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검색영역

연출가 김민정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80호 2015.11.19
너무 괴로워. 이 어려운 시절에 다들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나…

연출가 김민정

민정
새롬은 어떻게 살아? 너무 괴로워. 이 어려운 시절에 다들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나…
뿌
뭐가 제일 힘드세요?
민정
너무 불편해요. 모든 게 불편해. 내가 살아있는 것도 사실 불편하고, 아니, 이 말은 너무 거창하고, 나의 일상이 불편해. 작업하고 이렇게 사는 게 불편하고, 이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잖아.
뿌
불편하다기보단 어떤 죄책감 같은 거로 들리는데요?
민정
그것도 있는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늘 좀 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미안하다는 말도 많이 했고. 지금 하고 있는 일로 보면, 연출로서 작업하는 사람들한테 미안한 일이 많잖아. 많이들 그런 것처럼 연출하면서 제작을 겸하다 보니까 개런티 제대로 못 줘서 미안하고, 그게 제일 미안하지. 그렇게 미안해하면서 계속 이 일을 한다는 게 또 불편하고. 이게 20년 동안 작업하면서 계속 나를 괴롭혔던 딜레마인 것 같아. 그렇게 미안해하면서 작업을 하는데, 지금 사회에서 예술이 필요한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자꾸 하게 되는 거예요. 안 필요한 것 같아. 그렇다고 내가 막 예술, 이러는 순교자 같은 순수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모순들에서 내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
뿌
이 ‘불편함’이 어려운 작업 환경에서 오는 게 대부분인 건가요?
민정
꼭 그것만은 아니에요. 사회와 예술과 가정, 그 셋의 간극이 너무 크고 그걸 넘나드는 과정이 나한테는 좀 버거워요. 셋 중 그 어떤 역할에도 한 번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아. 삶이 살아도 살아도 왜 이렇게 익숙해지지가 않지? (웃음) 이런 분열증이 나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전반적으로 한국사람들이 정신적인 불안증?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지금 너무너무 혼란스럽잖아. 시대의 흐름이 갑자기 역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니까 사람들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 답답하니까 여러 가지 것들을 찾아보는데 현재 이 상황이 너무 당연한 결과인 것 같기도 해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보면서 현대사를 다시 찾아봤거든. 당연한 수순인가, 싶더라고. 암울하지. 그렇다고 이제 다 끝났어, 그럴 수는 없잖아. (역사는 나선형으로 조금씩은 진보한다는) 편견에 가까운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다시 질문하게 되더라고. 큰 흐름에서 보면 긍정적일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이면 좋겠지.
뿌
연극인 데이트가 아니라 무슨 시사지 인터뷰 같아요. (웃음)
민정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데 내가 사회적인 일들에 너무 압도적으로 지배당하고 사나? 연극이란 건 특히나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내가 너무 경직된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이 자꾸 오가요. 그런데 내가 믿었던 가치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니까. ‘야, 이거는 모두가 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싶어. 너무 거대한 얘기 같지만 사소한 관계 속에서도 무언가 깨지고 있는 것 같고 질문이 생겨요. 근데 또 너무 거대 담론만 얘기하고 있고, 이런 게 괴로워. 어떻게 해야 되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이런 세계 속에서 작업을 한다는 게… 내가 작업하는 걸 너무 거대하게 생각하나,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나? 내가 소녀도 아니고 작업도 많이 했고, 그렇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진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뿌
저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A라는 문제를 포착하고 그걸 얘기하자면 그건 B로, 그건 다시 C로, D로 F로… 계속 연결되니까 너무 얘기가 커져 버리고.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연출가 김민정

민정
한국에서 연극, 공연예술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매뉴얼이 없어. 현실적으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윗세대들 중에 롤모델이 있어야 되는데 좀 찾기 힘든 것 같아, 가까이는. 동시에 나는 후배를 논할만큼 어른이 안 된 거지. 세월호 참사 겪으면서 정말 처절하게 느낀 게, 내가 어른이구나, 그런데 어른 노릇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구나, 였어요. 그걸 정말 통렬하게 반성했어. 꼰대 말고, 진짜 어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뿌
저도 그래요. 예전엔 어른들 책임이야, 라고 말했는데, 그 어른이 저더라고요. 너는 뭐했는데? 라는 질문이 다시 자꾸 저한테 돌아와요.

박근형 연출의 작품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극 지원제도인 창작산실에서 탈락된 과정이 공개된 이후, 팝업씨어터, 안산순례길, 국립국악원의 금요공감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검열 문제가 예술계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개별 사건에 대해 다 설명하고 싶지만 지면의 성격과 길이 상 그러지 못함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린다) 잠깐 쉬는 동안 수다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인터뷰로 연결되었다.

