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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상보

여행자의 힘을 통해 내 여행은 계속된다

오세혁_작가·연출가·배우
91호 2016.05.12
나는 김상보입니다.
나는 극단 여행자의 배우입니다.

연극을 하겠다고 결심한 건 중학교를 졸업할 때였습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중학교 때부터 고민이 들더라고요.

나는 김상보입니다.
나는 극단 여행자의 배우입니다.

연극을 하겠다고 결심한 건 중학교를 졸업할 때였습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중학교 때부터 고민이 들더라고요.

아버지가 금형공장에서 일을 하셨어요.
아버지를 따라서 일을 배우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을 먹고 있던 중에 웅변대회를 나가서 입상을 했어요.
무려 5등을. 하하하. 환경에 대한 웅변이었어요.

서울의 거리를 거닐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거리에도 몇 가지 오점이 있습니다.
하수구와 블라블라블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얼떨결에 나갔는데 얼떨결에 상을 탔어요.
놀라운 것은 우리학교에 전국대회 입상자가 있었는데 내가 이겼다는 거에요.
하하하.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반장에게 물었어요.
나는 뭘 하면 좋을까.
반장이 말했어요. 넌 웅변을 잘해서 목소리가 크잖아. 연극하면 되겠네.

아!
나는 연극을 하면 되는구나!

고등학교에 가자마자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3년 동안 열심히 연극을 했죠.
물론 부모님은 안 좋아하셨어요. 취미로 하길 바라셨죠.

하지만 저는 취미를 넘어서고 싶었어요.
직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수시모집이라는 것이 생겼어요.
도전하고 싶더라고요. 연기 레슨을 받을 형편은 아니었어요.
혼자 계속 연습을 해서 시험을 봤어요.

세상에 붙어버린 거예요.
상명대 연극학과에.

날아갈 듯이 기뻤죠.
중학교때 반장을 만나서 감사의 인사를 했어요.
고맙다. 내가 너 때문에 연극을 하게 됐다.
반장이 말하더라고요.

나 때문에?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 X자식


대학을 참 재밌게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후배들이 그러더라고요.
사실 나랑 있는 걸 되게 싫어했다고. 너무 진지하고 술 먹으면 연극 얘기만 했다고.
대학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도 그런 말을 하면서 헤어졌어요.

“오빠는 만나면 연극 얘기만 해“.

충격이었어요. 나는 이런 얘기밖에 못하는 사람인가.
그 이후로도 계속 재밌어지려고 노력은 하는데.. 음, 형이 보긴 어때요? 하하하

재밌는 거 한 가지.
사실, 뮤지컬 동아리도 했었어요.
계속 열심히 했는데 나랑 안 맞더라고요.
뮤지컬은, 음, 뭐랄까. 노래를 하면서 연기를 해야 되잖아요.
노래와 연기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연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노래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노래가 삑사리가 나면서까지 열심히 연기를 했는데
어느 날 연출이 나를 조용히 불러서 미안한데, 노래 좀 똑바로 해줄래?
아, 나는 뮤지컬이 안 되는구나

그럼 이제 연극을 해야겠는데 어떻게 연극을 해야할까.
가장 존경했던 조만호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교수님, 졸업하고 어떤 연극을 하면 됩니까?

“연극사에 거론되는 작품을 하렴”

그 말씀을 듣고 연극사에 남을만한 극단을 찾아다녔어요.
눈앞에 극단 여행자가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저 엄청난 극단을 내가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겠어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죠.
어느 날 학교선배가 하는 공연에 스태프로 참가를 했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 선배가 여행자였던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 선배가 어떻게 여행자에?

선배, 여행자 어떻게 들어갑니까.
응, 그냥 들어가면 돼. 양정웅 연출님 번호 알려줄게.
아니, 제가 어떻게 감히.
아냐, 지금 해.

당연히 전화를 못했죠.
9개월이 지나서 선배에게 연락이 왔어요. 여행자 오디션 보러 오라고.

오디션을 5시간 넘게 봤어요.
그 긴 시간 동안 워크숍을 하고 인터뷰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삶의 부대낌이랄까.

그렇게 여행자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스태프만 했어요.
순회공연을 따라다니면서 전국을 누비고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무대에 서지 않아도 좋았어요.
연기보다는 연극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극을 하면 계속 어울리게 되잖아요.
어울리고 싶어서 연극을 했던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연극을 평생 한다면
나를 평생토록 지켜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여행자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어요.

우리 극단은 참 냉철해요.
무대에 서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났는데 무대에 서지 못했어요.
양정웅 연출님이 3년 동안 허허허허 웃으면서

허허허, 야. 넌 배우 아니야
야, 해균아, 얘 좀 어떻게 좀 해봐.
야, 해균이한테 가서 사사받고 와.

그렇게 3년 동안 무대에 설 듯 말 듯 시간이 계속 흘렀죠.

