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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우 연출가

실패하고 실수해도 멋있게 박수받을 수 있는 당당함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92호 2016.05.26
뿌 아동청소년극(이하 아청극) 주로 해오셨죠?
인우 주로가 아니라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어린이청소년 연극을 분야를 나누는 것도, 안나누는 것도 우스운 것 같은데, 연극이라는 게 만나고 싶고 만나야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극장, 우리 또래의 관객들, 이런 게 연극이 가지고 있는 주류...

뿌
아동청소년극(이하 아청극) 주로 해오셨죠?
인우
주로가 아니라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어린이청소년 연극을 분야를 나누는 것도, 안나누는 것도 우스운 것 같은데, 연극이라는 게 만나고 싶고 만나야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극장, 우리 또래의 관객들, 이런 게 연극이 가지고 있는 주류성인데, 주류의 목소리가 큰 범주의 정치적인 이야기 같은 걸 다룬다면, 제가 생긴 건 안 그런데 되게 비주류적 인간이라… (웃음), 연극이 만날 수 있는 좀 다른 관객들, 어린이, 청소년, 학교 같은 극장 말고 다른 곳, 큰 정치적인 것 말고 우리 삶에서 정말 다뤄야 되는 비주류적인 것에 관심이 있어요.
뿌
어린이청소년극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용어인가요? 보통 아청극이라 그러잖아요.
인우
‘아동’ ‘청소년’ 둘 다 한자언데, 마침 아동이라는 한자어 말고 ‘어린이’라는 더 좋은 한글이 있고, 청소년은 순우리말이 없어서, 저는 그냥 ‘어린이청소년극’ 이라고 해요.
뿌
어린이청소년연극이라는 말이 더 예쁘게 들리고 좋아요. 이 말로 바꿔서 써야겠네요.
저도 작년에 흔히 말하는 ‘청소년극’이라는 걸 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어차피 지금 이걸 공부해봤자 늦었다, 그냥 평소 작품 만들 듯이 하자, 그랬는데, 하다 보니 질문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인우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웃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청소년 연극’ ‘어린이연극’의 한계 때문에, 아티스트들이 고민을 하는 거예요. 하던 대로 하고, 다만 우리가 어떤 극장에서 공연하느냐에 따라 공간과 그에 맞는 컨셉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처럼, 연극의 3요소 중 하나인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 거지, 특별한 장르는 아닌 것 같아요. 쌍용차 사태 문제(이하 쌍차)도 평택에서 공연하면 다를 거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하죠.
뿌
저한테 제일 아이러니했던 건, 이게 청소년극이라고 하는데, 요즘 청소년들이 공연 볼 시간이 어딨어요? 학원가고 뭐하고, 그러니까 주 관객층이 20대 초반이 많더라고요.
인우
저는 작품에 따라 그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청소년들한테 가서 해야 되는 작품이 있고, 청소년기를 지나온 사람이지만, 청소년기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필요도 있고, 또 주변의 청소년들의 삶에 질문을 던질 필요도 있고. 고흐나 피카소 그림 보면 어린이들도 좋아해요. 다만 어린이들을 위한 전시회다 그러면, 눈높이에 맞춰서 그림을 좀 낮춰서 거는 거지, 그림 자체를 바꾸는 건 아니거든요.
만약 청소년들이 정말 봐야 되는 작품이다, 그러면 극장을 박차고 나가서 그들이 있는 공간으로 가야 돼요. 옛날에 노동자들이 연극을 봐야 돼, 그러면서 공장가서 연극했던 거랑 똑같은 거죠. 좀 특수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거지만, 미적 체험의 면에서는 다른 게 없죠.


뿌
어린이청소년 연극하시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인우
어른들도 엔터테인먼트부터 정말 진지한 거, 고전, 현대물, 다양한 연극을 접할 수 있어야 되는 것처럼, 어린이들도 그래야 되는데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요. 일단 손쉬운 선택은 엔터테인먼트한 거죠. 캐릭터 연극, 교훈적인 거, 저는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해요. 그것만 봐서 문제죠.
