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전문 출판사 ‘자큰북스’ 대표 김해리
희곡집이 잡지가 되고 수첩이 되고 라면 받침이 되는 그 날까지!
오세혁_작가, 연출가, 배우
47호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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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아서밀러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트럭 운전사의 뒷주머니에 체홉의 희곡집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탄식을 했다고 한다. “젠장! 우린 이들에게 이길 수가 없겠군!” 그렇다. 뒷주머니에 희곡이 꽂혀있고 체홉을 어릴 때부터 친구처럼 만나고 학교와 직장에서 돌아오면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극장으로 달려가는 나라의 사람들과 연극을 겨룬다는 것은.....


연극은 환경이다!
출판사 ‘자큰북스’에 대해 소개해달라
“작지만 큰 책을 만들자!” 라는 목표로 만들어진 ‘희곡 전문 포켓북 출판사’다.
왜 하필 희곡인가? 안 팔리는데? (웃음)
잘 팔리게 하면 된다. (웃음) 생각해보면 희곡출판을 마음먹은 계기는 미국 때문이다. (웃음)
미국 때문이라고?
미국에 영어를 배우러 교환학생으로 갔었는데 거기서 연극을 처음 접했다. 연극 환경이 정말 끝내주더라. 예술대도 아니고 보통의 대학이었는데 의상실이 대극장 수준이고 무대는 2층 세트가 거뜬하게 들어갔었다. 서점에서는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의 대본이 바로바로 포켓북으로 나오더라. 학생들은 그걸 가지고 워크숍 공연을 하고. 연극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한국에 오자마자 연극영화과에 갔다. 미국 같은 환경을 상상했는데 (웃음) 그래서 그런 환경을 한국에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환경?’ 학교를 세우겠단 얘긴가? (웃음)
그 정도는 아니고, (웃음) 연극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배우고 공연하는 환경 말이다. 미국에서 홈스테이 생활을 했다. 그 집 아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식탁에서 “엄마 나 <우리읍내> 무대감독 맡았어!” 이러는 거다. 엄마가 “그래? 무대감독이라면 이런 게 중요하고 저런 게 필요하고…” 하면서 줄줄 설명을 해주더라. 한국에 와보니 너무 답답한 거다.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배우고 즐기는 연극인데 한국에서는 왜? 결국 ‘연극을 즐기게 만드는 환경’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 거다. 그래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 거고.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을 만들고 있나?
‘천 원 희곡전’이라고, 젊은 작가들의 희곡을 천 원짜리 포켓북으로 출판하는 사업과, ‘청년 연극인 지원사업’이라고, 20대의 젊은 작가, 연출, 배우를 선정해서 활동 지원을 해주는 사업 등이 있다. 작가는 작품을 쓰게 해주고 배우는 작품에 출연하게 해주고 연출은 작품을 올리게 해준다. 아직 시작 단계라 심히 미약하지만. (웃음)
연극은 자랑이다!
희곡집이 ‘천 원’인 이유는?
일단 많이 읽히고 싶다는 욕구와 예술에는 지급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충돌이랄까? (웃음)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최소가격인 거다. 작년에 스페인과 프랑스를 다녀왔었다. 잼베를 가져가서 신 날 때마다 연주하고 놀았는데, 거기는 예술에 대해 지급하는 문화가 명확하더라. 다 같이 놀다가도 연주하면 밥 사주고, 과일 사주고, 선물 사주고… 절대 누군가의 예술을 공짜로 즐기지 않는다. 연극에도 ‘지급’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 공연을 보려면 할인을 받을지언정 티켓을 사야하고, 희곡을 읽고 싶으면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단돈 천 원이라도 지급하고 당당하게 읽는 문화.
미국과 프랑스와 스페인이라. 국제경험이 상당히 풍부하다. (웃음)
내가 좀 훌쩍훌쩍 떠나는 스타일이다. (웃음) 외국을 돌아다닐수록 한국연극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연극을 줄기차게 봤는데 한국 연극이 훨씬 낫다. 더 재미있고 더 의미 있고 더 박력 있다. 다만 소개가 안 되었을 뿐이다. 워싱턴에서 아주 유명한 댄스컴퍼니의 대표를 맡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었는데 한국에서 왔다니까 대뜸 그러더라. 한국 연극인들은 자국의 희곡들을 왜 소개 안 하느냐고. 일본은 작품이 좋건 나쁘건 대가이건 신인이건 열심히 번역해서 외국에 알린다는 거다. 그래서 일본 연극들을 사람들이 잘 안다고, 그 말이 충격이었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데 장장 800킬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 일’이라면? 한국 연극을 소개하는 것?
