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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연출가·배우

연극을 계속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96호 2016.07.21
뿌 링클레이터 수업을 하신다고 알고 있어서 배우이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출을 하신다고…
혜리 원래는 배우예요. 학부는 정외과를 나왔는데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많이들 그렇듯이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다가 IMF 터지고 집이 망하니까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대학원을 가고 싶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실기 프로그램...

뿌
링클레이터 수업을 하신다고 알고 있어서 배우이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출을 하신다고…
혜리
원래는 배우예요. 학부는 정외과를 나왔는데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많이들 그렇듯이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다가 IMF 터지고 집이 망하니까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대학원을 가고 싶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실기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고 주변에서 유학을 많이 권했어요. 미국에 가서 학부 편입해서 다니고 대학원을 갔어요. 거기 선생님이 링클레이터 수업을 하셨어요. 제가 연출도 하게 된 건… 저 2학년 때부터 수업의 절반이 전부 다 같이 하는 공동창작 수업이었어요. 배우, 연출, 작가랑 다 같이 섞여서 작업하는 거였는데, 너무 좋아했어요. 2002년부터는 한국에 못 오고 거기 계속 있으면서…
뿌
한국에 못 오셨다고요? 안 오신 게 아니라요?
혜리
안 오기도 했고, 못 오기도 했죠. 여기서 연기를 전공했던 게 아니니까 와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되게 난감하더라고요. 그리고 영어로 연기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그거 포기하고 오려니까 아깝기도 하고. 아무 경력도 없이 학위만 달랑 들고 들어오는 게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도 좀 했고요. 거기서 배운 링클레이터가 배우로서 저한테 영향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2007년까지 링클레이터 훈련도 계속 하고 강의도 나가고 배우로도 활동하고 그랬어요. 졸업하고 배우로 활동하는데, 거기서 테네시 윌리엄즈 작품하면서 저를 캐스팅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백인 여배우들이 있는데. (웃음) 그래서 주로 했던 작품들이 새로운 창작극들, 배우들이랑 같이 워크숍을 여러 번 하면서 작품을 점점 만들어가는, 그런 것들을 많이 했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뿌
그럼 한국에 들어오시게 된 계기가 뭐였어요?
혜리
2010년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많이 편찮으셔서 엄마를 돌보고 직장을 얻어야 되는 상황이 온 거죠.
뿌
아까 배우로서 링클레이터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그 트레이닝을 가르치기도 하시고요. 저도 들어는 봤지만 뭔지는 잘 모르고… 읽는 분들 위해서 링클레이터에 대해 간단하게, 물론 간단하게 하시기 어렵겠지만 (웃음), 설명 좀 해주세요.
혜리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음성이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한정적이지 않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거예요. 애기들 같은 경우에 아프지 않는 한 아무리 울거나 소리 질러도 목이 안 쉬거든요. 움직이는 것도 굉장히 유기적으로 움직일 줄 알고요. 살아가면서 그런 기능들을 어떻게 제약적으로 사용하는지…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그렇게 되죠. 요즘 애들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12시간씩 의자에 앉아있게 되면 더 이상 몸 쓰는 법을 모르게 되죠. 가지고 있는 자기 안의 어떤 음성, 음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숨이나 소리, 몸을 같이 사용하면서, 미묘한 뉘앙스부터 커다란 것들 까지 힘을 가지고 대사를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게끔 몸도 열어주고 숨도 열어주고 마음도 열어주는 그런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뿌
일종의 훈련법이네요.
혜리
가장 대중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배우를 위한 발성법 훈련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한 가지 방법이에요. 이걸 만드신 분이 대학원 은사님이셨던 거죠. 처음에 유학을 갔을 때는 집도 망하고 어려운 일도 겹쳐 있는 상황이었어요.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굉장히 많이 위축돼있었던 상태였던 것 같아요. 남의 나라에서 연기를 배우는 것도 어려웠고, (그런 어려움들을) 제 안에서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는, 이십대 초반의 그런 에너지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러다보니까 열려있거나 유연하지 못했던 거죠. 그 트레이닝을 배우면서 제가 많이 열리고 바뀌어갔어요. 단순히 음성만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연극, 훈련을 통해 바뀌어가는 걸 경험하게 되니까, 이걸 계속 이어가고 싶었어요. 그 트레이닝 자격증을 받을려면 한 5년을 더 공부해야 되거든요.