어린이 연극이라고 하면 계몽적인 시선, 책임을 갖게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너무 가르치려고 하거나, 아름다운 얘기만 하게 돼요. 아니면 얘네가 좋아하는 캐릭터물. 이 셋 중의 하나로 쉽게 빠지는데, 어린이들을 둘러싼 세상이 얼마나 다양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동생이 “언니, 죽으면 어디로 가?” 물어봐가지고, 둘이 며칠을 끌어안고 울었던 기억이 나요. (웃음) 상상은 안 가는데 너무 무섭잖아요. 그러고 좀 지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우연히 임종을 봤어요. 제 기억으로는 눈의 검은자랑 흰자가 구별이 안 되고, 그냥 빨개지고 나를 보는 건지, 나를 통과해서 어디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그게 잊히지가 않아요. 죽음, 그런 거 말고도, 어릴 때 고민이 얼마나 많아요. 꽃은 왜 피는지, 해는 왜 맨날 뜨는지, 밤에는 왜 자야 되는지… 세상에 궁금한 거 천지인데, 답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같이 공유할만한 예술작품을 만나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다양한 작품들이 홍보가 되고 관객들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용극장이 인제 생긴다니까…
뿌
전용극장으로 사다리가 있었잖아요. 또 생기면 잘 될까요?
인우
안 되겠죠. (웃음) 그건 제 몫이 아니니깐. 이건 어린이극 (전용극장)뿐만이 아니라 모든 공공극장의 문제인 것 같아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에 공공극장 참 많아요. 보통 유럽의 전통은 극단이 공간을 갖고 있잖아요. 극단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공간도 설계되고, 연극도 계속 생산되고. 그런데 우리는 하드웨어만 있는 거예요. 극장은 비어있고, 공연단체들은 공연장을 못 찾고, 연습실도 없고.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운영해야하는데, 이게 정말 문제예요. 한 20년 후면 바뀔까요?
뿌
글쎄요.
인우
그냥 점령해야 돼요, 예술가들이.
뿌
좀 과격하게 들리지만 멋있는데요. (웃음)
인우
공공극장을 점령해야 돼요, 지역으로 막. 저희가 안산에서 4년 있었는데, 경기도에서 시범사업으로 상주단체를 한다고 해서, 한 30페이지짜리 계획서를 내고 됐었던 거예요. 그 전에 단원들도 결혼하고 애 낳고 그러니까, 서울에서 살기 너무 힘들다, 우리도 극단 ‘뛰다’처럼 내려가자, 그러고 지도를 펼쳐놓고 봤어요. 서울 가까이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안산으로 갔죠. 마침 제도도 생기고, 그렇게 있다가 세월호 참사 나기 1년 전에 나왔죠.
뿌
안산에서 4년 동안 어린이청소년극 하셨으면 교류도 좀 있고 그러셨겠어요.
인우
상주단체로 있었던 안산예술의전당이랑 단원고가 바로 옆이에요. 극단 탄생 10주년 기념으로 <가믄장 아기>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공연 하려고 연습을 하는데, 세울호 참사가 난 거예요. 단원고 친구들하고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연극 프로그램이랑, 공연을 했어요. 가서 연극놀이도 하고, 애들이 공연도 많이 보러오고, 우리가 어떻게 교류할까, 그런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우리가 공연 할까, 말까, 회의도 했는데, “The show must go on”이라고 하기로 했죠. 연습하다가 다 구조됐다고 막 좋아하고 그랬다가… 저희 극단 그때 진짜 해체될 뻔 했어요. 슬픔도 울고 나눠야되는데, 그게 터지면 우리가 공연을 못할 거 같은 거예요. 뉴스는 계속 나오고, 우리는 연습하느라 북 치고 장구 치고 막 떠들고 웃어야 되고, 근데 마음이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공연 날, 화이팅, 이런 것도 없었어요. 그러고는 세월호라는 말을 서로 못했어요. 저도 한 1년 동안 분향도 못 갔고. 그때 차라리 그냥 슬픔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모르는 척 했어야 하니까… 그러다가 작년에 세월호 1주년으로, 우리 나름대로 우리를 위로할 거를 하자, 그래서 낭독 공연 두 개를 했어요. 소설가 윤성희의 <웃는 동안>, <어쩌면> 이란 작품이었는데, 그걸 하면서 우리도 뭔가 마음이 풀린 것 같아요. 세월호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들이 있잖아요. 사회적 맥락도 있고 그런데, 저는 아직 거기까지는 못가고, 그때 충분히 울고 미안해하지 못했던 나와 내 동료를 도닥거리는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요.) 안산 얘기를 하다 보니 세월호 얘기를 하게 되네요.