민정
블랙리스트야 예전에도 있었겠지. 그리고 뭐 공연계만이겠어?
뿌
그렇겠죠. 근데 이렇게 무리수를 둘 만큼 눈치를 보느냐, 안 보느냐, 그게 달라진 것 같아요.
민정
앞으로는 더하겠지, 뭐. 근데 어쨌거나 이런 상황 안에서 작업을 해야 하잖아. 나도 그렇고. 그게 괴로워. 그래서 내가 우리 팀한테는 앞으로 하지 말자 그랬어. 이 정권이 2년 남았는데 (검열, 통제가) 더 심해지겠지. 이럴 때 우리가 공연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뿌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고 계세요?
민정
지금은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없어요.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뿌
네?! 그럼 내년에 <안산순례길>도 안 하세요?
민정
아니, 하지. 그러니까 지원금 받고, 그런 방식으로는 못하는데, 이럴 때 작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느냐에 대해 생각하게 돼. 앞으로 더 분명해질 거 같아요.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해온 방식대로는 못하고, 나는 더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예술가들이 지원금에 종속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얘기들 해왔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나는 “그럼 뭐로 할 수 있어?” 그랬었는데 지금의 시스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 그렇다고 지원금을 받는 건 나빠, 그런 단순한 얘기는 아니고 내가 해왔던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본질적인 얘기로 들어가면 내가 좀 올드할 수 있지만, 작업은 정신 때문에 하는 거 아냐, 사실은? 세상에 질문을 계속 하고, 멋있는 구절을 읽었는데, 세상의 질서를 새롭게 바꾸는 창조적인 소수자들이 하는 일이지. 그런데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직 답은 못 찾았어. 모르겠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뿌
제가 듣기에는 대학로의 연극 제작 시스템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민정
맞아요. 나는 그런 시스템 안에서 작업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제작 환경만의 문제로 들렸으면 안 되는데.
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창작자한테는 어떻게 보면 큰 말이잖아요.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주시면요?
민정
가볍게 말하면 좀 지친 걸 수도 있는 것 같아. 대단한 창작을 한 건 아니지만 작업을 쉬어본 적은 없거든. 또 되게 일찍 시작해서,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매년 계속 작업을 했어. 일단 다 소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작업의 부피는 점점 커지고, 그래서 아마… 지친 거 같아요.
뿌
공감이 돼요.
민정
어쨌든 사람이랑 하는 작업이니까 너무 힘들지. 특히나 연극작업에서 연출이 ‘연출’만 하는 게 아니잖아. 성질에 안 맞아도 해야 되고, 요구하는 역할이 있으니까. 그래도 나한텐 오래된 동료들이 있으니까, 그 힘으로 가는 건 있어요.
그리고 연출로서 창작을 한다는 건 자신의 어떤 신념, 해석, 생각을 작품에 불어넣는 건데, 그것에 대해서 이게 진짜 맞을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자꾸 의심이 들고 더 공부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뿌
꿈같은 얘기를 하자면 1년에 두 작품 정도 하면서 최소한으로 먹고 살고, 생각 많이 하고 공부 많이 해서 천천히 작품 만들고, 그러면 너무 좋겠지만… 택도 없는 얘기죠.
민정
안 되죠. 작업만 하는 게 아니니까. 다들 연습 아니면 알바. 연습을 빼고 알바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웃음)

연출가 김민정

뿌
아까 <안산순례길>이랑 검열에 관해서 조금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데 더 하시고픈 얘기 있으세요?
민정
내가 보기에 ‘팝업씨어터’ 사태의 이유는 되게 단순해. 세월호야. 세월호 이야기는 정치적이 돼버린 거야. 정치적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오늘 정영두 씨도 (검열에 항의하여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공연을 거부한 안무가) 페이스북에 얘기했지만, 침묵하는 게 더 정치적인 거지. 침묵하면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는 건데, 그게 더 정치적인 거 아니냐고. 그리고 예술이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이미 정치적인 얘기다, 조지오웰이 말했대요.
뿌
저도 그 글 읽었는데 정말 솔직하고 좋더라고요.

