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명렬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나 혼자 존재할 수는 없어요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76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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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면 뭐라고 할까, 자극이 온다고 할까. 선배 배우, 후배 배우, 관심 있는 연출가, 처음 보는 연출가들이 만드는 여러 경우의 작품이 있는데, 늘 좋은 연기, 좋은 작품에 대해서 나이, 경력, 호불호에 관계없이 자극을 받게 돼요.

- 뿌
- 선배님 웹진 연극인 보신 적 있으세요?
- 남
- 그럼, 꽃점 주는 거 하잖아. 요즘 들어 연습하느라 바빠가지고 공연을 못 봐서 못 올리고 있긴 하지.
- 뿌
- 아, 그렇죠. 공연 보러 다니시는 거 재밌으세요?
- 남
- 재밌지, 공연을 보면 뭐라고 할까, 자극이 온다고 할까. 선배 배우, 후배 배우, 관심 있는 연출가, 처음 보는 연출가들이 만드는 여러 경우의 작품이 있는데, 늘 좋은 연기, 좋은 작품에 대해서 나이, 경력, 호불호에 관계없이 자극을 받게 돼요. 예전에 연극을 보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던 때가 있었어. 왜 그럴까, 돌아봤더니 연극을 보면서 분석을 하고 있더라고. 연극 자체를 즐기질 못하니까 재미가 없어지지. 그걸 깨달은 다음부턴 되도록이면 연극 볼 때 사전 정보 없이 가서 분석하지 않으려고, 보여지는 대로 느끼려고 해요. 그런 마음으로 보니까 다 재밌어요.
- 뿌
- 그러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저도 쉽지가 않거든요. 선배님은 저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으시니까 보고 있으면 막 한심하고 이럴 때도 있으실 서 같은데요.
- 남
- 때때로 그럴 때가 있죠. 그럴 땐 골라서 보면 돼. 한심한 공연에도 늘 한심한 장면만 나오는 건 아니니까. 한심한 배우도 있지만 뜻밖의 좋은 연기를 할 때도 있고. 만약 그것도 없다, 그러면 무대도 보고, 음악도 듣고. 새로운 시도가 있으면 새로운 시도에 감동받고. 재밌는 요소는 얼마든지 있어요.
정말 감동받지 못하는 연극을 봤다, 그럴 때는 ‘아, 그만큼 내 존재감이 커졌다.’ (웃음) 이렇게 감동받지 못하는 연극이 있는데 내가 하는 연극을 타인들이 좋게 봐준다면 나의 존재감이 커진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주면 되지. (웃음) 또 좋은 연극, 감동적인 연극을 보면 위기감을 느끼면 되고. 나는 무대 위에서 이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나, 이런 좋은 작품에 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극을 받으면 되지. 너무 아전인수식인가? (웃음)

- 뿌
- 연극 시작하셨을 때 얘기 좀 해주세요.
- 남
- 대학 연극반에선 선배가 되면 다 연출을 하잖아요. 나도 선배가 돼서, 연출뿐만 아니라 연극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어쨌든 3편을 연출했어요. 스스로 평가로는, 별로 좋은 성과는 못 냈죠. 나는 연출에 재능이 있지 않은 사람이구나, 그랬어요. 연출은 작품을 폭넓게 보고, 분석해내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더라고. 또 연출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있지만, 리더로써 사람들을 잘 끌고 가고 포용하고, 이런 것도 중요하고, 어느 순간에 어떤 걸 요구할 것인가, 타이밍도 잘 맞춰야 하는데, 나한테는 그런 능력이 별로 없더라고. 나는 오히려 내가 할 연기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나 하나만 잘 단도리 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게 훨씬 더 낫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 뿌
- 그럼 졸업하시고 배우 생활을 시작하신 거예요?
- 남
- 아니지. 대학 졸업하고는 연극하겠다는 생각을 안했어요. 4학년 2학기 때 마지막 기말고사를 보면서 ‘내 인생의 필기시험은 없다, 더 이상’ 그랬어요. 학교성적이 나쁘진 않았는데 필기시험 보는 게 너무 싫었어. 취직을 하려고 필기시험 안보는 회사를 찾아보니까 제약회사 영업부는 전공무관에 면접으로 뽑드라고. 한 군데 돼서 거기를 6년 다녔어요. 그 뒤에 딱 한 번 더 필기시험을 봤어. 운전면허 시험. (웃음)
- 뿌
- 회사를 다니시다가 어떻게 갑자기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셨어요?
