 분이에요.

엠마와 메이, 물시계를 가지고 옥신각신한다.

이사벨
어떻게 된 걸까요?
크리스탈
그러니까 지금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두 분인 거네요.
스텔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엠마
제 거라니까요.
메이
분명히 제 거예요.
이사벨
여러분, 잠시 만요. 제 생각엔 이 물시계를 가장 아끼는 사람이 주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물시계가 제 물시계가 될 수도 있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진심으로 이 물시계를 아꼈거든요.
크리스탈
그건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이사벨
그리고 정말 아끼는 거라면,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엠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럼 제가 이 물시계를 아끼지 않아서 잃어버렸다는 건가요?
메이
제가 이 물시계를 얼마나 찾았다고요! 그러니까 보자마자 딱 알아본 거고요.
스텔라
저도 이 물시계를 잠시나마 소유했던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건데요. 저한테 이 물시계 얘기를 해주고, 꼭 바닷물만 넣어야 한다고 말해주신 분은,

스텔라, 다시 엠마를 가리키며

스텔라
바로 이 분이에요.
엠마
맞아요. 이 물시계에는 꼭 바닷물을 넣어야 해요.
메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기엔 그냥 아무 물이나 넣어도 돼요.
이사벨
아……
크리스탈
왜 그러세요?
이사벨
그냥 아무 물이나 넣어도 된다고 하니까 이 물시계의 매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서요.
크리스탈
그럼 그쪽은 이 물시계에 바닷물만 넣어야 한다고 해서 좋아했던 거예요?
이사벨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바닷물이 더……
스텔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다섯 사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크리스탈
제가 보기엔, 아무도 이 물시계의 진짜 주인은 아닌 것 같아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말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메이
사실…… 저도 주운 거예요.
이사벨
정말요?
스텔라
그럼 당연히 이분이!
엠마
저도 사실…… 누가 잠깐 맡기고 간 거였어요.
스텔라
네? 그럼 진짜 주인이 아니라는 건가요?
이사벨
그럼 이 물시계는 누구 거죠? 진짜 주인은 없는 거예요? 정말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진짜 주인을 알게 되면 제가 가져도 되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크리스탈
그러지 말고, 어차피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는 거니까, 그냥 네 분 중에서 가장 갖고 싶은 분이 가지세요.

네 사람, 서로 눈치 본다.

스텔라
그쪽은요? 갖고 싶지 않아요?
크리스탈
전 괜찮아요.
이사벨
정말요?
크리스탈
네, 갖고 싶지 않아요. 대신 밥 좀……
스텔라
어머, 미안해요. 주인을 만나서 급하게 오는 바람에 밥을 못 사왔어요.
크리스탈
너무하네요. 그럼 저는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네 분이 알아서들 하세요.

크리스탈, 가려는데

이사벨
같이 해결하고 가야죠.
크리스탈
왜 제가 꼭 있어야 하죠?
이사벨
그거야……
스텔라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요.
엠마
그래요, 그쪽이 선택해줘요.
메이
맞아요. 내가 제일 먼저 만난 분도 그쪽이니까 가장 신뢰가 가네요.
크리스탈
저한테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그럼 다들 제 의견에 따라주세요.
스텔라
좋아요.
이사벨
그럴게요.

메이, 크리스탈에게 물시계를 다시 건네주며

메이
자, 어서 선택해주세요.
엠마
어서요.

크리스탈, 잠시 고민한 후 물시계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크리스탈
다들…… 기다리세요.
메이
네?
크리스탈
주인을요.
엠마
누가 주인인지 모르잖아요.
크리스탈
그래도 주인이 있다면, 다시 찾으러 올 거잖아요.
메이
내가 온 것처럼요?
스텔라
내가 왔던 것처럼요?
이사벨
맞아요. 주인은 분명히 올 거예요.
엠마
아무도 오지 않으면요?
크리스탈
그래도, 기다려야죠. 올 때까지. 좀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다 못 참고 가시는 분도 계실 거고, 기다리다 진짜 주인이 나타나면 좋은 거고, 만약 주인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마지막에 남으신 분이 가져가면 되는 거예요.
이사벨
전 할 수 있어요. 아까부터 계속 그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크리스탈
좋아요. 그럼 다들 동의하신 겁니다!
엠마
그래요.
메이
그렇게 해요.
스텔라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 일이 된 거죠?
크리스탈
그래도 기다리실 거잖아요.
스텔라
같이 기다리실 건가요?
크리스탈
네? 저는 가야죠.
스텔라
궁금하지 않으세요? 주인이 누군지.
크리스탈
그것보다 저는 배가 너무 고파서요.
엠마
그렇다면 제가 먹을 게 좀 있는데,

엠마, 크리스탈에게 먹을 것을 건네준다.

크리스탈
그럼 제가 떠날 수가 없잖아요.
이사벨
같이 기다려주세요.

