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윤한솔
연극은 정말 처절하게 외로운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78호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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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그 연습실. 인터뷰를 하러 들어서마자 윤한솔 연출은 맥주랑 재떨이부터 내왔다.

그린피그 연습실. 인터뷰를 하러 들어서마자 윤한솔 연출은 맥주랑 재떨이부터 내왔다.
- 뿌
- 술, 담배랑 함께 하는 인터뷰 좋네요. (맥주 짠) 다짜고짜 시작하겠습니다. 인터뷰 많이 해보셨죠? 이런 거 좀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뭐예요?
- 한솔
- 부득이하게 잘난 척 해야 하는 질문이 있어요. 뭔가 다르게 (작업)하는 거 같은데 왜 그래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런 질문.
- 뿌
- 그게 제일 궁금할 것 같은데요.
- 한솔
- 유난 떨려고 그렇게 작업하는 게 아닌데, 그런 질문을 하면…
- 뿌
- 그럼 그 질문부터 시작해볼까요? (웃음) 작품의 결과물이 독특하기도 하고 작업방식도 공동창작으로 많이 하시고, 결과랑 과정 둘 다 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궁금했거든요. 제가 본 공연만 생각해봐도, 쉽지 않은 작업을 하고 계시니까.
- 한솔
- 어떻게 보면 되게 단순해요. 극단을 하면 배우들이 모이잖아요. 뽑든 같이 작업을 하다가 단체를 만들든. 그렇게 배우가 모이면 다 나와야 되잖아요. 다 연기하겠다고 왔고 난 연출이라고 사람을 모았고. 연극이 가지는 구조상 부득이하게 연출이 사람을 모으잖아요. 얘네가 다 하려면 공동창작을 해야 되는 거지, 누가 쓴 대본 갖고 하려면 다 못하니까.
- 뿌
- 보통은 그 중의 누구만 캐스팅하는 방식을 더 많이 선택하잖아요.
- 한솔
- 그럼 어떤 애들이 노는데요? (웃음) 어떻게 누구는 시키고 누구는 안 시켜, 어떻게 그래요.
- 뿌
- 처음 연출하실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셨어요?
- 한솔
- 그렇죠. <나는 기쁘다>라는 작품이 처음이었는데, 그때도 하고 싶은 사람 모아보자, 그게 시작이었죠. 작가도 있었고, 이주노동자 얘기를 해보자, 라는 건 있었지만 텍스트는 장면 몇 개만 나와 있는 상태였어요. 일단 배우부터 모았는데, 10명 정도가 됐고, 그러다보니 얘네가 다 나와야 되고.
- 뿌
- 그렇게 되면 다 나와야죠.
- 한솔
- 모인 사람이 다 나와야 된다는 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연출하겠다고 온 애는 연출해야 되는 거고 배우 하겠다고 온 애는 배우 해야 되는 거고, 일종의 원칙인 거죠. 배우는 돈을 안줘도 오퍼는 돈을 줘요. 식구여도 그 친구가 오퍼 하러 온 건 아니니까 단돈 십만 원이라도 줘야 되는 거예요. 암묵적인 룰이에요. 사정이 있어서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한데, 그런 게 아니면 일단 하겠다는 사람은 무조건 다 하는 거죠.
- 뿌
- 그린피그 배우들은 캐스팅이 안될까봐 불안하진 않겠네요.
- 한솔
- 캐스팅 너무 많이 돼서 싫어하지. 너무 맨날 해야 되니까. 연차가 생기고, 나이들을 좀 먹으면 폼잡고 하는 연기 하고 싶어 하죠, 막 ‘연기연기’하는 거. 우리끼리는 ‘연기연기’라고 하는데, 그런 거 하고 싶어 하죠.
- 뿌
- ‘연기연기’, 배우들의 그런 욕구가 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나요?