- 남
- 갑자기라고 하면 틀린 말이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한데. 연극을 전혀 안하다가 갑자기 한 건 아니에요. 회사생활 6년 중에 5년을 대전 지점에서 근무했는데, 대전에서 당시 내 또래의 젊은 친구들하고 ‘대전연기자그룹’이란 걸 만들어서 스터디를 했어요. 주로 대학 연극반 출신들이었고, 2년 정도 스터디그룹으로 있다가 극단을 창단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거의 다 전업이었고 나만 직장이 있었지. 1년에 한편 정도, 크지 않은 배역으로 연극을 했어요. 적극적으론 아니지만 연극과 연은 계속 있었죠.
- 뿌
- 어떻게 그런 그룹을 만드시게 된 건지, 그때는 엄청 패기 넘치셨던 것 같은데요.
- 남
- 그랬죠. 그때 대전 연극계는 나랑 선배세대가 차이가 많이 났어요. 중간 세대가 없었어. 열살 정도 많은 선배들이 주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한테는 ‘낡았다’로 보인 거지. “저건 낡은 연극이다. 저런 연극을 하면 안된다.” 그런 생각으로 서로 모였던 것 같아. 실제로 극단을 창단해서 대전 연극계에 충격을 준 면도 있었고.
- 뿌
- 이 그룹하시고 또 극단 만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회사도 그만두시고…
- 남
- 자연스럽게는 아니에요. 그런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연극을 하겠다, 라는 생각을 별로 없었죠. 마지막 1년을 서울에서 근무했는데, 지역도 설고… 여러 가지 요인과 함께, 영업일이라는 걸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을 하겠다, 라는 마음보다 일단 그만두겠다, 였죠. 일단 그만두고 앞으로 뭐할지는 그 다음에 생각해야겠다, 그랬어요. 만 6년되는 12월 31일에 딱 그만두고, 아무 생각 없이 두 달을 놀았어요. 그때 의정부에 살았는데 아무 것도 안하고, 동네 아줌마들하고 노닥거리면서, 커피도 끓여주고 그랬지.
- 뿌
- 인기 많으셨겠어요.
- 남
- 인기 많아봤자 뭐 할 거야. (웃음) 두 달 놀면서 그제서야 뭐하지, 생각해보니까 연극을 하는 게 제일 즐겁더라고. 그래, 연극을 하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다 하지만, 무모했지. 애도 둘 있었고. 무모하지만 그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연극해야겠다, 그랬어. 그때가 33살이었는데,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극단에다가 내가 대전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했다, 알릴 방법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았을 거고. 33살에 극단에 들어가겠다, 그랬으면 극단에서도 불편했을 거야. 나이 많은 사람 받아놓고 이것저것 시킬 수도 없고, 안 시킬 수도 없고. 서울에서 안하길 잘한 거 같아.
나를 아는 사람들도 있고, 창단한 극단도 있는 대전으로 내려갔죠. 극단이 동인제 시스템이었는데 동인들이 돌아가면서 대표를 했어요. 그때까지 내가 대표를 안했으니까 내려가자마자 대표를 하라 그래서, 알았다 그러고 전업으로 연극을 시작했지. 그러다가 다른 극단 작품에 객원으로 출연을 했는데 채윤일 선생이 자문을 하러 자주 오셨어. 그 공연 이후에 당신이 무슨 작품을 하는데, 같이 할 생각 없냐, 그러셔. 나야 뭐 호시탐탐 서울에서 활동할 기회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개런티는 많이는 못주지만 하숙비는 해주겠다, 그래서 35살에 서울에 올라오게 됐지. 혼자 올라와서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고시원에 한 2년 산 거 같아요. 후배들한테 가끔 이런 얘기하면 선배님은 그런 시절 없이 연극 시작할 때부터 편하게 했을 꺼 같다, 라고 하는데 그건 지금만 보고 하는 얘기죠. - 뿌
- 처음 시작하셨을 때부터 막 주인공만 하셨을 것처럼 보여요. (웃음)
- 남
- 서울 올라오고 한 5년쯤 됐을 때, 대전 후배가 지역에서 연극하는 것에 대해 회의, 한계 같은 걸 느끼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내 집에서 한 3개월 같이 살았는데, 그때 마침 공연, 연습 둘 다 없었어. 맨날 하릴없이 대학로에 나와서 책보다 들어가고, 그런 시기였는데, 하루는 밥 먹으면서 연극을 계속 해야 되나 모르겠다, 그랬더니 후배가 “형도 그런 걱정을 해?” 그래. “봐라, 지금 공연도 없지, 연습도 없고 캐스팅 제안도 없지. 이걸 계속해야 되나 고민된다.” 그랬어. 실제로 그래. 우리는 공연이 끝나는 순간 실업자잖아.