크리스탈, 남고
다섯 사람, 함께 기다린다.

크리스탈은 엠마가 준 것을 먹고
다른 네 사람도 같이 먹는다.

엠마
물시계에 대한 전설 들어본 적 있어요?
이사벨
어떤 건데요?
엠마
저도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스텔라
그런 게 있을까요?
메이
글쎄요.

한참을 그렇게 함께 있다.

문득 엠마,

엠마
저는 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메이
저도요.
이사벨
왜 벌써 간다는 거예요? 주인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 물시계를 갖고 싶지 않으세요?

엠마와 메이, 서로 눈 마주치며

엠마
사실 저희는…… 구경하던 사람들이에요.
메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번 우겨봤어요.
스텔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메이
어차피 주인도 없는 것 같고, 좀 우겨보면 될 것 같았거든요.
엠마
죄송합니다. 저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갈게요.
이사벨
어떻게 된 거예요? 직접 봤다고 한 건 뭐예요?
스텔라
그게…… 저도 확신이 안 서는데…… 아무래도 비슷한 분이셨나 봐요.
크리스탈
어떤 것도 확실한 게 없네요.
이사벨
그럼 이건 꼭 바닷물이어야 하는 건가요, 아닌 건가요?
메이
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
엠마
아마 바닷가 근처에 있었으니까 바닷물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사벨, 어리둥절하다.
엠마와 메이, 자리로 돌아간다.

크리스탈
이제 두 분 남았네요.
스텔라
아시다시피 저는, 꼭 갖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사벨
네?
스텔라
그냥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크리스탈
그럼 가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스텔라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이제 지쳤어요. 안녕히 계세요. 부디 꼭 주인을 만나게 되기를!

스텔라, 떠난다.

크리스탈
마지막 한 분이시네요.
이사벨
아……
크리스탈
왜 그러세요?
이사벨
갑자기 이 물시계가 불쌍해져서요. 아무도 찾으러 오지도 않고 아무도 적극적으로 갖겠다고 하지 않잖아요.
크리스탈
가지세요. 어차피 진짜 주인은 올 것 같지도 않네요. 이제 드디어 이 물시계의 주인이 되신 거예요.
이사벨
전 진짜 주인이 아니에요. 더 이상 이걸 갖고 싶지 않아요.
크리스탈
엄청 갖고 싶어 했잖아요.
이사벨
그냥 이렇게 완전히 소유하지 않고, 여기에 두고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크리스탈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이사벨
물시계를 갖고 있어주세요.
크리스탈
네? 이건 제 거가 아닌데요?
이사벨
그냥 가지고만 있어주세요.
크리스탈
계속 여기에 있으란 말인가요?
이사벨
아뇨. 자유롭게 마음껏 움직이셔도 돼요.
크리스탈
그렇다면 왜 제가?
이사벨
물시계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까 영원히 가지고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크리스탈
여기에 계속 머물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이사벨
아니에요. 전 떠날 거고 이제 이 물시계를 가지고 마음대로 하세요. 버리고 싶을 때 버리세요. 잃어버리고 싶을 때 잃어버리세요.
크리스탈
왜 그래야 하는 거죠?
이사벨
가지고 있긴 하지만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 주인이 나타났을 때 줄 수 있고 누군가 갖고 싶어 할 때 줄 수 있잖아요.
크리스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떠나겠다는 말씀이시죠?
이사벨
네.
크리스탈
그럼 저 혼자 남게 되겠네요. 이 물시계와 함께?
이사벨
물시계를 잘 지켜주세요.
크리스탈
너무 큰 짐을 주고 가시네요.
이사벨
물시계를 만나러 꼭 다시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크리스탈
네, 안녕히 가세요.

이사벨, 떠난다.

크리스탈, 혼자 남아
물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물시계를 집어 든다.
물시계를 가지고 떠난다.

파도치는 소리 들리고
한쪽에 메이와 엠마, 여전히 함께 앉아 있다.

메이
그래서 누가 주인인 거야?
엠마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지.
메이
찾을 수 있을까?
엠마
뭘?
메이
물시계 주인.
엠마
글쎄, 사라진 게 아닐까?
메이
그럴지도 모르지.
엠마
우리는 아니겠지?
메이
난 아닌데,
엠마
나도 아니야.
메이
궁금하네.
엠마
기다릴까?
메이
그럴까?

메이와 엠마, 계속 기다리며

-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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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희

윤미희 극작가
희곡하고 결혼했다. 아직 짝꿍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희곡 말고는 딱히 친구도 없다. 그래서 매일 희곡을 쓴다.
산다는 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건지 알고 싶어서 쓴다. 관계의 문제, 책임의 문제에 대해 늘 생각한다.
모든 일의 기원, 그 시작점에 가보고 싶다. ymhlife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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