- 한솔
- 하죠. 요즘엔 그런 얘기가 잘 안 나오는데, 예전에는 연출만 보인다, 그런 얘기가 많이 있었어요. 배우들이 일종의 소외감 같은 걸 느꼈던 거죠. 한 극단의 연출이랑 배우들이 동반성장 하기가 되게 어렵거든요. 한국 연극판 시스템이 연출이 먼저 크고 배우들이 크거나 극단을 떠나거나 그렇게 되죠. 그게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인 거 같아요. 배우 개인의 욕망과 제가 하고자 하는 연극의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인데, 쉽지 않지만 이렇게 저렇게 조율해가는 거죠. 어떤 해결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고민을 많이 하고 얘기를 많이 해야 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배우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되는 거고, 같이. 밖에서 어떤 기회가 오면, 하라고 하고, 그런 기회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오디션이 있으면 제가 다 추천하지는 않지만 같이 할만한 연출이고 배우들이 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득이 있을 것 같으면 다 오디션 봐, 그래요. 근데 제가 작업하던 방식이 있으니까 만약 배우들이 오디션이 다 되면 힘들겠죠.
첨엔 배우들이 좋아하죠. 무대에 다 서니까. 그래도 그 욕망이 부딪히는 지점은 똑같아요.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어요. 그건 뭐 어쩔 수가 없어요. 내 욕심인 거지. 똑같이 고생했다고 하더라도 연출이 주목받기 훨씬 쉬우니까. 그것에 대한 소외감, 거기에 눌러 붙는 개인의 욕망, 그런 갈등이 지속적으로 있는 거죠.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거 생각하면 저는 운이 되게 좋은 거죠. 대다수가 거의 전 작품에 다 출연한 7, 8년씩 있었던 배우들이니까. - 뿌
-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어떻게 꼬시길래 계속 있지? (웃음) 연극의 힘만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힘으로 묶여있다는 느낌을 좀 받거든요. 그게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 신기하더라고요.

- 한솔
- ‘극단’이라는 말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하나의 단체를 만들 때,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인간관계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요. 아주 다른 사람이지만 궁극의 가치를 공유하는 게 있고, 그 가치를 향해가는 방법은 굉장히 다르지만 선배, 후배, 동료로서 서로 애달프게 보는 게 있고. 서로 배우기도 하고 존중하기도 하고, 좀 밉기도 하고, 어떤 동지라는 의식이 계속 있는 그런 관계.
이 연습실 생기고 나서부터는 계속 같이 밥을 해먹어요. 연습은 안 해도 밥은 먹고 헤어져요. 저희는 보통 10~17시 연습인데, 그런 걸 많이 봐요. 전날 작품 때문이든 생활 때문이든 막 싸우다가도 다음 날 걔가 식사당번이면 걔가 한 밥을 먹어야 되는 거야, 삶이란 게 생기는 거예요. 여기도 맨날 시끄러워요. 사람 열댓 명이 맨날 나와서 지지고 볶으니까. <조치원 해문이> 했죠. 지금 <치정> 하고 있고 <두뇌수술> 해야지, 내년 2월말까지 계속 스케줄이 있으니까 똑같은 사람이 8개월을 여기 안에 계속 있는 거예요. 최소한 하루에 6시간 정도. 맨날 우리가 얘기하는 게, 집보다 여기 있는 시간이 더 많고, 맨날 이 사람들이랑 밥 먹는다, 조금씩 여기에 있는 게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거죠.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생겨요. 서로 얘기를 들어야 되고 배려해야 되고, 밥을 할 때도 누군 뭘 못 먹고 뭘 싫어하는지 알게 되고.
이게 별일 아닌 것 같은데, 내년이면 10년인데, 처음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예전에는 누가 (반찬이 입에 안 맞아서) 김치에 대충 먹고 일어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 꼴을 못 보는 거죠. 조금 다른 우리 안의 힘이라면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 뿌
- 역시 밥이네요.
- 한솔
- 중요하죠. 신흥 식사당번이 생겨서 그 친구가 뭘 하면 막 맛있다, 그래요. 그게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요. 걔가 처음 했다는 거가 중요한 거죠.
- 뿌
- 식사당번은 그냥 돌아가면서 하는 거예요? 아니면 요리를 좀 잘하는 사람이?
- 한솔
- 식사조가 몇 명이 있고, 나머지는 설거지조. 누구나 무조건 둘 중의 하나는 해야 돼요.
- 뿌
- 연출님 요리 잘하신다는 얘기 들었어요.