- 뿌
- 이제 선배님쯤이면 캐스팅이 안 된다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안 그러시지 않으세요?
- 남
- 불안초조까지는 아니어도 걱정은 되지.
- 뿌
- 진짜 지금도 걱정이 되세요?
- 남
- 당연하지. 어쩔 수 없어. 배우가 가지는 숙명이야. 7, 8년 전에 연극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내 나이 때 배우들이 지금은 매체에 더 큰 기반을 두고 활동을 많이 하고, 나 같은 경우는 다른 매체를 하긴 하지만 연극에 비중을 더 많이 두니까, 뭐라고 할까, 다른 나이대의 배우들에 비해서 연극 쪽에서 경쟁이 심하지 않은 편이지. 캐스팅 ‘당하는 데’에 수월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웃음) 아무튼 그런 여러가지 요인 때문에 초초하고 불안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작업을 안 하고 있으면 걱정이 들지. 잊혀지지 않을까, 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어떤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 그 숙명을 거부할 수 없어.
그런 건 있어요. 이게 배우가 가진 숙명이다, 라는 걸 알고 걱정하는 것하고 모르고 걱정하는 건 차이가 있어요. 초행길을 운전하고 가면 목적지까지가 굉장히 먼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은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는 거랑 비슷하지. - 뿌
- 캐스팅 당하기 수월하다, 그런 말씀 하셨는데 (웃음), 선배님은 작품의 폭이 넓으신 것 같아요. 선배 연출, 어린 연출, 이른바 좀 상업적인 공연, 매체, 등등 다양한 작업을 하시잖아요.

- 남
- 나이가 들어가는 걸 어떻게 느끼냐면, 예전에는 선배님이라고 불리다가 어느 시기가 되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아지더라고. 그런 걸 느끼면서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웃음) 지금이 그 어느 때인 거 같아요. 앞으로 내가 연극을 하는 데 있어서 선배, 동료 연출보다는 후배 연출과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후배 연출들하고 어떻게 만나야 할까, (생각을 해보니) 일단 후배연출가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싶었어요. 선배로 군림하면 후배 연출들은 어려워할 수밖에 없죠. 후배 연출들도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얘기할 텐데, 거기서 튕겨나가면, 꼭 하고 싶은 얘기를 망설이게 되고, 그러면 그 작업은 좋은 작업이 안 될 가능성이 크죠. 그렇게 되면 나한테도 손해다, 왜냐면 내가 모든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해낸다는 보장이 없어요. 동료 배우들, 연출가들의 조언, 이런 것들에 의해서 내가 어떤 배역을 만든 거지, 오로지 나 혼자서 만들어낸 게 아니란 말이죠. 나한테 얘기하는 걸 불편하게 만들면 결국 나를 만드는 한 축이 없어지는 꼴이 되고, 나한테도 도움이 안 된다, 라는 생각을 해요. 특히 후배들하고 만날 때 더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다보니까 후배연출가들이 같이 연극을 만드는 예술가로서 편안해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또 이런 것도 있죠. 지금까지 오로지 나의 능력만으로 연극계에 존재한 게 아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배역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재능기부 차원이 된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허락할 때라면 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이 생각을 언제부터 했냐면, 봄에 신춘문예 작품을 올리잖아요. 두, 세 작품을 했었는데, 그걸 하면서예요. 그 작업이 제작환경이 열악하잖아요. 그러다보니까 경력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을 안 하더라고. 그 당시 선배나 동료들하고 술 한 잔 하면 열악해도 신춘문예 해야 된다, 연출들한테도 캐스팅을 지레 안 해서 그렇지, 의뢰하면 흔쾌하게 할 경력 있는 배우들 많다, 그런 얘기를 했죠. 할머니, 할아버지 역할을 젊은 친구가 분장하고 하는데… 세월의 무게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아무리 연기를 못하는 나이든 배우라 할지라도 세월 때문에 생긴 주름으로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은 다르거든요.
