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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도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가?

DAC Artist 진주 <클래스>

권나은

제229호

2023.01.26

이번 호 [리뷰]에 게재된 글은 ‘2023년 웹진 연극in [리뷰] 코너 필자 공모’의 선정작입니다. 공모에 선정된 필자는 2023년 한 해 동안 [리뷰] 코너의 고정 필진으로 활동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도식 1.

어느 예술대학 극작 수업. 교수 A와 대학원생 B는 네모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B는 자신이 한 학기 안에 완성할 희곡 소재를 발제하는 중이다. B는 살인, 카니발, 동성 성폭력 등 자극적인 소재를 연신 나열한다. 교수는 학생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진다. 왜 이런 소재를 택했고, 쓰려고 하는지. 학생은 자신을 방어하다, 이내 고개를 떨군다.

도식 2.

강의실 바깥 복도 구석에는 지난 학기에 자살한 학생을 추모하는 공간이 작게 마련돼 있다. 학내에는 그의 죽음이 원로 교수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떠돌고 있다. 죽은 학생은 과거 B와 룸메이트 관계였다. 원로 교수의 제자였던 교수 A는 원로 교수에 대해 ‘그럴 분이 아니’라고 강변하나, B는 믿지 않는 눈치다.

도식 3.

다음 수업에서 학생은 ‘케이크를 만들었다가 부수는 영상으로 수익을 내는 유튜버’ 나나의 이야기를 써온다. 나나는 친족간 동성 성폭력 피해자로,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케이크를 만들고 부수는 것이다. 나나에겐 나나가 ‘언니’로 호명하는 환영이 따라다닌다. 이 환영은 나나를 시시각각으로 통제하고, 간섭하고, 억압한다. 교수와 학생이 희곡을 낭독한다. 무대 위에서 극중극이 시작된다. 학생은 나나 역할을, 교수는 언니(환영) 역할을 맡는다.

교수와 학생의 위계는 극중극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이들의 관계는 아래와 같은 도식으로 정리가 된다.

수업에서의 역할 변호하는 인물 연기하는 인물
교수 A 원로 교수 (A의 스승) 언니의 환영 (가해자)
학생 B 죽은 학생 (B의 룸메이트) 나나 (피해자)

‘클래스’라는 단어는 수업, 계층 등의 의미를 지닌다. 연극 <클래스>는 극작 수업(class)이라는 장치를 빌려 위계(class)를 도식적으로 표현한다. 교수 A는 힘을 가진 입장(원로 교수, 언니의 환영)을 대리하거나 변호하거나 연기한다. 학생 B는 힘이 약한 입장(죽은 학생, 성폭력 피해자 나나)을 대리하거나 변호하거나 연기한다. 인물들의 위계는 물리적 에너지(언어, 말소리, 자세 등)의 차이로 표현된다. 구조가 명료한 연극이다. 다만 이렇게 구조적으로 탄탄한 연극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복잡하고 논쟁적인 메시지가 자칫 단순하게 전달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두 인물의 화술은 현격히 다르다. 교수 A(이주영 분)의 말은 힘이 있다. A는 주술이 호응하며, 완결된 의미를 내포한 문장으로 말한다. 그에 비해 학생 B(정새별 분)는 마무리가 정확하지 않고, 요지를 알기 어려운 문장을 구사한다. A의 음성은 낮고 묵직한데, B의 음성은 높낮이가 계속 변한다. 말소리의 세기나 높낮이는 발화자의 정신과 연관이 깊다. 관객은 배우들의 화술을 통해 그들의 성격을 짐작한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교수 A가 이성적이고 단단한 사람, 학생 B는 감정적이고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7부 소매의 줄무늬 니트와 청바지를 입은 학생이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다. 두 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고, 왼손에는 스테이플러로 한쪽을 집은 종이 뭉치를 들고 있다. 그 뒤로 책상에 앉아 같은 종이 뭉치를 읽고 있는 교수의 모습이 보인다. 공간 전체에 녹색 빛이 나는 노란 조명이 들어와 있고, 벽면에 책상과 학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학생 B는 유년기에 동성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아직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중극의 인물 나나는 자기 자신이었다. 교수 A는 학생 B에게 이럴 줄 알았으면 쓰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한다. 교수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학생은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안에 진실이 너무 뚜렷하게 정해져 있어서 어떤 수정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수의 말은 관객에게 무척 합리적으로 들린다. 관객은 학생 B에게 연민을 느끼고 이입하다가도, 교수 A의 말을 듣고 B의 사연에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

무대 위엔 직사각형 테이블과 의자 세 개가 놓여있다. 강의실 앞에는 창문처럼 보이는 커다란 직사각형 프레임이 설치돼 있다. 관객은 프레임 너머에 앉아 강의실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단조로운 무대는, <클래스>처럼 상징이 많고, 언어의 밀도가 높은 작품에 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가 지나치게 장식적이거나 화려하면, 구조/상징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장치’만 올라와 있는 무대를 보며, 관객은 에너지의 충돌, 파장, 전환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연기나 무대미술을 볼 때, 동시대적인 주제를 열린 언어로 말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화면 정중앙에 프레임이 있고, 그 안쪽은 삼면에 하얀 벽이 있는 공간이다. 각 벽면에는 창문과 출입문이 나 있다. 공간에는 ‘기역’ 자로 책상 두 개를 붙여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교수와 학생이 있다. 프레임 바깥은 깜깜한 어둠에 잠겨 있다.