뿌
어디에 있었든, 어느 장르든 세월호 참사가 창작자들한테 끼친 영향은 되게 큰 것 같아요. 연극인 인터뷰하면서도 자주 이야기하게 돼요. 아직은 그걸 작품으로 어떻게 가져가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안하세요?
인우
아직 그렇게 숙성도 안됐고, 세월호에 대한 답을 못 찾았어요. 정치적인 거 말고, 어디서부터의 문제인지. 세월호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말도 안되는 이 모습이 일단 마음으로 이해가 안가고,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또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큰 거 같아요. 아직 정리가 안됐어요. 나랑 다른 의견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 이런 걸 만나야 캠페인이 아닌 딜레마를 다룬 연극을 할 텐데, 아직은 “도대체 뭐지?” 그러고 있어요.

남인우 연출의 눈시울이 자꾸 붉어졌다. 잠깐 마음도 추스릴 겸 쉬는 시간.


뿌
처음에 연극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엄청 옛날 얘기죠?
인우
네. 제가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았거든요. 어릴 때 표현으로, 이 집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서울로 대학가는 거다, 그러고 성적을 봤어요. 공부를 잘 했는데 영어를 100점 만점에 50점도 못 받을 만큼 못했어요. 도대체 학교를 왜 school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웃음) 고3이 돼서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외우자, 그랬는데 잘 안돼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영한대역문고를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게 <고도를 기다리며>였어요. 처음 희곡이라는 걸 봤죠. 이런 게 연극이라면 연극을 해야겠다, 그러고 친구들 모아서 “야, 이제 연극이야!” 그러고 연극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갓 부임한 아주 키가 작으신 선생님을 화장실로 불러서 학생들이 우르르 둘러싸고 지도교사로 도장 찍게 하고. (웃음) 무슨 공연을 했는데, 작품도 기억이 안 나는데 항상 유령처럼 계셨던 그 선생님이 공연 시간 내내 슬라이드를 머리위에 들고 우리를 비춰줬던 기억이 나요. 그 때 질문이 들었죠. 저 사람은 뭐지, 저 사람은 왜 우리한테 이러지? 그런 사람을 못 봤으니까. 괜히 화가 나고, 고마운데 고맙다는 말은 못하고. 사춘기 때, 아버지하고 혹독한 세월을 보냈는데 그 선생님과 연극을 만나서 연극영화과를 가게 됐죠.
뿌
연출 전공으로?
인우
그런 게 어딨어요. 그냥 간 거죠.
뿌
어, 그럼 연기를 잘 하셨나 봐요?
인우
학교에서 주는 연기상도 받고, 제가 연기 쫌 해요. (웃음)
뿌
그럼 처음에 배우를 꿈꾸셨겠네요.
인우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처음에 학교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제가 촌년이잖아요.
뿌
고향이 어디세요?
인우
경기도 평택이에요. 지리상으론 수도권인데 굉장히 이질적인 문화에서 살았어요. 논밭에 둘러싸인 집에 있었고, 한 15분만 뛰어 내려가면 미군기지가 있어서 이태원 같은 풍경이 있고, 우리 집 2층에 미군아저씨가 살기도 하고, 우리끼리 양공주라고 불렀던 사람들, 집창촌, 오며가며 그런 걸 봤죠. 그래서 저는 되게 당당하게 반미군주의자라고 해요. 미군기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성폭행 문제도 너무 많았고 전통과 제국주의적 문화 소비와 향락의 문화, 한쪽에는 들판이 펼쳐져있고… 그런 게 막 뒤섞여져 있는 곳이었죠.
뿌
몰랐던 게 아닌데 이렇게 들으니까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지네요.