그런 생각이에요. 이 사회 속에서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나 혼자, 유아독존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말이 좀 길어졌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폭이 좀 넓어진 거 아닌가 싶어요.)
또 좀 더 대중적인 작품부터 좀더 예술적인 작품까지 한다, 그런 측면의 얘기를 좀 하면, 저는 기본적으로는 배우, 혹은 연극은 예술의 범위 안에 들어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연기라는 일은 아주 묘한 경계선에 있어요. 아주 대중적인 곳에서부터 예술적인 것에까지 (배우가 있으니까요.) 또 배우 역시 생활인임에는 분명하니까. 대중적인 걸 하면서는 경제적인 걸 얻고, 또 예술적인 작품에서는 예술적 성취감, 정신적인 걸 얻죠. 그렇게 해왔어요. 경제적인 문제에 너무 경도되어있는 것도 문제지만, 거기에 대해서 덜 예술적이다, 속물이다, 너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사람은 일단 의식주가 해결 안 되면, 지쳐요, 지치면 아무리 예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지속할 수가 없어요. 지속하려면 어떤 식으로 해결할 방법을 가져야죠.

- 뿌
- 여유 있으실 때 뭐하세요?
- 남
- 여유가 있다는 건 안 좋은 거지. 놀고 있다는 얘기잖아. (웃음) 별다른 취미, 이런 건 많지 않고, 여러 인터뷰에서 얘기했는데 그냥 책 봐요. 잡다하게 손에 잡히는 대로. 가끔 시간나면 중고서점 가서 배회하기도 하고. 사회과학 서적 이쪽이 잘 읽히고, 관심도 있고, 역사, 자연과학, 심리학, 철학, 소설, 하도 잡다하게 읽어서 머릿속에 정리가 잘 안 돼. (웃음)
- 뿌
- 최근에 재밌게 읽으신 책은 뭐였어요?
- 남
- 아직 읽지 못했는데 얼만 전에 <불안들>이란 책을 샀는데, 슬로베니아 철학자가 쓴 건데 책 소개를 보니까 되게 흥미롭더라고. 이 사회가 사람들을 굉장히 불안하게 하는 데 과연 불안의 그 실체가 무엇이냐. 알랭드보통의 <불안>도 봤는데 그거보다 좀 더 철학적으로 얘기한 책인 것 같아. 또 지금 공연하는 게 러시아 작품이라서, 러시아사를 다이제스트로 뽑아놓은 책을 하나 사서 봤는데 러시아가 새롭게 보이더라고.
- 뿌
- 작품 들어가시면 관련해서 책을 좀 찾아보시고 그러시나 봐요.
- 남
- 그런 편이죠.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물론 작품에 따라서 안 그래도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을 분석하고 역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면, 그러면 해야죠. 몇 년 전에 <한스와 그레텔>(최인훈 작) 이라는 작품을 했어요. 한스는 가상인물인데,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개인비서로 감옥에 40년간 갇혀서, 자기 신념 때문에 못 나오고 있는 인물이에요. 그 인물은 히틀러가, 인류와 독일국민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으로 생각하고 존경해요. 텍스트의 많은 부분이 그런 관념적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 인물을 이해하려면 우선 히틀러를 알아야 되겠더라고요. 2차대전의 원흉, 이렇게 피상적으로 보는 거 말고, 구체적인 신념이나 이런 걸 모르니까, 그래서 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을 읽었어요. 그 사람의 정치적, 인간적 신념을 어느 정도 알겠더라고. 알아야 비판도, 동조도 가능하니까,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죠. 배우한테는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 뿌
- 좀 질문이 구체적이진 않은데 요즘에 후배들 보면서 이런 얘기 해주고 싶다, 있으세요? 후배들도 너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요.
