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김세한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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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보이지만 제 나이는 스물일곱입니다.
제 별명은 희곡계의 ‘다이소’ 혹은 박리다매입니다.

저는 김세한 입니다.
극작가입니다.
그렇게 안 보이지만
제 나이는
스물일곱입니다.
제 별명은
희곡계의 ‘다이소’
혹은
박리다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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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이후 써왔던
희곡들의 제목입니다.
분명히 더 썼는데
생각이 안 나네요
워낙 많이 써서요
잘 써서 많이 쓴 게 아니고
써야 하니까 썼어요.
저는 작가가 직업이니까요
오로지 글로만 생계를 유지합니다
2013년 이후 3년간
희곡으로만 돈을 벌어왔어요
물론 많은 돈은 아니죠
연극을 하면서 살아갈 만큼의
최소한의 돈이죠
하지만 저는 뿌듯합니다
연극을 하면서 살아갈 만큼의 돈을
연극 작업으로만 벌었으니까요
저의 하루 일과는 이렇습니다.
눈을 뜨면 일단
노트북을 잡습니다.
중간중간 회의를 가고
연습을 보기 위해
이동을 합니다
이동을 하는 와중에도
버스에서 전철에서 기차에서
노트북을 잡습니다

그렇게
새벽 5시 전까지
계속 노트북을 잡습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계속 씁니다
안 써진다고 해서
안 쓰면 안 돼요
제가 안 쓰면
저는 작가료를 받을 수 없고
연출은 작업을 시작할 수 없고
배우들은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일단 끝까지
어떻게든 우적우적 씁니다
그리고
욕을 먹고
다시 씁니다
2고 3고 4고 5고를
연극을 시작한 건
고2때였습니다.
갑자기 조울증이 왔어요
약을 먹어도 해결이 안 되고
계속 불안했어요
고3때 한 극단에 무료 연기수업이 있어
그곳에 찾아가
메소드 연기라는 것을 처음 접했어요.
연기란 게 마음 속 감정을 꺼내게 하잖아요
마음이 시원해지는 거예요.
그날 바로 그 극단에 들어갔고,
거기서 연극에 완전히 빠졌죠
그래서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죠
연기 전공으로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수능을 보고
정시를 시작할 무렵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이빨이 다 부러졌어요
연기과 실기를 보려고
목발을 짚고 갔어요
다 떨어졌죠
다 떨어졌어요
다섯 군데 모두
어떻게든
연극과 관련된 과로 가고 싶었어요
문예창작과에서는 글을 쓰니까
연극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희곡이 연극의 첫 번째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문예창작과에 갔어요
그런데
그 곳의 친구들은
거의 다 시나 소설을 쓰고 싶어 했어요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저 뿐이었어요.
상당히 외로웠어요
그래서
학교를 자퇴하고
스물두 살에
시험을 다시 쳤어요
연기과로.
학교에 가자마자
극단을 함께 할
동료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졸업할 때 쯤 되니까
일곱 명이 모이더라구요
아직은 극단을 태동시키지 못했지만
사업자는 이미 등록을 해놓았어요
‘창작집단 지화자’

희곡을 처음 쓴 건
처음 갔던 대학을 자퇴하고
나온 후였어요
재수를 준비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알바를 세 개 했는데
일하면서 재수를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계속 고민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면서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면 안 될까
그래서
알바를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마다
집에 틀어박혀서
희곡을 쓰기 시작 했어요
단막극을 여섯 편 써서
여섯 군데 신문사에
신춘문예 투고를 했어요
다 떨어졌어요
솔직히 충격 받았어요
떨어질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여섯 군데에 다 떨어질 줄이야
글을 쓰는 대부분의 작가가
이십대 때에는
다들 본인이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때 느낀 거예요
아,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식은땀이 났어요
그럴 때의 선택은
둘 중 하나겠죠
안 쓰던가
더 쓰던가
저는
두 번째를 택했어요
무조건
쓰고 쓰고 쓰고
내고 내고 내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러다 어느 날
극단 여행자에서 공모한
청춘 단막극장에 당선되고

그 작업을 하면서
쓰고 쓰고 쓰고
내고 내고 내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러다 어느 날
연희단거리패에서 공모한
상주작가 제도에 선정되고
그렇게 방과 창작지원금을 받아서
쓰고 쓰고 쓰고
내고 내고 내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러다 어느 날
벽산희곡상 공모에
당선이 되고
그 상금을 받아서
쓰고 쓰고 쓰고
내고 내고 내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러다 어느 날
여행자 소속 작가 제의를 받게 되고
그래서 여러 작품을 의뢰받아
쓰고 쓰고 쓰고
주고 주고 주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그러다 또 어느날
기획자 이동근을 만나서
아이디 서포터즈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받아
그래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쓰고 쓰고 쓰고
내고 내고 내고
회의하고 회의하고 회의하고
그러다보니
3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고맙게도
희곡작업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분명히
저는 그렇게 잘 쓰는 작가는 아니에요
대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생각이 짜릿한 것도 아니고
다만 저는
최선을 다해서
함께 작업하는 팀의 색깔을 맞추려고
노력 합니다

저도 분명 작가로서
제 색깔이 있죠.
제 색깔을 유지하고 싶고.
하지만 팀과의 작업에서는
의뢰받는 작업에서는
팀의 색깔을 어떻게든 닮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 합니다
닮지 못하면
욕을 먹고
다시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예술을 하기 위한
저의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작품이
함께 하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때까지
저는 끊임없이 노동합니다
저는 어찌 보면
참 작가스럽지 않은 작가지만
저 같은 작가도
한 명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나라의 극작가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저도 그 극작가들처럼
좋은 극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오태석 이윤택 고연옥 김명화
배삼식 박근형 백하룡 김은성
김지훈 김슬기 최준호 이오진
이 이름들을 생각하면
마냥 좋습니다
저는 지금 그저
무지막지하게
써서
무지막지하게
연극을 이어가는 작가지만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저도 이 이름들처럼
희곡의 한 구석을
조용히 지킬 수 있겠지요
군대 시절
너무너무
너무너무 힘들어서
휴가를 신청해서
내일로 기차를 끊어서
밀양연극촌에
무턱대고 왔었습니다
그때는 밤이었고
사람들은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연극촌 건물에
불만 켜져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다음날 연극촌에 전화를 걸어서
김지훈의 원전유서 DVD를 사서
PMP에 넣어놓고
매일매일
영상을 보면서
매일매일 버티면서
매일매일 머릿속으로
희곡을 썼습니다
제가 희곡을 쓰다가 힘들면
그때의 그
연극촌의 불빛
그리고
그때의 그
PMP의 불빛을
조용히 떠올립니다

제가 고등학교시절
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연극을 시작했을 때
저는 아주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대학에 가고 나서
저는 아주 시끄러운 아이였습니다
아, 나는
정상적으로 살기 힘들겠구나
나한테 맞는 공간과
나한테 맞는 사람을 찾아서
내가 머물 세계를 찾아야겠구나
그렇게 찾은 것이 결국
연극이었습니다.
저한테 연극은
제가 머물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세계입니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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