인우
언젠가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 문제도 그렇고, 쌍차 문제도 그렇고. 화제가 됐던 청소년 범죄들이 평택에서 일어난 게 많아요. 제가 느꼈던, 알게 모르게 쌓였던 분노들에 더해서 쌍차를 둘러싼 분노들, 여러 가지 분노들이 겹겹이 이 지역 청소년, 어린이들 정서에 영향을 많이 끼쳤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뿌
다시 원래 얘기로 좀 돌아와서, 촌년이어서 학교 적응을 잘 못했는데?
인우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왔는데 고등학교랑 똑같은 거예요. 질문은 없고, 암기만 있고. 재미없더라고요. 근데 그때 처음 광주항쟁 사진을 봤어요, 제가 반공웅변대회 1등 하고 그랬는데 (웃음), 너무 다른 거예요. 정말 이해가 안 되고, 진짠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고. 94년 5월 17일에 난생처음 신촌이라는 데를 데모하러 갔다가 전경한테 맞고 끌려가고 그러면서 인생이 바뀌었죠. 큰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학부는 정말 간신히 졸업했어요.
그때도 좋은 선생님이 있었어요. 배우를 바라보는 힘을 주는 선생님도 계셨고, 뭔가 약속을 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 연극이 날짜를 정해놓고 가는 거니까, 그런 깡다구, 치열함 같은 정말 중요한 걸 가르쳐주신 분도 계셨고. 지식이 아니라 삶의 어떤 힘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이 저한테는 감동이었어요. 사실 그게 제일 큰 거죠.
뿌
그럼 졸업하시고는?
인우
2년 회사 다니다가 우연히 보호감찰 받는 청소년들이랑 같이 연극캠프 같은 걸 갔어요. 거기서 어릴 적 내 친구 같고 내 모습 같은 애들을 만나면서, 얘네하고 뭔가 연극 해야겠다, 그랬는데 마침 아동청소년연극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그래서 갔어요. 첫날 딱 들어갔는데 그날로 바로 그만둬야 되나, 그랬어요. 학생 3명에, 외국인 교수, 지도교수, 통역선생님, 이렇게 선생 3명이 같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런 걸 하는 거예요. (웃음) 그 다음엔 신문지로 뭐 만들라 그러고…
뿌
처음에 연극놀이 수업으로 시작을 하셨네요.
인우
저는 되게 틀에 박힌 연극적 상상력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메타포로서의 연극, 연극적 상상력의 세계, as if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 거죠.
뿌
거기서 동료들 만나서 극단도 꾸리고 연출도 하고 그렇게 된 건가요?
인우
네. 근데 저는 작품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연출 할 꺼다, 그런 생각도 없었어요. 지금도 ‘미적체험 예술교육’ 같은 예술교육가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하고 그래요. ‘다다예술선언’으로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로 내려왔다면, 이제 예술가도 무대를 내려와서… 예술가들이 하는 예술교육, 기능적인 거 말고, 예술이 주는 미적인 즐거움을 참여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인 것 같아요, 새로운 패러다임. 무대에서 내려오는 작업은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어제도 교실 존치 문제 때문에 단원고에 갔다가 최진아 연출하고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정치적 거대 범주는 계속 지속적으로 반복됐던 것 같아요. 이게 무슨 허무주의는 아니고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정말 깨어있는 시민 같은데, 깨어있는 시민은 다양한 상황의 딜레마를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거든요. 그게 예술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시 예술인 것 같아요. 기능주의적, 엘리트주의적 예술 교육의 형식을 벗어던지고,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 삶을 바라보는 힘,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힘, 이것을 공유하는 게 제일 빠른 혁명의 길이 아닌가. (웃음)
좀 어렸을 때는 해내기 위해 바빴는데 나이 들수록 연극이 재밌어요.
뿌
뭐가 재밌어요?
인우
일단 연습실에서 배우를 만나는 것도 재밌어요. 하루는 죽여 버리고 싶다가도 어느 날은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한 사람 한 사람이랑 그 짦은 시간에 그렇게 깊은 연애 같은 걸 한다는 게, 그때는 힘든데 돌이켜보면 참 재밌어요. 그 과정에서 그 사람도, 나도 변하는 이런 게, 내가 전생에 뭘 했길래, 이런 극심한 고통 같은 행운을 누리나, 싶죠.