그러던 어느 날 연출님이 역할을 맡기셨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았죠.
그날 밤 어느 포장마차에서 연출님에게 얘기했어요.

연출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연출님이 저를 못 믿으셔서 역할을 안 주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연출님이 갑자기 술상을 엎으시더라고요.
내가 너를 믿지 않으면 내가 왜 너를 단원으로 받았으며 왜 너랑 연극을 하냐.

정말로 고마웠어요.
날 믿어준다는 말에.
사실 불쑥불쑥 배우를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나는 절대로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평생 인정도 못 받을 것 같았고, 계속 이 자리일 것만 같았고.

그런 마음을 연출님이 아셨을 것 같아요.
정말 혹독하게 연습을 시켜주셨어요.

오후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연습을 했어요.
연습이 끝나면 그냥 연습실에서 자고 일어나서 또 연습하고 또 연습실에서 자고

연습을 하면 내가 나오는 장면을 가장 마지막에 연습하셨어요.
가장 오래까지 연습을 하려고 하셨겠죠.
계속해서 다시 하고 다시 하고 다시 하고, 지금도 참 고마웠던 기억이에요.

그렇게 <십이야>의 세바스찬 역을 처음으로 맡아서 무대에 섰는데
아아 이건 차라리 연습이 더 행복하더라고요.

양정웅 연출님은 공연기간 내내 극장에서 펜을 들고 계속 메모를 하세요.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에게 2시간이 넘게 디렉션을 해주시죠.
그 디렉션의 절반이 나였어요.

정말 부끄러웠어요.
부끄럽지 않으려고 다음 날 필사적으로 했는데 또 디렉션의 절반이 나였어요.
그렇게 매일매일 깨지고 또 깨지면서 어떻게 무대에 섰는지도 모르게 그대로 끝이 나버렸죠.
하하하.

그러다가 조최효정 연출의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을 하면서
무대에서 즐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제야 내가 여행자 단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쭉쭉 여행자로 살아갔어요.


<십이야>
<햄릿>
<페르귄트>
<서울의 착한 여자>
<돈키호테>
<한여름밤의 꿈>
<크레이브>
<히에론>
<모로코 사람들에게로 가기>
<해롤드핀터 되기>
<라쇼몽>
<정글북>

지금은 <보물섬>과 <그렌델>을 동시에 준비중이죠.

이 작품은 이대웅 연출의 작품이에요.
대웅형을 처음 만났을때의 느낌은 저런 사람이 다 있나.
느리고 지각대장인데 작업을 하면 너무 재밌고 내가 너무 달라지고.

지금까지는 배우라는 건 연출에게 나의 영혼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웅 형은 본인의 영혼을 나한테 주는 느낌이었어요.
뭐랄까. 배우가 만들어낸 그림을 배우의 것으로 온전히 건네주는 느낌?

참 고마운 사람이죠. 작업이 언제나 즐겁고.
가끔 이런 표현을 해요.

그 어떤 누가 엄청나게 세계적인 극장에서 불러도
그 시기에 형이 작업을 한다면 난 형한테 갈께.

그동안 외부작업을 몇 번 했었죠.
<일곱집매>라는 작품도 했었고. 문삼화라는 마법의 연출가도 만났고.
하지만 외부작업을 거의 안 하고 여행자 작업만 해요.
극단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 너무 좋아요.
메소드가 있고, 서로의 희생이 있고.
모든 우려를 무시하고 마구마구 올라갔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어요.

<페르귄트>의 막공이 끝나고 나서 계속 눈물을 흘렸어요.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내가 우리 집단에서 이런 공연을 하는 구나.
우리 집단이 이런 공연을 올릴 수 있구나.
집단의 힘.


같은 생각과 같은 기운을 가지고 같은 길을 가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얼마나 행복인지.

물론 힘든 것도 있죠.

어느 순간 후배들이 그만 두는 것
후배들이 금새 생겨났다가 금새 그만두는 것.
그 큰 꿈을 꾸고 왔던 후배들이 어느새 그만 두는 것.
가슴이 참 아프죠. 가슴이 찢어지죠.
후배들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내 선배들을 보고 버틸 힘이 생겼던 것처럼
후배들도 나를 보고 버틸 힘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적 내 꿈은 연극을 계속 하는 거였어요.
한마디로 나는 꿈을 이뤘어요.
그리고 이제는 이룬 꿈을 지켜나가야겠죠.
연극을 계속 할 수 있는 나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돈도 벌어야 하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이겨내야 하고
무엇보다 연극을 더 잘해야 하고
그런 걸 유지할 수 있는 나로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게 나의 평생의 목표예요

나한테 연극은 현재진행형인 꿈이에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김상보(배우)
극단 여행자
주요작품
<십이야> <햄릿> <페르귄트> <서울의 착한 여자> <돈키호테> <한여름밤의 꿈> 외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