이처럼 연극은 동시대적인 표현 기법으로 구성돼 있다. 정답을 정해두지 않고, 관객에게 판단을 맡기는 지점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다소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연극이(정확히는 작가와 연출이) 마음속에 정해둔 정답을 버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수업, 희곡을 모두 완성한 학생 B는, 교수 A에게 케이크를 선물하고, 원로 교수가 죽은 친구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출한다. 죽은 학생의 블로그에서 찾은 증거다. 학생이 나가고, 교수는 케이크 앞에서 멍하니 관객을 응시한다. 교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붉고 어두운 조명이 깔린다.

<클래스>라는 희곡은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따위의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두 인물의 설전 자체로 극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충돌하는 대사들을 느끼며, 폭력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확장하고, 판단을 내리게 된다. 다만 마지막 선택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느껴질 만큼 아쉬운 지점이 있다. 결국 원로 교수를 일종의 ‘가해자’로 지정하면서 극이 끝나기 때문이다. 원로 교수를 변호하던 A도 다소 우스운 존재로 전락한다. 학생 B가 무대를 내려가 객석에서 교수 A를 응시하는데, B는 A에게 일말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해, 피해의 실체를 ‘규명’하거나, 책임을 묻는 일이 이 희곡에서 중요할까.

작가는 폭력이 위계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극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보편적으로 지지받는 관점이지만, 폭력은 그렇게 간단한 도식으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은 때론 우리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나는 지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위계와 아무 관계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수평적인 친구 관계에서도 폭력은 일어난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을 괴로운 상황에 부닥치게 할 수도 있다. 교수 A가 학생 B에게 조언한 대로, 작가의 머릿속에 자신만의 ‘진실’ 혹은 ‘상’이 강하게 자리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기역’ 자 모양으로 붙여 놓은 책상에 학생과 교수가 각각 앉아 있다. 교수는 펜을 들고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으며, 학생은 한 손에 책을 들고 교수를 바라보고 있다. 학생 주변에는 여러 권의 책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작품이 ‘위계’라는 키워드를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 점을 지적해야겠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 작품에는 엘리트에 대한 선망 내지는 동질감이 기본값으로 깔려 있다. 우선 이 연극이 ‘예술학교’라는 공간을 명확히 지시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예술학교가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있냐’ 같은 교수의 대사는, 예술학교에 다녀본 사람이 아니면 쓰기 어려운 대사다(적지 않은 관객이 ‘특정 대학’을 연상했을 것이다). ‘소설가의 작품 타이핑’, ‘운동권이었다가 보좌관을 거쳐 작가가 된 교수’와 같은 장치도 비슷하다. 힘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는 인물들(죽은 학생, 학생 B) 역시 이미 학벌 권력, 문화 자본을 가지고 있다. 작가를 사적으로 전혀 모르지만, 이미 ‘커뮤니티’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예술학교’나 ‘작가’와 같은 소재로 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써도 된다. 다만 위계와 폭력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면, 이러한 요소도 폭넓게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프레임 너머로 강의실을 지켜보는 관객처럼, 어떤 사람은 ‘대학’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쓸 ‘능력’이 있는 사람은 소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대학로 연극’ 이외의 연극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 연극에 이입할 수 있는 대상도 다소 한정적일 수 있겠다는 추측이 든다. 연극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성폭력, 위계폭력)은 계급을 초월한 전 지구적인 문제이지만, 연극이 조명하고 호명하는 대상들은 이미 충분한 엘리트 계급이다.

<클래스>는 구조적으로 정교한 연극이며, 소재 역시 동시대의 논쟁적인 문제들을 겨냥하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 ‘위계’, ‘폭력’이라는 가치는 다소 평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와 연출의 외연 확장이 요구된다. 공들여 만든 케이크를 ‘파괴할’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창작자들에게 그러한 역량이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빨간색 블라우스를 입은 교수가 하얀색 책상 앞에 앉아 그 위에 놓인 케이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하얀색 케이크 위에는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여성의 인형이 장식이 있다.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DAC Artist 진주 <클래스>
  • 일자 2022.10.25 ~ 11.12
  •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진주 연출 이인수 드라마터그 하워드 블래닝 Howard Blanning 출연 이주영, 정새별 조연출 양수진 프로덕션 무대감독 김영주 무대디자인 박상봉 무대디자인 어시스턴트 김종은 무대전환 배병휘 무대제작 에스테이지(s-TAGe 대표 이윤중) 제작팀장 정우상 제작팀 김세진, 김용선, 남기상, 이승용, 이종민, 정병문, 정우근, 정재현, 차승호 작화팀장이남련 작화팀 신혜원, 박윤경, 박지원, 조정숙 조명디자인 김성구 조명디자인 어시스턴트 지소연 조명크루 김민지, 김은영. 김형준, 김형진, 윤진선, 정주연, 조화영, 홍주희 조명오퍼레이터권서령 조명대여 파이어 라이트(대표 도진기) 음악·음향디자인 이승호 음향오퍼레이터 양수진 의상디자인·제작옷장(대표 이윤진) 분장·소품디자인 장경숙 분장팀 남혜연 소품팀 박진경, 임민정 희곡 영문 번역·통역 코디네이터 김지혜 심리자문 장재키 그래픽디자인 박연주, 전하은 영상기록·촬영 업플레이스(대표 오득영) 사진기록 정희승(포스터, 프로필), 만나사진작업실(대표 김신중)(연습, 공연) 인쇄 으뜸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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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은

권나은
의심을 동력으로 글을 쓴다. 가끔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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