그러고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바라보지 못했을 삶들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고 수련하게 되는 게 복 받은 거 같아요. 진짜 복 받았죠. 심지어 돈도 벌어요. (웃음)

뿌
지금껏 행복한 얘기 하셨고, 힘든 건 뭐가 있으세요?
인우
자꾸 예술가를 대기조로 만드는 게 힘들어요. 대관 신청, 기금 공모 해놓고, 결과 공지 날짜를 넘기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뭐가 어떻게 됐는지도 없이 최종 결과만 알려주고. 요즘 점점 더 심해져요. 우리가 1년 이상의 안목을 보고 작품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질 않잖아요. 저도 작년까지는 공공극장 제작에 수혜를 많이 받았던 연출 중의 한명인데, 그러면서 우리 극단은 거의 풍비박산이 나고 그랬거든요. 극단의 자생력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해요. 공연 만들 때 공공 자금과 극단의 자생력 사이에서 어떻게 밸런스를 잡을 것이냐, 그런 정책적인 문제가 있고 육아를 하는 단원들이 많은 극단이다 보니까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병행하느냐, 그런 문제도 있고. 10년 까지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돈 없으니까 백 원 주께, 이번엔 오십 원밖에 안 되겠다, 그럴 수 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염치없죠. 극단이 재정적으로 버텨줘야 되는데, 어렵죠. 극단이 10년, 20년, 30년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생각해요.
연극하면서 어려운 일은 정책적인 부분이 대부분이지, 예술가로서의 질문이나 도전의식이 사라졌다, 이런 건 뭐, 아직 제 나이가 그런 것 같진 않아요.
뿌
혹시 제가 질문 안 해서 아쉬웠던 거 있으세요? 덧붙이고 싶은 얘기도 좋고요.
인우
<구름> 이라는 공연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 때 공연을 내가 봐도 어떤 날은 너무 좋고, 어떤 날은, 이런 쓰레기 같은 걸 하다니 죽고 싶고. 평가도 극과 극이었고. 그러면서 연극 만드는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의외로 제가 결과를 굉장히 중요시 하고 있었어요. 그건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공연을 하고서 연극의 결과를 평가내리는 게 스스로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연극은 평생 하는 거잖아요. 수련과도 같은 건데, 내 스스로 길게 보는 힘, 타인의 평가에 대한 너무 많은 두려움을 버리는 대신 내 작품이 지금 이 단계까지구나, 라고 볼 수 있는 걸 발견한 거 같아요. 작업 과정에서 만족하지 않았다면 설령 기적처럼 좋은 평을 받는다고 해도 그게 좋은 작업이었는가, 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게 됐고요. 미술가들은 십년 작업한 걸 전시회에 죽 늘어놓고 연대기적으로 볼 수 있는데, 연극은 연대기적 발전을 관객과 내가 나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혼자라도 내 연극적 발전을 연대기적으로 봐라봐야 된다, 실패하고 실수해도 멋있게 커튼콜에서 박수 받을 수 있는 당당함을 가져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과정에 대해서는 더 많이 고민하게 되고… 평생 수련이죠.

뿌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남인우에게 연극이란?
인우
아이구야. 지금 막 드는 생각은 저희 아버지는 직업도 따로 있으셨는데 늘 농사를 하셨어요. 지금도 하시는데, 농사 같아요. 젊고 힘 있을 때는 천 평, 이천 평 짓다가, 나이 들면 이백 평, 것도 많다 그러면 삼십 평. 꾸준히 들여다보고 물주고 키우고, 하늘보고 땅 보면서 뭘 해야 될지 고민하고 필요하면 땅도 뒤집어엎고 비료도 주고, 아니다 싶으면 딴 거 심고. 시골사람한테 농사는 생활이고 자식이거든요. 그런 게 돼야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남인우(연출가)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주요작품
<가믄장 아기> <재주많은 다섯친구> <소년이 그랬다> <겨울이야기> <구름> <사천가> <억척가> 외 다수
독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