뿌
아, 자격증이 따로 있군요.
혜리
네. 왜냐면 사람들을 가르치는 거니까. 2003년에 시작해서 2007년에 자격증을 받았어요. 잘 한 것 같아요. 가끔씩은 치유가 되는 느낌도 들고요.

뿌
앞에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연출로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혜리
배우하고 싶었어요. (웃음) 한국 들어와서 제일 처음… 미국에서 했던 공연을 가지고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갔었어요. <FACE>라는 1인극이었는데 위안부할머니 이야기였어요. 제가 쓰고 연기하고, 1인극을 많이 한 배우를 십년정도 봐주셨던 선생님이 도움을 좀 주셨던 작품이에요. 2010년에 그 작품 가지고 에딘버러 갔다가 한국에서도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잘 없더라고요. 오디션을 보러가도 기회가… (웃음)
연기는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극단에서 배우들이랑 같이. 2014년에 세월호 얘기를 하려고 한 6개월 동안 같이 리서치하고 돌아다니면서 작품을 만들어서, 그 해 12월에 <사랑해. 4월 16일 그후> (이하 <사랑해>, 김혜리 연출 및 출연) 라는 공연을 했어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세월호를 다룬 작품들도 나왔는데, 그때는 지금이랑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 무기력감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뭔가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할 줄 아는 거나, 해야 하는 게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연극으로 풀어야겠다, 그러고 시간되는 극단원들이랑 진도를 갔어요. 저희가 갔을 때가 6월말쯤이어서 제법 한산해졌을 때였어요. 3일 정도 자원봉사하고 돌아와서 안산 가고… 그러고 바로 써서 12월에 공연을 했어요. 시간이 얼마 안 지난 때여서 많이 뜨거웠던 것 같아요.
연기는 계속 하고 싶죠. 1년에 한 작품씩은 연기를 하려고 하고요. 연출을 시작하게 된 건… 어릴 때부터 말로는 잘 표현이 안됐지만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은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연극이 내 일상이 되면 좋겠는데, 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그게 배우로서는 한계가 많더라고요. 왜냐하면 누가 써주지 않으면 힘드니까. 그래서 극단을 시작해야 되겠다, 좀 젊은 배우들한테 기회를 많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제 제자들이랑 같이 극단 ETS를 꾸려서 작품을 했어요. 한국 들어오자마자 2010년에 바로 시작을 했죠. 1년에 최소한 두 작품씩은 계속 올리고, 그러다보니까 6년이 됐어요.
뿌
주로 공동창작으로 작품을 만드시나요?
혜리
마지막으로 구성하고 쓰는 건 제가 해요. 배우랑 같이 리허설을 하는 과정에서 다음 씬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누군가 대상이 있고, 그에 따라서 뭔가를 만들어간다는 게 되게 재밌는 것 같아요. <사랑해>나 <FACE> 같은 경우는 관찰을 한 거죠. <FACE>는 위안부 증언집이랑 자료들 다 찾아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6살부터 80살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로 만들었던 거고요. <사랑해>는 자원봉사 하면서 만난 분들, 집회 같은 데서 뵀던 어머니들, 이런 분들 얘기를 채집을 해서 그거 가지고 만들었어요. 작년에 <욕조연극>이란 걸 했었는데 올해 다시 하게 될 꺼 같아요. 그 작품 경우에는 제가 미리 써놓은 대본이 있었는데 배우들 캐스팅하고 나서 그 배우에 맞게 많이 고쳤죠.
뿌
공동창작이라기보다는 작, 연출을 겸하신다고 봐야겠네요.