- 한솔
- 요즘 좀 빼주려는 분위기예요. 노인네 취급하는 거죠, 이제. 자기네들도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아졌고. 실력이 늘었어요.
- 뿌
- 진부한 질문, 연극은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됐어요?
- 한솔
- 영화가 하고 싶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영화광이었어요. <8과 1/2>, <청춘잔혹사> 이런 거 보고 좋아하고. 연극영화과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못 가게 했죠. 공부를 제법 했었는데 공부도 안 하고 시험도 일부러 망치고 그랬어요. 한때는 정말 섭섭하고 미웠죠. 대학에 들어갔다가 반수를 시도했는데 잘 안 됐어요. 만약에 제가 그때 반수해서 가려던 대학으로 갔으면 연극 안 했을 거예요. 거기 친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처럼 그냥 강남키드로 살았을 거예요.
- 뿌
- 정말 그렇게 살았을까요?
- 한솔
- 그랬을 것 같아요. 왜냐면 이런 걸 접할 이유가 없거든요.
- 뿌
- 원래 꿈꿨던 대로 영화감독이 됐을 수도 있잖아요.
- 한솔
- 그때는 그런 심지가 없었어요. 내가 지금 예술가라 그러면, 이런 삶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신뢰가 없었던 땐 거지, 그 때는. 사회학과였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고, 학회를 가나 술자리를 가나 소위 빨갱이들뿐이었어요. 근데 너무 멋있었어요. 밤새 토론하고, 나라 걱정하고, 이건 또 무슨 신세계지? 그랬어요. 그래서 계속 따라다녔어요. 운동권이었죠. 그러다 충격을 받은 일화가 있었어요. 초기에 맑스 공부를 하는데, <자본론>을 읽고 얘기를 해보니까, 선배들이 아무도 이걸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나중에 그냥 내려오는 문건 같은 게 있고 그걸 외운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형, 누나들한테 엄청난 실망을 했죠. 그러면서 동아리를 기웃거리기 시작하고 연극반을 들어가게 된 거예요. 어느 날 연극반 앞을 지나가는데 밤 10신데 막 연습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얘네는 또 뭐지? 싶었어요. 그 당시엔 너무 무식해가지고 연극 찍으면 영화가 될 줄 알았어요. 둘 차이가 별로 없는 줄 알았지. 그렇게 들어가서 하겠다고 했어요. 그 전엔 연극을 본 적이 없었어요.

- 뿌
- 아까 빨갱이 얘기 잠깐 했었는데요. 최근의 검열(혹은 배제, 혹은 제약)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서 박근형 연출님 말고 또 한 중심에 계시잖아요. 지금 사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워낙 크긴 하지만, 이 문제 역시 중요한 문제니까요. 관련해서 얘기 좀 해주세요.
- 한솔
- 이게 정말 이기고 싶은 싸움인데 이길 방법을 모르겠어요. 이걸 내가 이겨서 검열이 없어진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정신승리라도 좀 하고 싶은데, 일차적으로 정신승리가 안 되는 거야. 제가 ‘장르연대포럼’이란 걸 하고나서 무슨 얘길 하다가 박근형 연출이 아니었어도 우리가, 연극판이 이렇게 동요했을까요? 이런 질문을 했어요. 만약 생판 모르는 어느 젊은 작가가 이런 일을 당했어도 우리가 이랬을까요? 확률은 굉장히 낮은 얘기지만. 물론 이게 국립이라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 극장에서 <개구리>를 했다는 것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지만, 박근형 연출이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랬을까? 그때 누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라고 나한테 질문을 던졌는데 답을 못 했어요. 생각이 정리가 잘 안돼서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어렴풋하게 그 질문이 머릿속에 계속 도는 거지. 내부의 권력에 대해 예민하지 못한 우리에 대해서. 우리가 인간관계를 좀 지우고 단순화시켜보자고요. ‘어쨌든 심사위원이 그 당시엔 동의했잖아, 뭐가 됐던 간에, 왜 거기에 대한 질문을 아무도 하지 않지, 왜 이걸 풀리지 않는 진실 게임으로 그냥 남겨두지, 이게 뭐지, 정확한 정황들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더라고요. 내부의 권력에 예민하지 않고 외부 권력이랑 싸우는 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인가, 라는 질문이 계속 드는 거예요. 내가 지금 논리적으로 얘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렇게 예민한 질문을 해? 사회적으로 예민한 현 이슈를?
