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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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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_작가·연출가·배우
101호 2016.10.06
나는 신사랑입니다.
나는 배우입니다.
나는 배우가 되었지만
어떤 이유로 배우가 되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아요.

하나의 기억만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예회 준비를 하...

나는 신사랑입니다.
나는 배우입니다.
나는 배우가 되었지만
어떤 이유로 배우가 되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아요.

하나의 기억만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예회 준비를 하는데
다른 애들은 베이비복스나 핑클을 준비하는데
저는 애들한테 말했어요.

얘들아
우리는 춤을 추면 안 돼.
우리는 연극을 해야 돼.
우리는 연극을 해야만 되는 거야.

그 당시 가장 인기 많았던
드라마 왕초를 제가 스스로 각색하고 연출하고
주인공 왕초 역할까지 맡아서
문예회관에서 공연을 올렸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물어보시는 거예요.
사랑아, 이번 학예회때도 연극할 거니?
이번엔 어떤 드라마를 각색할 거니?

아니요 선생님
이제 제 나이에 드라마는 의미가 없어요.
이제 사회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빈라덴을 연극으로 하고 싶어요.
물론 주인공 빈라덴은 저예요.

중학교에 가서는
중2병 같은게 걸렸는지
계속 이상한 사색을 하고
쓸데없이 번뇌하고
시를 쓰고
백일장도 엄청 나가고
그때 제가 쓴 시가
아직도 기억나요

시월의 강

강은
귀만 있다
입이 없다
우리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시월의 강

이렇게
세상 다 산 것 같은 시를 쓰면서
중학생활이 다 지나갔죠.
그러다 갑자기 예고에 가고 싶은 거예요.
없는 살림에 없는 실력이라 생각했기에
갈 수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가고 싶은 거예요.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결심했어요.
장금이가 말하죠.

“내가 누군가한테 피해를 주느니 그냥 마을에서 사는 게 나아“

누군가가 말하죠.

“장금아, 그래도 넌 싸워야 돼. 넌 궁을 가야 돼.
핍박을 당하더라도 궁에 가서 당해야 되는 거야“

돌이켜보면
예고 시절만큼 진짜 열심히 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연극이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연극만 하고
연극 생각만 하고

몸의 세포가 몽땅 열린 느낌이었어요.
거의 신내림 수준이었어요.
제가 만나는 모든 인물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안티고네>를 하면 안티고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분석을 해서 아는게 아니라 그냥 알 것 같았어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계속 연극을 했어요.
예고를 졸업할 때
딱 한 명에게만 연기상을 주는데 그걸 제가 받았어요.

어린 나이에 얼마나 우쭐했겠어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어요.
어디든 시험 보면 붙을 것 같았어요.
그때도 집이 어려워서 등록금이 싼 데를 알아봤는데
그곳이 한예종이었어요.

한예종에서도 하루종일 연극만 하고
연극만 생각했어요.
작품도 정말 많이 했죠.

한예종에서도 졸업할 때
딱 한 명에게 연기상을 주는데
또 제가 그걸 받았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어린 나이에 또 얼마나 우쭐했겠어요.

4학년 때
양손프로젝트의 양종욱 배우랑 <블루룸>이라는 공연을 했어요.
그 공연을 보고
박근형 이라는 분이 찾아와서
너무 잘봤습니다.
인사하고 갔는데
그때까지도 그 분이 누군지 몰랐어요.
옆에서 애들이
세상에! 골목길이야!

그러고 얼마 후 다시 그 분한테 연락이 왔어요.
연습실에 잠깐 놀러와라
놀러갔더니 대본을 주셨어요.

백하룡 작가의 <전명출 평전>을 주면서
내일 엠티다. 네 역할은 이건데, 이제 곧 너 등장하니까
이 씬 끝나면 나가서 해라.
뭔지도 모르는채로 그냥 나가서 대사를 읽었죠.

"오빠야 죽이네. 목가적 삶이 내 체질인갑다."

다음날 엠티를 갔고
그 날 이후 박근형 선생님과
그리고 이은준 연출님과 계속 인연을 쌓아나갔죠.

그런데 학교와 달리
바깥에서는 작업을 할 때마다 그게 계속 오는 거예요.
저 멀리서 뭔가 저를 짓누르는 어떤 기운.

숨을 못 쉬겠고
너무 무섭고
공연을 6주간 하는데
6주 내내 계속 그 무언가가 저를 짓눌렀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이유를 몰랐어요.

6개월을 쉬었어요.
쉬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대체 뭘까.
계속 생각을 해보니까
저는 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소리를 들었더라고요

사랑이는 잘해
사랑 선배는 잘해
잘해 잘해 잘해
늘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내가 잘해야 하는구나
내가 잘해야만 하는구나
그 부담감이 계속 저를 눌렀던 거예요

선생님이 저를 골목길 선배들에게 소개할 때도
사랑이라는 앤데, 연기를 아주 잘해.
학교 다닐 때부터 상 받은 애야.

그럼 나는 그 얘기 들으면서 속으로
잘해야지, 잘해야지.
나는 잘하는 애니까
혼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계속 숨이 막히고
관객이 무섭고
연기가 무섭고
내 앞의 배우가 무섭고

그래도 계속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공연 끝나면 선배들을 쳐다보고 술자리를 일부러 따라가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보면
저 배우는 왜 안 두려워 하지
어떻게 저렇게 툭툭툭 하지.
아 저건 연기가 아니라 생각이구나.
아 저건 내가 따라할 수 없는 거구나.
그럼 또 저는 계속 무서워지고.

저는 늘 관객이 두려워서
공연 때마다 매일 스스로 저한테 과제를 줘요.
집에 갈 때는 두렵고 싶지 않아서요.

오늘은 첫장면에서 떨지 말자.
오늘은 온전히 나한테 집중하자.
오늘은 저 배우가 몸이 안 좋으니까
내가 계속 에너지를 불어넣자.
하나하나 매일매일 아무도 모르게 과제를 줘요.

그게 없으면 전 너무 두려워요.
저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주고
하루하루 나아질거라고 믿고 있지만
두려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근형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 이런 증상이 있어요” 하니까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술 마셔”
그리고 또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나도 떨려”

아 그렇구나.
선생님도 두려울 때가 있구나.
모두가 두려울 때가 있구나.

그 두려움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연락을 다 끊었는데
은준언니에게 연락이 왔어요.
쓸데 없는 생각 말고 그냥 작품 하자고.

그 말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그냥 작품 하자.
증명이 두려워서 숨었는데
언니는 그냥 하자. 그냥.
그 작품이 <청년 전태일>이었고
다시 불씨가 타올랐고 언니한테 정말 고마워요.

언니가 늘 얘기해요.
사랑아, 우리도 이제 한 페이지 넘겨야지.
이 말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몰라요.

선생님이 늘 얘기해요.
사랑아
어딜 가든
잔디는 늘 달라.
어딜 가든
잔디에 적응해.
이 말도 왜 이렇게 좋은지 몰라요.

저한테 연극은
언제나 다른 잔디에서
언제나 꾸준히 한 페이지를 넘겨나가는 거예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신사랑(배우)

주요작품
<빨간버스> <택배 왔어요> <경숙이, 경숙아버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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