혜리
정말 ‘공동창작’을 하려면 정말 ‘식구’ 같아야 될 거 같아요. 그 ‘식구 같음’ 이 있고, 그 안에서 뭔가를 인큐베이팅을 해가면서 만들어가려면 시간이 되게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동안 제가 작업했던 배우들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인데, 그 시기가 배우들은 많이 흔들릴 때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몇 달 동안 같이 땀 흘려서 뭔가를 만들어보고, 이런 게 잘 안되더라고요.
뿌
연극계 환경이나 상황이 그러기가 힘들죠.
혜리
저작권 문제나 스케일 문제나 저희 같은 작은 극단이 외국 작품을 하기도 힘들고… 그러다보니까 계속 뭘 만들어야 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외국작품을 하긴 했어요. <bent>라는 작품을 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됐던 동성애자들, 가장 밑바닥 사람들 얘기예요. 그 작품은 저작권 얘기가 잘 돼서 3번 공연을 했는데 3번째 할 때 계약서가 제 때 안와서 여러 가지로 고생 좀 했죠.
뿌
작품 하셨던 거 들어보니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혜리
어떻게 하다보니까 성향이 그렇게 되더라고요. 상식이 잘 안 통하는 사회이다 보니까. (웃음) 상식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해야 되고, 그러면 사회적인 걸 안건드릴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에서 중상류층 백인들의 연애, 가족 이야기를 하는 공연을 볼 때 동양인 배우로서 그런 걸 보는 게 참 힘들었어요. 이렇게 막 고생을 해서 연극을 만드는데, 기왕이면 나보다 좀 더 사이즈가 큰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뿌
창작자로서의 관심사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주시면요.
혜리
기억이나 존재에 관한 것,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 그 흔적이 무엇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파괴가 되는지, 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FACE>도 묻어놓고 싶었던 기억인데 어느 순간 이것도 나의 일부라는 걸 깨달으면서, (기억으로) 돌아가서 재발견을 하고, 내 삶으로 인정을 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이 얘기를 해야지, 라는 그 액션을 따라가고 싶었어요. <욕조연극>도 사람들하고 만나면서 내가 아픈 것 역시 나의 기억이 일부인데, 이것도 내가 만들어져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엄마가 치매이신데, 한 사람이 아직까지 살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존재를 잃어가는 과정이 그대로 보이잖아요. 기억을 잃고 언어를 잃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신체의 기능들이 상실되어 가고. 저 상태라면 엄마의 삶이 의미가 없는 건가? 그건 아니잖아요. 망가져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면, 그게 의미가 있으려면 저 사람이 누구였는지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생각하면서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사회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bent>라는 작품도, 물론 인권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딱히 제가 게이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그들의 인권에 대한 사명감에 불타서, 했던 건 아니었어요. 한 인간이 사회에 영향을 받아서 점점 자아를 상실해갈 수밖에 없는 그 과정, 그 이야기에서 그 사람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지? 그런 면이 저한테 많이 다가왔어요. 다음번에 작품을 쓰게 되면 정말 개인적인 얘기지만 엄마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뿌
어머니 얘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사회가 이래, 저래 하는 거창한 얘기보다 울림이 있는 얘기인 것 같아요.

잠깐 쉬는 시간.

뿌
연극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어떤 게 있을까요?
혜리
너무 당연해서 바보 같은 애기일 꺼 같은데요. 배우로서 계속 연기했으면 좋겠어, 연출로서 연극을 계속 했으면 좋겠어, 극단이 계속 지속됐으면 좋겠어, 그게 소박한 꿈이지만 그 안에 정말 어마어마한 노동이 들어가잖아요. 꾸준히 하기도 어렵고 일상이 되기는 더 어렵고, 그리고 그 과정들을 겪어가는 개인들이 만나서 다 같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과정도 어렵고. 그 들여야 되는 시간과 없는 재능까지 짜내야 되는 괴로움, 이런 걸 다 겪어내면서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하면, 최소한 끝나고 나서 의미 있는 과정을 지나왔다, 저한테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적어도 내가 하려고 하는 얘기 안에 나한테도, 같이 하는 사람들한테도 이런 것 때문에 의미가 있어, 라는 게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슨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와 의미가 관객들하고 만나질 때, 관객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그게 보람이 아닌가.