- 뿌
- 할 때도 있죠. 특히나 연출님이 그 이슈의 중심에 있으시니까.
- 한솔
- 나는 굉장히 마이너한 이슈이기 때문에.
- 뿌
- 왜 마이너해요?
- 한솔
- 한 후배가 “형 얘기가 더 심각한 거 아니에요? 박근형 연출은 직원이 찾아가서 외압을 행사한 사건이고, 형 케이스는 우리가 확인하지 못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고, 그건 광범위하게 조직되고 있다는 건데, 왜 사람들이 이 얘기는 하지 않고 박근형 연출 얘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더라고요.
- 뿌
- 그건 뭐 싸우기 쉬우니까.
- 한솔
- 나도 “소위 말하는 이슈파이팅이 안되니까 그런 거 아니겠니?” 그랬어요. 근데 이게 문제의 저변이 더 넓은 심각한 사안인 것 같다, 그래요.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나를 이윤택, 박근형 연출 반열에 올려줘서 너무 고마운데, 국민연출가 된 것 같이, (웃음) 연극판 안에서도 천 명 서명한 것에 대해서도 (검열 반대에 대한 성명서에 약 천 명의 연극인이 서명을 했다) 고무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정말 많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서울만의 문제인 거 같기도 하고. 이게 결국은 기득권들의 문제로 보이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거죠. 서울만 따져서 지원금 받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겠어요? 지극히 극소수예요, 정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지극히 기득권들의 문제인 거죠. 공감하기 쉽지 않은 거죠.
- 뿌
- 얼마 전에 술 한 잔 했을 때, 연출님이 “이게 검열이라고 얘기하면 특정인의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건 마치 창작자나 언론인 같은 사람한테만 국한되는 얘기 같으니까.) 세계인권선언을 보면 이건 인권, 시민권의 문제다, ‘배제’라는 단어를 썼으면 좋겠다” 그러셨는데,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 한솔
- 법적으로, 사전적으로 검열에 해당할지 모르겠지만, 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거거든요. 지원제도 안에서, 이 사회 안에서, 특정 사안에 대해서, ‘세월호’라는 사안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배제되는 거죠. 근데 이건 검열보다 무서운 것 같아요. 검열은 피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의 배제는, 이걸 어떻게 피해?
- 뿌
- ‘검열’이랑은 싸울 수 있는데 ‘배제’랑은 싸우기 어렵죠. 너무 은근하게 일어나니까. 그래서 전 그 ‘배제’라는 말이 좋았어요. 특정 창작자가 당장 지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어떤 작품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보다 그 안에는 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누군가 어떤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무서우냐, 안 무서우냐, 이런 폭넓은 문제가 있으니까요.

- 뿌
- 작품하시면 ‘세다’는 말 많이 들으시잖아요. 어떤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거 없으세요? 이번 이슈랑 상관없이.
- 한솔
- 그런 거 없어요. 당해보지 않아서 그런가?
- 뿌
- 이게 꼭 내용적인 얘기가 아니라 표현의 면에서도. 예를 들면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데모버전> 같은 공연에서, 물리적으로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공연 내내 배우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잖아요.
- 한솔
- 그런 두려움은 없어요. <의붓 기억-억압된 것의 귀환>의 경우는 배우 둘이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이 연습실에서 여름에 연습을 하는데 에어컨을 아무리 켜놔도 습기가 꽉 찰 정도였어요. 그때는 저도 부족해서 이게 공연에 필요한 것이다, 라는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방법을 잘 몰랐어요. 근데 <이야기의 방식> 할 때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것의 필요에 대해 합의하는 과정 중에 별 무리 없었어요. 그 전이랑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과정 중에 만들어진 거죠.
선입견이었는데 좀 무서울 것 같았던 윤한솔 연출과의 대화는 정말 재밌고 즐거웠다.
지면의 길이 상 많은 부분을 편집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
- 뿌
- 아, 이거 어떻게 정리하죠? 망했다. (웃음) 질문이 너무 급하게 넘어가는데 어떡해야 되나, 싶어요.