연출가 김민정

민정
지금은 이념이고 뭐고, 세월호는 곧 정치적, 세월호를 말하는 예술가는 정치적이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을 만들어버렸지. 정치적인 예술가들이, 일반 시민 중에서도 뭔가 이념적인 사람들이 세월호를 말한다, 그렇게. 7,80년대도 아니고 지금 2015년에 그런 프레임이라니….
세월호는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거대한 질문이전에 나한테 한 시민으로서의 자각을 일으켰지.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 세대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지. 제 역할을 못한 것 같고, 그래서 자꾸 자괴감에 자꾸 빠지게 돼요.
세월호는 그런 정치적인 프레임에 갇힐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어쨌거나 연극에서 예술가들이 계속 얘기를 하잖아, 그건 진행돼야 할 일이고, 아마 진행될 거고. 이 얘기를 어떻게 막겠어? 예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예술이 가장 길게 이어가겠지. 아직도 유태인 학살 얘기를 계속 하잖아요. 그런 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거잖아. 인간정신, 본능, 존재, 이런 것에 대한 질문인 것 같아요.
작년에 <안산순례길> 외에도 우리 팀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작업들을 좀 많이 했어요. 리서치를 하다보니까 결국에는 인류의 참사들과 닿게 되더라고요. 광주, 한국 전쟁, 더 넘어서 홀로코스트 얘기도 하게 되는 거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 또는 그걸 기록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그런 자료들을 다시 보게 되는 거지. 이게 당연한 맥락인 것 같아.
작년에 <세월호> (혜화동1번지 6기동인 기획초청공연) 공연 요청을 받고, 그 고민이 되게 있었어요. 이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라는 공연이었는데 결국엔 나의 선택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그 당사자분들이 출연을 해서 증언을 했는데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왜 그들에게 확성기를 들이대냐, 그런 얘기도 많았는데, 그분들이 원하셨어요. 공연이 연출가, 창작자들이 생각한 대로 무대 위에 올려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그 작업을 하면서 처음 하게 됐어요. 이 상처와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이 얘기는 앞으로 계속 갈 거예요. 근데 지금 우리는 너무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잖아. 예술적인 형식 안에 그 얘기를 넣을 그런 능력과 정신이 나한텐 없더라고. 현재의 다큐멘터리일 수밖에 없는 거지.
그 이후 나는 어떤 창작자가 돼야하나,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만약 그 얘기를 다시 만난다면? 내 평생의 숙제인 거지. 우선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그들이 다 살아 있잖아. 이 얘기도 30년, 50년이 지나서 역사가 돼버리면 또 다른 의미가 될 꺼 같고 살아있을 때 그들과 관계맺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뿌
세월호 얘기가 현재의 다큐멘터리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돼요. 제가 만약 그런 작업을 해야 된다면,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고 겁나거든요, 작년의 그 수렁으로 다시 들어가야 된다는 게. 비겁한 거지만요.
민정
맞아요. 너무 힘들었고 맨날 울었어요. <안산 순례길>, <그날, 당신도> 둘 다 나한테도 용기였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 나잇값을 해야 된다, 이걸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작업을 하고 나니까 관계가 맺어지고 ‘기억저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이 와요. 우리가 가서 뭐 별 거 하는 건 없어요. 그냥 거기 같이 있는 거지. 그렇게 만나가는 것 같아요. 그 많은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울 수가 없죠. 근데 내가 작업하면서 만난 아이들 이름은 기억하게 됐지. 처음으로 사람으로 마주하게 된 거야. 그걸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너무 힘들지.
한강 작가가 30년이 넘은 광주 얘기로 <소년이 온다>를 내놓은 것처럼, 우리한테 어떤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2013년에 <소외>를 할 때, 쌍용차 시위를 진압하는 동영상을 처음으로 제대로 봤어요. 그걸 마주했던 첫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쩌면 내가 현실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감당이 안돼요. 그래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어떡해? 지금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안 보고 피하는 것도 이해는 돼요. 근데 다가오는 운명을 나는 피하지는 못 하더라고. 그러니까 맞서야 되는 거지. 그렇다고 지고 싶지는 않은 거야
뿌
햄릿이네요. (웃음) 이전 인터뷰에서는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하나로 압축되는 것 같아요, 현재 김민정 연출의 창작자로서의 고민. 저한테도 많은 질문이 되는 것 같아요.

연출가 김민정

뿌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민정에게 연극이란?
민정
어렵다. 지금 나한테 주어진 거니까 해야 하는 거? 근데 나 연극인이야?
뿌
연극인이죠. 오랫동안 무용계에선 연극인이었고, 연극계에선 무용인이었죠. (무용을 전공한 김민정 연출은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을 한다.)
민정
지금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고,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나는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고 그게 좋아요. 근데 그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 어렸을 때는 힘들었어. 지금처럼 연극연출로 불린 건 얼마 안 됐고. 저는 20년 전에도 난 지금 무용을 만들고 있어, 지금 연극을 만들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지금도 그렇고. 무용, 연극 양쪽 다에서 작업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계속 받았는데, 어렸을 때는 막 화를 냈고, 지금은 그냥 웃지.
굳이 연극이 뭐냐에 대해 답을 하자면, 정신이지. 맞서야 되는 거.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거처럼 이 세상의 질서를 창조하는 소수자들이 하는 일. 무용이냐, 연극이냐 그런 경계가 중요하지도 않고, 나는 비슷하게 반복하는 일도 싫어하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연극은 허공에 집을 짓는 일이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멋있기도 한 것 같아요. 만들고 남기지 않는 거, 그리고 또 새로 짓는 것.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연출가 김민정

김민정(연출가)
무브먼트 당-당 대표
주요작품
<소외> <안산 순례길> <그날, 당신도> <떠나는 사람들>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기억의 몽타쥬><몽유록 - 꿈속을 거닐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