뿌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의 의미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표현에 관한 거라고 해야 할까요? 작품을 만들면서 연출로서는 뭘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혜리
조화, 하모니, 앙상블… 이런 것도 중요하고 템포, 리듬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생각에도 충동에 따른 리듬이 있는 것 같거든요. 논리적으로 보이는 사물이나 사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상당히 비논리적이면서도 가끔씩은 놀랍기도 한 그 숨어있는 리듬들, 그걸 찾아내는 게 되게 재밌는 거 같고, 그게 하나로 엮여져서 나도 생각지도 못했던 조화로움이 나오는 순간이 재밌어요.
뿌
이게 뭔가 링클레이터랑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혜리
배우들한테 의식도 중요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 가지고 있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인간 몸 안에 쌓여있는 그 수많은 역사가 우리 디엔에이 안에 들어있거든요. 누가 엄청난 고통을 경험할 때 내지르는 소리는 세계 어디에서 듣던 나한테 훅 다가오는 게 있어요. 음악이랑 비슷하죠. 이게 굉장히 세련된 언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튀어나올 수 있게 만들어주는 훈련이기도 해요. 텍스트를 눈으로, 머리로 읽었을 때랑 내 몸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때, 여러 가지 다른 출구를 통해서 표현이 되면서, 배우가 계산하지 않았던 것이 연기로 나올 때, 그럴 때가 정말 신나는 순간이죠. 배우 하나하나의 연기에서도 그렇고, 작품에서도 그렇고, 연습하는 과정이 만약 그런 것들로 채워지는 과정이라고 하면 너무 재밌죠. 근데 그럴 때가 많지는 않아요. (웃음)
뿌
아무래도 배우시기도 하니까, 배우들한테서 발생하는 것들을 더 잘 보실 것 같아요.
혜리
가르치기도 하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제 것만 하면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잘 관찰을 했다가 얘기를 해줘야 하는 입장이니까.
뿌
덧붙이고 싶거나 제가 질문을 안 드려서 못한 얘기 있으시면 해주세요.
혜리
연극을 계속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어느 정도씩은 성취를 하면서 연극을 계속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다시 들어왔을 때, 2010년 그 언저리에는 새로운 창작극들도 많아지고 젊은 연출들, 배우들도 많아졌구나,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뭔가 도전을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거나, 망하든 안 망하든 그거 신경 안 쓰고 엉뚱한 일을 해볼 수 있는 토대 자체가 점점 없어지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요. 저도 연출이라고 보면 나름대로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연출인데, 아직까지는 엉뚱한 것도 많이 해보고 싶고 여러 가지로 많이 실험을 해보고 싶어요. 저나 제 동료들, 후배, 제자들도 뭔가 성공이나 성취나 그런 걸 염두에 두지 않고 열려있는 상태로 맘대로 망가질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어느 정도는 좀 확보가 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런 얘기는 많이 있었고, 그래서 저도 들었던 얘기인데도 제가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거 보면 아직도 그런 환경은 아닌 거죠. 점점 아니게 돼가고 있는 것 같고요. 뭔가를 다양하게 계속 만들어보고 해보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뿌
실패를 해도 괜찮다, 라는 용기를 가지기가 정말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걸 개인의 용기의 문제라고하기에는 토대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인 거 같아요. 창작자로서의 경험도 부족한데 그런 걸 본다든가 하는 간접 경험도 부족한 거 같고요. 또 그런 이상한 걸(?) 봐주는 시선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혜리
가끔씩은 배우들이 먼저 겁내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참… (웃음)
뿌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김혜리에게 연극이란?
혜리
대화 상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대화 상대.
내가 만들기를 좋아하고, 만들 줄 아는 뭔가를 통해서 살아있는 동안에 나나 다른 사람들한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그 화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씩은 사는 게 무료하지 않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고. (웃음)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김혜리(연출가·배우)
극단 ETS , 국민대 교수
주요작품
<자베트> <욕조연극> <나이팅게일의 소리> <사랑해.4.16 그 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