그렇다. 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 몇 년 후 유학을 갈 생각인데 그때 모조리 싸들고 갈 거다. 젊은 작가들의 희곡과 공연영상과 자료들을 몽땅. 그래서 이곳저곳에 뿌릴 거다. 연극 약소민족의 설움을 극복할 거다. (웃음) 사실 우리는 뭔가 겸손을 강요하는 문화들이 있다. 아무리 잘하고 열심히 해도 “제가 아직 젊어서”, “제가 아직 몰라서” 이런 거. 외국 애들은 좀 속된 말로 작품이 좀 허접해도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당당해하고 뿌듯해 하고 스스로 자서전도 내고 하는데 우리는 왜 안 할까. 젊었을 때 막 들이대고 지르고 당당해야 하지 않을까?
음… 겸손한 척 코스프레를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웃음)
‘피터 브룩’이나 ‘피나 바우쉬’ 같은 대가들의 자서전을 읽으면 십 대 때부터 스스로 작품 올리고, 스스로 자랑하고 이런다. 사실 좋으면 얼마나 좋겠나? 십 대들인데. 그런데 그 십 대들의 자랑을 동시대의 대가들이 귀엽게 지켜봐 주고 끌어주고 판을 열어준다. 그들의 자부심을 계속해서 살려준다. 그래서 그들은 언젠가 진짜가 된다. 난 이런 게 정말 멋지다. 우리도 자부심 넘쳐야 하고 자부심을 살려줘야 한다. (웃음)
한국 연극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웃음)
난 우리나라 연극이 너무 좋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연극은 정말 재밌다. 여행자나 마방진이 해외에 공연 가면 그 나라 관객들이 정말로 ‘열광한다.’ 관객들이 열광하기 때문에 리뷰가 ‘열광적’이라고 나오는 거다. 거꾸로 말해서 작품이 좋지 않으면 그 어떤 대가의 작품이라도 ‘열광하지 않는다’고 솔직한 혹평을 한다. 한국연극은 관객들이 정말 재미있게 본다. 그러니까 자부심을 가지자는 거다. 사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 대가들의 작품 중에 재미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나? 그런데 뭔가 일부러 더 열광하고, ‘내가 잘 몰라서 그렇거니’ 하면서 스스로 겸손해지고. 그러다가 술자리 가서는 ‘사실 좀 그렇지 않나? 나만 그런가?’ 라면서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웃음) 우리 연극은 정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마방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마방진 출신 아닌가? (웃음)
<칼로막베스>에 조연출로 입단했다. 나중에는 출연도 했었고. <푸르른 날>에 초연 때도 조연출을 했다. 고선웅 연출님께 정말 많이 배웠다. 내가 멘탈이 좀 마이너라서 연극 세계가 아방가르드로 갈 뻔했는데, (웃음) 연극은 언제나 관객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정신을 배웠다. 그분의 연극을 너무 좋아한다. 그 낭만성과 유쾌함을. 나는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마방진을 잠시 쉬고 있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을지. (웃음)
‘기매리’라는 필명으로 희곡도 쓰지 않나? (웃음)
너무 많이 밝혀지면 안 되는데… (웃음) 그렇다. ‘기매리’라는 이름으로 작품도 쓰고 연출도 하고 그런다. 두산아트센터와 연우소극장에서 <광염소나타>라는 작품을 올리기도 했었고, 올 여름에 정보소극장에서 <두 덩치>라는 작품을 올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쓴, 산티아고 순례연극이다.
배우, 작가, 연출을 다 하는 것도 모자라서 희곡 출판사를 차리다니! (웃음)
정말로 이유는 단순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게 하고 싶어서다.
국립극단에서 <판을 뒤집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젊은 작가와 연출들의 스터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많은 작가를 만났고,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가만 하는 언니, 오빠들이 농담 식으로 늘 말했다. “야, 작.연출 다 하지 마. 연출만 해. 글은 우리가 쓸게.” (웃음) 그때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안타까운 거다.
안타까웠다고?
나는 극단과 배우들이 있어서 작품을 쓰면 작업할 수 있지만, 작가들은 작품을 올리려면 연출을 만나고 배우를 만나고 극단을 만나고 극장을 만나야 한다. 만나지 못하면 그들의 작품은 노트북과 메일함에서만 떠돈다. 젊은 작가라서 희곡집을 낼 상황이 아니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들 소설로 간다, 드라마로 간다 하는데… 이런 상황이 나한테는 비극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언니 가지 말고 연극 해! 내가 언니 책 내줄게!” (웃음) 조금만 기다려주면 출판사 차리겠다고. ‘펭귄출판사’를 이기겠다는 투지로 출판사 이름도 ‘물개출판사’로 하겠다고, (웃음) 그때부터 말했던 꿈이 이루어진 거다.