- 남
- 글쎄. 그냥 그러고 싶어요. 지금 니 길이 옳다. 너무 절망하지 말고, 지금 좋은 일 있다고 너무 온 세상 다 가진 것처럼 그러지 말고. 지금 힘들어하는 후배들… 늘 고민되겠죠, 지금 내가 이 길을 가야되나? 이건 숙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거니까.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 있잖아요. 두 가지 길을 다 선택할 수는 없잖아. 어쨌든 한 가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쨌든 그 길을 옳다고 생각하고 가는 게 좋죠.
- 뿌
- 꿈 있으세요? 좀 이상한 질문인가요?
- 남
- 꿈? 효용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무대에서 필요한 사람. 오랫동안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좋은 무대를 꾸미는 것. 어느 날 띠동갑 배우들하고 만나게 되고, 조금 지나니까 그게 두 바퀴가 되고, 인제 곧 세 바퀴하고 만나겠지. 그런 친구들하고도 무대에서 선후배가 아니라, 동료로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 효용가치가 계속 있을 것 같아. 무대에 서는 순간은 다른 역을 하고 있는 똑같은 배우일 뿐인지 선후배가 없죠.
예전에 선배들하고 작업할 때 보면 잘 하는 배우들은 후배들한테 별로 닦달 안 하더라고. (웃음) 그때 당시 솔직히 속으로 “저나 잘하지” 그러기도 했어. 혹시, 소심해서 그런데, 내가 뭐 얘기하면 후배 배우가 날보고 저나 잘하지,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해요. 꼭 얘기하고 싶은 게 10개 정도 있으면 그 중 하나만 조심스럽게 얘기해야지, 그리고 얘기를 하더라도 전제 조건을 붙이죠. 이건 연출 생각이랑 다를 수 있다. 후배 배우한테 조언을 해도 해석에 관한 건 안 해요, 내 영역이 아니니까. 배우가 무대에 섰을 때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좀 얘기하고. 때로는 좀 예만하게 얘기할 때가 있어요. 연출이 행동이나 해석에 대해서 디렉션을 하면, 연출은 큰 덩어리로 얘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큰 덩어리, 덩어리 사이사이의 그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배우들이 알아서 채워줘야 하는데, 하라는 것만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러면 이런 얘기를 해요."여기 컵이 있다. 연출이 여기다 채워주는 건 커다란 구슬이고, 그 나머지를 작은 알갱이로 꽉 차게 하는 건 배우가 할 몫이야. 그 작은 알갱이까지 연출이 채워주길 바라면 연출도 지쳐서 못한다." - 뿌
- 연출인 저한테는 뭔가 위로가 되는 말씀이에요. (웃음) 가끔 어디까지 얘기해야 되지, 그러거든요.
- 남
- 맞어, 답답하고 미치지. 그런 조언들을 해요.
- 뿌
- 선배님들이 그런 조언을 해주시면 좋죠. 정말 필요하기도 하고요.
- 남
- 후배 배우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너 같은 배우는 연출들이 진짜 좋아할 것 같다, 한두 가지 얘기하면 그 다음을 쭉 알아서 해결해 가니까. 근데 그런 게 잘 안 되는 친구들한테도 어느 순간 이후엔 말을 안 해요. 그게 또 큰 스트레스가 돼서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

- 뿌
- 연극데이트 마지막 공식질문입니다. 남명렬에게 연극이란?
- 남
- 관객과의 대화라든가 이런 거 하면 “나의 존재감 확인 작업,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존재할 것이고, 이런 것에 대해 스스로 자꾸 확인하는 것.”이라고 주로 얘기했는데 너무 만든 얘기 같아. (웃음) 실제로 그렇긴 해요. 지금까지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타인들에게 남명렬이라는 인간을 인식하게 한 일은 연극이었으니까, 연극이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하죠. 근데 이건 만든 얘기 같아서 재미없고, 그냥 놀이? 놀이는 기본적으로 재밌어야 하는 거잖아요. 재미없으면 그 놀이 안 해. "놀이, 나를 재밌게 하는 놀이."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남명렬(배우)
- 주요작품
<알리바이 연대기>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아버지와 아들> <햄릿> <그리고 또 하루> <나는 나의 아내다> <그을린 사랑> 외 다수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