- 한솔
- 그냥 그렇게 쓰면 되지, 갑자기 급하게 넘어가서, 그렇게. (웃음)
- 뿌
- 연극 말고 이 인터뷰 보시는 분들하고 나누고 싶은 거?
- 한솔
- 그런 거 없어요. 뭘 나눠? 나 이런 거 알아요, 잘난 척 하는 거잖아. (웃음)
- 뿌
- 요리 잘하신다고 하니까 레시피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요.
- 한솔
- 내일 하나 보내줄게. 우리 술 먹을 때 제일 인기 있는 메뉴가 하나 있어요. ‘양배추 피자’ 라고.
(인터뷰 다음 날 문자로 날아온) 맥주랑 찰떡궁합. 세상에 없는 레시피.
재료; 베이컨 넉넉히, 양배추 1/4개 ,방울토마토 적당히(반 잘라요), 계란 세 개, 피자치즈 많이.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베이컨 넉넉히 볶아요, 후춧가루 넣고. 베이컨 볶아지고 돼지기름 흥건해지면 양배추 넣고 볶아요. 양배추가 잘 볶아지면 팬에 잘 펼쳐주세요 (여기까지 센 불) 계란 깨주시고요, 후라이 하듯이. 토마토 올려주시고 피자치즈 듬뿍듬뿍. 약한 불로 줄여주시고 뚜껑 닫아주세요 치즈가 녹아 흥건해지면 완성.

- 뿌
-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윤한솔에게 연극이란?
- 한솔
- 저한테는 선언이자 종교 같은 게 있어요. 유혹에 되게 약하고, 한 눈이 많이 팔리는 애예요. 그러다 보니까 중독도 되게 쉽게 되고. ‘지뢰 찾기’라는 게임 알아요? 그거 제일 큰 판 기록이 77초예요. 이틀 밤새우면서 하고 막 그랬어요. 연극을 하는 건 이런 거 같아요. 내가 세상을 이렇게 보고 있고 내가 사는 세상은 이렇다는 얘기를 하고 싶고, 내가 이 얘기를 할 때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과정이 나한테는 하나의 선언인 거죠. 나 이렇게 생각해, 나 이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선언을 하는 순간 나는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죠, 말을 뱉었으니까. 연극을 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추스르고 삶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편인 거예요. 이건 다르게 얘기하면 종교인 거죠. 최소한의 어떤 도덕률을 유지하게 하고 내가 어떤 중독자가 되지 않게 하는. 여기 있으면 건강하죠, 기껏 한다는 게 술이나 취하게 먹고 그런 거니까.
- 뿌
- 많이 나쁜 짓은 안 하게 되죠.
- 한솔
- 나쁜 짓을 할 새가 없어요. 10시에 와서 5시까지 연습하고. 저녁에 술 먹고, 술 취하면 집에 가고, 이게 다인 거죠. 크게 잉여 되는 게 없거든. 이 삶에. 돈이 많이 남거나, 뭐가 남아야 딴 생각을 할 텐데 그럴 일이 별로 없는 거지.
- 뿌
- 보통은 이게 마지막 질문인데 하나 더 궁금한 거 있어요, 무서운 거 있으세요?
- 한솔
- 많아요. 외로운 거, 무섭죠. 외로워서 하는 거예요, 연극. 혼자 있기 싫어서 하는 건데.
- 뿌
-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좀 서운하겠어요.
- 한솔
- 아무랑 있다고 그 외로움이 해소될 수는 없어요. 연극은 외로워서, 아니면 의리로 하는 거죠. 외롭지 않으면 연극 안 해요. 할 이유가 없어, 돈도 안되고, 누가 알아봐주는 것도 아니고, 왜 하겠어? 다 대단한 예술 하겠다는 욕망은 있죠. 근데 연극은 정말 처절하게 외로운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윤한솔(연출가)
- 現 그린피그 대표,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교수
- 주요작품
<아름다운 동행> <두뇌수술> <의붓기억-억압된 것의 귀환> <누가 무하마드 알리의 관자놀이에 미사일 펀치를 꽂았는가>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나는기쁘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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