극작가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
한국에 돌아온 후, 100편의 연극을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줄기차게 보고 다녔다. 소극장에서 소극장으로의 강행군이었다. 거기서 만난 작품들이 모두 고마웠다. 그 지하에서, 그 좁은 극장에서 오늘도 작품이 올라가는구나. 그런데 공연이 끝나면 이 작품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외국은 얄미울 정도로 희곡이 너무 잘 나와 있다. 문고본, 양장본, 전집, 1시간짜리, 15분짜리, 3분짜리로 동시대 희곡들이 계속 출판된다. 이런 생각하면 화가 난다. 왜 우리는 연극 문화가 척박할까. 왜 우리는 학교에서 『원술랑』 말고는 읽어볼 수 있는 희곡이 없을까. 대부분이 셰익스피어랑 체홉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들의 위대함을 말해줄 수 있을까? 그러면서 왜 모른다고 답답해할까. 왜 우리는 스무 살 넘어서야 연극을 처음 볼까. 왜 우리는 ‘씨어터 키즈’가 없을까 하는 생각들.
씨어터 키즈?
프랑스 아비뇽에 가서 3시간짜리 연극을 보는데 어떤 꼬마애가 지팡이 들고 쿵쿵 치면서 대사 몇 마디 하더라. 그 표정이 압권이었다. 그 어린 아이의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자부심이라니. (웃음) 나중에 보니 연출의 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극단 작업을 함께 해서 일찌감치 연극에 눈뜨게 만드는 거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얼마나 무섭게 활동을 하겠나. 그런 아이들을 나는 ‘씨어터 키즈’라고 부른다. 안톤 체홉 조카가 자라서 미하엘 체홉이 되는 것처럼. 가족 중에 연극인이 없더라도 초등학 교때부터 희곡을 읽고 연극을 만드는데 우리는 말했듯 『원술랑』 한편이니. (웃음) 그래서 우리는 20대 연극인들을 많이많이 지원할거다.
연극은 일상이다!
청년연극인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면?
아주 간단하다. 연극을 하고 싶은 20대들이 지원하면 우리가 만나보고 지원해준다. (웃음) 내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을 너무 좋아한다. 받아만 준다면 10년이라도 참가하고 싶다. 평가하지 않고 심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프린지라는 가치를 유지하고 싶다. 청년연극인 심사 때도 심사하지 않았다. 프로필을 살피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작품을 하고 싶으며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는지”를 물었다. 등단 안 한 작가들, 데뷔 못 한 배우들, 작품 못 올린 연출들 위주로 얘기를 나누고 선정했다. 신춘문예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식의 창작활동을 하고 싶다는 작가와 아직 경험이 없는 스물다섯의 연출을 이번에 데뷔시킬 거다. 극장을 어찌 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웃음)
‘자큰 북스’의 미래에 대해 얘기해 달라.
일단은 희곡을 계속 낼 거다. 출판하고 싶은 작가만 있다면 계속 낼 거다. 초고를 주면 초고 출판하고, 공연 하면 공연본 출판하고, 개정판, 재공연판, 미완성판 등등 계속 낼 거다. 다 내면서 계속 기록할거다. 작가에게 말할 거다. “당신의 모든 작업을 기록하고 싶다.” “우리가 반드시 기록하고 보전해 주겠다.” 그리고 그 희곡들을 여기저기서 계속 ‘읽어지게’ 만들 거다. 동네 카페마다 돌면서 낭독회도 하고, 카세트테이프나 CD로 만들어서 택시 기사님들과 트럭 기사님들한테도 뿌릴 거다.
기사님들한테? 그 발상은 어떻게?
대학로로 택시를 타고 오는데 기사님이 그러는 거다. “에이! 대학로는 만날 태워다만 주고 연극도 못 보네!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말했다 “그럼 희곡을 듣게 해드릴게요” 이미 송경화 작가의 「사통팔달 최팔달」이라는 희곡과 몇 작품을 카세트 테이프로 제작하려고 준비중이다. 어차피 현대 사회가 교통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계속 그런 전략을 쓸 거다. 우리가 꿈꾸는 연극은 ‘메트로 씨어터’다.
메트로 씨어터? 전철 극장?
그렇다.
서울 사람들이 전철을 타고 일상을 보내니까,
전철에 연극을 심을거다.
전철역 5분거리에 있는 카페들에서
희곡 낭독이 이루어지고,
희곡집 한 권에 커피 한잔을 5천원에 팔고,
전철 선반에 희곡집을 비치해서 읽을수도 있고,
전철역 매점이나 편의점에서도
천원짜리 희곡이 잡지와 나란히 판매대에 있고
그걸 읽으며 답답한 전철에서 연극의 환상을 품고,
그러다가 기분 내키면 극장으로 가고.
이런 날이 일상이 되는 날을 만들 거다.
뭐 아직은 꿈같은 얘기지만 일단은 꿈을 꾸기 시작했으니. (웃음)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 김해리
출판사 ‘자큰북스’ 대표
<자큰북스>는 2013년 8월에 열린 소셜 벤처 경연대회에 ‘천 원 희곡전’의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로 그녀는 사비를 털어서 실제로 젊은 작가들의 희곡집들을 출판하기 시작했고 2014년에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희곡출판 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